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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4: 1 안식에 들어갈 약속 - 히 4: 2 복음 전함을 받은 자
제 4 장 : 안식의 약속과 대제사장 그리스도
1. 믿음으로 얻은 안식 ( 4: 1 – 13 )
①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②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③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 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④ 제 칠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 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⑤ 또 다시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⑥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⑦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 ⑧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⑨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⑩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⑪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⑫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⑬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히 4: 1 안식에 들어갈 약속 -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
주 예수를 믿는 성도들은 다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을 받은 자들로 주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죽은 성도는 이미 그 안식에 들어갔다.
* 눅 23: 43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또 주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 모두는 다 변화를 받아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릴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교인들 중에 낙오자가 없도록 두려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스라엘의 선조들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까닭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믿음으로 화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을 때 믿지 아니하면 구원을 받지 못하고 안식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런 낙오자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두려워할지니'(포베도멘)은 헬라어 본문에서 첫머리에 위치하여 그 의미가 강조되었다.
이것은 본서의 수신자인 유대인 공동체가 구약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있어서 만족스럽지 못함을 시사한다(Lane).
모든 사람들이 방심하지 않고 하나님말씀에 보다 민감한 태도를 지닐 것을 요구하는 저자의 목회자적 관심을 나타낸다(11 절. 3: 12).
2]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안식'(카타파우신)은 하던 노동을 마치고 쉬는 것으로 출애굽 세대에게 있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했다.
창세기 2: 2절에 '안식하시니라'(쇠바트)가 처음 나온다. 여기서 하나님은 일에 지쳐 쉬어야 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일을 마친 후 새로운 활동을 잠시 중단한 채 취하는 '휴식'을 의미한다.
* 출 31: 17 -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일곱째 날에 일을 마치고 쉬었음이니라 하라.
그렇다고 해서 이 말은 하나님께서 전혀 아무런 행동도 하시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이는 하나님께서 이후로는 더 이상 새로운 피조물을 만들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안식(安息)에 근거하여 훗날 선민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진 것이 바로 안식일 제도이다.
* 출 16: 29 - 볼지어다. 여호와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줌으로 여섯째 날에는 이틀 양식을 너희에게 주는 것이니 너희는 각기 처소에 있고 일곱째 날에는 아무도 그의 처소에서 나오지 말지니라.
* 신 5: 15 -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사람의 참된 안식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 시 23: 2 -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의 일을 할 때에 진정한 쉼을 얻게 된다.
* 마 11: 29 -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그리고 구약 시대 이 안식일을 신약 시대에 이르러 주일로 승화되었다.
* 요 20: 19 -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 행 20: 7 -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 고전 16: 2 -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나안에서 적으로부터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였다.
* 신 12: 9-10 - 9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안식과 기업에 아직은 이르지 못하였거니와 10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 거주하게 될 때 또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너희 주위의 모든 대적을 이기게 하시고 너희에게 안식을 주사 너희를 평안히 거주하게 하실 때에
그러나 세월이 지남에 따라 유대인 사이에서 이 안식의 개념은 주로 회당에서의 가르침과 토론을 통해 형성된 종말론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Lane).
그래서 시 95: 11의 '내 안식'은 본 절에서 종말론적인 의미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택한 백성들을 위해 예비하신 영원한 하늘나라에서의 안식을 의미한다.
* 요 14: 1-4 -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4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약속'(에팡겔리아스)이라 함은 '안식'에 대한 약속을 말한다.
출애굽한 제 1세대는 죽었으나 제 2세대가 가나안에 들어갔다는 측면에서 안식에 대한 약속이 성취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지역적으로 가나안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약속의 성취로 보지 않았다(Morris).
하나님께서 1차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셨던 안식은 그들의 불순종으로 이행되지 않았으나 그 약속은 변치 않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의 공동체에게 계속되어 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약속을 이어받을 상속자가 되었다(1: 14. 6: 12,17. 9: 15).
3]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본 절은 '있을까 함이라'(도케'(판단하다, 가정하다)를 해석하는 차이에 따라 달리 해석된다.
Ⓐ 수신자들 중에 실제로 하나님께서 약속한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 자가 있을 것이라는 경고로 해석한다(Moffatt, Stuart).
Ⓑ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안식에 자신이 미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의심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라는 의미로 해석 한다(Dods).
두 견해 중 전자가 타당하다. 저자는 비록 안식이 약속되었을지라도 그 약속을 상실한 사람들이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Morris).
장차 주어질 영원한 안식인 천국의 영생을 얻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과거 하나님께 불순종한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안식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고 말았다(3: 17-18)
이제 장차 실현될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을 받은 자들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복음에 순종하지 아니하면 천국의 안식에 이르지 못한다.
히 4: 2 복음 전함을 받은 자 -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
복음
(1) 복음에 대한 어원적 고찰
신약의 '유앙겔리온'의 일반적인 의미는 구약이 예언한 그 메시야, 곧 나사렛 예수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소식을 의미하게 되었다.
(2)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
복음은 예수로부터 시작한다.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역사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의 핵심이었다.
복음서에서 복음의 내용을 가장 포괄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어휘는 바로 하나님의 나라(천국)이다. 이것은 복음과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데 복음은 곧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의 설교의 중심이며 선교의 목적이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역사 안에서 성취되는 현재성과 역사 마지막에 완성될 미래성이 있다.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이나 미래성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그리스도에 의해 이미 왔고, 오고 있으며, 또 그와 더불어 올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하나님의 주권적 구원과 심판을 집행하는 만왕의 왕이시므로 하나님 나라 자체라 부를 수 있다.
(3) 사도 바울과 복음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 이루어진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역사를 해석하고 적용하고 체계화시킴으로써 구원계시사에 있어서 모든 사도들 중에 으뜸을 차지한다.
① 용법
바울은 복음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여러 각도에서 사용하고 있다.
② 복음의 내용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로서 구약이 예언한 그 메시야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인자이시며, 구주이신 나사렛 예수와 그의 탄생, 수난, 십자가의 죽음 및 부활이라는 것인데 이것이 복음의 중심적 내용이 된다.
③ 복음의 목적
바울이 전한 복음의 목적은 구원과 심판에 있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중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인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선포될 때 그 선포를 통해서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구원과 심판이 실제적으로 개인의 역사 속에 일어난다.
1]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복음 전함을'(유엥겔리스메노이)는 '좋은 소식을 전파하다'를 뜻하는 '유앙겔리조'의 완료 수동형이다.
하나님의 좋은 소식은 가데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해졌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그 언약을 잘 지키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뿐만 아니라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는 복된 소식을 전해 들었다.
* 출 19: 3-6 - 3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말씀하시되, 너는 이같이 야곱의 집에 말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라. 4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 출 23: 20-33 - 20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를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 21 너희는 삼가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고 그를 노엽게 하지 말라. 그가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아니할 것은 내 이름이 그에게 있음이니라. 22 네가 그의 목소리를 잘 청종하고 내 모든 말대로 행하면 내가 네 원수에게 원수가 되고 네 대적에게 대적이 될지라. 23 내 사자가 네 앞서 가서 너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에게로 인도하고 나는 그들을 끊으리니 24 너는 그들의 신을 경배하지 말며 섬기지 말며 그들의 행위를 본받지 말고 그것들을 다 깨뜨리며 그들의 주상을 부수고 25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서 병을 제하리니 26 네 나라에 낙태하는 자가 없고 임신하지 못하는 자가 없을 것이라. 내가 너의 날 수를 채우리라. 27 내가 내 위엄을 네 앞서 보내어 네가 이를 곳의 모든 백성을 물리치고 네 모든 원수들이 네게 등을 돌려 도망하게 할 것이며 28 내가 왕벌을 네 앞에 보내리니 그 벌이 히위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을 네 앞에서 쫓아내리라. 29 그러나 그 땅이 황폐하게 됨으로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희를 해할까 하여 일 년 안에는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고 30 네가 번성하여 그 땅을 기업으로 얻을 때까지 내가 그들을 네 앞에서 조금씩 쫓아내리라. 31 내가 네 경계를 홍해에서부터 블레셋 바다까지, 광야에서부터 강까지 정하고 그 땅의 주민을 네 손에 넘기리니 네가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낼지라. 32 너는 그들과 그들의 신들과 언약하지 말라. 33 그들이 네 땅에 머무르지 못할 것은 그들이 너를 내게 범죄하게 할까 두려움이라. 네가 그 신들을 섬기면 그것이 너의 올무가 되리라.
이와 동일하게 당시 수신자들도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 구원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 민 14: 6-9 - 6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 신 12: 8-10 - 8 우리가 오늘 여기에서는 각기 소견대로 하였거니와 너희가 거기에서는 그렇게 하지 말지니라. 9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안식과 기업에 아직은 이르지 못하였거니와 10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 거주하게 될 때 또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너희 주위의 모든 대적을 이기게 하시고 너희에게 안식을 주사 너희를 평안히 거주하게 하실 때에
2]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신약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나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나 하나님께서 주신 복음, 즉 안식에 대한 약속은 동일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화합하지 아니했기 때문에 전혀 유익하지 못했다.
'결부시키지(화합지)'에 해당하는 헬라어에 대한 독법은 두 가지이다.
(1) '말씀'(로고스)과 연결되어서 단수인 '슁케케라스메노스'로 읽는다.
이 경우 본문은 '말씀과 이를 들은 자들의 믿음과 화합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2) 저희'(에케이누스)와 연결되어서 복수인 '슁케케라스메누스'로 읽는다.
이 경우에는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말씀을 듣고 받아들인 자. 즉 여호수아와 갈렙과 믿음으로 화합되지 않았다'라는 의미이다.
두 가지 경우 중 전자가 타당한 듯하다. 왜냐하면 문맥상 여호수아와 갈렙에 대한 언급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Morris, Moffatt, Hewitt).
'믿음'(피스테이)는 본서에서 '순종', 과거의 동의어로 사용된다(3: 18-19). 따라서 '믿음'은 정적인 신앙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을 향한 동적이며 실천적인 신앙임을 시사한다(Morr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