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천 김종수목사님을 그리워하고 사모하오며~
지난 5월과 6월 초순경에 목사님께서는 주일 예배를 마치고
두어 차례 119에 실려 응급실 출입을 하셨습니다.
제가 월요일 아침에 걱정이 되어 전화를 드렸더니 어제 응급실에 왔다가 호전되어 아침에 퇴원하고서 지금은 기자회견 현장에 나와 있다고 하셨습니다.
또 한번은 주일 설교를 다른 분에게 맡기시고 이번 주는 좀 쉬시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원로이신 강원구목사님도 계시고
김경희목사님 설교도 잘하시고,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제가 얘기했더니
당신이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난 종이니까’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말씀을 전하는 입으로,
그 전한 것을 실천하는 발걸음으로,
‘하루에 4시간 이상 잠을 잔 적이 거의 없어‘라고 하시면서
하나님 말씀 연구와 가르침에 최선을 다하신 목사님...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 기갈인 이 시대에 김종수목사님은 진정한 목회자들의 사표이셨습니다.
옛날에는 곽선희목사님 설교를 많이 봤는데
요즘에는 청파교회와 천안살림교회 최형묵목사님 설교를
수시로 본다고 하셔서
제가 형도 아직도 다른 사람 설교를 참고하신다는 말이예요?
했더니
씨익 웃으시면서 끊임없이 배워야지!
도움을 많이 받어! 하셨습니다...
일생을 배우려는 학생심의 마음으로 살아오신 김종수목사님
현수야~ 목포 한번 나와 밥먹자!
다정하게 저의 마음을 안아주시던 형님이셨던 김종수목사님
이젠 추억속에서
기억속에서
옛사람이 되셨네요.
한번은 목사님 사무실에 담소를 나누다가
스크랩북을 저에게 보여주시면서
’아내가 스크랩을 해 준것이라면서 설교에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고
자랑삼아 말씀하셨습니다.
현수야~ 부르시면 제가 예 형!하고 답합니다.
목포와 전남 서남권지역에 건강한 기독인의 목소리가 필요해
전남기독교교회협의회 (전남NCC)를 만들어보자.
예 좋습니다.
그렇게 탄생이 된 것이 오늘의 전남NCC입니다.
현수야~ 예 형!
성서학당 운영위원회 운영위원으로 수고좀 해라.
예 알겠습니다.
현수야~ 예 형!
목포 평통사 회원에 가입하여 같이 활동하자
예 알겠습니다.
목포 평통사 운영위원회 운영위원으로 수고 좀 하자
예 알겠습니다...
저에게 김종수목사님은 선생님이십니다.
선생님이시기에 말씀하시면 순종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설교의 도움을 받는 저 황현수목사의 선생이신 김종수목사님
분단의 아픔과 민주주의 퇴행의 시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심고,
평화를 위해 발로 뛰신
참 스승 김종수목사님이 계셔서
참 행복하고, 든든했습니다.
누구나 외면하고, 모르쇠하는 세월호 잊지않기 활동에 그토록 성실하게
임하셨던 오늘날 국가폭력이 횡횅하는 야만의 시대에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 되신 영혼이 맑고 따뜻하셨던 목사님
무관심과 냉대로 꽁공 언 시대 정신을 녹여내고 남을 만한
온기로 가득하신 김종수목사님...
부활이란 죽은 몸이 벌떡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으켜주시는(에게이로) 초대교회
신적 수동태로서의 부활 용어임을 가르쳐 주신 목사님
목사님의 삶과 애정과 발자취를
하나님께서 남아 있는
목사님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서 일으켜주실 것을 믿습니다.
(조대병원 중환자실에 계신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아무래도 마지막이 될 것 같은 예감에 불쑥 찾아갔습니다. 간호사께 통사정을 하여 가까스로 면회를 하였습니다. 형~ 현수하고 금영이 왔어요.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곁에 있던 간호사가 ’울지 마세요‘ 하시면서 자리를 비켜주었습니다.
형 사랑해~ 너무너무 고마웠어요. 행복했구요~
연신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그 눈물이 마지막이 될줄이야 차마 몰랐습니다.
몸을 아끼지 않으시고 바람처럼 우리 곁을 떠나신
우리 곁에 오셨던 ’예수‘ 참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전남NCC 총무 황현수(대기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