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을 약으로 먹어 보니
-갑상선(유두)암 방사성동위원소-
방사성 동위원소 치료 전 저(低)요오드식을 하는 동안 천일염을 쓴 음식과 해산물로 만든 먹거리를 피해 다니느라 별난 고생을 했다. 불가피하게 출장가는 날은 반찬은 싸가지고 가서 식당에서 밥만 사먹어야 했으니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그렇게 보름 간 마누라가 해준 반찬만 착실하게 받아먹고 125만원이나 하는 타이로젠이라는 호르몬 주사를 의료보험 덕분에 내 돈은 6만원만 내고 맞고 나서 납으로 문을 만든 독방병실에 입원했다.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 유출 사건이 아직도 공포의 뉴스가 되고 있는 지금 내가 그 물질을 먹어야만 한다는 사실이 끔찍했다. 간호원의 안내를 받아 주홍글씨로 “일반인 출입금지구역”이라고 쓴 치료실에 들어서니 문 안쪽에는 "밖에 나가면 다른 분이 위험할 수 있으니 입원실 안에서만 머물러 주시기 바랍니다" 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방사능 오염인간에 대한 경고문이라 생각하니 뒷맛이 몹시 씁쓸했다.
갑상선 암 절제수술을 받았지만 환자의 몸 안에 남아 있을 지도 모를 암세포를 사멸시키기 위해 환자에게 방사성 요오드를 먹이는 치료법이다. 간단히 말하면 방사능을 방출하는 요오드를 환자에게 투여하여 갑상선 암세포를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가슴과 맞닿은 목 아래쪽에 자리 잡은 갑상선은 요오드를 원료로 하여 호르몬을 만들어내는 곳이므로 갑상선 세포가 분화해서 생긴 암세포 역시 요오드를 식탐하는 특징을 이용한 치료법이라고 한다. 투약 전에 환자의 몸을 요오드에 최대한 굶주린 상태로 만들기 위해 보름동안 요오드가 들어 있는 음식을 전면 금식하는 저(低)요오드 식이요법을 거쳐 경희의료원에 입원한 것이다,
병실에서 잠시 기다리자 핵의학과 의사가 와서 내가 지켜야할 환자수칙을 설명했다. 한마디로 방사능 오염인간에 대한 관리지침이다. 방사성 요오드를 먹을 때 약이 손에 닿으면 화상을 입을 수 있으니 대롱으로 잽싸게 뽑아 올려 입에 털어 넣으라 했다. 식사 시간에는 밥 왔다고 인터폰으로 알려주면 문 열고 나와 가져다 먹고 특히 화장실에서 볼 일 볼 때 바닥에 배변을 흘리지 말아야 한다며 소변도 여자처럼 앉아서 보라고 했다. 손에 침이 묻지 않게 비닐장갑을 끼고 양치질을 하고 약 먹고 두 시간 후부터는 몸 안에 들어온 방사능 물질을 배출시켜야 하므로 하루 3리터 이상 물을 마시고 혹시 라도 약을 토하면 그 병실은 한 달 동안은 사용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방사능을 두 번 먹어야하는 환자 자신도 힘들게 된다고 했다.
설명을 듣고 나니 꽤나 섬뜩했다. 이토록 해로운 것을 내 몸에 집어넣어야 한다는 사실이 슬펐다. 마음이 심란한데 의사는 납으로 된 묵직한 용기를 내 앞에 턱 내려놓고 서둘러 나가더니 4,5m 떨어진 문밖에서 문을 조금 열고 빠꼼하게 들여다보며 연습한 대로 복용하라기에 약을 얼른 입에 털어 넣고 재빨리 물 반 컵을 마셨다. 그런데 막상 먹고 나니 먹기 전에 엄습했던 긴장과 공포와는 달리 쓰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고, 아무 맛도 없으니 좀 싱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2월 19일 오후 3시에 나는 공포의 방사능을 약으로 복용했다. 약을 먹고 한 시간 동안은 몸의 자세를 자주 바꿔야 혹시 있을지 모를 위장의 손상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하기에 걷다가는 눕고 누어서 뒹굴고 다시 일어나 않기를 쉬지 않고 했다. 달밤에 체조하듯 열심히 했다. 약 먹고 두 시간이 지난 오후 5시부터는 물을 먹기 시작했다. 방사능 후유증으로 침샘이 손상되지 않도록 물 한 모금 마시고 침샘을 문지르고, 레모나 먹고 물 한 모금 마시고, 사탕 먹고 침 나오면 또 물마시고 그렇게 붕어처럼 물만 마셨다. 마침 김연아 선수가 올림픽 2연패에 도전하는 날이라 잠도 자지 않고 새벽까지 마셨다. 맥주라면 까짓 3리터쯤은 앉은 자리에서 마실 수 있지만 물은 달랐다. 시간이 갈수록 질리기 시작했다. 식사를 해야 배변이 왕성해져 방사능 배출이 빨라진다고 하니 빵빵한 물배에 주는 밥은 물론 반찬까지 다 먹었다. 냉수 먹고 속 차리는 기분으로 물을 약으로 마셨다.
물을 영업적으로 마셔대니 4,50분에 한 번씩 화장실에 갔다. 서서 보던 일을 여자처럼 앉아서 봤더니 마지막 털어내는 마무리 작업이 몹시 불편했지만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했다. 비닐장갑 끼고 하라는 양치질은 아예 생략하기로 하고 2박3일 동안 손에 침이 묻지 않도록 조심했다. 방사능오염 인간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려고 2박3일 40시간 머물며 잠자는 10시간 빼고 약 30시간 동안 맹물을 10리터쯤 마셨다. 그렇게 무지막지 하게 물을 마신 덕분에 퇴원 당일 방사능 측정 수치가 퇴원 허용치의 1/10에 지나지 않는다고 의사로부터 칭찬까지 받았다. 하지만 우리 집에는 아직 씨를 받지 않은 아들 둘이 버티고 있기에 후손의 안전을 위해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있는 제암의원에서 5일 더 입원하고 방사능 반감기 8.3일이 지난 뒤에 귀가했다.
몸 안에 들어온 어떤 나쁜 에너지를 주체 못해 변질된 세포가 암이라고 보면 방사성 요오드 치료법은 일종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술이다. 몸 안에 자리 잡은 사악한 에너지를 더 독한 에너지를 집어넣어 제거하는 방식이다. 우리가 매일 맛있게 먹는 식사도 다름 아닌 에너지 섭취다.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은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외부에서 몸 안으로 집어넣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렇게 보면 생각 또한 에너지다. 생각이 행동을 부르고 행동이 습관을 만들고 습관이 인격을 만들어 결국 인격이 그 인생을 만든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인간의 습관이야 말로 정말 강력한 에너지다.
습관을 바꿔 말한다면 인이 박힌 생각이 불러온 결과라고 할 수 있으니 생각은 무엇보다도 강력한 에너지다. 함부로 먹는 습관은 물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나쁜 습관들이 몸 안으로 사악한 에너지를 불러들였다고 보면 병 또한 틀림없는 나의 업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에게는 유전 때문에 생기는 병이 있다. 그러나 이 유전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대대로 인이 박힌 습관이 만들어낸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인이 박힌 습관을 길들인 장본인이 결자해지 못했으니 대를 물려 그 대가를 치르는 것 같기도 하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하는데 평생 버릇이 불러들인 사악한 에너지를 끊어내려면 얼마나 독한 에너지로 다루어야 할까를 짐작해 본다. 그렇다면 새롭다는 것은 반드시 선(善)한 에너지만으로 얻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라 하듯이 파괴 또한 새로워지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전쟁 뒤에 평화가 오고 절망 뒤에 희망이 있듯이 생로병사의 굴곡 또한 시간여행하는 인생의 오묘한 패러다임이 아닐까 싶다.
갑상선 암이란 병이 내게 한 달이란 긴 시간을 통째로 가져다 주었다. 환자로서 남에게 간섭 받지 않고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을 모처럼 누렸다. 때론 지루하고 괴롭기도 했지만 얻은 것도 있다. 내가 길들인 것은 내 스스로 책임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과 병도 인생의 한 구비로서 함께 갈 수밖에 없다면 겸손하게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이다.
하나 더 괄목할만한 것은 마누라기 엄청 부드러워졌다는 사실이다. 간호원조차도 가까이 오길 꺼려하는 환자를 보기 위해 매일 문병을 오고 퇴원해서도 반찬 따로 만들며 애쓰는 모습을 보니 그래도 마누라 밖에는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조금 더 엄살을 부리면 아주 부드러운 마누라로 확 바뀌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보지만 그러자고 일손 놓고 앉아있을 수 없는 형편이 유감스럽다.
세 남자 틈에서 35년을 살아온 마누라, 앞으로도 오래오래 지금처럼 부드러웠으면 좋으련만 과연 며칠이나 더 갈까? 그것도 궁금하다.
140226
첫댓글 고생하셨습니다.
수기 잘 읽었구요, 에고 사모님이 제일이시네요,
내 마누라가 제일이다하면서 잘 모시기바래요,ㅎㅎㅎ
그래도 세월이 가면 짝지가 제일이지...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