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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 베드로의 용서와 소명, 내 양을 먹이라(요한복음 21:15~25)
* 본문요약
제자들이 조반을 먹은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역시 세 번 똑같이 베드로가 “주께서 아시나이다”하고 고백하자
예수님의 양을 먹이고 치라고 명하시면서 베드로가 순교하게 되리라는 암시를 주십니다.
이에 베드로가 주의 사랑하시는 다른 제자(요한)에 대해 묻지만
예수님은 그에 대하여 상관하지 말고 오직 예수님만을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찬 양 : 352장(새 313) 내 임금 예수 내 주여
367장(새 341) 십자가를 내가 지고
* 본문해설
1. 베드로를 향한 세 번의 질문(15~17절)
15) 그들이 아침을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 네가 이 사람보다 (15절) : 투톤
‘이 사람보다’로 번역된 ‘투톤’은
남성복수 지시대명사, 혹은 중성복수 지시대명사가 모두 가능한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남성복수 지시대명사로 번역하면 ‘이 사람보다’가 되고,
중성복수 지시대명사로 번역하면 ‘이것들보다’가 되므로
본문에서는 이 두 가지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묵상포인트 참조).
-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15~17절) : 아가파오, 필레오
사랑이라는 말이 여기에서는
‘아가파오’와 ‘필레오’ 두 가지가 서로 교차하며 사용되었습니다.
아가파오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할 때 사용하는 헌신적인 무한한 사랑이고,
필레오는 친구 간에 나누는 우정의 사랑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는 이 두 단어가 서로 교차하며 사용되고 있으니,
그 낱말의 차이를 구별하지 않고
그냥 “나를 더 사랑하느냐?”하는 말씀으로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 요한의 아들 시몬아(15절) :
베드로라는 이름은 주께서 붙여주신 이름입니다.
그런데 그전에 그가 가졌던 본래 이름인 ‘시몬’으로 부르신 것은
베드로가 영을 잃어버린 자연인이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질문하여 신앙을 고백하게 하신 것입니다.
- 내 양을 먹이라, 치라(15절) :
여기에서 ‘먹이는 것’은 목자가 양을 풀어놓아 꼴을 먹이는 것을 의미하고
‘치는 것’은 목자가 양을 지키고 돌보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먹이라’와 ‘치라’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베드로에게 주님의 양을 먹이라는 사명을 내리신 것은,
그를 다시 주님의 백성으로 받아 주시겠다는 선언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 근심하여(17절) : 엘뤼페쎄
‘근심하여’로 번역된 ‘엘뤼페쎄’는 몹시 슬픔에 잠겨 있는 상태이거나,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에 비탄에 잠긴 상태를 의미합니다.
2. 나를 따르라(18~23절)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네가 원하는 옷을 입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남이 너를 결박하고)
네가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너를 끌고 갈 것이라).”
19)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여, 주를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하고 묻던 자더라.
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23)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예수님을 믿는 성도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고 말씀하신 것뿐이라.
3. 사도 요한의 증거(24~25절)
24) 이 모든 일을 증거하고 이 일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거가 참인 줄 아노라.
25)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 묵상 point
1. 용서와 회복
1) 요한의 아들 시몬아 : 시몬은 베드로가 주님을 만나기 전의 이름(15~17절)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을 때
베드로와 예수님과의 관계는 끊어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 이름인 시몬이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상태가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았을 때와 같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베드로의 영은 심히 피폐해 있었습니다.
사도들과 함께 있기는 하지만 그의 영은 여전히 좌절과 절망 속에 있었습니다.
2) 공허감과 좌절에 빠져 있었던 베드로
이런 상태였기에 예수께서 이미 부활하셨음을 확인했음에도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밤새 고기 잡는 일에만 몰두한 것입니다.
밤새껏 한 마리도 못 잡았으나 그는 그 일에 몰두했습니다.
베드로는 고기를 잡기 위해 바다에 간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공허감을 달래기 위해 의미 없는 일을 반복해서 행하고 있을 뿐입니다.
3)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세 번 반복해서 질문하신 예수님
그런 베드로를 예수께서 친히 찾아오셔서 세 번이나 반복해서 질문하신 것은
변절한 베드로를 다시 용서하시고
사도로서의 권위와 위치를 회복시키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세 번의 질문을 통해
베드로에게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진정한 고백을 하게 하셨습니다.
이 고백을 통해 베드로의 영이 회복되었고,
예수님은 그에게 다시 예수님의 양을 먹이고 치라는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
예수께서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물으시자,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베드로는
예수께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에 비탄에 잠겨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바로 이것이 회개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에 비탄에 잠긴 상태가 바로 회개입니다.
전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대제사장에게 심문을 받으실 때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한 후 닭이 울 때 통곡하여 울었지만
그때는 자기 연민에 빠져 우는 것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진정한 회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때는 비록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으나
베드로의 마음에 예수님을 향한 죄송함과 사랑과 안타까움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베드로의 세 번의 고백을 진정한 회개로 받아들이시고
하나님의 백성의 신분과 사도의 직책을 모두 회복시키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이런 애통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을 하도록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물으셨고,
예수님의 세 번의 질문에 베드로가 애절한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한다고 대답하자
주께서 “내 양을 먹이라”하며 그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단지 사명만 주신 것이 아니라
그를 다시 주님의 백성으로 받아 주신다는 선언적인 의미를 가진 것입니다.
● 묵상 :
그러므로 혹시 이때의 베드로처럼
좌절과 절망 속에서 무엇인가 의미 없는 일을 반복하기만 하고 있다면,
피폐한 영을 회복시켜 주시도록 주님께 도움을 청하십시오.
2. 네가 이 사람들보다(이것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15절)
‘이 사람보다’로 번역된 ‘투톤’은
남성복수 지시대명사, 혹은 중성복수 지시대명사가 모두 가능한 단어입니다.
남성복수 지시대명사로 번역하면 ‘이 사람보다’가 되고,
중성복수 지시대명사로 번역하면 ‘이것들보다’가 되므로
본문에서는 이 두 가지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1) 이 사람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투톤’을 남성복수 지시대명사로 번역하면
“이 사람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가 됩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전에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주를 버리지 않겠나이다”(마 26:33)
라고 고백한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가 그렇게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장담해 놓고는
바로 그날 밤에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으니,
그가 했던 고백을 다시 기억하게 하시면서
주님을 가장 사랑한다는 고백을 새롭게 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2) 이것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투톤’을 중성복수 지시대명사로 번역하면
조금 전에 잡은 153마리의 물고기나 그 배와 같은 물건과 같은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세상의 성공이나 즐거움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그가 과거에 자기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주님을 세 번 모른다고 부인했는데,
지금은 어떠냐, 앞으로도 세상을 얻기 위해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겠느냐
하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 베드로는 세 번이나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그 어떤 부귀영화나 그 어떤 것보다도
주님을 더 사랑한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 고백 그대로 베드로는 후일 순교를 당할 때까지
오직 주님만을 사랑하며 섬기는 자가 되었습니다.
● 묵상 :
이 질문은 오늘 우리에게도 던져진 질문입니다.
나는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주님을 더 사랑하는지 자신에게 질문해 보십시오.
만일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당장 주일 예배를 드리는 것부터 바로 하십시오.
초대교회 성도들은 죽이겠다는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주일예배를 드렸는데
오늘날에는 누가 협박하지도 않는데도 스스로 주일예배를 범합니다.
또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시는 분들은
주께서 주신 사명의 자리를 굳게 지키십시오.
힘들고 어렵다는 이유로 포기하거나 중단하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주께서도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매우 힘들어하셨으나
그 사명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가 영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만일 당신이 사명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당신 덕분에 누군가가 주님의 복음의 말씀을 듣는 자가 될 것입니다.
3. 사명의 회복(15~17절)
1)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이렇게 세 번이나 예수님을 향한 사랑을 확인하신 후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가톨릭에서는 이것을 가리켜
베드로에게 유일하게 강력한 교황권을 준 것이라고 말하지만,
변절한 베드로에게 잃어버렸던 사도로서의 위치를 회복시켜 준 것입니다.
2) 여기서 말하는‘내 양’은 내 양이 아니라 주님의 양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보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 그리고 예수님의 모든 사역자들이 먹이고 치는 성도들이
자신들의 양이 아니라 예수님의 양이라는 것입니다.
가애교회의 성도들도,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교회의 성도들도
다 그 교회 목회자의 양이 아니라 예수님의 양입니다.
우리는 다만 일시적으로 예수님의 양을 맡아 관리하는 책임을 맡았을 뿐입니다.
그 사명에 충성된 자를 주님은 참된 주님의 일꾼으로 여기십니다.
● 묵상 : 이미 생명을 가진 자는 사명을 감당하면서 그 영이 더욱 강력해집니다.
말씀이 영의 양식이고 기도가 영의 호흡이라면,
사명을 감당하고 주님을 위해 봉사하는 일은 육신의 운동과 같습니다.
좋은 양식과 좋은 공기와 적절한 운동이 건강의 3요소이듯,
우리의 영도 좋은 양식인 말씀과, 좋은 공기인 기도와,
적절한 운동인 사명을 감당하는 3요소가 우리의 영을 건강하게 합니다.
주께서 베드로는 다시 받아들이시는 그 자리에서
그에게 사명을 맡기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도 주께서 맡기신 사명에 충성된 자가 되십시오.
4. 너는 나를 따르라(18~22절)
예수께서 베드로가 순교하게 되리라고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요한은 어떻게 될지를 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요한의 삶이 어떠하든 상관하지 말고
“너는 나를 따르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남과 나를 비교하지 말고
오직 나에게 주신 사명에만 충실히 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 묵상 :
많은 경우에 남과 비교하느라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사명을 다하지 못합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남과 비교하여 행복하십니까? 혹은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당신이 그런 일에 영향받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당신은 오직 당신의 삶을 살아갈 뿐입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사명을 감당할 뿐입니다.
* 기도제목
1. 베드로처럼 우리도
주님과 친밀한 관계를 회복하게 하옵소서.
2. 예수님을 향한 적당한 호감 정도에 머무르지 말고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을 사랑하는 것보다
주님을 더욱 사랑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3. 남과 나를 비교하지 말고
오직 나에게 주어진 사명에 충성하게 하옵소서.
4. 중보기도 : 영이 피패하여 좌절과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 자들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