전산 김주원 교무의 정전 강의 75---솔성(率性)요론(要論)(2)
원광 원기99년(2014년) 3월호
진급과 은혜의 길로 나아가는 열여섯 가지 방법
솔성요론(2)
이번 호에서는 솔성요론의 각 조목에 대해 살펴보자.
1조는 ‘사람만 믿지 말고 그 법을 믿을 것이요’이다.
우리가 교당에 와서 공부를 할 때 처음에는
가르쳐 주고 지도해 주는 교무님이 좋아서 공부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사람은 생멸거래가 있다.
스승에게만 의지해서 공부할 경우, 그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제도 받을 수 있는 인연도 좁아진다. 그에 반해 법은 영구불변하다. 스
승을 따르고 모시면서도 법을 믿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조는 ‘열 사람의 법을 응하여 제일 좋은 법으로 믿을 것이요’이다.
이것은 ‘내 법이 가장 좋고, 이 법만 한 게 없다.’라는 우월적 입장의 이야기가 아니다.
가령 농사를 짓더라도 어떤 농사법이 가장 좋은 것인지 두루 살펴보지 않는가.
나의 인생을 책임질 법도 마찬가지다.
어떤 법이 나의 삶을 가장 원만하고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것인가를 두루 살펴본 후 취해야 한다.
나의 관념이나 편견 혹은 사람에 묶여
좋은 법을 알지 못하고 낮은 법을 취한다면 손해가 아니겠는가.
또한 법을 선택할 때는 지금도 좋고, 미래에도 좋고,
나도 좋고, 남도 좋을 수 있는 법을 선택해야 한다. 그것이 자리이타(自利利他)다.
3조 ‘사생 중 사람이 된 이상에는 배우기를 좋아할 것이요’와,
4조 ‘지식 있는 사람이 지식이 있다 함으로써 그 배움을 놓지 말 것이요’
그리고
5조 ‘주색 낭유 하지 말고 그 시간에 진리를 연구할 것이요’는
모두 배움에 대한 내용이다.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배우기를 좋아해야 진급하는 길을 만날 수 있다.
주역에 ‘월기망(月幾望)’이라 하여 ‘달도 차면 기운다.’는 말이 있다.
배움에 대해 ‘이정도면 됐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후퇴가 시작된다.
배움은 무한하다.
배움을 놓거나 주색낭유(酒色浪遊 )하면
그 순간은 재미있을지 몰라도 결국은 고(苦)를 장만하게 된다.
그러나 그 시간에 진리를 연구하면 당장은 조금 무료해도
영원한 장래에 큰 지혜와 복락을 마련하게 된다.
6조는 ‘한 편에 착(着)하지 아니할 것이요’이다.
착한다는 것은 한 편에 붙잡힌다는 뜻인데,
착하는 마음이 생기면 마음이 공평하게 쓰이지 못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운은 반드시 상대가 알아차리게 되며,
마음에 불만과 미움을 가지게 되어 점점 서로의 간격을 벌어지게 한다.
이것은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켰을 때, 그 폭이 좁아서 불빛이 비친 면만 환하게 보이고
그 외의 부분은 오히려 어둡게 되는 것과 같다.
누구나 착심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러한 착심을 녹여내면 녹여낼수록 성자의 인격과 진리세계에 가까워지며,
자기 앞날이 은혜로워져서 진급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7조는 ‘모든 사물을 접응할 때에 공경심을 놓지 말고,
탐한 욕심이 나거든 사자와 같이 무서워 할 것이요’이다.
이 조목은 교리에 바탕한 마음을 어떻게 써야 사사물물에 보은불공할 수 있느냐에 대한 것이다.
보은불공을 잘 하지 못하는 것은 대부분 욕심이 들어있거나,
아니면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함부로 하는 마음이 원인이다.
이 두 가지의 마음이 있으면 상대방에게 잘 하고자 하는 마음이 나올 수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마음을 경계하는 법문인 것이다.
또한 혹여라도 욕심이 생기거나 무시하는 마음이 들 때에는 사자와 같이 무서워하라고 했다.
여기서 사자는 나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라는 의미로 쓰였다.
사자는 나의 현재 생명만 뺏을 뿐이지만, 욕심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나의 영생을 빼앗는다.
7조에 바탕한 마음을 쓴다면,
근본적으로 죄업을 짓는 요소가 마음에서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8조는 ‘일일시시로 자기가 자기를 가르칠 것이요’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화의 진리 속에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잘될 수도 있고,
잘못될 수도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어느 때든지 내가 나를 가르치는 정신을 가지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
이 마음을 갖지 않으면,
아무리 나의 현재 위치가 많은 것을 이룬 상태라고 해도 내리막길에 접어들기 쉽다.
스스로 가르치는 정신을 가지고 공부를 쉬지 않아야 끊임없는 향상과 진급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9조는 ‘무슨 일이든지 잘못된 일이 있고 보면 남을 원망하지 말고 자기를 살필 것이요’이다.
어떠한 일이 잘못되었을 때, 사람들은 대부분 남을 먼저 원망한다.
그러나 남을 원망하는 것은 한 때의 분풀이는 될지 몰라도,
정확한 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과의 원리로 따져보았을 때, 어떠한 일이 안 된 것은 나에게 더 큰 원인이 있다.
헤드라이트를 비췄을 때 벽면에 불빛이 깜빡거리면 무엇이 원인일까?
빛을 비추는 헤드라이트에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겠는가.
원인을 정확히 모르면서 불이 비친 벽만을 탓한다면 그 일은 해결될 수 없다.
10조는 ‘다른 사람의 그릇된 일을 견문하여 자기의 그름은 깨칠지언정
그 그름을 드러내지 말 것이요’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기 우월감이라는 것이 있다.
그래서 내가 잘못한 것은 은근히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남이 잘못한 것은 자꾸만 드러내서 그 사람을 깎아내리려고 한다.
남의 그릇된 일을 세상에 자꾸 이야기하면 그 사람에게도 손해가 미치지만, 세상도 어두워진다.
남의 그름을 보았을 때 ‘나는 저런 모습이 없는가?
혹 있다면 어떻게 고쳐나갈 것인가?’라는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나와 세상에 이익이 된다.
11조는 ‘다른 사람의 잘된 일을 견문하여 세상에다 포양하며
그 잘된 일을 잊어버리지 말 것이요’이다.
앞의 10조의 반대되는 개념이다.
잊어버리지 말라는 것은, 잘된 일을 내 마음에 새겨서 나도 잘되게 노력하라는 뜻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의 그릇된 일을 보면서 그릇된 마음을 내기는 쉽지만,
남이 잘된 일을 보면서 함께 좋은 마음을 내기는 어렵다.
이것은 올바른 마음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보았을 때는 내 잘못을 고치는 계기로 삼고,
남의 잘된 일을 보았을 때는 세상에 널리 알리고 잘 기억해서
다른 사람들도 잘되게 하는 동시에 나도 잘될 수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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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색낭유[ 酒色浪遊 ] <원불교대사전 >
술과 색(色)을 탐(貪)하여 허랑(虛浪)하게 빈둥빈둥 노는 것.
“주색낭유는 자신을 망치고 패가망신의 근본이 되며 윤리도덕 타락의 지름길이 된다.
술이 있으면 여색이 따르고 주색이 있으면 잡기(雜技)가 따르기 마련이다.
주색낭유는 비단 남자들의 전유물(專有物)이 아니다.
계(契)를 하고, 춤을 추고 놀러 다니다가 집안을 망치고 타락한 여자의 경우도 주색낭유의 한 예”(《원불교사전》).
주색낭유를 하지 않기 위해
《정전》 ‘상시응용주의사항’ 제3조에서는 “노는 시간이 있고 보면 경전 법규 연습하기를 주의할 것이며”라고 했고,
《정전》 ‘솔성요론’ 제5조에서는 “주색낭유하지 말고 그 시간에 진리를 연구할 것이며”라고 했으며, ‘보통급십계문’ 제5조에는 ‘잡기를 말며’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