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박타박] ⑫ '남천동길' 거닐기 | |||||||||
이종민 건축사(j7139@hanmail.net) | |||||||||
‘타박타박’이란 말이 좋았다. ‘저벅저벅’, ‘또박또박’과 달리 그저 홀로 거리의 바닥을 보고 거닐다 가끔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가 그 말에 배어 있어서다. 속도를 내던 이동에 대한 환멸이라 할까? 그건 마치 ‘안소니 퀸’이 영화 <길>(La Strada)에서 걸었던 인생행로라든지, ‘황석영’의 소설 <삼포 가는 길>에서 걷는 ‘백화’와 ‘영달’의 잔망스런 동행에서와 같이, 그럼으로써 애초부터 있었던 내면에 대한 향수였던 것이다. 말하자면 기꺼이 걸어보는 길이 내게도 있었던 것이다. 부산의 몇몇 길이 어느 지역에서도 흉내 낼 수 없이 매력적인 것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넓은 바다가 화악 트이는 극적 반전에 있다. 해운대 미포 사거리에서 철길을 건너 만나게 되는 바다라든지, 영도의 어느 골목길을 벗어날 때의 감흥과 같은 것이다. 지하철 2호선 5번 출구에서 좌로 돌아 바다로 접근하는 이 길 또한 그런 길이다. 내가 이 길을 사랑하는 이유는 전국에서 제일 맛있는 떡볶이집 ‘다리집’이 있다든지, 혹은 여전히 동네 서점으로 선전하고 있는 ‘남천서점’이 있다는 점과, 아내와 가끔 맥주잔을 기울이던 ‘림스치킨’이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있다는 데에도 있지만, 기실은 건축을 시작하던 무렵의 앳된 흥분을 쉬이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나는 매일 이 길을 걸어서 퇴근한다. 비록 거리의 면모가 바뀌었더라도….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이른바 돈이 되는 건물들이 대중을 이루는 이 거리에 독불장군처럼 세월을 버티고 있는 건물이 하나 있다. 근대풍의 집은 얼른 보기에도 견고하여, 지을 당시 야심만만했을 주인의 의지가 바로 읽힌다. 뼈대를 콘크리트로 하여 노출시키고 붉은 벽돌로 벽을 둘러친 전형적인 합리주의 양식의 건물로, 모르긴 하여도 내부도 한 치의 빈틈이 없을 것이다. 벽을 점령한 넝쿨이라든지, 정원의 노거수(老巨樹), 철제의 견고함으로 무장한 대문, 현실로부터 기꺼이 폐쇄된 집은 거리의 번잡함에 마치 항거라도 하듯이 서있다. 처음부터 건축사의 사옥 겸 주택이었으며, 지금도 기거하며 활동을 하고 계시는 분이 부산 건축계의 원로 ‘장기수’ 어른이었음을 이즈음에 알았고, 공적인 건물로 오해한 내가 무릎을 쳤음은 물론이다. 건축사가 왕성하게 활동하며 집을 지을 당시의 양식과 지금의 건축양식이나 유행은 얼마나 많이 변모하였을까? 그리고, 거리의 풍모 또한 얼마나 많이 변했을까? 그리하여 이 분주한 거리에서 노쇠한 집의 모습은 섬처럼 외롭다.
점심 무렵 한때 이 거리는 건축적으로 매우 핫(hot)한 지역이었다. 부산의 건축사 '이인수'(목전건축)가 부산은행(현) 건물을 남겼으며, '유우식'(중원건축)이 타일로 치장한 패스트푸드점을 설계하였다. 타지에서 활동한 '김인철' 교수와 '김개천' 교수가 예사롭지 않은 디자인의 패션몰을 남겨 놓은 곳이기도 하다. 나는 그런 추억을 떠올리며 점심을 먹기 위해 길을 나선다. '김개천' 교수가 1994년 무렵 설계한 ‘지암비코’ 건물은 몰탈 뿜칠의 벽과 대형 유리로 구성된 생경스럽고 놀라운 건축이었다. 후퇴 된 쇼윈도, 경사벽과 규칙적이지 않은 대형 유리는 우리의 일상적인 건축 태도를 다시금 돌아보게 하였다. 한 때, 나는 이 집 앞에서 자주 서성이곤 하였다. 그러나 20년이 흐른 지금, 건물의 모습은 많이 변모되었다. 입주자는 물론 건물주까지 바뀌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외벽은 금속패널로 리노베이션 되었고, 생각 없는 증축은 당시의 감동을 잃게 한다.
부산의 건축사 ‘박건’이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의욕적으로 작업을 하던 무렵, 전면에 창이 뚫리지 않은 작은 집이 이 거리에 지어졌다. 협소한 대지에 작은 진입 광장을 설치하고, 정교한 돌의 디테일과 금속의 악센트를 섞어서 작은 공간 하나를 만들어 놓았다. 건물은 그가 학습한 대로 일본풍의 세밀함이 돋보였다. 나는 그의 세밀함을 존경하였다.
‘김인철’ 교수가 설계한 건물에서의 경험은 매번 좁고 답답한 건물을 설계해야 했던 내게 매우 교육적이었다. 공간이 작다고 하여 공간감 또한 초라하지는 말아야 된다는 선언과도 같이 작은 공간은 매력적으로 구사되고 있었다. 2014년 봄 어느 날, 나는 그 건물이 철거되는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았다. 실로 우연이었지만, 벽이 철거된 그 건물의 속살을 지켜보았던 것은 또 하나의 놀라움이었다. 순수 철골조의 골조, 가운데에 구멍이 숭숭 뚫린 플랫 슬래브의 모습과 노출콘크리트로 된 내벽을 보면서, 건축의 단면만을 보아온 나의 관찰을 부끄러워해야 했다. 건축은 건축사가 열정적으로 임하는 창작 작업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작품이라 부른다. 허무는 일에 앞서 생각할 도의적 부담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가? 나는 그 먼지 나는 현장 앞에서 한참 슬퍼하였다. ‘남천동길’은 많이 변모하였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시절을 추억하며, 점심을 먹고 거리를 걷는다. 그러므로 이 거리는 내게 여전히 살아있는 길이다. 예의 건물들을 거쳐 길의 끝에 서면, 시야가 트이고 새로운 풍경이 나타난다. 풍경의 끝에는 세계적인 건축사가 설계한 80층의 주상복합 건물이 우뚝 서 있다. 격세지감을 느껴야 한다. 타박타박 걸으며 중얼거린다. “풍경은 늘 끝이 없으나, 건축은 유한한 것인가?” 이종민 건축사는 본지 제3대 편집주간이자, 논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부산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학창시절 부산시가 주최한 부산미술대전에서 금상을 수상해 건축계의 주목을 받았다. 87년 건축사사무소를 개설한 이후에도 설계경기에 꾸준히 참여해 다세대주택 및 부산세관별관 설계경기에 당선되었으며, 부산시 종합연수원 및 철도시설공단 설계경기에서는 우수작으로 선정됐다. 이외에도 창원건축대상제에서 우수상과 장려상을, 동래건축문화상 우수상(2013)을 수상한 바 있다. 이 건축사는 다음 블로그 ‘심계의 공작소 http://blog.daum.net/j7139’를 운영하고 있다. 심계(深溪)는 부친이 정해준 호(號)로 그의 필명으로 사용되고 있다.
| |||||||||
| |||||||||
<저작권자(c)건축사신문.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