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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30대
다음날 나는 고드름이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수염같이 매달려 있는 펌프가에서 동생의 귀저기를 빨고 있었어. 펌프의 손잡이가 손바닥에 쩍쩍 달라 붙는 추운 날이었지... 이미 빨랫줄에 널린 빨래는 뻣뻣이 얼어서 밀칠 때마다 갈라지는 외마디 소리를 내곤 했어. (사이)
아버지가 어느새 쪽마루에 나와 앉아 담배 꽁초를 까고 있었어. 연초가루 를 모아 종이에 말아서 끝을 침으로 발랐어. 아버지의 허연 혓바닥이 드러 났지. "빨 것 없다. 쟤 남 주기로 했으니까"... 아버지의 눈은 찌푸린 겨울 하늘처럼 희뿌연 했어. 아버지는 거의 신음처럼 말했던 것 같아... 그날 오후 나는 동생을 업고 아버지의 뒤를 따라갔어--
2. 중년
괜히들 배부르니까 무엇은 무엇에 좋고, 무엇은 이래서 나쁘고, 아-! 제발 그만 좀 웃기라고 하세요. 옛날처럼 못 먹어 굶어 죽는 사람이 있어도 그런 식으로 얘길 했을까요? 저마다 살집이 넉넉하고 일하기 싫으니까 할 소리 못할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거에요. 인체는요. 비타민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또 소금을 한 가마니를 먹는다 해도 몸에 필요한 것만큼만 취하게 되어 있다구요.
3. 2-30대
남편은 이상스럽게 조급해 했습니다. 빨리 부자가 되어야 하고 빠리 행복해야 하고 빨리 승진해야 하고 그런데 제가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남편은 가난하게 자란 자신의 어린시절을 저한테 보상 받으려는 사람 같았습니다. 내가 배고플 때 넌 배불리 먹었지. 내가 추울 때
넌 따뜻한 방에서 등따숩게 있었지. 매사가 이런 식 이었습니다.
4. 중년
내가 지금 나 좋자고 이러는 줄 아세요? 죽을 때 아파트 지고 가는 사람 있나요? 남들은 이런 재주가 없어서 한숨을 쉬고 있는거에요.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나도 할 말은 해야겠어요. 집도 절도 없는 주제에 자가용차 몰고 다니는 사람이나, 셋방살이하면서 냉장고 외제라고 3,400만원짜리 사는 여자나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에요?
난 그게 아니라구요. 자가용이니 냉장고니 오디오, 자가용 욕심내지 않고 아파트만 늘리겠다는 거에요. 그 안에 들어갈 물건은 세월을 두고 차근차근 준비하구요.
5. 4-50대 (독백)
우리 어미니. 국민학교도 졸업 못했어요. 제가 학교 다닐때의 일이죠. 친구들이 찾아 오면 우리 어머니는 자신의 무식함이 제 친구들에게 알려질까봐
아무말 없이 의미없는 웃음만 연신 지으시며 열심히 과일만 깎아댔죠.
난 친구들의 그 유식한 어머니와 우리 어머니를 비교하면서 우리 어머니를 미워했죠. (사이)
그런데, 그런데 이젠 우리 아이들이 날 그렇게 대하는거에요.
6. 해설 (독백)
내가 발길을 멈추는 곳은 언제나 '곰내리' 고향땅과 비슷한 산세, 비슷한 지형의 시골이었다. 땅을 찾아 헤매며 문득문득 떠오르는 고향 '곰내리'...그러나 그날 이후 내 발길은 한번도 그쪽으로 돌려지지 않았었다. 무엇이 고향을 그리는 내 발길을 지금까지 막고 있었을까.....
7. 해설
'바이칼' 호반의 급한 산비탈인가? 소나무들이 드문드문 꼿혀있다. 수평선인가, 지평선인가...
멀리 까마득한 곳에는 하늘과 땅이 맞닿아 팽팽하게 잡아당긴 머리카락 같은 금을 그었고, 그것이 아지랑이 속에서 바르르 떨고 있었다.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죽은 세상이 아니다.
나무들이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아지랑이가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다.
8. (사랑스럽게)
보고 싶다. 미치게 보고 싶다는 것은 만지고 싶은 거래요... 따뜻한 피가 흐르는 살이 얼얼 하도록 비비고 싶은 거래요... 가슴 저리게요... 누군가 그러더군요. 이상해요. 난, 난 만남은 헤어짐의 시작이라고 언제나 생각되거든요. 그래서 충실하고 싶어요... 내 감정에...
9. (암에 걸려 있는 여자)
여보, 미안해요. 이제는 더 이상 하늘 이야기를 해 줄 수가 없어요... 함박는이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다거나, 구름이 저 공장굴뚝 위에 30분동안 걸려 있었다거나... 사실은 저는 하늘을 보고 산 적이 없어요. 남의 콧구멍을 들여다 보거나, 귓밥을 파거나, 머리를 감기거나... 면도를 하거나 했었죠... 당신 때문에 하늘을 쳐다보기 시작했거든요... 정말 미안해요...
10. 불구자
누구나 소망하는게 한가지씩은 있죠.
다들 아무 생각없이 사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우리를 무시하지 마세요.
당신네들, 그래요, 당신네들의 그 똑바른 두 다리, 두 팔로, 우리를 마음껏 휘두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건 큰 오산이에요.
몸이 불편하다고 해서 정신까지 썩진 않았으니까요.
적어도 당신들 보단 낫죠. 사리분별은 할 줄 아니까.
10대중반/남/학생
나 때문이라구? 그럼 내가 고마워서 눈물이라두 흘릴까봐?
미안하지만 하나두 안 고마워.부담스럽다구.
그러니까 이제부터 누난 누나 길 가구,...서로 간섭하지 말구 각자 살자구
누나가 싫어해요. 누나한테 그 얘길했다가...누나가 그렇게까지 화를 내는건
처음 본 거 같아요.그때가 초등학교 5학년때인데,얼마나 속상했는지...골 목에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는데,그날이 마침 어린이 날이었어요.
엄마.아빠 손 잡고 놀이동산 애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더라구요....
근데 얼마 안가 서 그게 얼마나 큰 욕심인지 알았어요.
그저 남들처럼 엄마 아빠 소리나 한번 불러 봤으면 부러울게 없겠더라구요
누나가 가엾어서요...언제부터인가 가끔 숨이가쁘고 가슴이 뻐근한게,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그럴바엔 차라리 빨리 죽는게
좋겠다 싶어서 운동장을 쓰러질 때까지 돌곤 했는데..그게 누나를 위하는 길 같았거든요
나 안죽어. 살 거라구.(울듯이)꼭..살 거야.
누나 무서워.(감정 격해지며) 죽기 싫어.살고 싶어.
왜 하필 나야? 이 나이에.(절규하 듯) 억울해. 살고 싶어.살고 싶다구.흑흑-
그런데 어느날인가부터 몸이 아프고..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는지 몰라.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부터 나없이 이 세 상에 남겨질 누날 생각하니까..(감정 울컥) 가슴이 미어졌어.그래서 정떨어지라구 일부러 반항도 했던거야.
아니 ,어쩌면 누나를 두고 간다면 용서하지 않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누나.누나가 그랬지? 사랑하는 사람을 자꾸 생각하다 보면 그 사람을
위하는 길이 뭔지 알게 된다구.누나를 위하는 길이 뭔지 알 것 같아.
...누나.부탁이 있어.혹시 내가 죽더라도 울지마.절대로
30대초반/남/의사
NA 민희가 분명했다. 민희! 얼마만에 불러보는 이름이던가.
생각만해도 가슴이 서늘해지는 이름...민.희.
어쩌면 끝자를 보기 아까워서 조금씩 아껴두고 읽는 책처럼,그렇게 가슴속에
꾹꾹 묻어두었던 이름인지도 모른다.
NA 휘청이며 걷던 민희의 어깨가 뿌연 안개 너머로 흔들리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는 또 한번의 갚은 슬픔을 맛보게 될런지 모른다.
아스라히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있던 나는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며 매정하게 돌아서던 민희...그날,민희를 태운 버스는
휘청이며 흔들리던 나만 정류장에 덜렁 내려 놓은채, 뿌연 먼지만 일으키며
아득히 멀어져 갔었지.그랬다.그날도 오늘처럼 이렇게 명치끝이 싸아하게 아팠었다.
(짠하게) 그건 아냐.절대...(단호히)그렇지 않아.
(회상하 듯)나두 남동생이 하나 있었는데,어릴때 병을 앓다 죽었어.
(울적해지며)지금두 가끔 보고싶은데...그럴 때마다 어떤 느낌인지 알아?
...가슴이 미어져.그왜 민호두 알지? 뻐근하구 숨막히구,그 느낌...
누나가 그렇게 아파하면서 살길 원해?
좋은 마음 그렇게 왜곡하는 거 아냐. 사람 마음 아프게 하는 거
한 번이면 족하지 않아? 뭐가 진짜 상대를 위하는 길인지,(숨을 고르는 호흡)...
그때 민희 판단이 옳았다구 생각해? 민희 환경이 달라졌다구 해서 (여자가 말을 끊는다)
NA 나는 오늘만큼 의사가 된 것을 후회해 본 기억이 없다.
그리고 두사람의 애틋 한 모습을 보며 무척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민희와 민호.그 두사람은 어느새 내 삶속에 깊숙히 들어 와
있었던 것이다.그런데,왜 이제,이런 모습으로 만 나야만 했을까?
** 전경린 소설 [평범한 물방울 원피스에 관한 이야기] 중에서.
이제 여자와의 관계에 많은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서른 세 살입니다.
그리고 정말 결혼해버리고 싶습니다. 그냥 편안하고, 따뜻하고
그런대로 성실하고 무던한 상대를 찾고 있습니다.
식당의 웨이트리스 같은 여자 말입니다. 연애를 할 게 아니니까요.
당신은, 뭐라고 할까요? 그래요. 작은 소녀처럼 너무나 교묘하고,
예민하고 어두워 보입니다. 마치 열일곱 살 같아요.
먼 길을 걸어가는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고.......
당신은 아직 결혼하려는 사람 같지 않습니다."
** 전경린 소설 [오후 네 시의 정거장] 중에서.
NA. 어쩌면 갑자기 결혼할 마음을 먹은 것도 한 사람만이라도
자신과 운명을 함께 해 주었으면 하는, 너무 외로웠기 때문에 품게 된 무의식의
발로였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결혼을 하고
조그만 집에서 아내가 아이를 갖고 그래서 하루하루 배가 불러지다가
어느 날은 믿어지지 않게도 정말 아이를 낳고, 그래서 우유와 장난감과 종이 기저귀를
사 나르고, 땀 흘리며 일을 해야 할 분명한 이유를 얻고 싶기도 했다.
마흔 살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는 이 지상 어디엔가에 못박히고 싶고,
살아야 하는 이유, 일을 해야 할 분명한 이유 속에서 하루하루 살고 싶었다.
** 김형경 소설 [피리새는 피리가 없다] 중에서.
가끔 주변에서 완벽하게 자기 희생적인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자주 사랑에 실패하는 걸 봐. 반대로 자기중심적인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사랑에 성공하지. 사랑을 성공, 실패로 분류하는 기준이
좀 모호하긴 하지만. 왜 그런지 아니?
난 그걸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해. 사랑이라는 이름의 희생도
엄연한 희생이어서 그 안에는 고통이 깃들지. 바로 그 고통이 고스란히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거야. 사랑보다 고통이 더 생생하게 상대의 어깨를 짓누르는 거지.
반대로 자기줌심적인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을 사랑하지.
빈틈없는 자기애를 바탕으로 항상 자신을 새롭게 하고, 또한 그 신선함으로
상대방을 긴장시키지. 자기를 사랑하는 만큼 상대를 사랑하는 거야.
그런 사랑은 부담스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적절한 긴장과 탄력을 유지하지.
너라면 고통을 주는 사랑과 긴장감을 주는 사랑 중 어느 쪽을 택하겠니?
내가 말하는 사랑이란 꼭 사람에 대해서만은 아니야.
그건 음악에 대한 사랑도 마찬가지야.
언젠가 내가 말했지. 네게는 백설공주의 계모 같은 요소가 부족하다고.
40대초반/남/인질범
사장 나오라 그래. 이 레스토랑에서 일하다가 해고된 허우범이
왔다구 전하라니까. 나.. 돈있는 놈들 한끼에 몇십만원씩 하는
밥상머리에서 시중드느라 팔다리에 쥐난 죄밖에 없다. 근데 왜 날 나가라는거야.
나 너무 억울해. 싸가지 없는 손님한테 바른말 한것두 잘못이냐
씨팔.. 나 여기 폭파시키고 말거야. 여기도 오늘루 끝장이구, 나두 오늘루 끝장이야. 확!
40대초반/남/ 회사원
이 지구상에 나한테 주어진 유일한 자유로운 공간이 어딘지 아냐?
가로 5미터, 세로1미터 도 채 안되는 이 베란다란 공간뿐이야.
15층 아래를 내려다보며 담배를 피우면.. 창밖을 통해 세상밖으로
도망가버리는 담배 연기가 왜 그렇게도 부러운지 말야...
예. 왕태귭니다. 아예.. 안녕하십니까? 예? 뭐라구요?
아니.. 저희쪽 얘기를 직접 들어보시면 생각이 달라지실 겁니다.
영송목재껀 덤핑치는 물건이라던데요.
우린 단가가 좀 세도 자재를 확실한걸 쓰니까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강과장님.. 여보세요?(핸드폰 닫는)
큰일이네. 뭐 이런 자식이 있어. 진작 결정을 했으면서 양다리
걸친거야, 뭐야. 나참.. 부장이 알면 난리날텐데...
나야말루 오늘 여기서 저 창문으로 뛰어 내릴 판이었수.
멀쩡히 몇 년을 거래하던 회사가 하필 내가 재계약하러 나온날
딴데로 업체를 바꾸냔 말야..
형씨는 아까 팔다리에 쥐난다구 했지. 난 이 머리에 쥐가 날 판이
라구. 그래두 형씨는 이렇게 폼나게 복수라도 한번 해보지.
난 뭐냐구..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밧줄 뻔히 보면서 그래두 잡을
줄이라곤 그것밖에 없으니까 죽자사자 매달려서 추접스럽게...
오히려 형씨가 부럽네요.
그거 아니? 어떤 애가 물에 빠졌는데 구경꾼만 잔뜩 있고 아무도
구해주는 사람이 없드래. 그러다 한 남자가 뛰어 들었댄다.
결국 아이를 구해서 밖으로 나왔구.. 사람들이 몰려 들자 그 남자가
뭐라고 그랬는지 알어? "우이씨.. 누가 나 밀었어" 그랬대잖아.
내가 그 꼴이었는데... 그걸 알면서도 슬슬 우쭐해지기 시작하드라.
다를게 뭐있니.
누군들 폼나게 살고 싶지 않은 줄 알어? 난두 남들처럼 당신하구
지호 데리고 해외여행이나 다니면서 살고 싶다구.
오천 보증이 아니라 내 돈 오천 척척 꿔줘가며 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
안되는 걸 어떻게.. 힘이 모자라서 안되는걸..
암만 발버둥치면 뭐해. 발버둥치는 만큼 내 발밑의 수렁이 더 깊어
지는걸.. 그래. 관둬. 능력없는 남편 이제 머슴으로도 쓸모없어져
버린걸 더 같이 살면 뭐하겠냐.
이상여 선생님 수업대본 (남)
E.요란하게 울리는 구급차 사이렌...... 차츰 희미해지면서 BG......
무 형 (NA)(허망한) 살았다...... 살아날 것만 같다. 나는 정말이지 재 수 없는 놈이다. 이전에도
또 그 이전에도 아득히 귓전을 맴도 는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는 결코 죽지 못할 거라는 불길한
예감의 확신이었다.
E.다시 한번 선명하게 들리는 구급차의 사이렌, 다시 BG로 낮 게 깔리고
무 형 (NA) 인생이라는 노름판에 나는 가장 큰 판돈인 생명을 걸고 마지막 패를 던지지만 결과는
언제나 나의 승리 아니 나의 패 배......(혼란스러워 자문하는) 승리.....? 패배?! 어쨌든 내가
원하는 것은 죽음! 그래 생명의 끈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젠장 내 발목을 잡고 있는 생명의
끈이여 이쯤에서 그만 튕겨져 나 가다오. (의도적으로 혼미해지려는) 살아나면 안되는데......
또 다시 살아나면...... 젠장! 누가 저 소리라도 멈춰줬으면......제 발......제발!
E.요란한 구급차 사이렌 소리와 함께 급정거하는 소리.
NA 그렇게 또 술독에 빠져 하루가 지났다. 치열한 경쟁이, 살아 남기 위 한 발악이 술에 취하지 않고선 나를 견딜 수 없게 만든다. 제대로 몸 도 가누지도 못한채 집에 발을 들여놓을 땐,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알 수 없는 슬픔이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습관처럼 내 입에선 과장 된 웃음과 너스레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그런 허장성세도 잠시 일 뿐. 거실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아내의 입에서 아이들이 사라졌 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내 머리속이 하얗게 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효과 술집 소음. 술잔 들이키는 소리. 술잔 탁 놓는 소리.
정과장 (혀 꼬부라져) 아니 우리한테 화를 내면 어쩌란 말입니까.송이사가 신진기계 양부장 차를 탄 게
우리 잘못입니까? 아니 내가 크락숀 빵 빵빵 울렸다구 안탈 사람이 탑니까? 아니지. 탈사람이
안탑니까? 아 냐 아냐. 크락숀을 빵빵빵 안울렸다고 안탈사람이 안탑니까? 이거 헷 갈리네.
팀장님 제말의 요지는요...
상호 당신은 몰라... 어느날 아침 눈 떠보니...엄마가 사라진 황당한 상황을...
처음엔 아버님 말씀대로 몸이 아파 외할머니 댁에 가셔서 며칠 계시다 오
실 줄 알았지... 하지만 엄마는 한 달이 지나도 오지 않으셨어... 그때마다
난 아부지에게 물었지...'엄마! 왜 안 오시는 거야?!'...... 그러면 아버지는 시
름없이 술잔을 기울이시며 아직 병이 덜 나아서 그런단다 하셨지...
그래서 난 결심했지....엄마를 직접찾아가기로....그래서 난 아버지한테
학교 갔다가 친구네 집에서 자고 온다고 거짓말시키고 만 이틀을 걸어 외
할머니 댁을 갔었지....그러나 거기도 엄마는 없었어.... 그때 난 알았지.....
엄마가 우리를 버리고 떠났다는 사실을.... 그러나 아부지는 인정하지 않으
셨어....어떻게 해서든 그녀의 빈자리를 채워주셨지......저녁에 밥을 지어 아
랫목에 묻어두셨고....베게도 치우시지 않으시고....당신의 잠자리에 놓아
두셨지.....하지만 엄마가 남기고 떠난 그 빈자리는 늘 쓸쓸하게 보였어......
날이면 날마다 늘어가는 술병만큼이나 절망으로 채워져 갔지....그러는 사
이 아버지의 건강은 나날이 나빠져 내가 중학교 들어가던 무더운 여름날
한 많은 눈을 감으셨지.....
40초반/남/ 파출소소장
이렇게 밖에서 뵙자고 한 건... 봄이 어머님...
죄송합니다. 참 소문이라는 게 무섭더군요. 하지만 전...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합니다.
제 진심을 말씀 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뵙자고 했습니다.
봄이 어머님...제가 봄이 현기 새 아빠가 되면 안되겠습니까?
그동안 많이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을 하고 나니 더 용기를 내고 싶네요.
당혹스러우시겠지만 봄이 어머님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
물론 지금 당장은 어려우시겠지요. 봄이 어머님 마음이 정리되실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70/남/ 바닷가 노인
오징어가 불빛보고 몰려드는 게 아이고, 불빛 따라 멸치같은 쬐깐한 괴기들이
몰려드는기다. 그라몬 오징어가 기걸 잡아 먹을라고 따라오제.
거기다 물레 시울을 던졌다가 물레를 돌려 오징어를 끌어 올리는기다
사람이란 말이다. 다 정거장 인생이다. 만났다간 헤어지고 또 만났다가 헤어지고..
어디론가 떠나고...돌아오고...그라면서 사는기다.
하기사 어린 너한테 이런 소리 해봤자 몬 알아듣겠지만 서도 살다보믄 인연이
닿는 사람이 있는기다 이 말이다.
30대초반/남/ 건축가
(다정하고 달콤하게) 피곤하지? 냉장고에 시원한 수박 있어. 꺼내 먹고--.
식탁 위에 너 좋아하는 포토 와인 한 병 갖다 놨어. 한잔 마시고 푹 자.
난 일이 있어서 늦게 들어 올거야. 잠 깰까봐 전화 안한다---.
마음이 허전해서--? 아니 우리 어부인이 계절을 타나?
--왜 갑자기 허전해 하실까? 가만---이거--눈 안에 쓸쓸함도 가득하고,
외로움도 배어 있고, 그리움도 묻어나고--, 약간 중증인거 같은데?
(일부러 장난조로) 아무래도 빨리 응급처치 해야겠는데--.
(분위기 바꾸려는 듯)--혜인아--우리 어디로 여행갈까?
객관적? 이건 우리 둘의 인생 문제야?
어떻게 객관적이 될 수 있어?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거야?
쓸데없는 소리마. 선택은 이미 다 되어 있는거야.
우리 둘은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고--지금도 사랑해. 세상 누구보다도--.
(약간 과장된) 응, 요새 회사일이 어떻게나 바쁜지 눈코 뜰새가 없네.
우리 둘이 같이 밥 먹을 시간도 없으니 말이야. 그치?
어째 음악 한번을 편안히 들을 시간이 없네.
(효과 오디오 누르는 소리.)
(소파에 앉으며) 내일은 우리 둘이 어디 좋은데 가서 외식이라도 할까?
(화 내며) 너--지금 무슨 소릴 하는거야?
그리고 거기서 날 봤으면 아는 척을 해야지--왜 모른 척 하고 지나친 거야? 응?
-뭐가 무서워서 아는 척을 못해?
(사이)도대체 왜 그래? 왜 그렇게 불안해 하는 거냐구? 응?
그럼 자식이 있는 세상의 모든 가족들은--모두 다 행복하니?
사람은 누구나 행복 하나, 불행 하나 옆구리에 끼고 살아가는거야.
그게 행복인지 불행인지는 우리 마음에 달렸다구--.
외국에선 부부들이 행복하게 살려구 아이도 안낳는다는데--
넌 왜 그렇게 생각이 구시대니?
(N) 그녀와 얘길 하고 있으면, 혜인과는 다른--청초함 같은게 느껴진다.
어머니의 보이지 않는 노력 때문에---일이라는 명목으로 만나고 있지만,
그녀와의 시간은 점점 더--내게 또 다른 기쁨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가끔 혜인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는 일이 자주 생기기 시작했다.
(N) 아내가 곁에 있을 땐---윤주의 존재가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러나--아내가 떠나고 난 자리에---그녀가 뿌리를 내릴 자리는 없었다.
잠시 잊었지만--내 가슴엔 아주 오래 전에,이미 뿌리를 깊게 내린 아내의 존재가 있었다.
이제야 알았다. 진정한 사랑이란--정말로 사랑하기 어려운 상황일 때,
그 사람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마음이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