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에 등장했던 아나뱁티스트들의 칭의 개념은 주목할 만하다. 그들은 루터의 칭의 개념을 수용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순종과 규율을 중시”했고, 은혜 교리를 이해할 때도 “개인을 변화시키는 하나님보다는 인간의 책임과 하나님에 대한 의무를 강조”했다. 따라서 그들은 칭의를 단순히 믿는 자를 의롭게 간주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이 세상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들이 칭의를 그렇게 해석하는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제자들이 세상의 권세를 따르지 않고 예수를 따르기 위해 세상과 단절하는 것이 신앙의 본질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아나뱁티스트들의 이와 같은 근원적 신앙양태는 초대교회의 신앙이 세상과 타협하여 왜곡된 것을 개혁하고자 하는 의지로 이어졌다. 그들에게 신앙이란 외부의 압력이나 강요에 의하지 않고 전적으로 자발적인 결단에 의한 것이어야 하고, 자발적 신앙을 훼손하는 어떤 세력도 용납하지 않는 행동으로 나타났다. 그들이 유아세례를 거부하고 신자들의 침례를 실천한 것은 그것이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나뱁티스트들의 이런 신앙은 당시 사회로부터 외면되었고, 심지어 국가의 법을 어긴 범법자로 취급되었다. 아나뱁티스트들은 어떠한 사회적 보장이나 국가의 보호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오직 신앙’만을 외치며 모진 박해를 감내해야 했다. 그들에게 신앙은 불의한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길을 가는 것, 세상과 분리하는 것이었다.
[회중주체적 조직신학], 4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