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문화＞ 문화란 무엇인가? (경북 안동 "고려 한지"를 다녀와서 (2019. 05. 06)

[효지도사 김인희]

문화란 무엇인가? (경북 안동 "고려 한지"를 다녀와서)

                                                                                          충남신문 칼럼니스트 회장

                                                                                        충청 효 교육원 원장 최기복

문화의 개념 정립이 어려운 것인지 쉬운 것인지 모호하지만 분명히 해 두어야 한다. 예로서 짐승이 문화를 향유하는 동물인가. 동물 스스로 자기들의 문화를 기록할 수 있거나 향유할 수는 없다. 모양이나 성질이 다른 특성을 인간이 기록으로 남겨서 동물관리에 참고하거나 이를 통하여 길들여 가는 것이지만 이를 고유의 동물 문화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고 여타의 자연은 인간과 신이 공동 관리하고 있다. 관리과정에서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지속적으로 찾아내고 이를 누리며 전승하는 것을 우리는 문화라고 이름 지어 부른다. 때문에 필자는 인간의 보편적 가치가 아닌 마약 문화. 살인 문화, 강도 문화 등을 문화라는 접미어를 부쳐 일종의 문화 개념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부정하면서 반론을 펴 왔다. 때문에 문화는 자연(숨 쉬는 생명체)+인간의 보편적 가치= 전승(시간)이다. 정치. 경제. 사회 등 삶의 전체적 맥락에서 가치를 인정하고 보전하고 전승하는 지혜로운 신의 피조물인 인간만의 전유물이다.

필자가 5월 4일 경북 안동의 고려 한지 공장을 다녀와서 한지(韓紙)는 우리의 역사 속에 살아 숨 쉬는 가치가 지혜와 노력의 소산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닥나무의 표피를 벗겨내어 물과 짓이겨 펄프를 만들고 가공하여 종이를 만들고 있었다. 화선지가 되고 화지가 되고 창호지가 되고 소지(燒紙)용 백지가 되고, 현란한 꽃무늬가 알록달록한 꽃지가 되어 나온다. 한옥이거나 전통가옥에 걸맞은 벽지와 두꺼운 장판지가 되어 나온다고도 했다. 한옥이 한국 주택문화의 상징이라면 당연히 사용되어야 할 세트다. 물에 젖은 펄프가 규격의 틀 안에서 온도와 습도와 산소를 호흡하면서 장인의 정성과 시간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에 기계화는 없어 보였다. 대량 생산의 기계화를 꿈꾸지도 않았다. 딱풀조차도 화학제품으로 보고 황촉규(약초의 일종)로 만든 풀을 사용한다고 했다. 풀 묻은 손가락 물기에 젖은 손으로 한 장씩 한 장씩 만들어지고 있다. 원료가 되는 암갈색 닥나무 껍질은 허접스러운 불쏘시개같이 보였지만 이것들을 지켜보는 장인들의 눈빛은 경건하기까지 했다. 눈부신 변화를 기다리고 있기에 그러련 했다. 한지에 녹아 있는 장인의 정신이 숨어 있기에 숨 쉰다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겠거니 하는 생각을 정리하며 필자는 한지의 수명을 물었다.

글쎄요? 저희도 100년을 살지 못해봐서... 외적 여건(온도 습도 보관 조건)만 맞춰준다면 천년은 될 것입니다. 3000년도 가능하겠지요. 옆에 보관하고 있는 500년 전의 한지로 만들어진 서책을 한 권 보여 준다. 누렇게 퇴색되어 있지만 선명하다. 필자는 학(鶴)과 거북이의 수명을 생각해 봤다. 그렇군요. 돈벌이가 좀 되나요? 이영걸 회장은 그냥 웃는다. 액자 속에서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 준다.

영국의 여왕은 이곳을 다녀갔지만, 한국의 역대 대통령은 한 분도 여기를 다녀가지 않았습니다. 예쁜 한지 종류를 차곡히 박스에 담고 있는 아들에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아들 앤드류 왕자가 어머니가 다녀가신 길을 답보하기 위하여 안동에 온다고 했단다. 하여 선물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우리의 무관심 속에 인류문화의 가치를 잃어가는 것이나 아닌지.

문화란 무엇인가?

한때 세계를 말춤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강남 스타일이나 지금 세계의 젊은이들을 열광시키고 있는 방탄 소년단의 무대 문화는 그 수명이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피카소나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이 그려진 캔버스의 수명은 얼마나 될까? 한옥의 장판지가 되고 황토벽의 벽지가 되면 인류의 문화적 가치는 얼마나 지속될까?

안동의 고려 한지에 그려진 글씨와 그림의 생명은 얼마나 길까? 3000년은 너끈히 갈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이 만들어 스스로 그 노예가 되기를 자처하여 이제 신의 경지에 와있는 컴퓨터에는 인간의 혼과 정신이 담겨 있지 않지만, 우리가 만든 안동한지는 대한민국 장인의 숨결이 살아 있고 자연과 함께 영생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문화란 역사와 공존하는 것이고 보편적 가치가 시간 속에서 자라고 전승되어야 한다. 누군가가 지키고 전승해야 할 자랑스러운 안동의 한지 문화가 안동시와 경상북도, 대한민국이 저버린다면 역사의 죄인으로 전락될 수도 있다. 강 건너 불처럼 보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