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섭-우물을 깊게 파려면 넓게 파라>
통섭이란 용어는 10여년 전에 이화여대 석자교수이신 생태학자 최재천 교수가 만든 새로운 용어이다. 그가 2005년 하버드대학교 진화생물학자 <윌슨>의 저서 <Consilience:The Unity of Knowledge>의 반역 본에서 처음으로 사용 된 단어이다. 그 후 단어의 개념을 꺼내놓기가 무섭게 날개 달린 듯 학계, 기업, 사회에 퍼져 나갔다. 번역본이 출간 되자마자 불교계에서 이미 원효대사가 화엄을 불교의 최고 경지로 상정하고 그 경지에 이르는 방법론으로 제시한 개념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불교의 화쟁 사상을 설명하면서 원효대사가 자주 상용하던 용어라는 것이었다. 최재천 교수는 통섭의 개념을 소개하면서 학자들에게 진리의 궤적을 따라 과감하게 그리고 자유롭게 학문의 국경을 넘나들 것을 강권 하였다. 지금도 많은 학자들은 스스로 쳐 놓은 학문의 울타리 안에 갇혀서 지식 권력을 최고의 권위 인양 누리며 살고자하는 이가 많다.
전 세계적으로 4차 산업을 주목하고 있고, 앞으로의 모든 과학은 통합, 융합, 통섭의 학문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자명한 사실로 받아들인다.
“통합”은 둘 이상을 하나로 모아 다스린다는 뜻으로 이질적인 것들을 물리적으로 합치는 과정이다. 어딘지 모르게 하향조정의 방식의 합침이라는 느낌이 들어 소통의 부족함이 배여 있다.
“융합”은 핵융합이나 세포 융합에서 보듯이 둘 이상이 녹아서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수소분자 둘과 산소분자 하나가 융합하면 원래 수소와 산소와 전혀 다른 물이 탄생하는 것이다. 통합이 물리적 합침이라면 융합은 화학적 합침이다.
“통섭”은 생물학적 합침으로 남남으로 부부가 서로 만나서 전혀 새로운 유전자 조합을 지닌 자식이 태어나는 과정이라 말 할 수 있다.
21세기들어서 인지 과학이라는 학문의 기세가 등등하다. 인지과학은 우리 인간의 두뇌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연구하기 위하여, 뇌과학, 심리학, 철학, 진화생물학, 컴프터 공학, 기계공학 등을 만나 범 학문적 통섭을 거쳐 태어난 학문이다. 부모 학문들을 잘 섞어 휼융한 자식 학문이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부모학문이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존재하면서 새로운 자식 학문이 태어나는 것이다. 재생산 또는 번식 과정과 흡사하다. 나무에 비유 되는 학문으로, 줄기가 기준이 되어 가지와 뿌리가 상호 영향을 주어 튼튼한 나무로 자라는 학문이 통섭학문이다.
진정한 학문의 통섭은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원활한 소통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과학의 발달에서는 자연과학이 중요하다고 생각 할지 모르지만 학문은 인문학에서 출발하여 인문학으로 마무리 되는 것이 학문의 보편적 개념이다.. 그러나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통섭의 노력만이 <윌슨>의 표현대로 “인간 지성의 위대한 도전”이라고 믿는다. <윌슨>은 지식 탐구의 두 거대 주류인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통섭은 과거나 현재, 미래에도 인간 지성의 최대의 목표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21세기에 그 노력들이 꾸준히 전개 되어 결실을 맺어야 사회 각 분야가 풍요하고 더욱 발전 될 것으로 확신한다. 전 세계적으로 모든 분야에 융합과 통섭의 흐름이 도도하다. 통섭의 시대를 앞서 가려면 그에 걸 맞는 인재를 길러야 한다. 자연 과학과 인무학의 장벽을 허물고 폭넓게 학문을 섭렵하도록 사회 교육에 더욱 힘쓰고자 한다.
제 4차 산업을 성취할 수 있는 핵심은 연결성이다. 21세기도 19세기나 20세기처럼 과학적 발전을 이룰 수 있을까 하는 것에는 많은 학자들이 의구심을 갖는 것 또한 사실이다 만약 이룰 수 있다면 이는 지금까지 연구한 과학의 기술을 창발적으로 연결하여 혁명적 발전을 꾀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생태, 생명의 학문은 한마디로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4차 산업 혁명 시대로 들어서면서 생태 또는 생태계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다. 생태계는 곧 관계에 있다. 환경과의 관계, 생물과의 관계, 노자가 주장 했듯이 자연으로 다시 돌아가면 생태계가 건강 해 질 수 밖에 없다. 연결이 잘 되어야 관계가 자연적으로 잘 이루어 져야 건강하게 살 수 있듯이 인간도 학문도 관계가 잘 형성 되어야 만사가 형통 해 질 수 있다. 관계와 연결의 핵심이 통섭이다. 통섭적인 삶이 창발효과를 극대화 시킬 수 있겠다.
25여년의 사회 교육에서 원예 전공자 답게 원예과학을 가르치며 원예치료를 통해서 도시 사회에서 고통 받는 정신적 병리 현상을 치유하고자 많은 원예치료사를 양성하여 우리 주변에 소외 받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원예(식물)을 가까이하라고 강조하며 그 원인과 이유를 과학적으로 풀고자 노력하였다. 원예에서 산림학(숲), 도시농업, 조경 등을 함께 공부하기를 원했고 나 스스로 실천하여 모범을 보이려고 노력하였다. 식물과 관련 된 역사적 인물에 대한 공부를 꾸준히 해 온 덕분에 언제 누구와 만나도, 다산 정약용, 고산 윤선도, 한훤당 김굉필, 정암 조광조, 소쇄 양산보, 하서 김인후, 퇴계 이황 등에 대해서 식물, 생태, 인문학과 연관지어 토론할 수 있다.
배움과 가르침이란 무엇인가? 지식이란 또 무엇인가?
아무리 사회가 다급하고, 욕심이 앞서도 학문은 지름길이 없다. 또한 가르침과 배움은 반칙이 있을 수 없다. 배움이란 과거 보다 현재 더나가 미래에 희망을 갖고 자신의 경쟁력을 만들어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가르치는 선생은 자기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함이 만고의 진리이다.
나에게 공부의 목표는 오직 가르침에 있다. 하서 김인후 선생이 제자들에게 말했던 학문은 강에 뜨 있는 배의 노 저음과 같다. 노를 저어야 배가 앞으로 갈 수 있다. 노를 젓지 않으면 배가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고 뒤로 밀려나게 된다. 꾸준히 공부하지 않으면 뒷 걸음 칠 수 밖에 없다. 오늘날의 배 노 저음은 혼자 젓는 것이 아니고 다양한 사람과 함께 저어가야만 사회가 발전 할 수 있다는 것이 통섭을 이해 하는 것이다..
올해는 장마가 일찍 끝나고 7월 초부터 폭염이 계속 되고 있다. 밤에도 열대야가 계속되어 밤잠을 설치 곤 한다. 나에게는 에어컨 아래에서 찬바람을 쐬면서 더위를 이기는 것이 피서의 방법이 아니고 목표를 세워 몰입하고 집중하여 내가 잘 할 수 있는 공부 외 또 다른 공부를 계획하여 통섭의 원리로 나의 지성을 고양시키는 것도 여름을 잘 극복하는 보람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018년 첫 더위 새벽에 여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