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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해상란 무엇인가?
소비자용 모니터와 TV에서는 화면 크기 경쟁에 이어 해상도 경쟁도 이미 몇 해전에 끝난 듯한 느낌이고, 디지털 카메라(특히, DSLR 카메라)와 같은 촬영 기기 쪽에서만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더 높은 해상도의 카메라는 더 높은 해상도의 디스플레이를 필요로 하기 마련이고, 그 반대도 성립한다.
일단 초고해상도에 대해 상식적인 내용을 하나 확인하고 넘어가자. 지금 이 기사에서 다루고자 하는 해상도 얘기는 아래의 3가지 포맷에 대한 것이다. HD, UD, Super Hi-Vision의 해상도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 아래의 그림을 통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이다.
※ HD(≒2K) vs UD(≒4K) vs Super Hi-Vision(≒8K)
참고로, 해상도에 대해서 말할 때 SD / HD / UD 등으로 얘기하기도 하고, 2K / 4K / 8K급이라고 구분하기도 하고, 몇 Mega급이라고도 부르는 등 좀 다양한 용어들이 사용되고 있다. 혹시, 혼란스럽게 느끼셨을 분들을 위해 아래와 같이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다.
결국 HD = 2M급 = 2K급이고, UD = 8M급 = 4K급이라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것이다. 개념 상으로 얘기할 때에는 HD인 것이고, 전체 화소수를 기준으로 얘기할 때에는 8Mega급인 것이고, 수평 해상도를 기준으로 할 때에는 2K급인 것이고, 수치적으로 표현하면 1920*1080이 되는 것이다. 간단한 사실을 말 하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표현한 것이니 혼동하지 마시기 바란다.
초고해상도... 왜 필요한가?
제조업체들은 왜 자꾸 더 높은 해상도의 카메라와 디스플레이를 개발하는 것일까? 적정 시청거리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DVD와 Bluray도 잘 구분하지 못하는게 현실인데 HD, UD, Super Hi-Vision과 같이 계속 해상도를 높이는 것이 과연 도움이 될까?... 라는 의구심을 가지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사실이다. 현실적으로 봐서 아직 HD조차도 시작단계에 불과하고, 실용적으로 많은 소비자들이 DVD와 Bluray의 화질 차이를 아직 실감하고 있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K, 4K, 8K로까지 계속 해상도를 높이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뿐이다. 시각적 자극을 통해 가상의 현실감을 조금이라도 더 높여 주고자 하는 것이다. 예전에 TV 해상도 및 시청거리와 관련된 강좌에서 설명드린 바 있는데, 인간이 두 눈을 동시에 떳을 때 보이는 시야각은 수평 120도, 수직 140도 정도이다. 수평의 경우 양 눈의 시야각이 중첩되기 때문에 두 눈을 동시에 떳을 때의 시야각은 생각보다 그리 높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우리 눈이 볼 수 있는 시야각이 꽉 찰 정도로 화면이 클 때 우리는 디스플레이가 보여 주고 있는 상황에 쏙 들어가 있는 것 같이 느낀다는 것이다.
화면을 크게 해서 우리의 시야를 꽉 채우는 것은 쉽다. 단순히 큰 화면에 가까이 다가서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면에 가까이 다가서면 그만큼 해상도가 낮아져 자연스럽지 못한 영상이 된다. 따라서, 시야를 꽉 채우려면 화면도 커야 하지만 그만큼 해상도가 높아야(= 화면이 정밀해야 = 화소가 작아야) 자연스럽게 영상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자연스러운' 화면의 기준이 되는 해상도란 '스캔라인이 보이지 않는' 수준을 뜻한다. 쉽게 말해서 화소가 꺼졌다 켜졌다 하는 것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리가 멀든지 화소의 크기가 작든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문에 인쇄된 그림이나 글자가 그냥 보면 깨끗하게 보이지만 돋보기를 놓고 보면 여러 색으로 된 점들이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의 원리이다. 다시 말해서, 해상도가 높으면 그만큼 가까이 다가설 수 있고, 따라서 시야를 더 많이 채울 수 있어 영상의 몰입도가 증가하고, 결국 디스플레이가 주는 가상 현실감(Virtual Reality)이 증가된다. HD로 만족하지 못하고 초고해상도를 개발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 HD vs Super Hi-Vision (이미지 출처 : NHK)
TVLogic의 56인치 4K 모니터
티브이로직은 지난 4월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개최된 NAB 2010에 출품해 큰 관심을 모았던 4K 모니터 LUM-560W를 이번 IBC 2010에도 선보였다. NAB 및 KOBA에서와 마찬가지로 (아시아 최초로 Red-1 4K 카메라로 촬영된) '추노'의 원본 영상을 56인치 초고해상도 모니터로 시연하고 있었다. 디지털 씨네마 뿐아니라 군용 및 의료용 등 초고해상도 화질을 필요로 하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 4K 모니터인 LUM-560W의 특징을 Wall Monitor에서 보여 주고 있다.
※ TVLogic의 56인치 4K 모니터 LUM-560W (해상도 3840×2160)
파나소닉의 152인치 4K PDP
PDP의 명가 파나소닉에서는 152인치의 거대한 화면에 4K 해상도를 얹은 제품을 시연하고 있었다. 같은 4K라 하더라도 위의 TVLogic LUM-560W는 56인치였던데 비해 이 파나소닉 4K PDP는 약 3배 정도의 화면크기인 152인치라 상대적인 화면의 정밀도는 떨어져 보였다. 해상도만 놓고 보면 60인치로 HD 영상을 보는 느낌이라 생각하시면 되겠다.
※ Panasonic의 152인치 4K Plasma Display
아스트로 디자인의 4K 캠코더, 4K 모니터
Astro Design은 산업용 영상신호발생기(Video Signal Generator)로 유명한 회사인데 2년전부터 56인치 4K 모니터를 선보이더니 올해에는 아예 4K 카메라까지 세트로 갖춰 나왔다. 자체 부스를 차린 것은 아니고 한 유럽 종합 장비(판매)업체의 대형 전시부스 한 켠에 자리를 마련했다.
※ Astro Design의 4K 캠코더(AH-4410) 및 56인치 4K 모니터(DM-3410)
RED Digital Cinema의 5K 캠코더
저렴한 가격의 영화용 디지털 캠코더 시대를 연 Red-1으로 유명한 레드 디지털 씨네마는 별도의 부스를 차리지는 않았고 역시 한 종합 장비(판매)업체 부스에서 신제품의 전시모델을 보여 주고 있었다. 필자는 DSLR 같이 생긴 모양새 때문에 혹시 Red에서 디지털 스틸 카메라를 만들었냐고 물었더니, 그게 아니라 기존의 Red-1 카메라를 대체할 신형 5K 캠코더라고 한다. 훨씬 작고 가벼워진 본체 덕분에 좀더 편리하게 조작할 수 있게 되긴 했지만 가격은 조금 더 높아졌다고 한다.
(참고로, 전시되었던 제품은 그냥 모형이었고 며칠 뒤 Working Sample이 온다고 해서 다시 찾아 갔었는데 여전히 실제 제품은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2010년 하반기에 판매할 계획이라고 한다)
※ RED의 5K camcorder
NHK의 Super Hi-Vision 8K 캠코더
일본의 국영방송사인 NHK는 방송사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방송기술에 대한 막대한 투자와 선도적인 기술개발로도 유명하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조금씩 보급이 확대되고 있는 HDTV 방송의 근간이 모두 일본식 HD방송인 하이비전(Hi-Vision)에서 출발한 것이라 할 만큼 NHK의 역할과 위상은 대단하다.
NHK는 지난 2006년과 2008년에 이어 2년만에 다시 IBC에서 초고해상도 영상시스템인 Super Hi-Vision을 선보였다. 카메라의 크기와 무게가 대폭 줄었고 H.264를 이용한 압축 효율도 높이는 등 그간 이루어진 개선사항을 실제 영상과 함께 발표하였다. 몇몇 선진국들만이 이제 겨우 HD방송으로 전환하고 있는 중인데, NHK는 최소 10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 같은 8K급 해상도(7680*4320)의 영상 시스템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 8K급 해상도라는 것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오지 않으시는 분들은 수평과 수직 해상도를 곱해 보시기 바란다. 약 3,318만 화소가 된다. 현재 나와 있는 최고 해상도의 DSLR 카메라가 2400만 화소급이다. HD방송이 200만 화소급이고, 극장용 4K가 약 830만 화소급이다. NHK는 지금이 3300만 화소급 영상을 가정에서 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Super Hi-Vision의 영상 프리젠테이션은 8번홀 근처에 별도로 마련된 공간에서 이루어졌지만, 히차티 부스에서도 Hi-Vision을 만나 볼 수 있었다.
※ Hitachi 부스에 전시된 Super Hi-Vision 카메라 및 4K 모니터
아래의 사진들은 Super Hi-Vision용 8K 카메라 본체이다. 2008년에 사용한 40Kg의 육중한 Mk2 카메라에 비해 크기도 일반적인 방송용 카메라 수준으로 줄었고, 무게도 약 20Kg 정도로 많이 다이어트를 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스튜디오나 중계차, 야외 경기장 등에서 활용하는데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아직 일반 업무용 캠코더에 비해 제한적인 요소들도 있다. 부드러운 패닝 정도는 괜찮지만 "빠른 속도의 줌인이나 줌아웃, 갑작스러운 장면 전환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고 한다.(NHK의 겐지 나가이 기술국장, IBC 인터뷰)
※ NHK의 Super Hi-Vision Camera
※ NHK의 Super Hi-Vision Camera
Super Hi-Vision용 카메라의 뒷면에는 NHK와 Hitachi의 로고가 나란히 찍혀 있다. 방송사인 NHK가 하드웨어까지 모든 것을 다 개발하는 것은 아니고 일본의 유수 장비업체들과 공동개발을 해 왔는데, 카메라에 대해서는 히타치쪽과 협력한 모양이다. 그래서 또 이 Super Hi-Vision이 히타치 부스에 전시된 것이기도 하다.
그건 그렇고, 이 카메라의 뒷면을 보면 출력 단자가 매우 많은 것을 보실 수 있다. 앞서 설명드린 바와 같이 Super Hi-Vision의 해상도는 7680*4320으로 1920*1080의 HD 해상도에 비해 16배 더 높기 때문에 1.5Gbps의 HD-SDI 출력이 16개 있어야 한다. 따라서 총 비트레이트는 24Gbps라는 어마어마한 데이터량을 자랑한다. (하나의 HD-SDI 출력마다 4개의 채널로 분산, 전송되기 때문에 총 단자 수는 64개나 된다)
※ HD-SDI(1.5Gbps) × 16 = 24Gbps (총 채널 수는 64 채널)
NHK는 이번 Super Hi-Vision 시연을 위해 8K 프로젝터를 이용했고 8K 모니터도 가져 왔다고 했는데 필자가 보지는 못했다. 히타치 전시 부스에는 4K 모니터로 시연을 하고 있었는데 8K의 영상을 4K로 다운스케일링해서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5등분(4등분+가운데 1등분)을 해서 1 : 1 픽셀로 보여 주고 있었다.
※ 4K Monitor
※ NHK의 8K 캠코더로 촬영된 영상을 4K 모니터로 분할해서 보여 주고 있다.
※ 8K 영상을 5등분하여 4K 모니터로 보여 주는 PC용 S/W
약 24Gbps의 데이터량과 22.2 채널의 오디오를 감당하려면 스토리지와 영상 프로세싱 유닛도 엄청나야 하는데 아래의 사진이 바로 그것이다. 캐비넷 하나를 가득 채우고 있다.
※ 8K 영상을 처리, 저장하는 서버 랙.
NHK는 이번 IBC 2010에서의 시연을 위해 일본에서 촬영해 온 도쿄 마라톤 등의 8K 영상도 동원했지만, 암스테르담 중앙역 앞의 빅토리아 호텔 옥상에 카메라를 설치한뒤 광섬유 케이블을 이용해서 RAI 전시장까지 연결하여 생생한 현장 중계를 하였다.
NHK는 현재 2012년 런던 올림픽을 Super Hi-Vision으로 촬영하기 위해 BBC 및 EBU와 협의중이라 하며, 2015년에는 지상파 시험방송을 실시하고, 2020년경에는 위성을 통한 전국 방송을 실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NHK의 겐지 나가이 기술국장, IBC 인터뷰). 일본의 경우 HDTV 보급율이 매우 높기는 하지만 Super Hi-Vision을 즐기려면 4K를 넘어 8K급 TV를 가져야 하기 때문에 과연 NHK가 기대하는 만큼 화질 향상 혜택이 피부에 와 닿을 수 있을 지는 아직 의문이다. 특히, 최근 급격히 불고 있는 3D 바람과 함께 잘 공영할 수 있을 지도 따져 봐야 한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경험한 카메라와 디스플레이의 기술개발 속도를 생각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이다. 이미 소비자용 캠코더 뿐아니라 디지털 카메라에서도 HD급 동영상 촬영이 가능해 졌다. 아마 2년쯤 후에는 4K급 캠코더가 보급될 것이고 10년 후라면 이미 소비자들도 8K급 캠코더로 아기의 생일파티를 촬영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Super Hi-Vision과 같은 미래 방송시스템에 대한 연구는 막상 그 기술이 상용화될 때 가서 해도 그리 크게 늦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Super Hi-Vision을 위한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능력과 팔 수 있는 기회는 미리 준비한 자들에게만 돌아갈 것이다. 다음 세대를 위한 고부가 산업을 육성을 위해 우리도 하루 빨리 이 분야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미 ETRI 등을 위주로 연구가 일부 진행중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보다 도전적인 투자와 연구개발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며, 특히 카메라와 디스플레이, 스토리지, 프로세싱 유닛 등에 대한 기반 기술을 개발하는데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만약 NHK의 주변에 소니나 히타치, 후지논과 같은 최고의 기업들이 없었다면 Super Hi-Vision의 개발은 애초부터 불가능했을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