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0-19 17:47
산호세와는 달리 해야할 공부도 마치고 홀가분해진 그사람과 함께
순전히 관광을 목적으로 이번엔 두사람이 샌프란시스코로 향했다
아직도 미국에서 가본 중에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기억하고 있는
샌프란시스코는 인기가 베스트 원에 드는 도시라고한다
서해 연안의 햇살이 너무나 맑고 밝았던 날씨에 그곳에서
우리는 대표적 명소인 적색의 웅장한 금문교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태평양바다에 배를 타고 바람을 맞으며
그곳 요금내는 사진사에게 기념되는 사진도 찍었다
가로수도 길거리도 아름다웠던 유원지거리에서 보는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옷색깔이 파스텔톤으로 고운 형형색색이다
연분홍 크림색 연두빛 선홍색 자유로웠다
우리는 크레용 12가지색으로 그림을 그렸다면
그사람들은 120가지색 크레용으로 그리며 살았는지
그들의 입은 옷의 발달한 색감은 파란하늘과 더불어 눈이 부셨다
그당시 한국에는 옷을 단조로운 무채색을 주로 입었던것 같아 비교되며 인상적이었다
지금은 이제 우리도 보수적인 남자들까지 다양한 고운색을 입는다
어느 복고풍 영화에선가 본듯한 경사가 심한 언덕의 도시가 이색적으로 보였다
대중교통은 이용하지 못했지만 여러가지 모양의 버스나 전차들이
장난감 같기도하고 멋스러워 타보고 싶었다
밤에는 유니언 스퀘어 부근으로 눈요기를 하러 나섰다
백화점과 상점들이 무게있게 화려하고 부요한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그 거리에서 가장 많이 걸인들을 만난것 같다
내게 남아있는 사진에도 거리에 다니는 걸인이 배경으로 찍혀있다
언제 감은지 모르는 긴머리를 아무렇게나 풀어 헤치고
쓰레기 봉투같은 큰 봉지를 들고 다니던 더러운 얼굴의 그들이 힘없는 눈으로 배회한다
나는 편하게 블루진으로 만든 캐쥬얼한 외투를 입었는데
그사람이 한국에서는 말 안하다
내 옷 등판에 새겨진 영어글씨 알파벹이 틀렸다고 지적한다
본토에서 그러니 그 옷을 입기만하면 누가 흉 볼것 같아 뒤숭숭했다
어느날 밤에는 다운타운에 위치한 동성애자들의 거리라는곳도 갔었는데 내눈에는
누가 동성애자고 게이인지 알아볼수가 없었다
멋있는 가게들만 들여다보고 다녀도 정신을 빼놓았다
먹을것 좋아해서도 차이나타운을 가기로했다
미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한다
처음 간 날은 한참을 중국풍 거리를 걷다가 큰 식당에 들어가
식사를 했다
거만해 보이는 주인인 동양여자가 당당하고 친절과는 거리가 멀었다
부호도 많은 차이나타운에 중국 사람들이라했다
그다음에 갈때는 옹색한 집이었는데 일층에 테이블이 서너개고
다락 같은 이층 좁은 계단을 겨우 올라가면 테이블이 세개인 작은 중국집이었다
우리는 이층에 자리하게 되었는데 옆 테이블에서
연인으로 보이는 검정레깅스 입은 백인처녀와 이탈리아 남자처럼 잘생긴 청년이
식사하면서 소근소근 서로를 만지작거리기도 하며 즐거워보인다
갈 시간이 되자 두사람은 각자 돈을 내놓더니 그돈을 합쳐 계산 한다
나는 사랑하는 남녀가 더치페이를 하는 문화를 처음 보면서 익숙치 않아 생경했다
우리 같으면 주로 남자가 내든지 여자가 내든지 했을것 같은데
아니 여필종부여서 남자가 낸다
라이브하우스에서 재즈 음악을 듣는데 낮선 뮤지션이 문외한인 나는 지루하기만 했다
하지만 번화하면서 고혹적인 분위기는 마음에 들었다
그의 대학동학이 금성 지금의 엘지전자 샌프란시스코지사에 근무했다
승무원 출신답게 예쁜 그친구 부인과 함께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 서 식사도 했다
외식비가 비싸 비용이 가장 많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우리처럼 네모 반듯한 획일적인 모양의 아파트가 아닌
그의 아파트는 하얀색의 아기자기한 미적인 디자인이었다
집에 초대 받아 반가운 한식으로 대접 받기도 했다
거기서 처음 본 프라이스 크럽이라는 대형마켙에서 한국아줌마인 나는
미제 물건에 혼이 나가버려 온갖 잡동사니를 많이 샀다
그 바람에 공항에서 가방이 중량초과되어 벌금을 물기도 했고
애물단지처럼 무거운 짐 때문에 고생이었다
친구 부인의 차안에서 이문세 노래를 듣기도 하고
신나게 달리다 교통경찰에게 걸리기도 했는데
어찌나 신사적으로 대해주던지 위법을 했다는 사실을 망각할 지경였다
위법자의 변명도 친절히 들어주고 부드러운 경찰이 우리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한다
고압적였던것만 알고 있었던듯 나는 그것에 감동했다
외로울것 같기도한 타국에서의 그친구 부부에게 우리는 신세만 지고 온듯했다
암닭이 울면 안된다고 하는 진리(?)가 있는데
의사소통이 안되니 저절로 통역해줄 그가 필요하고
그러다 보니 여행지 미국에서 나는 본의 아니게 순한 양처가 되어 있었다
그가 있어야 여기저기 다닐수 있고 물건 살때도 대신 물을수 있었기에
어떤땐 치사하고 불편했지만 꾹 참을수밖에 없었다
아쉬운사람은 나니까
그러니 집에서와 다르게 그사람은 내게 거드름을 피우고 자신감이
넘치며 반면에 나는 내내 답답한 덜 떨어진 마누라 같았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곧 원상으로 돌아갔다
밤에 떠나온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샌프란시스코의 야경은
혼이 빠지게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