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전망
지난 해 말부터 대미 원화환율이 폭등해 한때 1500원을 위협하기도 했다. 유가 등 물가상승, 유학생과 해외여행객의 부담 증가 뿐 아니라 한국경제 전체를 짓누르는 악재가 되고 있다. 환율이 앞으로도 계속 오를까? 많은 사람이 궁금해 하는 질문이다. 경제 전망은 모두 잘 맞지 않지만, 그 중 환율 전망이 가장 잘 안 맞는 편이다. 1년 전 생활경제 전망을 하면서 환율은 대체로 하향안정세를 보일 것으로 예측했으나 반대로 간 셈이다. 또 틀리더라도 다시 한 번 해보려 한다. 무엇보다 내가 궁금해서 하는 것이다.
먼저 환율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찾아야 한다. 다양한 요인이 있지만, 주요 요인은 네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미국과의 금리격차, 물가상승률 차이, 우리의 경상수지 상황, 한국경제에 대한 종합적인 신뢰도이다. 이 네 가지의 점검을 통해 환율을 전망해 보자. 이 네 가지와 환율과의 관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지면 관계상 생략한다.
첫째 금리는 미국이 더 높다. 미 달러화 예금이 원화예금보다 유리하여 환율상승 요인이다. 미국금리가 높은 현상은 앞으로도 쉽게 바뀔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한국경제상황이 안 좋아 금리 인하압력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중앙은행의 독립성도 약해 금리정책에 대한 외풍이 심하다. 예금이나 채권 말고 주식시장도 한국보다 미국 시장에 대한 선호가 높다. 대부분의 금융상품 수익률은 미국이 한국보다 월등히 높다. 이미 많은 돈이 국내시장을 떠나 미국으로 가고 있다. 이것도 엄청난 환율상승 요인이다. 다만 실 낫 같은 희망이지만 미국주식시장의 거품 가능성이 높아져, 앞으로 자금이 미국을 떠나 국내시장으로 들어온다면 원화 환율이 떨어질 수도 있다. 판단은 각자의 몫이지만 이 확률은 아주 낮아 보인다.
둘째 물가상승률이다. 한국의 소비자물가 연간 상승률은 2% 정도로, 미국의 3% 수준보다 낮다. 이것은 환율하락 요인이지만, 이는 외형적인 숫자에 불과하고 내용을 들여다보면 실상은 다르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에는 집값과 집세가 충분히 반영되어 있지만, 한국의 소비자물가에는 집세만 부분적으로 반영되어 있을 뿐이다. 즉 한국 소비자물가의 현실 적합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더욱이 이 사실을 이제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통계수치 자체보다 통계의 신뢰도를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한국은 집값 등 부동산 통계의 신뢰성도 매우 낮다. 이는 과거 문재인정부 시절 김현미 국토부장관이 국회에서 한 이상한 집값 증언 등의 사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셋째 경상수지는 한국이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어, 엄청난 적자를 보이는 미국에 비해 확실한 환율하락 요인이다. 그러나 미국은 기축통화국으로 외화부족 위험이 없다.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되고 해외 차입이 안 되도 자신의 발권력에 의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세계경제는 기축통화국인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로 부터 달러 유동성을 공급받는 구조이다. 즉 미국이 경상수지 적자를 내야 국제 유동성이 풍부해진다. 반면 한국은 경상수지 적자가 많이 나고 해외차입이 어려워지면 1997년과 같이 국가부도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환율하락 요인이긴 하지만 강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네째 한국경제의 종합적인 신뢰도는 어떨까? 여기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아주 많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원칙에서부터 전쟁 가능성 등 지정학적 위험, 정책운영의 투명성과 일관성, 정책당국자의 능력과 사회의 신뢰수준 등이다. 이들 요소는 모두 포괄적이라 하나하나마다 작은 결정요인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어 판단하기 어렵다. 그래서 편하게 한국경제와 미국경제 중 어디가 더 믿을만한가 생각하면 된다. 아마 많은 사람이 미국경제가 더 믿을 만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표면적인 통계지표인 성장률도 이미 미국이 앞서고 있고, 자본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경제 평가지표인 주식시장도 미국이 한국을 압도한다. 경제에 대한 신뢰도는 한국이 제조업 경쟁력 등과 같이 잘하는 것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미국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고 봐야한다.
종합해 보면 경상수지를 제외하고, 나머지 금리와 물가, 경제의 신뢰 등 세 가지 모두 환율 상승요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원화환율이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상승해 왔고, 앞으로도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꼭 알아야 할 것 하나 있다. 앞으로 환율이 계속 상승추세를 보인다 하더라도, 지금이 가장 낮은 시기는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상승세를 보이는 가격변수도 단기적으로 보면 상승과 하락의 사이클을 보이면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즉 단기적으로는 환율이 하락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특히 2024년 12월 비상계엄 사태 이후 단기간에 급등했던 부분은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되면 전부는 아니지만 상당부분 원위치 할 수 있다.
환율전망을 해봤지만 잘 맞지 않을 것이다. 나의 전망을 너무 믿지 않았으면 좋겠다. 환율전망은 아이큐 200인 사람이 하던 50인 사람이 하던 틀릴 기능성이 많고, 맞는다 하더라도 우연히 맞았다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세상에서는 인간의 예상 밖의 일이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올해 연초의 LA 산불보다 훨씬 큰 자연재해가 올 수 있고, 트럼프 취임 이후 행정부와 미 연준의 심각한 갈등으로 물가가 크게 오르고 경제의 신뢰가 훼손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달러가치가 하락할 것이다. 또한 어떤 가격 변수든 장기간 상승하면 자신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하락하는 현상도 있다. 여기에다 작지만 원화환율 하락 요인도 찾으면 꽤 있다.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분에 대한 환 헤지 확대 가능성, 한국의 세계채권지수 산정 대상국 편입에 따른 자금유입 가능성 등이다. 이런 것들이 많이 있어 환율전망이 참 어렵다.
한국의 원화환율은 지금까지 단기 등락은 있었지만 지속적으로 상승해 왔다. 이것은 국민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이 컸다. 달러표시 국부의 감소와 국부의 해외유출 가능성, 달러자산 보유자와 달러부채 보유자 간의 의도치 않은 부의 재분배, 장기적인 국가경쟁력 약화가 대표적이다. 환율은 장기간 비슷하게 안정되어 있는 것이 가장 좋고, 한국처럼 장기간 상승해온 국가는 아주 조금씩 떨어지는 하향 안정세를 보이는 것도 괜찮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까? 앞의 환율 결정요인을 하락 쪽으로 바꾸는 것이다. 금리를 높이고, 집값 포함 물가를 더 안정시키고, 한국경제의 신뢰도를 높이는 일이다. 물론 경상수지 흑자 기조는 기본이다. 이것이 흔들리면 한국은 외환위기가 올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것은 많아 보이질 않는다. 금리를 올리면 미국과의 금리격차가 줄고 물가안정에도 기여하여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겠지만 한국의 가계부채와 내수부진 등을 생각할 때 불가능할 듯하다. 한국경제의 신뢰도를 높이는 정책은 대부분 시간이 많이 걸릴 뿐 아니라, 현재 여야 정치세력의 리더십을 감안할 때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아주 어렵지 않고 효과도 괜찮은 정책이 하나 있다. 신뢰할 수 있는 집값 집세 통계를 새로 만드는 것이다. 집값 집세 통계는 국토부나 통계청에서 할 수 있겠지만 신뢰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 통계는 한국은행에서 만들고 앞으로 집값 집세 통계를 미국과 같이 통화정책에 반영하겠다고 공표하면 효과가 더 클 것이다. 통화정책과 물가의 적합성 제고를 통해 한국경제 전체의 신뢰도를 높일 수는 방안이다. 현재 오지랖이 많이 넓어 졌다는 평을 받는 한국은행은 통화정책과 관련되는 일이고 미국도 비슷하니, 직접 추진해도 말이 적을 듯하다. 어찌되었던 환율을 지금과 같이 계속 오르게 놔둬서는 안 된다.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노력을 하면 조금 효과는 있을 것이다. 이것 말고도 더 찾아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