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율법과 복음, 그리고 끈질긴 성화의 긴 호흡
제11강. 성품 (Character): 반항이 아닌 '성품의 결핍'을 긍휼로 훈련하라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베드로후서 1:5-7)
10강에서 우리는 양육이 단기 결전이 아니라 기나긴 '성화의 과정'임을 가슴에 새겼습니다. 그렇다면 그 길고 지루한 과정 동안 부모는 도대체 아이의 무엇을 빚어내야 합니까? 바로 '거룩한 성품(Character)'입니다. 폴 데이비드 트립은 오늘 11강을 통해, 부모들이 자녀의 행동을 오해하여 무자비한 심판관으로 돌변하는 치명적인 오류를 날카롭게 교정합니다. 아이가 저지르는 수많은 문제 행동의 실체는 의도적인 반항이 아니라, 단지 '성품의 결핍'일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첫째, '의도적 반항'과 '성품의 결핍'을 분리하는 영적 분별력을 가지십시오.
아이가 방을 치우지 않거나, 동생과 장난감을 두고 다투거나, 숙제를 미루고 핑계를 댈 때 부모들은 미친 듯이 분노합니다. "네가 감히 내 권위에 도전해? 나를 무시하는 거야!"라며 몽둥이를 듭니다.
그러나 부모여, 멈추십시오! 아이의 그 행동은 당신을 향한 악의적인 반역입니까, 아니면 아직 인내와 절제라는 '성품이 형성되지 않아서' 벌어지는 미성숙한 실수입니까? 이 둘을 혼동하는 순간 부모는 긍휼을 잃고 폭군으로 전락합니다! 아이가 자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은 당신을 파괴하려는 쿠데타가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그 영혼 안에 '절제(Self-control)'라는 거룩한 성품의 벽돌이 아직 쌓이지 않았다는 비참한 증거일 뿐입니다!
둘째, 거룩한 성품은 저절로 자라나지 않습니다. 치열하게 '건축'해야 합니다.
타락한 본성을 가진 인간은 내버려 두면 이기심, 분노, 게으름이라는 잡초를 자연스럽게 피워냅니다. 베드로후서 1장의 웅장한 선포를 보십시오! 믿음에 덕을, 절제를, 인내를, 사랑을 '더하라(Add to)'고 명령합니다. 성품은 시간만 지나면 저절로 생기는 자연 발생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피 땀 흘려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 올려야 하는 거대한 '영적 건축'의 과정입니다!
그런데 부모들은 한 번도 제대로 인내를 훈련시켜 준 적 없으면서, 5살짜리 아이에게 "왜 참지 못하냐!"고 윽박지르고, 10살짜리 아이에게 완벽한 이타심을 요구합니다. 아이의 내면에 성품의 집이 지어지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면, 화를 낼 것이 아니라 팔을 걷어붙이고 벽돌을 날라야 합니다!
셋째, 실패의 순간을 '성품 훈련의 거룩한 훈련장'으로 탈바꿈시키십시오.
아이가 끔찍한 실수를 저지르고 성품의 밑바닥을 드러낼 때, 육신에 속한 부모는 수치심과 분노를 느낍니다. 그러나 대사로 부름받은 영적인 부모는 그 순간 이렇게 외쳐야 합니다.
"아하! 하나님께서 내 아이에게 아직 '인내'라는 성품이 부족하다는 것을 지금 적나라하게 보여주셨구나! 그렇다면 내가 지금 부모로서 이 아이의 삶에 투입되어야 할 정확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아이의 실패는 부모의 자존심을 긁는 장애물이 아니라, 부모가 십자가의 긍휼을 들고 아이의 영혼 속으로 뚫고 들어가 거룩한 성품을 빚어낼 '최고의 작업 환경'입니다. 꾸짖고 끝내는 자가 아니라, 아이 곁에 쪼그려 앉아 "우리 함께 성령님께 이 절제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며 훈련해보자"라고 이끄는 코치(Coach)가 되어야 합니다.
기독교 부모여, 심판관의 망치를 내려놓고 건축가의 흙손을 드십시오!
당신의 아이는 아직 공사 중인 미완성의 건물입니다. 공사장에서 먼지가 날리고 뼈대가 앙상하다고 해서 분노하는 어리석은 건축가는 없습니다! 아이의 텅 빈 성품을 십자가의 긍휼로 바라보십시오. 정죄의 채찍 대신, 은혜와 진리의 벽돌로 아이의 내면에 그리스도를 닮은 영광스러운 성품을 끈질기게 건축해 내는 위대한 십자가의 장인이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