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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다시 오실 그리스도
주 제 : 종말
성 경 : 계19:11-21
설 교 자 : 이동원 목사
날 짜 :
비 고 : 지구촌 교회
범죄한 인간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후에 하늘 문은 닫혔습니다
.
더 이상 인간은 마음대로 그 문을 드나들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께서는 이 지상에서 성도들이 고난을 당하거나 고통에 직면할 때 그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종종 하늘 문을 열어 하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특권을 허락하십니다. 그런 사례들이 성경에 자주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와 깊은 고통과 절망과 낙심 속에 빠져 있던 에스겔 선지자를 격려하기 위해서 하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제 삼십 년 사 월 오 일에 내가 그발 강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더니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異象)을 내게 보이시니”(겔 1:1).
고통 가운데 하나님의 비전을 본 에스겔 선지자는 얼마나 가슴이 뜨거웠겠습니까?
신약성경에도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 교회 순교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스데반이 전도하다가 돌에 맞아 순교하기 직전에 하늘 문이 열리면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그리스도가 서 계신 모습을 보았습니다
. 그래서 그는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죽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영광스런 주님의 모습을 보는 순간 무엇이 두려웠겠습니까?
본문은 역사에서 마지막으로 열리는 하늘 문 광경을 사도 요한이 목격하는 장면입니다. 하늘 문이 열리면서 드디어 다시 오실 주님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역사상 최대의 사건이 될 것입니다. 빌리 그래함이 런던 집회를 할 때 기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당신은 금세기 역사에서 어떤 사건이 가장 위대한 사건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빌리 그래함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이야말로 최후의 뉴스, 최대의 뉴스가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초림이 사실이었듯이 믿음의 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재림을 믿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그 시기와 그 방법에 관심을 집중합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성경 기자는 재림하시는 그분이 어떤 모습으로 오시며 또한 누구신가, 그리고 그분은 왜 오시는가에 더 큰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다시 오실 주님은 어떤 분이신가?
첫째/승리자
주님은 역사의 마지막 승리자로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11절에서 승리자로 다시 오실 그리스도의 이미지가 어떤 모습으로 상징되어 있습니까?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로마 시대에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은 언제나 흰 말을 타고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흰 말은 승리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재림은 그리스도가 승리하는 사건입니다. 우리 시대는 복음이 쇠퇴하는 시대일지도 모릅니다. 참된 복음이 쇠퇴하고 신문이나 뉴스에서 종교 인구가 줄어든다는 보도를 대할 때 우리는 자연히 “주님은 어디에 계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마지막 때에 반드시 최후의 승리자로 역사 속으로 돌아오실 것입니다.
둘째/왕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12절).
면류관은 물론 승리자의 이미지가 될 수 있지만 왕의 이미지도 됩니다. 왜냐하면 왕들이 면류관을 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면류관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입니다. 이것은 주님이 한 나라 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들을 마침내 다스리고 통치하실 왕이심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16절에서 주님을 무엇이라고 부르고 있습니까?
“그 옷과 그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세상에는 많은 주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모든 주인들 가운데서도 가장 높으신 주인이시요 역사상 가장 유일하신 통치자, 만물의 궁극적인 지배자이십니다.
셋째/충신과 진실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11절).
이것은 같은 성격을 두 개의 다른 단어로 묘사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충신(faithful)과 진실(true)은 성경에 주로 언약과 관련되어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입니다. 즉, “충신과 진실”이라는 이 표현은 예수님을 약속에 충실한 자로 나타내 주는 것입니다. 특별히 여기서의 약속이란 재림의 약속을 말합니다. 성경에 많은 약속들이 나오지만 가장 많이 나오는 약속은 재림에 대한 약속입니다. 신약성경에만 무려 260장에 걸쳐서 318회나 나오니 말입니다. 약 25구절마다 한 구절씩 재림에 대한 언급이 있는 셈입니다. 주께서 자신의 명예를 걸고 318회나 재림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이 사실을 의심할 수 있을까요? 그것이 만약 사실이 아니라면 예수님은 새빨간 거짓말을 하신 분이든가 정신병자든가 둘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주님은 스스로 약속한 그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계실 때 부활에 대한 약속도 여러 번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대로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살아나셨습니다. 재림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의 사건이자 한걸음 더 나아가서 주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사건인 것입니다.
넷째/공의로우신 분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11절).
주님은 의로우시기 때문에 불의를 절대로 용납할 수 없으십니다. 그래서 심판하십니다. 재림 사건은 예수님의 의의 심판의 사건입니다.
다섯째/정복자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13절).
성경에 피에 대한 언급이 있으면 무조건 보혈만 연상하는데 여기서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피 뿌린 옷을 입었다는 것은 정복자의 이미지입니다. 주님의 옷에 원수들의 피가 묻어 있다는 말인 것입니다. 옛날 로마의 군인들은 전쟁에서 승리를 하고 돌아올 때 종종 피묻은 옷을 그대로 입고 돌아왔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적들을 이기고 승리자로 돌아온다는 명예의 상징이었습니다.
여섯째/하나님의 말씀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13절).
다시 오실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표현은 요한복음 1장 1절에도 나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가 표현입니다. 제 말이 제 생각과 뜻을 나타내는 것처럼 말씀이신 주님도 그 무엇인가를 나타낼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무엇을나타내시는 것일까요? 그것이 다음 말씀에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본래 하나님을 본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8).
예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나타내십니다. 즉,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인격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인격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계시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을 보십시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한복음 1장 1절에서 이미 하나님께서 “말씀”이시라고 했습니다
.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심으로써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계시된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없었더라면 인간은 하나님을 절대로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떤 철학자의 이론 속에서도 하나님이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철학을 통해서 하나님을 발견했다고 고백하는 사람을 만난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시골에서 산다 해도 예수님을 믿는 할머니의 마음 속에 계시는 하나님은 그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대화하고 사랑하고 고백할 수 있을 정도로 분명합니
다. 때때로 경험은 논리 이상의 것입니다.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보다 더 위대한 체험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의 공통점은 둘 다 하나님을 계시하는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역사의 종국에 하나님의 영광이 우주에 충만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초림에서 예수님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아기의 모습, 곧 약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재림하실 때 그분은 더 이상 초라한 모습으
로 오시지 않습니다.
심판자, 정복자, 승리자로 영광스럽게 오십니다.
그리스도의 재림 사건은 바로 그리스도의 마지막 승리를 선언하는 사건이며 그리스도의 약속을 성취하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공의를 통해서 심판이 이루어지는 사건이며 하나님의 마지막 영광이 계시되는 사건입니다.
그리스도는 왜 오시는가?
그리스도께서는 성도들의 구원을 완성시키려고 오십니다. 신랑과 신부가 혼인식을 치르고 영원한 결합 속에 들어가는 것처럼 우리도 주님이 오심으로써 그분과 영원한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주님을 닮은 존재로,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로 완성되어 그분과 함께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이 곧 구원의 완성입니다. 그러나 이 불신앙의 세상에 대해서 그리스도는 심판을 하시러 다시 오십니다.본문에서는 특별히 두 대상에 심판의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습니다.
마지막 전쟁 때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잡히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짐승은 정치적인 적그리스도를, 거짓 선지자는 종교적인 적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사단은 종교 뿐만 아니라 정치 세계에도 깊이 관여하여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동구권의 변화를 보면서 갑자기 평화가 우리 시대에 성취될 것같이 생각되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어쩐지 불안하지 않습니까? 다음 순간 어떤 사건이 터질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역사는 폭풍 직전의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훨씬 더 위기에 처한 시기일
지도 모릅니다.하나님께서는 이 마지막 전쟁을 통해서 잘못된 정치, 잘못된 종교, 사단의 영향 아래에 있던 세상의 부패와 부조리와 불의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불의의 세력을 추종하던 자들을 그러한 세력을 주도했던 자과 함께 불못에 던짐으로써 못 다 한 심판을 마무리하실 것입니다.
“이 둘이 산 채로 유황 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20절).하나님은 한 사람도 지옥에 “보내지” 않습니다. 스스로가 적그리스도인적인 가치관을 선택하고 적그리스도적인 삶을 선택하면 그 종착역이 지옥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인 것입니다. 빌라도가 법정에서 예수님을 앞에 놓고 던졌던 “내가 그리스도라는 저 예수를 어떻게 하랴”라는 질
문에 어떻게 응답하느냐에 따라 천국과 지옥은 결정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영접한 사람들에게 재림 사건은 자신의 구원을 완성하고 하나님이 그를 위해서 예비하신 저 영원을 향해서 떠나는 사건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거절했던 사람들은 그날 주님을 구세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심판주로 만날 것입니다. 지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는 구세주이든가 아니면 심판주이든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예수님이 당신의 구세주가
되셨습니까? 그러면 당신에게 심판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거절했다면 당신은 심판주로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조선 시대에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한 지방에 흉년이 들어 먹고 살 길이 막연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이러다간 큰일 나겠다 싶어서 외아들과 머슴을 불러 놓고 “내가 아무래도 다른 데 가서 장사를 해 가지고 먹고 살 도리를 마련해 와야겠다. 내가 내년 단풍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꼭 돌아오도록 노력하겠다”고 하면서 자기 아들보다 나이가 많은 그 머슴에게 집안을 잘
부탁하고 집을 떠났습니다. 한 달, 두 달, 석 달, 넉 달이 지나도 주인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머슴이 자기도 먹고 살기 위해서 그 집안에 남아 있던 양식들을 가로채고 오히려 주인의 아들을 학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계절이 바뀌어서 단풍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한순간 단풍드는 모습을 보자 이 머슴은 안절부절하고 초췌해지면서 말라 가기 시작했습니다. 주인이 돌아올 생각을 하니 기가 막혔던 것입니다. 그러나 머슴에게 학대받던 그 집 아들은 똑같은 현상을 보면서 마냥 희망에 부풀어 “아빠, 빨리 돌아와요”라며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주님의 오심 속에서 구원의 마지막 소망을 간직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마지막 때의 징조를 바라보면서 저 영원을 누리기 위하여,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신 기업을 상속받기 위하여 변해 가는 이 시대를 향해 이렇게 소리칠 수 있어야 합니다.“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주님 다시 오실 때가 가까워진 이 시각에 오 주님 우리가 주님 오실 날을 예비하는 자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주님 다시 오실 때가 가까워 온 이 시각에 우리로 이 시대를 분별하며 주님 앞에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가를 깨닫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진실로 다시 오실 주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설 수 있도록 삶을 준비하는 귀한 성도들이 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옵소서. 다시 오실 주님이 어떤 분인가를 말씀을 통해 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역사의 마지막 승리자로 오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약속을 마침내 성취하고 돌아오실 주님을 기다립니다. 공의로 죄악과 불신앙의 세상을 심판하시고 성도들을 위하여 영원한 기업을 준비하신 주님, 하나님의 하나님되신 영광을 드러내고 사랑하는 성도들을 자신의 신부로 영원히 맞으시기 위해서 오신 주님, 신앙의 선배들처럼 우리도 변화하는 이 시대를 바라보면서
놀라고 두려워하기보다 사무치는 애정으로 사랑하는 주님 앞에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