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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스크랩 [군산]근대문화유산 탐방
풀꽃(주경숙) 추천 0 조회 168 11.03.28 00:38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1.발산초등학교(시마타니금고,발산리 석등외)

[발산리 석등]

이 석등은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높이는 2.5m이다. 원래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 봉림사터에 있던 것을

일제시대에 일본인 농장이었던 이곳 발산초등학교 뒷뜰로 옮겨왔다.

석등밑 받침돌에는 여덟 개의 연꽃잎을 엎어 새겼고 원통형 기둥 돌에는 구름 속에 요동치는 힘찬용의 모습을 조각했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예이다. 불을 켜는 부분은 팔각형 평면으로, 폭이 넓은 면에는 타원형 창을 뚫고, 폭이 좁은 면에는 사천왕상을 새겼다.

 

연꽃을 새긴 지붕 돌은 경쾌한 느낌을 주는데, 꼭대기의 둥근 공모양 장식은 없어졌다. 이 석등은 조각기법이 아주 돋보이는 아름다운 석등이다.

 

 

 

[구. 시마타니 금고]

일본인 시마타니가 우리 고미술품 등을 수집/반출하기 위해 보관하던 금고

발산초등학교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발산리석등, 5층석탑 등과 함께 위치

 

일제강점기 군산시 발산면 지역에서 농장을 운영하였던 일본인 지주 시마타니 야소야에 의해 지어진 창고 건축물로 농장의 각종 서류 및 현금,

한국에서 수집한 고미술품 등을 보관한 것으로 전해지며 다큐멘터리 등에서도 다루어진 문화재이다.

 

해방이후 이곳에 보관되었던 수많은 보물급 예술품들이 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다.

 

 

 

2.이영춘가옥

[구마모토농장=이영춘가옥]

-전북 군산시 개정동 413-1

-일본인 대지주가 지은 별장주택, 서구식 한식 일식 건축양식의 절충

-해방 후 우리나라 농촌보건위생의 선구자 쌍천 이영춘 박사가 거주하여 이영춘 가옥이라 불리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군산에서 대규모 농장을 경영하던 일본인 대지주 구마모토 리헤이가 지은 별장주택으로

일년에 봄철과 추수철에 농장을 방문할 때 임시거처로 사용되던 별장과 같은 건물로 서구식과 한식, 일식의 여러 건축양식이 절충된

다양한 양식적 특성을 띄며, 해방 후 우리나라 농촌보건위생의 선구자 쌍천 이영춘 박사가 거주하며 이영춘 가옥이라 불리게 되었다.

 

아름다운 건물 외관으로 인해 빙점, 모래시계, 야인시대 등 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장소가 되고 있다.

 

 

이 집은 구 개정병원 본관 동쪽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는데 1920년경 일본인 대지주 구마모토가 지은 개인별장으로

외부형태에 있어서는 유럽의 주거형식을 따르며 평면의 구조는 일식의 중복도형 평면을 바탕으로 양식의 응접실과 한식 온돌방이 결합된 절충적 구조를 보여준다.

 

이영춘 박사가 사용하면서 일식의 다다미방을 온돌방으로 개조하였으며, 외관의 구조를 포함한 전체적인 주거의 틀은 그대로 유지되어 있다.

 

 

가옥내의 기초와 벽난로는 호박돌을 허튼층쌓기 하였고 외벽의 하부는 통나무를 절반으로 켜서 걸침턱맞춤으로 짠 귀틀집의 구조이며

외벽의 상부는 회반죽 뿜칠로 마감하여 색채와 질감이 목재와 좋은 조화를 이룬다.

지붕은 요철이 있는 평면구조에 맞추어 박공과 모임지붕이 결합된 형태 위에 판석으로 마감하였다.

 

이 집의 바닥은 티그목 쪽매널이 정교하게 짜여져 있으며 샹들리에 및 가구들은 외국에서 수입한 것들로 당시

건축비가 조선총독부의 관저와 비슷하게 소요되었다고 할 만큼 고급 자재를 사용하였다.

 

 

중복도를 중심으로 남쪽에 커다란 다다미방이 있고 북쪽에는 현재 식당으로 사용하는 온돌방이 있으며

복도 끝에 작은 홀이 있어 부엌과 다용도실, 화장실이 연결된다.

 

외부와 연결되는 북쪽 창은 유리를 낀 세살창과 미닫이 방충망, 완자창 등 3중의 창을 만들었으며 부엌은 현재 북쪽에 개수대를 설치하여

서서 행동하도록 된 부엌으로 개조하였다.

 

 

이 건물은 근대의 새로운 주거문화의 이입과 양상을 보여주는 건축물로서 평면과 외관의 구성을 볼 때 뛰어난 건축적 구성을 하고 있다.

서구식·일식·한옥의 양식이 결합된 이와 같은 사례는 도내의 주거 건축에서 그 사례를 볼 수 없으며 다른 도에서도 흔치않은 사례로 파악된다.

 

또한 이 건물은 일제의 토지수탈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료적 가치가 있으며 해방 후 주인이었던 이영춘 박사의

지역 의료 활동에 끼친 역사적 비중을 볼 때 가치가 있다.

 

 

 

 

[이영춘]

1903년∼1980년. 의사·사회사업가. 본관은 평창(平昌). 호는 쌍천(雙泉). 평안남도 용강군 지성면에서 종현(宗鉉)의 다섯째아들로 태어났다.

 

평양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29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다음, 모교에서 병리학을 연구,

1935년 일본 교토제국대학(京都帝國大學)에서 의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뒤 바로 전라북도 군산의 일본인이 경영하는 구마모토농장(熊本農場)의 무실의 진료소장으로 부임하였다.

 

그의 평생사업은 의사로서의 진료사업과 사회사업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1948년 농촌위생연구소를 처음 설립하고,

후에 다른 부설 진료기관과 합병하여 한국농촌위생원을 다시 설립하여 농촌사회 및 농민생활 전반에 대한 조사연구를 하여

그동안 47편의 연구논문을 발표하였고, 기관학술잡지로서 《농촌위생 農村衛生》을 발행하였다.

 

진료사업으로서는 1945년 개정중앙병원을 개설하여 여러 곳에 산하 진료소 및 치과진료소를 두었다.

 

 

1948년 정읍군에 화호중앙병원을 설치하였고, 1961년 개정뇌병원을 개설하여 지역농민들에게 많은 의료혜택을 주었다.

 

또, 농어촌지역 주민들의 교육과 보건요원확보의 필요성에 따라 1951년 개정간호학교,

1952년 화호여자중학교, 1961년 화호여자고등학교를 설립하였고, 농촌보건요원의 질적 향상을 위하여

보건사회부의 위촉을 받아 보건간호원·양호교사·결핵관리요원·가족계획사업요원의 단기수련사업도 실시하였다.

 

 

1957년 농촌위생원 구내에 일심영아원(一心?兒院)을, 1965년 군산에 일맥영아원(一麥?兒院)을 설립하여

농어촌에서 버림받고 의지할 곳이 없는 영아들을 양육하였다.

 

공직으로서 대한적십자사 조직위원·대한의학협회 대의원·세브란스의과대학 재단이사·전북대학교 평의원·

대한공중보건협회장·대한기생충학회장·대한기생충박멸협회장·대한가족계획협회 이사·보건사회부기생충대책전문위원·

국제로터리클럽 377지구 총재 등을 역임하였고, 제6회국제열대의학회에 참석하여 분과의장직을 맡기도 하였다.

 

그동안의 공적으로 대한민국 문화훈장·대한적십자사 봉사장, 1975년 연세대학교로부터 명예법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죽은 다음 정부에서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故李永春先生(蘇鎭琸, 日刊세브란스 187호, 延世大學校醫科大學, 1981)

 

 

3.철길마을

 

2008년 기차운행이 중단된 이곳 '철길마을'은 시간이 멈춰있는 듯한 곳이다.
집과 집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기차가 지나다녔을 풍경을 떠올려 본다.

신문용지 재료를 실어 나르던 2.5km의 짧은 철길은 운행이 끊긴후 철길만 남아있다.

 

옛 군산역에서 신문용지 제조회사 '페이퍼 코리아'까지의 이 선로는 1944년에 신문용지 재료를 실어 나르기 위해 준공돼

'북선제지 철도', '고려제지 철도', '세대제지', '세풍철도'라고 불리다가 최근 들어서는 '페이퍼 코피아선'으로 불리고 있다한다.

 

 

 

4.진포해양공원(부잔교외)

 

[부잔교]

군산내항은 금강하구와 중부 서해안에 자리한 지리적 특징으로 고려 대는 진성창이 자리하였고 조선시대에는 칠읍해창이 운영되던 물류유통의 중심지였다.

 

이러한 해상 교통로의 역할을 염두한 일본은 1899년 군산이 각국 조계지역으로 개항된 후 군산항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1905년 제1차 축항공사를 시작으로 1921년까지 많은 공사를 통해 연 80만톤에 달하는 수출입화물 하역이 이루어졌다고 하며

부잔교를 물 수위에 따라 다리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여 뜬다리부두라고도 하며 1918년-1921년, 1933년 준공되었다고 한다.

 

 

↓진포해양테마공원 풍경

진포해양공원은 고려 우왕 6년인 1380년 8월에  고려군과 왜군의 해상전투가 있었던 곳이다.

 

고려 우왕 6년인 1380년 8월에 일어난 해상전투로 왜구는 500여 척의 군선(軍船)을 이끌고  쌀을 약탈하기 위해

전라북도 금강 하류인 진포(鎭浦-현재 군산)를 거점으로 내륙으로 침입하였다.
해도원수(海道元帥) 나세(羅世), 심덕부(沈德符), 최무선(崔茂宣)이 지휘하는 고려군은 군선이 100여 척에 불과했지만

최무선이 발명한 화포(火砲)를 주무기로 효과적으로 대응하였다.

왜군은 군선과 군선을 연결하여 거대한 해상기지를 형성하여 위협전인 전세를 펼쳤지만 고려군은 화포로 집중 공격하여

적선 500척을 모두 불살랐다. 왜군은 내륙으로 퇴각하였지만 운봉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성계(李成桂) 군(軍)에게 섬멸되었다.


진포해전의 의미는 고려군이 자체 제작한 화기로 거둔 승리였고 군선에 화포를 장착하여 최초로 함포공격이 감행된

해상전투였기에 해상전투에 새로운 전기가 되었다.
3년 뒤 왜군은 다시 120여 척의 군선을 이끌고 남해 관음포로 쳐들어 오지만 고려수군의 화포위력에
또다시 괴멸되고 만다.


[출처] 진포해전 [鎭浦海戰 ] | 네이버 백과사전

↓상륙함인 4,080톤의 위봉함 갑판위 모습

 

5.빈해원

빈해원(賓海園)은 중국 산둥성 영성시에서 태어난 왕조석이 해방 전 20대의 꿈을 가지고 서해를 건너와 인천에 차린 음식점이다.
해방이 되고 6.25가 터진 후 연합군의 인천상륙을 얼마 앞두고 인천의 화교들이 집단으로 피난배를 타고 남하하여 닿은 곳이 군산.

 이곳에 터를 잡고 여러번의 확장끝에 지금의 2층짜리 건물인 빈해원이 군산시 장미동에 지어졌고,,

그후로 군산의 명소로써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6.미두장

 

 

7.조선은행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한국 및 대륙 경제 수탈을 위하여 세운 중앙은행이다.

 

1909년 10월 통감부에 의하여 한국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설립되었다. 이후 1910년 한국이 일제의 식민지가 되자

1911년 8월 '조선은행법'이 공포되었고, 한국은행은 조선은행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처음 자본금은 1,000만 원이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의 경기를 타고 급격히 규모가 팽창하여 1918년에는 자본금이 4,000만 원,

1920년에는 8,000만 원이 되었으며, 만주와 중국 요지에 지점을 설치하였다.

1917년 11월 조선은행권은 만주의 일본지배지역에서도 통용되기 시작하였고, 조선은행은 만주에서도 중앙은행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후 일제의 대륙침략이 본격화되고 그 세력범위가 확대되자 이 은행도 더 넓은 지역으로 진출하여 일제의 침략을 뒷받침하여 주었다.

1929년에는 해외지점이 일본 내에 4개소, 만주에 16개소, 중국에 4개소, 노령에 2개소, 미국에 1개소에 이르렀다.

1936년 만주흥업은행이 창립되자 조선은행은 만주의 각 지점을 만주흥업은행에 인계하고, 만주에서의 조선은행권 발행을 중단하였다.

그러나 1937년 중·일 전쟁이 일어나고 일본이 북중국을 침략하자 조선은행은 이를 적극 지원하는 한편

몽고와 북중국 일대에 다시 지점망을 확충하였다.

 

 

8.나가사키18은행

[구. 장기 18은행]

일본 나가사키에 본사를 둔 은행으로 조선에서 7번째 지점 미곡을 반출하고 토지를 강매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금융기관

 

일본 나가사키에 본사를 두고 있던 은행으로 군산에는 1907년에 설립되어 조선에서 일곱번째 지점이 되었으며,

일본으로 미곡을 반출하고 토지를 강매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금융기관이었다.

 

초기에는 대부업을 통해 일본인들에게 싼이자로 대출을 주고 이 돈으로 일본인들은 조선인에게 토지를 담보로한

고리대금업으로 우리 농민들의 농토갈취가 많았다고 한다.

 

본관 뒤쪽으로 우측에는 2층 조적조의 금고 및 창고로 사용되는 건물이 있고 좌측으로는 2층의 일식 목조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9.옛군산세관

대한제국(1908년) 때 지어진 국내유일의 세관건물

국내 현존하는 서양고전주의 3대 건축물 중의 하나

 

대한제국(1908년/순종 2년 6월)에 만들어졌으며 당시 전하는 말에 따르면 불란서 사람 혹은 독일 사람이 설계하고

벨기에에서 붉은 벽돌과 건축자재를 수입하여 건축했다는 설이 있다.

 

군산세관은 많은 부속건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모두 헐리고 본관건물만이 남아 있으며, 국내에 현존하는 서양고전주의 3대 건축물 중의 하나로

현재는 호남관세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1905년 기울어가던 대한제국의 자금으로 시작된 제1차 군산항 축항공사기간 (1905~1910) 중인 1908년(순종2년) 6월에 만들어졌다.

서양식 단층 건물로 건평은 약 69평 이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불란서 또는 독일 사람이 설계하고 벨기에에서 붉은 벽돌과 건축자재를 수입하여 건축했다고 한다.

건물의 지붕은 고딕양식이고 창문은 로마네스크 양식이며 현관의 처마를 끄집어 낸 것은 영국의 건축양식으로

전체적으로 유럽의 건축양식을 융합한 근세 일본 건축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국내 현존하는 서양고전주의 3대 건축물

1) 구)군산세관 본관 2) 한국은행 본점 3) 서울역사

 

 

10.해망굴

해망굴은 일제강점기 군산항의 제3차 축항공사 기간이었던 1926년 10월 16일 구 군산시청 앞 도로인 중앙로와

수산업의 중심지인 해망동을 연결하고자 반원형 터널(높이 4.5m길이 131m)로 개통되었다.

 

당시 해망굴 인근에는 군산신사와 신사광장(현 해양경찰서), 공회당, 도립군산의료원, 은행사택, 안국사(현 흥천사)등이 자리하고 있어

사람의 통행이 빈번한 교통의 요충지였다.

 

이후 한국전쟁 중에는 군산주둔 북한국 지휘본부가 터널 안에 자리하여 연합군 공군기의 공격을 받았던 역사의 현장이다.

 

 

 

11.월명공원(수시탑)

일제시대 각국 거류지역의 명승지인 해망정 인근 만여평에 각국공원이란 이름으로 공원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한일합방으로 주권을 잃게 된후 각국 조계지역이 없어져 각국을 뺀 군산공원으로..

광복 후에야 월명공원이란 이름을 얻은..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아픈 공원이다.

편서풍이 불어오는 군산과 군산 들녁에 불어오는 강한 해풍을 월명공원이 막아주는 역활을 한다고..

 

12.이성당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제과점으로 1920년대 후반 일본인이 운영하던 것을 해방 직후 한국인이 인수했다.

분점도 내지 않고 한곳에서만 60년 넘게 이어온 이성당은 군산 시민들의 만남의 장소이기도 하다.

대표 메뉴는 하루 1천 개가량이 판매된다는 쌀앙금빵으로 일반 빵에 비해 쫄깃하고, 팥소가 많다.

야채로만 속을 채운 야채빵, 카레와 당면을 넣은 크로켓도 맛이 좋다.

 

 

13.동국사

1913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승려 우치다(內田)에 의해 ‘금강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된 동국사는 한국의 전통사찰과는 다른 양식을 띠고 있다.

주요 건물은 대웅전, 요사채, 종각 등이 자리하고 있는데, 8·15광복 뒤 김남곡 스님이 동국사로 사찰 이름을 바꿔 오늘에 이르렀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인 선운사의 말사이다.

대웅전은 요사채와 복도로 연결되어 있고, 팔작지붕 홑처마 형식의 일본 에도(江戶) 시대의 건축양식을 띠고 있다.

건물 외벽에는 창문을 많이 달았고, 우리나라의 처마와 달리 처마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는 특징을 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져 현재까지 남아 있는 일본식 사찰은 모두 없어지고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

특히 동국사 대웅전은 2003년에 등록문화재 제64호로 지정되었다.
[출처] 동국사 [東國寺 ] | 네이버 백과사전

 

14.히로쓰가옥

실내 공간 모두가 하나로 이어지는 일본 건축적 특성을 잘 보여줌

근세 일본 무가의 고급주택인 야키형식의 대규모 목조주택으로 건물 사이에는 일본식 정원이 꾸며져 있다.

(구) 히로쓰가옥이 위치한 신흥동 일대는 일제강점기 군산시내 유지들이 거주하던 부유층 거주지역으로 포목점을

운영하던 히로쓰 게이샤브로가 지은 주택으로 (구)호남제분의 이용구 사장명의로 넘어가

오늘날까지 한국제분의 소유로 되어 이으며 영화 '장군의 아들', '바람의 파이터', '타짜' 등 많은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이 주택에서 촬영되었다.

 

이 건물은 근세 일본 무가의 고급주택인 야키형식의 대규모 목조주택으로 건물 사이에는 일본식 정원이 꾸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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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3.28 23:47

    첫댓글 탱큐 샘 ~~역시부지런해요

  • 11.03.29 00:26

    와~!
    내가 눈으로 본거보다 더 정리가 훌륭하다. 역시'장'자 단 사람은 다르구나.
    초딩 때 분단장도 못해본 나랑은 차원이 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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