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바다가 온몸으로 달려와서/ 육지를 물어뜯고 요동치며 육지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으로 갈라진다./ 그러나 육지와 바다는 마침내/ 약속이나 한 듯 한 몸을 이룬다./ (중략) / 무창포의 사랑은 다홍색 펄펄 끓는/ 뜨거운 뜨거운 사랑이다.’ 충남 보령 출신의 고(故) 홍완기 시인의 ‘무창포의 사랑’이란 시다.
무창포에는 ‘모세의 기적’으로 불리는 바다 갈라짐 현상이 일어나는 ‘신비의 바닷길’이 있다. 조수간만의 차이에 의해 생기는 자연현상으로, 물이 빠지면 주변보다 높은 해저 지형이 길처럼 드러나 바다가 양쪽으로 갈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바다가 열리면 무창포해수욕장과 무인도인 석대도 사이 1.5㎞에 활 모양의 우아한 곡선을 이루는 길이 장대하게 펼쳐진다.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게와 조개 등 바다생물들이 여기저기에 널려 있다. 이를 기다려 호미와 양동이를 들고 조개 등을 채취하는 사람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살갗을 드러내는 무창포의 해변은 다소곳한 느낌이다. 모래와 진흙, 작은 자갈과 암반으로 구성된 혼합 갯벌은 연인 뿐 아니라 가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인파에 섞여 석대도까지 이어진 바닷길을 따라간다. 입구에 독살이 자리잡고 있다. 독살은 바닷가에 돌담을 쌓아 고기를 잡는 전통 어로 방법이다.
독살 근처에 사람들이 군데군데 모여앉아 부지런히 굴을 따거나 바지락을 채취하고 있다. ‘기적’이 자주 연출되다 보니 미처 자랄 틈이 없어서인지 씨알은 작지만 갓 채취한 탱글탱글한 굴에서 자연산의 향기가 난다.
부모 손을 잡고 신비한 바닷길을 구경 온 어린이들이 고사리손으로 게를 잡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모두 흥겨워하는 모습이다. 인근 가게에서 호미와 그릇 등을 실비로 대여해 주니 특별히 준비할 것도 없다. 마음 실은 몸만 훌쩍 떠나면 된다.
구전에 따르면 석대도는 아기장군이 죽었을 때 황새가 떼지어 나타나 슬프게 울었는데 이때 돌로 좌대(座台)가 놓인 것 같이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마침 무창포의 멋진 풍경을 더 높은 곳에서 감상할 수 있는 전망탑도 생겼다. 이용료는 2000원.
무창포해수욕장과 대천해수욕장을 잇는 3.7㎞의 남포방조제를 따라간다. 방조제 초입 월전리에는 신라 말 최치원의 유적이 있다. 간척지가 되기 전엔 맥도(보리섬)라 불렸던 곳이다. 넓은 간척지에 둘러싸인 맥도는 집 두어 채가 겨우 들어설 만한 크기의 작은 동산이다. 병풍처럼 둘러선 바위들을 샅샅이 둘러봐도 최치원이 썼다는 글씨는 보이지 않는다. 남포방조제 중간복주머니처럼 매달린 죽도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건너편 용두해수욕장 너머로 석대도가 얼굴을 내민다.
무창포에서 북쪽으로 10㎞쯤 떨어진 대천해수욕장에 들어서면 낮 동안의 태양은 어느새 산산이 흩어지며 겨울바다를 낭만과 함께 금빛으로 물들인다. ‘조개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던’ 윤형주가 놀았던 그 바다. 날씨가 풀린 덕분인지 대천해수욕장엔 산책하는 이들이 넘쳐난다. 파도에 가슴 한쪽은 부풀어 오른다. 파도에 씻긴 패각분 백사장이 유난히 정갈해 보인다. 대천의 낙조 앞에서는 바닷물도, 산책하는 이도,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도 하나의 배경에 불과하다.
파도는 하루 두 차례 열심히 밀물과 썰물이 돼 쉬지 않고 살아움직인다. 3.5㎞에 이르는 드넓은 백사장을 온몸으로 갈고 닦으며 더욱 고운 빛깔로 내일을 준비한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백사장을 자랑하는 대천해수욕장은 강릉 경포대, 부산 해운대와 함께 우리나라 3대 해수욕장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하얀 백사장과 파란 바다, 수평선 너머 점점이 떠있는 크고 작은 섬들이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곳이다. 해마다 1000만명이 넘는 피서객이 다녀가는 전국 최대 규모의 해수욕장답게 묘한 매력으로 마음을 붙잡는다. 대천항 어시장도 사람 사는 맛이 나는 곳이다. 꽃게 해삼 아귀 우럭 도미 등 물 좋은 해산물을 사려는 사람들과 상인이 ‘밀당’을 벌이는 흥정이 인간적인 풍경으로 다가온다.
보령시와 홍성군의 경계에 있는 오서산은 가을 억새로도 유명하지만 겨울 산행도 즐길 만하다. 까마귀와 까치가 많이 살던 곳으로 ‘까마귀 보금자리(烏棲)’라 불린 데서 이름이 붙여졌다. 강화도에서 목포까지 서해안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 ‘서해의 등대’로 불리며 계절마다 다른 모습으로 등산객을 즐겁게 한다. 오서산 정상에서 약 1㎞ 이어지는 능선길에는 소나무 등 침엽수가 없고 잎이 떨어져 가지만 앙상하게 남아있는 2∼3m 정도 높이의 떡갈나무 등이 밀집돼 있다. 이들 가지에 상고대가 맺히면 봄의 벚꽃길과 같은 장관을 연출한다.
서리꽃은 대부분 높은 산에서 볼 수 있다. 오서산은 791m로 비교적 높지 않지만 오서정까지 구간이 활엽수로 이뤄져 있어 독특하게 겨울이면 긴 꽃길을 만든다. 구름이 없는 푸른 겨울하늘에 햇살을 받아 하얀 서리꽃 사이로 푸른 하늘빛이 조금씩 비출 때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서쪽으로는 서해의 수평선과 서해낙조를 조망할 수 있어 황홀감을 더해준다.
산행 코스는 여럿 있다. 장현리 오서산자연휴양림에서 올라가면 2시간이면 정상에 닿는다. 월정사∼약수터∼통신 안테나를 거쳐 정상에 오르면 안면도를 비롯해 원산도, 삽시도 등 서해안의 보물 같은 섬들과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해가 뉘엿뉘엿 서쪽 바다로 다가가면서 황금색 빛줄기를 쏟아내리면 바다는 붉게 끓는다. 눈을 돌려 멀리 보면 남쪽으로는 성주산, 북으로는 예산의 가야산, 동으로는 칠갑산·계룡산까지 관망할 수 있다.
청소역은 보령의 북쪽 청소면 진죽리에 있는 작은 기차역이다. 장항선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다. 1961년 지어졌는데 광복 이후 역사의 모습이 잘 남아있는 덕에 지금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대합실은 작다. 대여섯 명만 들어서면 북적댈 법하다. 하지만 역사가 예뻐서 연인들이 종종 다녀간단다. 산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기서 내려 오서산 등산에 나서고, 맛난 먹거리를 좇는 이들은 이곳을 오천항 나들이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여행메모
보름·그믐 ‘바닷길’ 체험 굴 요리 등 먹거리 즐비
무창포 신비의 바닷길에 가려면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해 무창포IC로 나가면 된다. 대천해수욕장은 대천IC에서, 오천항은 광천IC에서 내리면 된다. 승용차로 서울에서 약 2시간 걸린다.
신비의 바닷길을 체험하기엔 음력으로 보름날이나 그믐날을 전후해서 2∼3일 정도가 가장 좋다. 이달에는 22∼26일 오전 시간대에 열린다. 물 때는 저조(간조) 전 두 시간부터 저조 후 한 시간까지가 좋다.
무창포해수욕장 등 보령의 바닷가에는 갓 잡은 싱싱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생선 횟집이 즐비하다. 대천항에서는 싱싱한 횟감을 살 수 있는 수산시장이 있다. 남포방조제 중간에 위치한 죽도관광지에도 횟집들이 많다. 겨울철 보령의 별미는 굴구이와 조개구이. 천북면 장은포구는 서해안 최대의 굴마을로 90여 개의 음식점에서 굴밥, 굴회, 굴전, 굴구이 등 굴을 재료로 한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성주면 개화리 석탄박물관도 들러볼 만하다. 1995년에 개관한 보령석탄박물관은 광물, 화석 뿐 아니라 측량·굴진·채탄·운반장비 등 3800여점의 전시품을 소장하고 있다. 실내전시장 2층에서 국내 최초로 수직갱 지하 400m를 내려가는 승강기를 재현한 엘리베이터를 타면 바로 모의갱도가 나오고 모형으로 재현한 채탄 작업 광경이 펼쳐진다.
이밖에 모산미술관, 보령호 드라이브, 성주산휴양림 냉풍욕장 등 자연 및역사문화유적과 즐길 곳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