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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 아름다울 때
박경선
1. 개나리 핀 날
내 방에서 내다보이는 아파트 울타리에 개나리가 활짝 피었다. 마치, 갓 태어난 노란 병아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노란 눈을 반짝거리고 있는 것 같다. 봄이면 우리 아파트는 이렇게 온통 노란 개나리꽃으로 둘러싸인다. 그래서 아파트 이름도 개나리 아파트인가 보다.
나는 책상 위에 펼쳐둔 공책에 '개나리' 석자를 썼다.
'시골 친할머니 댁 가는 길에도 지금쯤 개나리가 활활 피어났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친할머니도 보고 싶고 할머니 댁에도 가보고 싶다.
(내 친구 다희는 친할머니랑 사는데 나는 외할머니랑 산다. 친할머니는 시골에서 채소도 키워야하고 사과도 키워야 하고 소도 키워야 하기 때문에 우리 집에 못 오신단다. 그 대신 외할머니가 우리랑 산다. 학교에 나가는 엄마 대신 나를 키워주기 위해서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갓 태어났을 때, 외할아버지가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그래서 외할머니 혼자 외롭다고 우리 집에 오셨다.)
"하나야, 바깥에 뭐 볼게 그리 많아? 아까부터 불러도 대답도 않구선."
엄마가 궁시렁거리며 방에 들어왔다.
"나, 지금 동시 숙제하려고 생각중이야. 엄마!"
"미안! 그랬구나. 몰랐다. 엄마 좀 도와줄래? 책장 정리 좀 하려고. 이 책들만 좀 내다버려 줘."
스웨터 소매를 위로 둥둥 걷어 부치고 서 있는 엄마를 보니 오늘 집안 청소하려고 단단히 벼루고 시작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것저것 생각이 바쁜 나 하나의 계획을 포기하고 밖으로 나왔다.
"이것만 갖다 버리면 돼?"
현관 앞에 쌓아둔 책 무더기를 보며 말했다.
"그래, 우선은...... ."
나는 책무더기 책들을 들춰보았다. '소년문학' '아동문학 평론' 따위, 달마다 우리 집에 우편으로 오는 책들이다. 이런 책들은 한 달에 한 번씩만 오지만, 다른 동화책들은 거의 매일 오기 때문에 우리 집 우편함은 항상 이런 책들을 입밖으로 머금고 있는 편이다. 우리 엄마가 동화작가라서 그런 것 같다. 아빠는 이 책들이 늘 불만이라 이렇게 말한다.
“너네 엄마 책 때문에 우리 집 무너지겠다.”
이런 아빠 눈치를 보느라 오늘 엄마가 책들을 대충 정리하지만 난 별 수 없다는 걸 안다. 책묶음을 들고 나오며 궁시렁거렸다.
"얼마 안 가서 또 집 구석구석 마다 책이 쌓여질 텐데?"
※ ※
나는 얼른 책을 버리고 와서 책상에 다시 앉아 연필을 잡았다.
'개나리, 그래, 갓 태어난 노란 병아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처럼 개나리가 피었어. 노란 눈을 반짝거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어떻게 시로 쓰지?'
"하나야, 잠깐만 와봐."
엄마가 할머니 방에서 나를 불렀다.
'또 무슨 할 일?'
나는 짜증을 내며 들어갔다.
"어무이, 문갑을 저쪽 벽으로 옮겨놓으면 좋을 것 같은데 어무이 생각은 어때요? "
난 기가 차서 엄마를 쳐다봤다. 엄마랑 아빠랑 나도 못 알아보는 할머니가 뭘 안다고 저런 걸 다 물으시나 싶어서... . 할머니도 나랑 똑같은 생각인지 엄마를 멀뚱하니 쳐다보고만 계셨다.
"어무이 생각에도 그게 좋을 것 같죠? 그럼 저쪽으로 옮겨 놓을 게요?"
그러더니 눈짓을 했다. 내가 문갑 한 쪽 끝을 잡고 힘을 주었다. 문갑이 베란다 오른쪽 벽으로 옮겨졌다.
"어무이, 어때요? 햇빛도 잘 들고 보기도 좋죠?"
엄마는 할머니께 꼭 '좋구나' 하는 소리를 받아내고 싶어 안달이었다.
"그런데 당신네들은 대체 누구요?"
할머니는 우리를 멀뚱하니 쳐다보며 또 뚱딴지같은 질문을 했다. 하긴, 얼마 전에 할머니가 집을 나가 길을 잃어버려서 경찰서에 찾으러 갔을 때도 엄마랑 나를 보고 할머니가 그랬다.
"그런데 당신네들은 대체 누구요?"
나는 그때 할머니가 일부러 뚱딴지같은 말을 하는가 싶었다.
"할머니, 왜 그래. 정말."
내가 짜증을 내며 할머니 손을 잡고 돌아온 기억이 난다. 그러나 엄마는 아니다. 그때 일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린가 보다.
"예, 어무이, 그 사이 어무이 방에 잘 들어와 보지 못했더니 딸내미 얼굴도 잊으셨네. 저는 어무이 하나 밖에 없는 고명딸, 하나 어멈이고요. 얘는 어무이가 귀여워해주시는 손녀, 우리 집 고명딸 하나잖아요."
엄마는 연극을 하듯 생글생글 웃으며 할머니께 열심히 설명을 해댔다. 나는 눈만 끔벅거리다 할머니 방을 나왔다.
"엄마는 정말 잊었어? 저 번에 할머니 문갑에서 내가 할머니 똥 산 팬티 찾아냈던 일 말야."
"누가 모르니? 참, 그때도 그랬지. 너, 할머니 앞에서 똥 산 팬티 거기 넣어뒀다고 막 면박 주곤 했지. 그러면 못 쓴다. 자존심을 살려 드려야지."
"엄마는 참, 할머니 정신 하나도 없는데 자존심이 뭐 필요해?"
"정신은 없어도 자존심은 있다아."
엄마가 나를 원망하는 눈으로 쏘아보며 말하는 바람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하긴, 이제 알 것 같다. 그때도 엄마는
"아니, 이 옷이 어째서 여기 들어가 있지? 내가 가져가 씼는다는 게 깜박했네."
하면서 얼른 들고 나갔다.
'할머니의 자존심!' 그래. 바로 그거를 살려주려고 엄마가 연극을 했다는 걸 이제야 알 것 같다. 내가 엄마의 그런 연극 보기 싫다고 핀잔을 준적도 있다. 그럴 때면 엄마가 딱 한 마디로 잘라 말했다.
"그래도 모르지. 이렇게 해드리면 정신이 돌아올지도 몰라."
그래, 엄마는 아직도 할머니 정신이 온전히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다.
(내가 삼학년 때까지는 할머니 정신이 온전했다. 그때가 정말 좋았다.
특히, 유치원 다닐 때는 할머니랑 둘이 꼭 붙어 다녔다. 시장 길거리에 앉아서 먹는 시장 국수는 정말 맛있었다. 엄마랑도 시장 가서 딸기 먹고 싶다며 사달라고 조른 적이 있다. 그때 엄마는 내 손목을 잡아끌고 집으로 오며 그랬다.
"나중에 사줄게. 으이구, 저게 약이야 약, 비싸도 너무 비싸!"
그래서 나는 딸기가 약인 줄 알았다. 그 다음에 할머니랑 시장 갔을 때 내가 아는 체를 했다.
"할머니 저게 으이구 약이지?"
그런데 할머니는 엄마가 그랬다는 내 말을 듣고는 화를 내셨다.
"아무리 약이라도 우리 하나가 먹고 싶다면 이 할미가 다 사줄 거여."
그날 할머니랑 나는 딸기를 사와 실컷 먹었다. 과일 뿐 아니라 신발이나 머리핀이나 내가 사달라는 것은 뭐든지 다 사주셨다. 그 덕에 할머니 한 달 용돈을 다 써버려서 할머니 친구들끼리 모여 점심 내는 모임에 잘 가지 않으셨다는 사실은 얼마 전에 할머니 친구한테 들었다.
"너거 할미는 용돈을 쪼개어서라도 니가 하고 싶은 건 다 해주는 재미로 살제."
할머니 친구 말이 맞는 것 같다. 할머니는 나를 동물원에도 데려가고 '엄마 어렸을 적엔'인형 전시회에도 데려 갔다. 그래, 내가 일학년 때다. '엄마 어렸을 적엔'인형 전시회에 갔을 때 말이다. 할머니가 참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해줬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고 약간 슬픈 이야기다.
"그때 학교에서는 난로를 이렇게 교실 한쪽에 달아놓고 조개탄이라는 석탄을 넣어 불을 피웠제. 아침부터 도시락을 난로 위에 올려놓으면 밥 옆 칸에 같이 들어있는 김치 반찬이 익는 냄새가 코를 찔렀지. 점심 때 둘러앉아 먹으면 반찬은 김치 한 가지 뿐이지만 꿀맛이었제."
그러다가 도시락 하나를 가운데 두고 더벅머리 아이 둘이 앉아있는 인형 앞에서 할머니가 한참 동안 서 계셨다.
"하나야, 저 애들이 꼭 이 할미 어릴 때 나랑 내 친구 춘자같구나."
"왜요?"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물었는데 할머니는 꽤 오래도록 춘자 이야기를 해주셨다.
"내 친구 춘자네 집이 가난했제. 나는 그나마 보리밥을 사갈 수 있었지만, 춘자는 도시락 싸올 형편이 못 되었제. 춘자가 우리 앞집에 살았기 때문에 내가 누구보다 그 집 사정을 잘 알았제. 그 집에는 형제가 많은데 춘자 부모는 일찍 돌아가셨제. 춘자 할미 혼자 손주, 손녀를 키웠는데, 춘자 언니나 오라비 모두 돈 벌러 도시 공장으로 갔제. 춘자 할미는 남의 집 일을 거들며 품삯을 받아 살았제. 그러다 보니 농사를 안 지어 먹을 것이 없었제. 여름에는 그나마 도시락에 옥수수라도 삶아 와서 나눠 먹었지만 도시락을 안 싸오는 날이 더 많았제. 그러다 보니 겨울에도 나랑 춘자는 내 도시락을 나눠 먹으려고 학교 뒷동산에 올라가서 벌벌 떨면서 먹었제. 춘자 한 숟갈, 내 한 숟갈 떠먹다 보면 늘 배가 차지 않았제. 그래도 노래를 부르며 재미있게 놀다 교실로 왔제. 교실에 들어와 선생님이 덥혀 놓은 보리차를 마시면 배가 불렀제. 다른 아이들보다 유독 보리차를 많이 마신다고 놀림도 받곤 했제. 아, 춘자가 보고 싶네."
나는 더벅머리 남자 아이 인형을 보면서 더벅머리 여자 아이 인형 둘을 눈앞에 그려보았다. 한 아이는 할머니랑 얼굴이 닮은 아이, 한 아이는 남자 인형 얼굴에 머리만 여자인 춘자라는 아이 얼굴을.)
할머니랑 다닌 일을 생각하니 할머니가 내게 정말 참 잘해주신 것 같다. 지금 내가 에어로빅 춤을 잘 추는 것도 할머니 용돈으로 헬스장에 보내준 덕이다. 내가 우리 반에서 글을 잘 쓴다고 칭찬 받는 것도 다 할머니 덕이다. 할머니는 밤에 잘 때도 온갖 이야기를 다해주셨다. 나중에 글씨를 깨쳐 전래동화책을 읽다보니 다 할머니한테 들었던 내용들이었다.
그런데 참 슬프다. 재미있는 동화도 잘 들려주시고, 아주 아주 어렸을 때 이야기도 자세하게 기억하던 할머니가 요즈음은 우리 식구들도 몰라보고 있으니 말이다. 거기다 밥을 금방 드시고도
"나 굶겨 죽이려고 밥 안 주는 게지?"
하며 엄마한테 하루에 몇 번씩 욕을 해대곤 한다. 어릴 때 배를 너무 많이 고파봐서그 럴까?
(할머니 어렸을 때는 하얀 쌀밥 한 공기랑 생선 한 조각 있으면 그게 최고의 생일상이었다고 했다. 특히 할머니네 식구들은 대가족이라서 어른들이 한차례 잡숫고 나야 아이들이 밥상에 앉을 수 있었단다. 하지만 어른들 밥 드시는 근처에 어른거려야 밥이 돌아오지, 밖에 나가 놀다 오면 식은 밥도 없단다. 밥을 남겨둘 만큼 넉넉하지 못했단다. 할머니의 할머니는 가마솥에 밥을 퍼낸 뒤 물을 부어 누룽지라도 퍼 먹으려고 하면 시동생들이 부엌에 드나들며 그나마도 다 퍼먹어서 늘 허기가 지셨단다. )
그래도 그렇다. 엄마한테 자꾸 굶겨 죽이려고 한다는 말은 너무 심한 것 같다.
그 뿐 아니다. 얼마 전에는 엄마를 도둑으로 몰기도 했다.
"너가 내 금반지 훔쳐갔지? 분명 여기 뒀는데...... ."
"어무이, 금반지가 없어졌어요? 어디다 뒀나 찾아볼 테니, 우선 제 반지 끼고 계실래요?"
엄마는 할머니 문갑에서 금반지를 찾아내어 손에 끼워드렸다. 할머니가 엄마 반지랑 할머니 반지를 낀 손을 쳐들어 내한테 보이며 어린 아이처럼 활짝 웃으셨다. 나는 그런 할머니가 욕심쟁이 같아 보여 입을 삐죽 내밀었다.
'엄마도 그 반지 하나뿐인데...... .'
내가 화가 나서 엄마한테 대들었다.
"엄마는 할머니가 밉지도 않아?"
엄마도 밉지만 참을 수밖에 없다고 할 줄 알았다. 그러나 천사표도 아닌 엄마가 천사표 같은 말을 했다.
"말 마라. 우리 어무이가 우리 형제 키우고 너까지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그 빚 다 갚으려면 어무이 살아생전에 내 못다 갚어."
엄마가 진 빚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빚 진게 많다면 나라도 조금은 그 빚을 갚아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마음을 달리 먹고 할머니 방에 들어가 할머니 손을 잡으며 말했다.
"할머니, 우리 전에 같이 다닐 때 생각나요? 그때가 참 좋았는데, 맞지요. 그렇쵸?"
할머니는 눈만 끔벅거리고 계셨다. 정신이 없고부터 나를 보고도 웃지 않으신다. 할머니가 나를 미워하고 계시는 건 아닐까? 그래도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우리랑 같이.
2. 참 좋은 여름 방학 날
여름 방학을 했다. 벌써 열흘이나 지났다. 나는 내 방에서 내다보이는 개오동나무 열매에 마음이 빼앗기고 있었다.
'저렇게 열매가 축 늘어져 있으니 저걸 따다 노끈해도 되겠다. 그래서 노끈나무라고도 하나?'
그런데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어무이, 오늘은 바깥바람이 좋아요. 아범이랑 공원 한 바퀴 돌고 오세요. 그 동안에 어무이 방 청소 해놓을 테니까요."
보나마나 할머니는 싫다고 할 거다. 할머니가 바깥에 나가는 걸 싫어한 지도 꽤 되었으니까.
"싫다!"
역시나 할머니는 싫다고 했다. 그나마 할머니가 요즈음 하는 말은 이 한 마디뿐이다. 작년까지는 누가 오든지 간에 했던 이야기를 하고 또 하곤 했는데 이제는 그런 이야기는 아예 않으신다. 작년에는 지겨웠는데 올해는 차라리 할머니가 작년처럼 수다를 떨며 즐거워하셨으면 좋겠다.
( "내가 말이지. 영감 회갑 때, 한복을 입고 창을 하며 춤을 췄지. 그날은 영감도 홀린 듯 나를 바라보며 침을 흘렸지."
이 이야기를 제일 많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생각이 간절한 듯 했다.
왜냐면 그 이야기를 하실 때마다 할머니가 눈물을 감추려고 눈을 꿈벅거렸으니까.
하고보니, 작년에 외할아버지 산소에 갔다 올 때도 그랬다. 우리 가족 모두가 할머니랑 소풍을 다녀온 것이 이때가 마지막인 것 같다. 우리는 돌아오는 차 속에서 웃고 떠드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할머니는 자꾸 차 뒤쪽을 돌아보시곤 하셨다.
"할머니 누가 따라와요?"
물으며 돌아보던 나는 놀라고 말았다. 할머니가 우리 몰래 외할아버지 산소 쪽을 보며 부채를 흔들고 계셨다.
'잘 있구려. 잘 있구려.'
할머니가 눈을 꿈뻑거리며 아무도 몰래 외할아버지에게 인사하는 소리를 들은 듯하다.
'잘 가시게. 잘 가시게.'
할아버지도 할머니한테 인사하며 거기 서있는 듯 했다.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정이 각별하다는 걸 안다. 할머니가 우리 엄마를 낳자 종가집 대를 이을 맏며느리가 아들을 못 낳는다고 객지로 쫓아내었단다. 할머니 혼자서 친정에 가서 우리 엄마를 키우며 삯바느질을 하며 3년을 살았는데 그때 할아버지가 상할아버지 몰래 할머니를 보러 오곤 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셨다.
"계속 할아버지랑 헤어져 사셨어요?"
내가 물은 적이 있다.
"그러면 너네 할아버지 보고 싶어서 내가 아예 죽고 말았을 게야. 객지 생활 3년만에 너네 상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야 시집으로 들어갔지."
그 이야기를 하실 때 할머니 얼굴은 깜깜한 밤중에 100볼트 전등을 열 개나 켠 것처럼 환해 보였다.)
"싫다!"
할머니가 싫다고 해도 아빠는 할머니를 잘 달랜다. 벌써 할머니를 휠체어에 앉혀 끌고 나가는 걸 보면 안다. 나도 잽싸게 따라 나갔다.
"아빠, 우리 두류공원에 가요. 거기 자전거 타는 데도 생겼고 롤러 브랜드 타는 데도 생겼다던데요?"
나는 휠체어 손잡이에 손을 얹으며 종알거렸다.
"안 돼. 병원에 가야 돼."
"왜요?"
내가 아빠를 쳐다보며 물었다.
"가보면 알지."
아빠는 웃어보였다.
'저렇게 웃는 걸 보면 아빠가 어디 아픈 것 같지는 않은데?'
난 이상한 생각을 하며 아빠랑 함께 휠체어를 밀었다.
아빠가 도착한 병원은 암 검진 센터였다.
"싫다!"
할머니는 아기처럼 도리질을 하셨다. 할머니가 여기 와서 싫다고 하는 걸 보면 벌써 몇 번 와봤다는 이야기다.
'그럼, 나만 모르고 있었네?'
나는, 또 한 번 엄마, 아빠가 연극배우처럼 행동하는 게 못마땅했다.
"장모님, 오늘은 제가 속이 아파서 검진을 좀 받아보려고요. "
그 말에 할머니가 안심한 듯 가만히 앉아계셨다. 그러자 아빠는 접수를 시켜놓고 기다리는 동안 할머니 팔을 주물러드렸다. 다리도 주물러 드리고 발도 주물러 드렸다. 할머니는 곤한지 잠이 드셨다.
"하모니카씨 들어오세요."
할머니 이름이 불렸다. 그러자 아빠가 할머니께 다가와 이야기했다.
"병원에 온 김에 장모님도 진찰 좀 받아보시죠. 녜?"
할머니가 존다고 그랬는지 어쨌든 머리를 끄덕였다. 아빠가 이때를 놓칠세라 할머니 휠체어를 밀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할머니 병이 치매라더니 암까지 걸렸을까?'
병실 밖에 혼자 있는 동안 목이 콱 메여왔다.
'암은 얼마 못 사는 병이라던데...... .'
그래서 엄마가 할머니한테 잘 해드리고 계시는 걸까? 한참 만에 진료실 문을 나오는 아빠 얼굴이 어두워보였다.
"아빠, 뭐래?"
"많이 좋아지셨다는구나."
그래도 나는 알 것 같다. 할머니가 들으실까봐 일부러 거짓말을 하고 계시다는 걸.
'할머니 병이 더 심해졌나 보지.'
엄마, 아빠는 할머니가 걱정하실까봐 암이라는 병을 숨기고 계시는 게 틀림없다. 나도 오늘에야 알았으니까.
돌아오는 길은 갈 때보다 몇 배나 더 멀게 느껴졌다. 한 여름이라서인지 땀이 질척질척나면서 길바닥에 주저앉고 싶을 정도로 힘이 빠졌다. 할머니도 피곤하신지 내내 눈을 감고 계셨다.
※ ※
병원에서 돌아오니 엄마는 그 사이, 할머니 이불 덮개를 벗겨 씻어 줄에 널어놓았다.
엄마는 궁금한 듯 아빠를 바라봤다. '병원에서 의사선생님이 뭐랬어요?'하는 눈빛이다. 아빠도 그 눈빛을 읽으며 쓸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머니가 차암 좋아지셨다더군. 뭐든지 좋은 걸 더 많이 잡수셔야 기운이 난대."
난 알 것 같았다. 아빠의 그 거짓말 속에 할머니가 사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난 내 방에 들어와 문을 닫고 울고 싶었다. 그런데 엄마가 불러냈다.
"하나야. 할머니 목욕 시켜 드리게 좀 도와줄래?"
"싫다!"
할머니는 벌써부터 도리질을 하셨다. 그 전에는 할머니가 '싫다'하는 말이 듣기 싫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싫다는 소리가 참 슬프게 들렸다.
"어무이, 하나가 어무이 머리를 얼마나 곱게 빗겨드리는 지 잘 알죠?"
엄마는 아무 말이나 하면서 할머니를 구슬러 목욕을 시킬 참이었다.
"싫다!"
그래도 엄마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구슬렀다.
"왜, 저번에 하나가 어무이 머리 빗겨 드렸을 때 어무이도 좋다고 활짝 웃으셨잖아요. 이렇게."
엄마가 할머니 앞에서 연극배우처럼 활짝 웃는 얼굴을 해보였다. 그러자 할머니도 약간 웃는듯했다.
"할머니 목욕 오캐이지요?"
이번에는 내가 할머니 휠체어를 밀고 화장실로 앞장 서 들어갔다. 엄마는 소변기 위에 할머니를 앉혔다. 그리고 속옷을 모두 벗겼다. 뼈만 앙상한 할머니가 아기 같아 보였다.
'그래서 엄마는 아빠한테 할머니 목욕은 거들어 달라고 하지 못했구나.'
목욕탕에 들어와서 아빠가 할머니 발가벗은 모습을 본다면 할머니가 차암 부끄러울 것 같다. 아빠도 부끄러울 것 같다. 그래서 목욕은 내가 꼭 도와드려야만 하나보다. 나는 할머니 등에 샤워기로 물을 뿌리고 엄마는 할머니 몸에 비누칠을 한 뒤 때수건으로 여기 저기 때를 밀었다. 힘이 드는지 가끔 서서 숨을 고른 뒤 다시 할머니의 때를 밀어드린다. 할머니의 다리가 너무 가늘다. 뱃가죽도 너무 딱 붙었다.
"엄마, 할머니한테 맛있는 것 많이 해드려야 할 것 같아."
내가 그러자 엄마도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잘 잡수어야 하는데 말야."
엄마가 한숨을 쉬었다. 눈물이 났다. 엄마가 보고 눈짓을 했다.
"울지마. 할머니 신경 쓰이겠다."
나는 화장지를 뜯어 코를 풀었다. 지금 내 생각은 한 가지 뿐이다.
'내가 커서 할머니 병을 고쳐 드릴 때까지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안 된다.'
※ ※
3. 가을 허수아비
가을에 접어 들면서 할머니는 아예 입을 열지 않으신다. 오늘은 학교 안 가는 토요일이다. 나는 놀토(노는 토요일)에는 되도록 할머니 옆에 있으려고 애쓰고 있다. 내가 할머니한테 뭐를 해드리는 게 아니라 그냥 할머니 곁에 누가 있다는 걸 할머니가 눈으로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덜 외로워하실 것 같아서다. 낮에 할머니 방에 갔더니 창문을 열어 놓으라고 손짓으로 신호를 하신다.
"할머니, 햇빛이 따뜻하죠?"
나는 한껏 웃어 보이며 할머니 방 창문을 활짝 열어 젓혔다. 할머니는 열려진 창으로 나뭇잎이 바람에 이리 저리 흩어져가는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보신다. 나는 할머니 옆에 앉아 엄마가 읽다 둔'치매 예방과 치료'라는 책을 펼쳐보았다.
'치매에 걸리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이 고독이다.' 이 말이 가슴에 확 와서 꽂혔다. 우리 할머니도 외로워서 치매에 걸린 것 같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부터...... 우리집에 오셔서 나를 키우느라 계시는 동안 우리 모두 할머니를 외롭게 해드린 것 같다. 그 중에서도 내 잘못이 제일 크다. 할머니 병이 시작될 즈음, 나는 4학년이었다. 엄마, 아빠는 아예 낮에는 집에 없었다. 나는 나대로 공부 할 게 많아서 할머니랑 이야기 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 공부 안 할 때는 친구들이랑 밖에 나가 노느라 바빠서 늘 할머니 혼자 집에 계시게 했다. 마음이 아프다. 우리 할머니 병을 고칠 방법이 적혀 있나 싶어서 책을 계속 읽어보았다.
'가정에서 보살필 때의 마음가짐'이라는 내용이 눈을 확 끌어 당겼다.
1. 노인의 입장에서 친절하게 대한다.
2. 되풀이되는 이야기도 들어준다.
3. 몸을 만져 준다(스킨십)
그러고 보니 엄마가 할머니 앞에서 여러 번 듣는 이야기도 처음 듣는 것처럼 연극한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아빠가 병원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도 할머니 몸을 골고루 만져주던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엄마, 아빠 마음가짐 모두 백점이야.'
나는 내 맘대로 엄마, 아빠에게 백점을 주었다.
"할머니 몸이 된 듯한 기분으로 보살펴 드려야 해."
엄마, 아빠는 똑같이 이렇게 말하며 할머니를 보살폈다. 하지만. 나는 처음에 거짓말 하는 엄마, 아빠를 이해할 수 없었다. 더구나 학교 선생님인 아빠가 거짓말을 해대는 게 늘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토요일에 성당에 가면 할머니 앞에서 거짓말하는 엄마, 아빠를 용서해달라고 하느님께 대신 빌기도 했다. 하지만 할머니가 암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엄마, 아빠가 할머니 앞에서 하는 거짓말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도 내 생각은 한 가지 뿐이다. 어쨌든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안 된다.
※ ※
4. 그 겨울의 눈사람
눈은 안 왔지만 겨울은 겨울이다. 내 방 문풍지가 바르르 떨린다. 그 넓은 잎을 자랑처럼 펄럭이던 개오동나무가 앙상하게 서 있는 바깥을 내다보니 할머니 모습 같다. 늦가을부터 몸져누워서 목이며 손이며 모두 앙상한 뼈만 보인다. 요즈음은 할머니가 똥 사는 일이 그다지 문제 되지 않았다. 할머니께 예쁜 옷을 사다주던 삼촌, 고모들도 아예, 옷 대신, 성인용 기저귀를 선물로 가져오곤 한다. 문제는 할머니가 영 입을 열지 않는 사실이다. 차라리 '싫다'하는 말이라도 하면 좋을 텐데...
밤새 눈이 왔다. 여름내 커다란 나뭇잎을 자랑하던 개오동나무가 앙상한 가지로 오돌오돌 떠는 것 같더니 오늘은 하얀 눈옷을 입은 듯 포근해 보였다. 창밖을 보고 있는데 할머니가 불렀다. 밖에 서서
“하나야. 우리 눈사람 만들자.”
안 아플 때 모습으로 세타를 입고 서 계셨다.
“야, 할머니 다 나았네요?”
“그럼. 훨훨 떨쳐버렸지.”
할머니가 기분 좋게 활짝 웃으며 눈뭉치를 굴렸다. 나도 눈뭉치를 굴렸다. 내가 굴린 눈뭉치보다 할머니가 굴린 눈뭉치가 더 컸다. 할머니 눈뭉치는 몸통이 되었다. 내가 굴린 눈뭉치는 위에 올라가 얼굴이 되었다. 나뭇가지를 주워와 눈, 눈썹, 입을 붙였다. 눈사람이 웃고 있었다.
“할머니, 어디서 많이 본 얼굴 같잖아요?”
“죽은 영감 같구먼!”
“그래요?”
나는 그 말에 할머니같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목도리와 장갑 가져와 따스하게 해줘야겠어요.”
나는 급히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할머니가 아픈 모습으로 누워계신다.
“할머니, 어느새 방에 들어왔어요? 네?”
나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큰소리로 물었다.
“하나, 꿈 꾸니?”
엄마가 흔들어 깨운다. 꿈이었나 보다. 일어나 앉으니 엄마가 할머니 방으로 건너오라며 나가신다. 아빠가 병풍 앞에 앉아 계신다.
"할머니는요?"
아빠가 병풍 뒤를 눈으로 가리킨다. 방으로 들어가 병풍 뒤로 가보았다. 할머니가 하얀 천을 덮고 계신다.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든다. 돌아 나오며 물었다.
"할머니 돌아가신 거예요?"
엄마, 아빠는 궂은 얼굴로 고개만 끄덕인다.
"할머니이!"
이제까지 걱정했던 일이 정말이 되어버렸다.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와 이불로 입을 틀어막고 울었다. 울다보니 할머니가 들으실 세라 거짓말 할 때가 차라리 좋았던 것 같다. 이때껏은 할머니가 우리 곁에 살아 계셨으니까.
울다 잠이 든 내 귀에 문풍지 소리가 크게 들렸다.
"우~ 우, 잘 오시게. 우~ 우, 잘 오시게."
하늘 저만치에서 할아버지가 웃는 얼굴로 할머니를 손짓하며 부르고 계셨다. 할머니는 나랑 만든 눈사람을 옆구리에 끼고 할아버지에게 손 흔들며 다가가고 계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