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포의 새벽 편지-435
천자문053
동봉
0197글 시詩쓰shi
0198기릴 찬讚짠zan
0199새끼양 고羔까오gao
0200양 양羊양yang
본디《쓰징詩經Shijing》에 들어 있는
<까오양羔羊Gaoyang편>이
아름다운 것은 사실일지 모르나
봉건시대라 왕조의 찬양이 주를 이룹니다
305수의 시가 실려있는《쓰징》
이 가운데서 <까오양편>은
모두 3장으로 엮여 있지요
요즘은 이준익 감독 작품으로
강하늘 박정민이 주연을 맡은《동주》가
조정래 감독의《귀향》과 더불어
극장가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나는 우리의 시인 윤동주를 떠올리며
<까오양편> 대신 기리고 싶습니다
영화《동주》의 줄거리입니다
공식 시놉시스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지면이 너무 길어질까를 염려하여
시어詩語는 그대로 둔 채
연聯Stanza을 모으기는 했습니다
-----♡-----
이름도, 언어도, 꿈도
모든 것이 허락되지 않던 일제 시대
한 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동갑내기 사촌지간 동주와 몽규
시인을 꿈꾸는 청년 동주에게
신념을 위해
거침없이 행동하는 청년 몽규는
가장 가까운 벗이면서도
넘기 힘든 산처럼 느껴진다
창씨개명을 강요하는
혼란스러운 나라를 떠나
일본 유학 길에 오른 두 사람
일본으로 건너간 뒤 몽규는
더욱 독립 운동에 매진하게 되고
절망적인 순간에도 시를 쓰며
시대의 비극을 아파하던
동주와의 갈등은 점점 깊어진다
암흑의 시대
평생을 함께 한 친구이자
영원한 라이벌이었던
윤동주와 송몽규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지금 시작된다
-----♡-----
영화에 나오는 11편의 시를 다 싣습니다
어쩌면《쓰징》<까오양편>과는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
(01)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02) 참회록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 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03) 눈 감고 간다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밤이 어두웠는데
눈 감고 가거라
가진 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
발뿌리에
돌이 채이거든
감았던 눈을 와짝 떠라
(04) 병원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 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 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 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金盞花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05)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의 추억과
별 하나의 사랑과
별 하나의 쓸쓸함과
별 하나의 동경과
별 하나의 시와
별 하나의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06) 아우의 인상화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발걸음을 멈추어
살그머니 앳된 손을 잡으며
'너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은 진정코 설은 대답이다
슬며시 잡았던 손을 놓고
아우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본다.
싸늘한 달이 붉은 이마에 젖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07) 쉽게 씌어진 시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진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08) 사랑스런 추억
봄이 오든 아침
서울 어느 쪼그만 정차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에
간신한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 주어
봄은 다 가고
동경교외 어는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차장 가차운 언덕에서
서성거릴게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09) 바람이 불어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 와
어디로 불려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위에 섰다.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
(10) 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길
오늘도…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11) 자화상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
천자문 공부도 좀 해야겠지요
0197글 시詩/诗
말씀 언변言에 절 사寺자를 썼습니다
언言이 의미고 사寺가 소릿값이지요
나는 '언어의 숲'이라 풀이합니다
영어로는 포에트리Poetry
운문에 해당하는 버스Verse
또는 포엠Poem이라 하는데
여기서는 한 수 한 수의 시가 아닙니다
중국의 사서삼경 중의 하나인
유명한《쓰징詩經》을 가리킵니다
0198기릴 찬讚/赞
말씀 언변言에 찬미할 찬贊을 붙였지요
역시 언言이 의미값이고
찬贊이 소리값에 해당합니다
영어로는 프레이스Praise입니다
일루자이즈Eulogize라고도 하지요
찬미할 때 어디 맨입으로 합니까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공물貢物Tribute입니다
무엇보다 물질貝이 우선先합니다
그도 우선先에 우선先하지요
예로부터 선물없는 찬미는
그다지 높은 가치를 두지 않습니다
슬픈 일이지만 그게 현실입니다
언 오브젝트 오브 새크리파이스
an object of sacrifice
희생물犧牲物이 필요합니다
찬미의 찬贊/赞자에 뜻이 들어있지요
0199새끼양 고羔
희생물의 희생犧牲이
모두 소 우변牜이 들어가듯이
서양에서의 양과 달리
동양에서는 소를 희생물로 썼습니다
아무튼 염소나 새끼 양은
고기가 부드럽고 연하기 때문에
고기로도 그만이지만
새끼양의 가죽 램스킨Lambskin은
파츠멘트Parchment라 하여
공물로는 최고급에 해당합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나
전에 내가 탄자니아에 머물 때는
케냐Kenya 탄자니아 등에서
얼룩말 가죽 곧 지브라 스킨Zebraskin이
고가로 해외에 반출되곤 했습니다
어쩌면 <까오양편>의 새끼양과
양羊Sheep이《쓰징》의 편명이면서
동시에 희생양을 뜻할 수도 있습니다
새끼양 고羔자를 보면
양 양羊에 불 화灬를 밑에 달고 있는데
무두질灬한 양가죽이라 보이며
어린 양고기 바베큐일 수도 있습니다
0200양 양羊
양은 소처럼 반추동물입니다
반추란 되새김질Rumination이지요
위가 자그마치 4개나 되는데
천적인 육식동물 때문에
재빨리 풀을 뜯어 위에 저장했다가
시간이 여유로울 때
이를 게워내어 되새김질합니다
반추동물의 또 다른 특징은
크고 날카로운 뿔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천적인 육식동물이 다가왔을 때
몸을 보호하는 호신용으로
반드시 뿔이 필요했을 테니까요
시인 윤동주 선생님
존경합니다
또 존경합니다
진정으로 사랑합니다
03/10/2016
곤지암 우리절 선창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