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내생에 관한 문제 / 요한복음 14:10
사람은 미래에 대해 항상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행동을 보고 그의 미래를 판단하기도 하고,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여 수명을 예측하기도 합니다. 학문적 지식이나 상식으로 추측하여 아는 방법도 있고, 10년 후나 20-50년 후의 일도 예측할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독일 황태자가 조선의 군사력을 보고 "10년 후에 조선은 다른 나라의 속국이 될 것"이라고 했지만,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너무 무지하여 그 의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저도 잘 모르는 사람이지만, 주식 투기를 하는 어떤 형제에게 그만두라고 충고했습니다. 그 형제는 "선생님은 전도나 하시지 주식 투기는 모르실 텐데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주식 투기를 하면 실패할 것"이라고 답했는데, 결국 그 형제는 많은 돈을 잃고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내세의 문제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 문제는 저뿐만 아니라 철학자도 과학자도 모릅니다. 예전에도 아는 사람이 없었고 지금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 문제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은 고민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지옥을 무서워합니다. 한 무제는 불로초를 구하려다 실패하고 죽었고, 빅토리아 여왕은 나라의 절반을 내어주겠다며 병을 고치려 했지만 결국 죽었습니다. 재능 있는 선비들과 아름다운 여인들, 제왕과 장군들도 모두 죽었습니다.
저 역시 평범한 사람 중 하나이고 특별한 사람은 아니지만, 주님을 믿기로 하고 진리를 공부하면서 분명히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내가 다시 와서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겠다"라는 주님의 말씀은 고민 중에 있는 사람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천국에는 죽음도, 질병도, 죄도 없습니다. 이러한 사랑의 위로를 누가 받을 수 있을까요? 영생을 상속받고 영광스러운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지옥불 속에 있는 자들을 보니, 나의 머리에는 영원한 면류관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곳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오직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고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받은 사람만이 이 천국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누군가 죽으면 슬퍼하며 울부짖습니다. 바울과 베드로도 인간이었는데, 어떻게 십자가에 못 박히거나 목이 베어지는 순간에도 발버둥 치지 않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받아들였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죽음 너머에 있는 믿음으로 가득 찬 밝은 내세를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미개한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내세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둑질을 하고 살인을 해도 그것이 죄라는 것을 모릅니다. 이는 내세의 존재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문명화된 사람일수록 내세를 위해 죽음도 삶도 받아들입니다.
태평양에서 빙산과 충돌한 영국 배는 결국 침몰했고,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죽게 되었습니다. 선장은 군악대를 연주하게 하고, 구명보트에 여자들과 아이들을 태운 뒤, 어떤 원망도 없이 주님을 가까이 하며 찬송하다가 바다에 빠져 죽었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평온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내세를 아는 기독교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그 수장의 순간은 천국으로 가는 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다른 이를 죽이고, 물건을 빼앗고, 싸우는 것을 보면 내세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