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김춘수(金春洙)
샤갈의 마을에는 3월(三月)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3월(三月)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시어, 시구 풀이]
관자놀이 : 귀와 눈 사이의 태양혈이 있는 곳
쥐똥만한 : 조그마한 크기의 물체를 일컫는 말
올리브 : 목서과의 상록 교목. 여름부터 가을 사이에 황백색의 향기로운 꽃이 핌
지핀다 : 아궁이나 화덕에 나무를 넣어 불을 피운다.
샤갈의 마을에는 3월(三月)에 눈이 온다. : 샤갈의 마을은 실재의 공간이 아니고 환상적인 세계이다. 특별히 샤갈의 마을이라고 한 것은 샤갈의 특징 그림(‘눈 내리는 마을’, ‘나와 마을’)에서 연상된 것일 수 있으나 샤갈이 환상적이고 초현실주의적 그림을 많이 그린 화가라는 데서 연상된 이미지일 수도 있다.
봄을 바라고 섰는 - 바르르 떤다. : 봄의 생명감이 동맥과 말초 신경을 거쳐 정맥에까지, 곧 전신에 퍼져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일상적 언어 서술과는 거리가 먼 이미지를 중시한 표현이다.
눈은 수천 - 굴뚝을 덮는다. : 수많은 눈송이들이 분분히 날리며 지붕과 굴뚝을 덮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눈이 내리는 모습을 활유법으로 사용하여 능동적인 현상으로 묘사함으로써 시 전체가 주는 ‘생명감’과 조화를 이루게 하였다.
샤갈의 마을에 -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 3월의 눈이 겨울 동안 메말랐던 열매들에게 올리브빛(노란빛이 도는 녹색) 새 생명을 부여한다는 의미다.
밤에 아낙들은 - 아궁이에 지핀다. : 불은 맑고 순수한 생명감을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한 것으로, 아낙들의 마음 속에 곱게 흐르는 봄의 생명감이 연상된다.
[핵심 정리]
지은이 : 김춘수(金春洙, 1922- ) 시인. 경남 충무 출생. 사물의 사물성(事物性)을 집요하게 탐구하는 시를 주로 쓰며, 특히 시에 있어서 언어의 특성을 다른 어떤 시인보다 날카롭게 응시하며 존재론적 세계를 이미지로 노래하였다.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율격 : 내재율
성격 : 감각적. 회화적. 환상적
어조 : 차분하면서도 객관적임
표현 : 연을 나누지 않은 전연시(全聯詩)의 형태. 현재형의 시제를 사용하여 생동감 있는 이미지를 표현. 각 문장들은 산문적 의미 전달이 단절된 채, 서술적 이미지만 연결됨
심상 : 시각적
구성 :
1행 샤갈의 그림 속의 세계
2-4행 사나이의 모습에 나타난 생명감
5-9행 샤갈의 마을을 덮는 눈의 모습
10-12행 눈 속에 소생하는 생명
13-끝 맑고 순수한 생명의 이미지
제재 : 눈
주제 : 맑고 순수한 생명감
출전 : <김춘수 시선집>
▶ 작품 해설
감각적인 이미지를 통해, 인간 존재의 신비스러움과 자연의 조화로운 정신을 보여 주고 있는 시이다. 현대적 시의 흐름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김춘수는 관념의 시를 쓰던 1950년대를 거쳐 1960년대에 이르면 관념과 의미를 해체하고 대상이 갖는 순수한 이미지만을 추구하는 무의미의 시를 쓴다. 이 시도 그런 계열에 속하는 작품이다. 따라서, 이 시의 각 행들은 하나의 의미를 전달하기보다는 자신의 마음 속에 떠오르는 심상들을 감각적인 언어로 포착하였다고 하겠다. 이렇게 볼 때, 이 시에 나오는 샤갈의 마을은 실재하지 않는 환상적 세계이다. 이런 세계를 배경으로 ‘눈’과 ‘새로 돋은 정맥’, ‘올리브빛’, ‘불’ 등의 이질적인 시어들은 모두 독자적인 이미지를 가지면서도 순수하고 맑은 생명감이라는 공통적인 심상을 연상시켜 준다.
<참고> 김춘수의 ‘무의미의 시’에 대한 시론
사생(寫生)이라고 하지만, 있는 실재 풍경을 그대로 그리지는 않는다. 대상과 배경과의 위치를 실재와는 전혀 다르게 배치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실지의 풍경과는 전혀 다른 풍경을 만들게 된다. 풍경의, 또는 대상의 재구성이다. 이 과정에서 논리가 끼어 들게 되고, 자유 연상이 개입된다. 논리와 자유 연상이 더욱 날카롭게 간여하게 되면 대상의 형태는 부숴지고, 마침내는 대상마저 소멸한다. 무의미의 시가 이리하여 탄생한다.
그에 의하면 의미는 산문에 보다 어울리지만 무의미는 시의 형식에만 알맞다고 생각하였다. 그렇기에 무의미는 산문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되는 시 고유의 영역임을 주장한다. 이것은 의미의 시에 익숙했던 우리의 전통적인 시관(詩觀)에 도전한 것이었다. 또한 사물에 대한 일체의 판단이나 선입관을 중지하는 방식을 통하여 의미 해체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의 60년대 시 ‘처용’, ‘처용 단장’,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은 이런 대표적인 작품의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