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6. 天開 요한 一章五十一節(續前), 行十章十一節 淸朝 宮夕
天開卽啓示也, 神以特恩示信者也. 示則得慰 平安也, 無則熱求 蒙恩可也. 歷觀聖經, 有大福者得天啓. 非但大福 一敬信者亦可得. 當黙禱 熱祈可也. 然則神於何者 開示也?
認罪自服者 神必慰之. 雅各至伯特 日暮枕石而臥, 不勝恐怖 乃流淚自服認罪. 天使乘梯而降(刱卄八章十一, 十七節). 雅各曰, 此乃天之門. 心內有罪 不能見神 故天閉. 心開卽天開, 心開則神入. 主之以奧妙示之 心得大慰 亦有大福 雅各是也.
聖神感動者 開角聲被上(默四章一, 二節). 요한流島主日切祈 神以啓示 示七敎會, 又天開被上. 人於擊鼓中 信心尤篤. 惟神是依 又無環境之可依 㝡拜的 㝡獨的. 是時可見天開 欲獻身者.
主受洗時 示之(太三章十六節), 使之獻身之貴. 主亦메시야之職自認 故神發音曰, 是我愛子. 이새야 見火(샤六章七節), 摩西亦見火 皆以身獻之. 欲得神之依者 天必開示. 今日敎役者無此經驗 故皆職業化. 不然 落心棄聖職如獘徙, 甚錯.
欲福利民衆者. 엘이야憂三年之旱 而祈之天開雨降(王上十八章四十六.節). 人只爲私利私福 而求或出情欲 故不成(얍五章三節). 主祈文先求聖國, 公成卽私亦成 故耳. 信本自救 而救他. 神視万民爲一家 神前無私.
天常開於救主之上者 何也? 主之生涯一毫無私意, 只榮父福民已耳. 主以天 開之意 敎나단曰, 爾在樹下見之 爲看願有看此. 人子之上天常開矣. 非但人子無論誰某 皆可見天開.
以上認罪也, 感神也, 獻身也, 福民也, 此數者 我能有之乎? 有此心卽天常開矣. 不然 天閉矣. 神欲降福萬民 而欲開. 吾等願成天開之宝信焉.
026. 하늘이 열림 / 요한복음 1:51(앞 설교 본문에 이어서), 사도행전 10:11. 삼청교회 주일아침, 궁정교회 주일저녁
하늘의 열림은 곧 계시(啓示)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사로 신자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보여주시면 위로를 받아 평안합니다. 계시가 없으면 열심히 간구하여야 은혜를 입을 수 있습니다. 성경을 둘러보건대, 큰 복이 있었던 자는 하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큰 복을 받은 사람뿐만이 아니라 하나의 경건한 신자도 역시 받을 수 있습니다. 마땅히 묵도하고 열심히 기도하면 가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계시합니까?
죄를 인정하고 자복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위로하십니다. 야곱이 벧엘에 이르러서 날이 저물자 돌을 베개 삼아 누웠는데,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여 눈물을 흘리며 죄를 자복하고 인정하였습니다. 천사가 사다리에 오르내리었습니다(창28:11, 17). 야곱이 말했습니다, “여기가 바로 하늘의 문이로다.” 마음속에 죄가 있으면 하나님을 볼 수가 없으므로 하늘이 닫힙니다. 마음이 열려야 하늘이 열립니다, 마음이 열리면 하나님이 들어오십니다. 주님은 오묘하게 계시하시어 마음에 큰 위안을 받으니 역시 큰 축복입니다, 야곱이 바로 이 같은 경우입니다.
성신의 감동을 받은 자는 저 위로부터 나팔소리를 들었습니다(계4:1, 2). 요한이 섬으로 유배(流配) 갔을 때 주일(主日)에 간절히 기도드렸더니 하나님께서 계시하셔서 일곱 교회를 나타내보이셨고, 또 하늘이 열리고 위로 이끌려 올라갔습니다. 사람이 나팔소리 가운데서 신앙의 마음이 더욱 독실해졌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게 되고, 또 환경에 의지함이 없었으니 최고의 경배이며 오직 홀로 있었던 순간입니다. 이 시간은 가히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았으니 헌신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주께서 세례 받으실 때 나타났으니(마3:16), 헌신을 귀중하게 하셨습니다. 주님 역시 메시야 직책을 인정하셨던 고로 하나님께서 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이사야가 불을 보았고(사6:7), 모세도 역시 불을 보았으니 모두가 몸으로 헌신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자 하는 자에게는 하늘이 반드시 열려서 보여주십니다. 오늘의 교역자는 이런 경험이 없으므로 직업화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낙심하고 성직을 헤진 옷처럼 버리니, 심한 착오입니다.
민중의 복리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엘리야 3년의 가뭄을 걱정하다가 기도하므로 하늘이 열려 비가 내렸습니다(왕상18:46). 사람이 단지 개인의 이득과 개인의 축복만을 위해 구하고 정욕으로 구하기 때문에 이룰 수가 없습니다(얍5:3). 주기도문에도 먼저 거룩한 나라를 위해 구하였으니, 공적 성공은 사적 성공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근본은 자신을 구원하는 일이지만 남을 구원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만민을 다 한 가족으로 보시므로 하나님 앞에서는 사적인 것이 없으십니다.
하늘은 구주를 제일로 삼는 자들에게 항상 열리는 것은 왜입니까? 주님의 생애에서는 터럭 한 오라기만큼도 사적인 의도가 없으셨으니, 다만 아버지의 영광과 백성들의 복리뿐이었습니다. 주님이 하늘이 열리는 의미를 나다나엘에게 가르쳐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나무 아래 있을 때 보았다.” 보기를 원하면 이를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인자의 하늘은 항상 열려져 있음입니다. 인자만 아니라 누구든지 다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상에 말씀드린 것은 죄를 인정하는 것이요, 성신의 감동이며, 헌신이고, 백성이 복을 받게 하는 것인데, 이 몇 가지를 내가 능히 가지고 있습니까? 이 마음이 있은즉 하늘이 항상 열립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늘은 닫힙니다. 하나님은 만민에게 복을 내리시를 원하시고 하늘을 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하늘이 열리는 보배로운 신앙을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