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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26 - 9장 6 (다니엘 이야기)
성경본문 : 다니엘 8: 26 - 9: 6
26. 이미 말한바 주야에 대한 이상이 확실하니 너는 그 이상을 간수하라 이는 여러 날 후의 일임이니라
27. 이에 나 다니엘이 혼절하여 수일을 앓다가 일어나서 왕의 일을 보았느니라 내가 그 이상을 인하여 놀랐고 그 뜻을 깨닫는 사람도 없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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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다니엘 9: 1-27
1.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입던 원년 2.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년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3.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4.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자시여
5.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6. 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열왕과 우리의 방백과 열조와 온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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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김창인목사
오늘은 다니엘 8장 26절에서부터 9장 6절까지 있는 말씀을 가지고 "다니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성경에는 아담 이야기도 있고 노아 이야기도 있고 아브라함 이야기도 있고 야곱이나 요셉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렇듯 신앙 선조들에 대한 이야기가 참 많이 있습니다. 그 분들은 이렇게 살았고 이렇게 믿었고 이렇게 승리했다는 내용들입니다.
저는 교회에 다니기 전에 외삼촌으로부터 성경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당시는 성경 이야기인줄도 몰랐습니다. 노아 이야기, 아브라함 이야기, 요셉 이야기, 모세와 에스더 이야기, 오늘의 다니엘 이야기 등을 너무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외삼촌이 옛 이야기를 잘 하는 곳에 가자고 하여 따라 갔더니 교회였습니다. 저는 성경에 있는 옛 이야기를 듣고 예수를 믿어 목사가 된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다니엘은 이모저모로 훌륭한 분입니다. 그러나 그는 본래가 귀족 출신입니다. 다니엘이 소년이었을 때 바벨론 나라에서 유대 나라를 침략해 들어와서 포로를 잡아 갈 때 끌려갔습니다.
하루아침에 몰락한 귀족이었습니다. 우리말로 말하면 몰락한 양반이었습니다. 그렇게 어려서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이 어떻게 그렇게 성공을 했습니까? 바벨론 대제국의 총리가 되고 메데 바사까지 시대가 바뀔지라도 그 위치에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오늘은 본문이 가르쳐 주시는 말씀을 따라 다니엘의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성실한 다니엘 (8: 26-27)
사람 됨됨은 성실에 있습니다. 그 사람이 성실하냐? 불성실하냐? 는 것으로 인격을 판가름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실은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예루살렘 교회가 은혜를 받고 유무상통하면서 주머니를 털어서 헌금하고 함께 나누어 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다른 사람들이 헌금을 많이 하니까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의논을 하고 자기의 재산을 다 팔았습니다. 절반은 감추어 두고 절반은 가져다 바쳤습니다. 그 모습을 본 베드로가 아무래도 미심쩍고 수상한 생각이 들어서 "이것이 전부 다냐?"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전부 다 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절반이라고 하면 누가 뭐라고 합니까? 여러분 평생에 재산을 절반 받친 사람이 있습니까? 그들이 솔직하게 대답했다면 양심적이고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도 "전부 다 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나 라는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속였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자리에서 꺼꾸러져 죽었습니다.
나 자신을 속이고 내 양심을 속이고 너를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려고 달려드는 사람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서 불성실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내가 내 양심에 충실하고 너에 대해서도 충실하고 하나님께 대해서도 아주 충실한 사람, 속일 줄 모르는 사람을 가리켜서 성실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너는 속일 수 있어도 내 양심은 속이지 못합니다. 혹시 내 양심은 몰라서 내가 스스로 속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절대로 속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내 양심과 너에게 대해서 속일 줄 모르는 충실한 사람이 다니엘이요, 그 다니엘을 가리켜서 성실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 생활에 있어서 신자에게 신자다움은 바로 성실에 있는 것입니다. 불성실한 모습을 지니고 30년을 예수 믿는다 하면서 교회에 왔다 갔다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본문으로 돌아가서 8장 26절에서 27절을 보면 '이미 말한바 주야에 대한 이상이 확실하니 너는 그 이상을 간수하라 이는 여러 날 후의 일임이니라 이에 나 다니엘이 혼절하여 수일을 앓다가 일어나서 왕의 일을 보았느니라 내가 그 이상을 인하여 놀랐고 그 뜻을 깨닫는 사람도 없었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의 뜻을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부분은 8장의 결론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8장의 내용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다니엘은 기도를 많이 하던 사람입니다. 국무총리가 되고도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였습니다. '기도는 무식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은 대 제국 바벨론의 국무총리입니다. 다니엘이 무식해서 기도했습니까? '기도는 할머니들이나 하는 넋두리다'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이 그쯤 되었으면 인생 경험도 많고 갖출 수 있는 모든 경륜을 다 갖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이 기도하는 중에 환상을 보았습니다. 환상의 내용은 수양의 머리에 두 뿔이 났는데 굉장히 견고했습니다. 그 양이 천하를 휘젓고 돌아다닙니다. 천하가 당하지 못했습니다. 그런가 했더니 이번에는 수 염소 하나가 등장을 하는데 두 눈 사이에 큰 뿔 하나가 나왔습니다. 그러더니 이 수 염소가 두 뿔 가진 양을 받아 버리고 밟아서 죽여 버렸습니다. 그 수 염소가 온 세상을 헤집고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그 뿔이 뚝 떨어지더니 그 자리에 뿔이 4개가 났습니다. 4개의 뿔 중 하나의 뿔에서 작은 뿔 하나가 곁가지처럼 나왔습니다. 이 뿔이 점점 커졌습니다. 수 염소가 온 천하를 두루 다니는데 유대 땅에 와서 그 거룩한 땅을 사정없이 짓밟아 버리고 성전을 더럽히고 제사를 폐하고 성도들을 사정없이 멸하더라는 내용입니다. 이것이 다니엘이 본 환상이었습니다.
그 환상을 하나님께서 해석을 해 주셨습니다. 8장 중간쯤에 가면 그 해석이 나옵니다. 두 뿔을 가진 수양은 바벨론을 멸망시킨 메대 바사입니다. 그래서 바벨론 시대를 이어서 메대 바사 시대가 있지 않습니까? 그 다음에 하나의 뿔을 가진 수 염소가 나타났는데 그 수 염소가 양을 밟고 처치해 버리듯이 그 다음 시대는 헬라 시대가 되어서 알렉산더 대왕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수 염소를 누구도 당하지 못했습니다.
헬라 시대의 알렉산더 대왕이 그러했습니다. 그 뿔이 뚝 떨어진 것처럼 알렉산더 대왕이 죽자 뿔이 네 개가 나온 것과 같이 헬라 제국의 영토가 넷으로 나누어졌습니다. 넷 중에서 하나가 두각을 나타내는데 그것이 시리아입니다. 이스라엘 땅이 침범해 들어와서 제사 드리는 것을 못하게 하고 성전을 더럽혔습니다. 그리고는 성도들에게 온갖 핍박을 다하고 그래도 대들면 죽여 버렸습니다. 아마 이런 핍박은 바벨로 시대에도 받아 본 일이 없는 핍박이었습니다. 이런 정도로 가혹한 시리아 시대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뿔이 곧 안디오커스 에피파네스입니다.
이런 환상을 본 다니엘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혼절하여 몇 일을 앓았습니다. 즉 정신을 잃고 몇 일을 병석에 누운 것입니다. 그러다가 정신이 돌아오고 일어나서 왕의 일을 보았습니다. 즉 국무 총리의 일을 보았습니다. 다니엘은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자기가 하는 일에 충실하였습니다. 은혜 받고는 하던 일을 다 집어치우고 목사가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조금 은혜 받았다고 하면 전부 신학교를 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은혜 받은 다음에는 자기가 하던 일을 더 열심히 하고 충실히 하는 것이 성실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왕에 대해서 충실했고 자기 양심껏 일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쓰라 하시니 썼고 하나님께서 간수하라 하시니 간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라 하시니 말했습니다. 이렇게 다니엘은 하나님께 충실했습니다. 이처럼 다니엘은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도 프라하 광장에 동상이 하나 있습니다. 그 동상은 후스(Huss)라고 하는 유명한 순교자의 동상입니다. 동상 아래 네 마디 말이 새겨져 있습니다. 첫째 성실을 배웠다, 둘째는 성실히 살았다, 셋째 성실을 사랑했다, 넷째 성실을 지켰다 라는 말입니다. 이 후스라고 하는 순교자에게는 전부가 성실이었다는 것입니다. 말하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믿음도, 생활도, 인격도 전부 성실이었습니다. 우리들의 별명은 성실이어야 합니다. 다니엘이 성실한 사람이었기에 하루아침에 몰락했던 사람도 포로 신세를 면하고 그렇게 잘 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성실한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우리들도 모두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둘째, 깨닫는 다니엘 (9: 1-2)
깨달음이 없는 공부는 답답하고 지루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설교를 보통 25분 전후로 하는데 설교를 하는 동안 깨달음이 없어서 마음에 부딪혀 오지 않으면 그 25분이 그렇게 지루해서 견디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한마디 한마디가 귀에 쏙쏙 들어오고 깊은 깨달음이 있으면 시간이 가는 줄을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시간이 가는 줄을 모르게 은헤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루해서 몸을 비꼬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기에 참여한 사람이 전부 은혜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전부 은혜를 못 받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이 있으면 그렇게 재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깨달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깨달음이 없으면 회개할 수도 없습니다. 깨달음이 없으면 말씀에 수반되는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깨달음이 없으면 아무리 듣고 배워도 실력이 되지를 않습니다. 깨달음은 큰 복이요, 큰 은혜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9장 1절에서 2절을 보면 '메데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입던 원년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가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년 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분명히 다니엘은 "깨달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환상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 났습니다. 이제는 다니엘이 성경을 펼쳤습니다. 예레미야서를 접하여 읽고 있는 중에 크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자기는 포로가 되어 끌려올 때는 어려서 잘 몰랐는데 유대 나라가 왜 망했고, 왜 유다가 포로가 되었으며 포로 생활은 얼마나 해야 되는지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서를 보고 전부 깨닫게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이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70년 포로 생활은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유다를 점령하고 항복을 받고 제1차로 포로로 끌고 갈 때가 주전 605년입니다. 그리고는 2차 3차로 또 끌고 갔습니다. 그 후에 메데 바사의 침략을 받아 바벨론이 망했습니다. 메데 사람 다리오에 이어 바사 사람 고레스가 왕이 되고 보니 유대인들이 포로 생활을 하고 있는지라 "너희들이 왜 그러고 있느냐? 빨리 돌아가라"고 하여 해방령을 내렸습니다. 그들이 고국으로 돌아갈 때 스룹바벨의 인솔 하에 제1진이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그 때가 주전 537년입니다. 이렇게 되면 70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이 그렇게 예루살렘이 황무하고 70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리라는 년수를 깨달은 것은 주전 538년입니다. 즉 포로 생활이 끝나기 1년 전에 그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자신과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깨닫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복입니까? 우리가 겪고 있는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 우리가 그 뜻에 따를 수가 없지 않습니까? 다니엘은 성경을 상고하는 중에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기에 절망 중에 있는 백성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었고 백성들의 귀환을 준비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끝내 성공하는 인생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무엇인가 보여 주실 때 거기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그 말씀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경륜, 목적을 깨닫는 사람은 가장 복된 사람입니다. 깨달음의 은혜가 그렇게 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연쇄점 왕 페니(penny)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 장터국수를 아십니까? 그 장터국수를 파는 곳이 한 곳 뿐입니까? 아니면 가는 곳마다 있습니까? 연쇄점이기에 가는 곳마다 있습니다. 그것을 혹은 체인점이라고도 합니다. 페니가 예수를 잘 믿고 열심이었으나 하는 것마다 망했습니다. 나중에는 견디다 못해 자살하여 죽으려고 하였습니다. 죽을 곳을 찾아갔는데 지나간 주일 낮 시간에 자기 교회 목사님이 설교하신 야고보서 1장 2절에서 4절에 있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즉 '여러분이 어려운 시험을 만나고 또 시련을 당하고 있습니까? 그러면 중도에 절대 낙심하지 마십시오.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 시련을 끝까지 견디어 나가면 즉 인내하게 되면 결국 하나님께서 흠없고 온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해 주십니다'라는 내용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이런 실패와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연단한 후에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복"을 주려 하신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그가 새 힘을 얻었습니다. 죽으려고 생각했던 그 죽을힘을 다하여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미국 내에 체인점을 열어 키워 가는데 2,000개처가 되었습니다. 엄청나지 않습니까?
어떤 시련이나 고난이 닥쳐왔을 때 주저앉거나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심지어 이 시간에 죽고 싶은 심정을 가지고 나오신 분들이 계십니까? 그 시련 속에 하나님의 뜻이 있는 줄을 알고 끝까지 버티어 인내하시면 부족함이 없게 하십니다. 여러분들에게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만들어 주신다는 이 약속의 말씀을 믿으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셔야 합니다. 깨닫는 다니엘처럼 말입니다.
셋째, 실천한 다니엘 (9: 3-6)
본문으로 돌아가 3절에서 6절을 보면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여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자시여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우리가 또 주의 종 선자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열왕과 우리의 방백과 열조와 온 국민에게 말씀하신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다니엘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는 '이것은 기도할 문제다'하여 기도하기를 굳게 결심하였습니다. 그 결심을 그 자리에서 즉시로 실천하여 기도하기를 시작했습니다. 결심한 것을 즉시 실천하는 다니엘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해마다 새해를 맞이하게 되면 결심을 얼마나 많이 합니까? 그런데 그것을 실천하셨습니까? 결심하는데는 밑천이 들지 않고 수고할 것이 없습니다. 고생할 것도 없습니다. 마음으로 결심만 하는데 못할 것이 뭐가 있습니까? 그래서 하루에 열두번도 결심을 하는 것입니다. 실천없는 결심은 아무 소용이 없고 무의미합니다. 지나 놓고 보면 결심과 실천은 전혀 별개의 문제였습니다. 우리의 삶에 문제가 있다면 바로 그것입니다. 다니엘은 바로 결심하고 그대로 실천을 했습니다. 다니엘이 그렇게 하루아침에 몰락한 귀족의 어린 소년으로 포로 신세가 되었지만 그가 그렇게 된 것은 결심하고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기도하기를 결심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다니엘 1장 8절에는 우상의 제물을 죽는 한이 있어도 먹지 않는다라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굶는 한이 있어도 우상의 제물은 먹지 않고 신앙의 순수함을 지켰기 까닭에 그가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결심하고 실천한 다니엘입니다.
그리고 다니엘 10장 12절을 보면 그가 때로는 기도하고 이런 환상 저런 환상 등 엄청난 은혜를 받고서는 교만해 질 수 있기 때문에 겸손하기로 결심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죽을 때까지 '교만'이라는 '교'자 한마디를 들어 본 일이 없는 겸비한 사람입니다. 결심하고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종합해서 말씀드리면 다니엘은 우상의 제물을 먹어 믿음을 더럽히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은혜를 크게 받았을 때 절대 교만하지 않기로 겸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또 하나님의 뜻을 깨달음 다음에 이것은 기도할 문제다 라고 결심하고는 그가 죽는 날까지 기도를 계속하여 실천 실행했던 사람입니다. 다니엘이 다니엘이 되었던 것은 결심을 실천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여러분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기도하기로 결심한 바를 실천하면 다니엘의 하나님이 여러분의 하나님이라 할진대 다니엘의 성공도 여러분들의 성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을 지어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니엘은 첫째 성실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도 성실, 자신의 양심에도 성실, 너와의 약속에도 성실, 전부가 성실이었습니다. 둘째 깨닫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뜻, 경륜, 섭리 이런 것들을 전부 깨달았습니다. 이 깨달음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성경을 읽든지 듣든지 성경 속에서 또는 여러분들이 당하는 사건 속에서 항상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승리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셋째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결심을 잘 하지 않습니까? 실천을 하지 않으면 성공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다니엘처럼 결심한 바를 실천하여 다니엘처럼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