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信仰과 安心 롬八章二, 눅二章卄九節. 鏡三
吾等生活 豪無安心處. 疾病襲來有恐怖, 飢寒到來 亦有恐怖. 乘船則 有海之危險, 登山則 有山之危險. 到處危險 皆死之恐怖也. 佛曰 不有其身 患何從生? 居肉而不認者 如居屋而不知屋也. 患不可無兒 生以深哭抑.
何故人間 當憂患? 是顯患所稱也. 是患亦死之顯患也, 如除去死之一字 則可安心, 何法可除也? 魔執死亡之權揮縱 無常人皆被動. 日前崔先生手術時 自見其苦痛危險也. 人隔海中 命在頃刻 能救者肅天, 父母皆不能. 惟生命 聖神之法能救之, 脫死亡之法.
主復活于陰府 死亡不能主之, 死亡于安在? 余見人家, 父長壽則 子亦長壽, 兄長壽則 弟亦長壽. 主爲吾長兄 脫死永生, 吾亦脫死 入永生矣. 司馬牛悄無兄弟, 子曰 四海皆兄弟云. 主爲吾兄 何憂之有乎? 從此得安心之命. 故信者生活 如過氷山, 不信生活 如過黑洞. 猶民渡江海後 有進兵一沒海 而無憂矣. 雖有進兵 何憂之有乎? 故主爲避難處.
彼美之黑奴 見頭于人 毫無自由. 便之路上呼納 省一人傷之, 以金贖之 不回而去. 奴意進問之 不答 奴往依某家 其奴從此 得安心. 今東海人久久被矣 于西人毫無自由 奉平不能, 抗之不能 爲奴于多有 無産之中 其魔恙不可言矣. 將利在則 出擊之人 不久必得 安心之日矣.
시메온 頃釋而平安. 余在淸時 程淸而往 皆汚人酒人 終日飮 終日諧談, 一入其窟 不能脫出. 獨坐一偶 如村鷄 心甚不安. 百方想謀 而歸心始豁. 然安如出獄去 不可言. 願僉 但勿離信仰 安心之命.
27. 신앙과 안심 /로마서 8:2, 누가복음 2:29. 경성교회 삼일저녁
우리의 생활은 조금이라도 안심할 곳이 없습니다. 질병이 기습해오는 두려움이 있고, 주림과 추위가 도래함도 역시 공포입니다. 배를 타면 바다의 위험이 있고, 산에 오르면 산의 위험이 있습니다. 가는 데마다 위험이니 모두가 죽음의 공포입니다. 부처가 일렀습니다, 그 몸이 없다면 근심이 어디에서 생겨나겠는가? 육체에 거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집에 살면서도 집을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근심은 아기에게도 없을 수가 없으니 태어나면서 크게 울어도 억제하지 못합니다.
무슨 까닭에 인간은 우환(憂患)을 당합니까? 이는 현저한 근심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근심이 어쩌지 못하는 현저한 우환이니, ‘죽을 사(死)’ 한 글자를 없앨 수 있다면 가히 안심할 수 있습니다. 무슨 법으로 이를 제거할 수 있나요? 마귀가 사망의 권세를 잡고 휘두르니 헛되이 인간은 끌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일전에 최 선생이 수술을 받을 때 그 고통의 위험이 나타났습니다. 사람이 멀리 바다가운데 생명이 경각(頃刻)에 달렸다면 구할 수 있는 것은 하늘이니, 부모도 다 어쩔 수는 없습니다. 오직 생명은 성령의 법만이 구원할 수 있고,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음부에서 부활하셨으니 사망이 주장할 수 없었으니, 사망이 어디에 있습니까? 제가 사람들의 가정을 보니, 아버지가 장수를 하면 아들도 장수하고, 형이 장수하면 동생도 장수하였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큰 형님 되셔서 죽음을 벗어나 영생하시니, 우리 역시 죽음을 벗어나서 영생에 들어갑니다. 사마우(司馬牛)에게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온 세상이 다 형제라고 했습니다.주님이 우리의 형님 되시는데 무슨 걱정이 있습니까? 이로서 생명의 안심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신자의 생활은 깨끗한 산을 지나는 것과 같고, 불신자의 생활은 캄캄한 동굴을 지나는 것과 같습니다. 유대 백성이 강과 바다를 건넌 후에는 군대가 다가왔지만 한 번에 침몰되었으니 걱정이 없었습니다. 비록 군대가 닥칠지라도 무슨 근심이 있습니까? 주님이 피난처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저 미국의 흑인 노예는 머리만 사람이지 도무지 자유가 없었습니다. 길가에 호소하는 이가 있어 살펴보지 상처 입은 사람이 있었는데, 돈으로 사서 풀어주니 다시 돌아가지 않고 떠나갔습니다. 노예의 뜻을 물었으나 대답이 없었고 노예는 가서 어느 집에 의지하였으니 그는 이로서 안심을 얻었습니다. 지금 동쪽바다의 사람이 오래오래 피해를 입는 이들이며 서양인에게 자유가 없이 평등을 받들지도 않고, 항거할 수도 없는 노예가 많으니 재산도 없는 가운데 그러한 마귀의 현상은 말로 할 수가 없습니다. 이익이 있으면 공격하는 사람들이지만 머지않아 반드시 안심의 날을 얻을 것입니다.
시므온은 이제 놓여서 평안케 되었습니다. 제가 청진에 있을 때 지나가는 길에 모두 더러운 사람과 술꾼들이 종일 마시고 온종일 잡답하였는데, 한 번 그 굴에 들어가면 탈출할 수가 없었습니다. 홀로 우두커니 촌닭처럼 앉았던 사람이 마음은 몹시 불안하였습니다. 여러 가지로 생각하다가 돌아가려고 결심을 하였더니 비로소 마음이 확 열렸습니다. 그 편안함이 마치 감옥을 벗어난 것처럼 정말 말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 다만 신앙을 떠나지 말고 생명의 안심을 얻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