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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응답하라 1988에서 보면 그런 장면이 나옵니다.
아들도 아니고 첫째도 아닌 둘째 덕선이가
늘 당연시되던 차별에 성을 내자
집 앞 구멍 가게에서
아빠의 역할을 하던 성동일이 딸 덕선이에게 얘기합니다.
"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 . ."
순간 딱 왔습니다. 아 저거 사람들에게 많이 쓰이겠다...
저 이야기가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처음 나온 건지 아니면 이미 이전에 세상에 회자되던 이야기인지는 정확하게 잘 알 수 없지만,
또 드라마에서 쓸데없이 감명받은 어른들이
"처음" 대사 정말 많이 따라하겠구나..
아니나 다를까,
나도 부모가 처음이라...
나도 학생이 처음이라...
나도 군대가 처음이라...
나도 직장이 처음이라...
심지어는 이번 생이 처음이라...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저 처음이라 시리즈가 엄청나게 유행했죠. 유행해서 사람들의 입을 타다 보면 원래 처음 쓰였던 말의 의미와는 다르게 그 의미가 변질 되는 경향을 자주 보게 됩니다.
"저렇게 안 되어야지"란 생각을 하기보단
"그래! 나도 처음이라 그런거야 난 잘못 없어! 넌 이해해줘야 돼!" 뭐 이런 느낌이랄까..?
애초에 잘 키우는 엄마, 아빠, 교사들은 저런 말하는 거 본 적이 없네요. 현실은 저 얘기를 수십 번 반복 후 자식이 순응하고 커서는 벽치는 게 십중팔구...
아님 반대로 부모에게 묶여 줄을 풀어도 떠나지 못하는
바둑이가 되거나...
🦶🪨 교사 교육을 받으면서 그나마 굉장히 마음에 들었던 것이 꼬맹이들에게 무엇을 할지 묻지 않는다였어요.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표정을 보고 상태를 본다면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그 필요에 따라 원하는 것을 미리 챙겨주는 것이 어른이지
너댓살 먹은 아이에게
뭘 먹고 싶은지 뭘 입고 싶은지를 물어보고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는 민주적 부모라고 생각하는 게
어른으로서 부모 역할은 아니라는 거였지요.
근데 저 유행 같은 이야기가
심지어 학교 교사가 되어서도 저 이야기를 달고 살더라고요.
"제가 이번 생에 교사는 처음이라..."
그래요, 3년짜리 🦶🪨 교사 교육을 받지 않아도
4년짜리 교대,사대 교육을 받지 않아도
우후 죽순처럼 생겨나는 🦶🪨학교의 교사 부족으로 인해
누구나 쉽게 교사가 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지요.
물론 그런 교육이 필요 조건일 수는 있어도 충분 조건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또 교사라는 일이 인간의 건전한 이성으로도 충분히 생각하고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그래요. 해 나가면서 배우고 그러니 그럴 수 있지요.
근데 그거는 몇 년짜리 교육을 어디서 받던 사실 그 사람들도 다 똑같아요.
근데 몇몇의 🦶🪨 학교는 심지어 8년을 하는게 학교의 몇 안 되는 자랑이고, 그러니 사실 부모님들도 8년을 하느냐 안 하느냐가 중요하지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지는 그닥 관심이 없었던 듯..^^;;
그래서 그 안에서는 저 말을 8년 내내 입을 입에 달고 다니는 교사를 심심치 않게 봐 왔지요.
흐미. . .
교사라는 일이
단순히 교과를 가르치는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8년 내내 똑같은...
그리고 그 8년을 몇 번 돌았는가가 마치 교사로서 훌륭한 교사인 양 얘기되는 그 풍토.
오메...
8년을 세 번 돌아 24년을 교사해도
정신 똑바로 차린 1,2년째 교사보다 못 할 수 있다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그러니 그 🦶🪨판에 지금 이슈라는
교사외 학교 인증이라는 과정이
어디서 얼만큼 수업을 받았고, 어디서 더 보충하러 가야 하는가가 아니라
지금 어떻게 수업을 하고 있고 무엇이 부족하다 느끼고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가가 진정한 🪨🪨교육의 질관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미 🪨처럼 굳은지라 도길사람이 시키는대로...
슈타이너의 어떤 책에선가 그런 얘기가 나왔던 듯 한데
정신 안 차리고 길을 걷다가 벽에 부딪혔으면 깨어나서 벽인지 알고 다른 길로 돌아갈 줄 알아야 한다고..
그런데 어떤 이들은 계속 한번 두 번 1년에 12번씩
벽에 부딪히고만 있는 경우를 많이 보았어요.
그리고는 우리 반은 왜 이럴까? 내 인생은 왜 이럴까? 고민만 하죠. 그러니 다른 잘 되는 학년과 반, 혹은 다른 집 아이는 어떤가? 눈을 돌려 쳐다보기는 하는데 심사가 뒤틀려 있죠.
저는 근본적으로
교사나 부모는 (어느 시기까지는) 아이가 지지하고 자랄 수 있는 기둥이 되어야지, 같이 자라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충분히 잘 기대야 또 시기가 되면 잘 떠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어떤 시인의 말처럼 '미련이 많은 사람이 그 계절을 좀 더 오래 살' 뿐이죠.
얼마 전 '갈등'에 대한 신선한 해석을 들을 수 있었는데
갈등이 칡이랑 등나무가 서로 꼬여서 서로 의지하고 같이 자라는 것을 빗댄 표현이라고 알고 계시잖아요. 근데 사람 사이도 이렇게 자라면 말 그대로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공동체 성격이 강한 이 나라에서
이런 얘기가 얼마나 받아들여질지 모르겠지만, 서로 의지한다는 허울좋은 변명을 한 겹만 벗겨내면 내가 그로부터 도움을 받고 싶다는 이기적인 동기가 먼저 눈에 들어와요.
저는
성장은 각 개인이 개인으로 잘 설 수 있는 것이 성장이라고, 발달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말 그대로 부모랑 아이가 같이 자라면 가족이 화목할 수가 없겠지요. '갈등' 이 넘치니까...
부모는 절대로 아이와 함께 자라면 안 되고, "나도 부모가 처음인데" 같은 생각을 품고 아이를 대하는 순간 행동에서 티가 나게 되고, 아이는 부모로부터 무언가를 배울 수 없다고 보게되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무언가 배울 게 없는 부모를 부모로 안보고 그저 동거인으로 보게되고, 요즘 소위 금쪽이라고 말하는 아이들의 문제가 대부분 여기서 시작하는 되는 건 아닐까 싶었어요.
그래서 그것에 대한 두려움들이 한국의 젊은 아이들에게 있고
또 그런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아이를 안 낳는 것으로 보여요. 맨날 젊은이들이 아이를 낳고 키울 만한 사회환경이 안 되어 있다 그러는데 아니에요. 사회 환경이 갖춰진다고 해서 정말 애를 날까요? 심지어는 애나면 지자체에도 돈 천만 원도 준다는데... 정말 그게 사회 환경이 문제일까요?
그래서 얘 대신 개를 키우는데
그 개에 대해서 대하는 방식도 똑같아서
요즘은 문제 개들이 많이 생기고
TV 같은 데서도 개 관련 프로그램들이 많이 나오죠.
근데 저는 그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봅니다.
어찌 해야 할까요?
저는 식물학 수업을 합니다.
두울.
아이들과 수업을 하며 보여지는 여러 어려움들이
사회와 시대의 현상을 마주하고 있다는 느낌으로 다가올 때가 많아요.
시대가 그런 것이니 시대에 적절히 타협을 하며 교육을 해 가야 한다는 현실론자를 만날 때는 한없이 외로워지기도 하고요.
또 그러한 시대와 사회에 대한 성찰 없이
주어진 교육 과정만을 열심히 전달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이게 학교를 위한 삶인가? 아니면 삶을 위한 교육인가?
고민해 보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제게 생각이 너무 많다며
그러면 오래 교사 못 한다고
생각을 좀 버리고 힘 좀 빼고 살살 하라고 얘기를 하죠.
그런데 제게는 그러한 고민들이
그런 사람들보다 더 오래 교사를 하게 한 동력인 것 같아요.
한 개인의 자유와 안락, 편안과 평안, 내 아이의 안전과 행복만을 좇는 교육이 최신식 교육인 양 받아들여지는 세태에 마냥 동의할 순 없네요.
그 자유가 어떤 자유고
내 편안과 행복이 혹은 누군가의 불편함과 불행을 바탕한 것은 아닌지 한 번쯤만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로 커가기 위해
식물학을 배웁니다.
이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하지는 않지만,
이 모든 생각과 고민들을 바탕에 둔 채로요.
세엣.
빈수레가 요란하고,
소문난 잔치 먹을 게 없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아이들 공책이나 구경하시다가 가셔요.
그러다 혹시나 딱 한 번이라도 잘된 수업이 발견되면 좋겠어요.
오늘 3주간의 식물학 수업을 마무리 했어요.
10번째 주제는 '땅에 핀 별, 꽃식물' 이었어요.
온아가 수업이 끝나갈 무렵, "아~~제목에 왜 저런 줄을 했어"라고 했는데 정말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이 참 반가웠습니다.
낮에도 별은 뜬다라고 할까? 아니면 저 제목을 할까 좀 고민했었거든요.
아이들이 각자 필기한 내용은 수업 내용에 일부입니다.
내가 이렇게 얘기했나 하는 부분들도 있지만 그것도 오늘 수업의 일부겠죠. 또 긴 시간 이야기 나누었으나 필기되지 않은 부분들 중 중요한 것도 있는데 전해지지 않은 거 같아 아쉽지기도 하지만, 그것들은 그것대로 아이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별로 남아 있기를 바라봅니다.
보이지 않는 낮에도 별은 떠 있으니까요.
10. 땅에 핀 별, 꿏식물
나무는 땅에서 솟아오른 언덕이고, 나뭇가지에서 자라는 잎, 꽃, 열매는 땅에서 자라는 식물과 같습니다.
침엽수는 진정한 꽃이 없습니다. 바늘같은 초록 잎이 겨울에도 있습니다. 그래서 상록수라 불립니다. 침엽수는 해로부터 꽃피우기를 못 배웠습니다.
이번에 배울 식물은 사람으로 치면 이제 입학한 아이와 같습니다. 학교에 들어오면 많을 걸 배웁니다. 글자, 맞춤법,구구단 등등 이전에 하지 못한 걸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더 많은 내면의 빛이 생깁니다. 그러려면 노력하고, 내면의 빛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래야 다양한 꽃이 핀 꽃밭이 됩니다. 우리는 다 다른 각자의 꽃이 되어야 합니다. 반대로 열심히 노력하지 않고 잘 배우지 않으면 미친 광대버섯처럼 태양을 피하고 내면의 독을 키워갑니다. 꽃을 피우는 식물은 학교에서 배운 걸 잘 받아들이고, 받아들인걸 잘 실천하는 학생입니다. 식물이 태양으로부터 지혜를 배우듯, 우리는 선생님과 부모님으로부터 지혜를 배웁니다. 꽃을 피우는 식물은 학교에서 배운 걸 잘 받아들이고, 받아들인걸 실천하는 학생입니다. 식물이 태양으로부터 지혜를 배우듯, 우리는 선생님과 부모님으로부터 지혜를 배웁니다. 부모님과 선생님의 말을 안 들으면 내면에 독이 생겨 남에게 피해를 줍니다. 또한 나도 망가집니다.
태양도 식물에게 지혜를 주지만, 보이진 않지만 식물에게 지혜를 주는 존재도 있습니다. 그것은 별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낮에도 별이 떠 있습니다. 별은 식물의 모양을 만듭니다 꽃, 꽃받침, 씨앗, 열매는 별의 모양입니다. 오각형, 육각형, 사각형의 별의 모양을 만들어 냅니다.
땅에 피어 있는 별은 하늘에 핀 꽃의 빚을 비추는 영혼의 거울입니다.
네엣! 식물학 수업 시작!
에포크 시!
요즘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출퇴근하는데요. 출퇴근하다가 제 시선을 빼앗은 꽃이 있어요.
저는 처음 알게 된 부용이라는 꽃이네요.
살펴보니 무궁화과인 것 같더라고요.
<다양한 식물이 생긴 이유>
최초의 가이아가 있었어요. 가이아는 대지의 여신이고 하늘의 신은 우라노스예요. 가이아의 뼈는 바위와 돌이 되고 살은 흙 피는 물이 되었어요. 그리고 우라노스는 땅에 비를 내려 바위가 깎이고 풀도 자라났어요. 그런데 풀이 너무 자라도 동물들을 만들고 인간도 만들었죠. 그런데 인간이 너무 거만해지고 말았어요. 그래서 신은 인간의 모습을 비추는 꽃을 만들었죠. 그게 꽃말이에요.
ㅡ 정온아
이번 수업부터는 완전히 둘이 다 다르게 글을 써보고 있어요.
어떤 학년에서 보면 8학년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선생님이 칠판에 가득 쓴 거를 그대로 베끼는 반들도 있었어요. 근데 그런 반을 자세히 살펴보면 선생님도 내용 숙지가 안 돼서 칠판에 쓴 거를 보고 읽는 경우가 허다했고 아이들 역시도 공책만 번지르르 하게 예쁘게 꾸몄지 정작 물어보면 아는 게 별로 없었던 듯. 그니까 공책만 예뻤던 거죠.
어쨌든 전날 수업 들었던 것들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말해본 후 서로 다르게 써 보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둘이 얼마나 한 몸인지 부족한 부분을 서로 도우며 비슷하게 되어 가는 거는 아직 어쩔 수 없네요. ㅎ
1.민들레
추운 겨울에 땅속에서 씨앗이 묻혀 있다. 그리고 봄이 되면 입이 나고 뿌리가 난다. 빛이 내려오면 잎에서 줄기가 힘을 모아 쭉 펴고 또 잎이 숨을 쉰다. 그러고 꽃받침이 생기고 빛의 색깔을 받아 노란 꽃잎이 생기다. 또 따뜻한 기운이 땅속까지 들어오면 민들레는 홀씨가 된다. 또 바람이 불면 홀씨가 날아가 땅에 박힌다. 나머지 민들레는 겨울 내내 땅에 붙어 있다.
ㅡ 민들레 전설 (한국판)
옛날에 민들이라는 처녀가 있었는데 민들은 소원을 하나만 이룰 수 있었다. 민들 처녀는 어느 날 어느 왕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 사랑을 이뤄달라고 말할지, 결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말할지, 평생 나만 사랑하게 해 달라고 말할지 고민하며) 소원을 어떤 걸로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왕자가 전쟁을 나가야 한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알겠다 하긴 했지만 또 어떤 소원을 빌지 고민하던 어느 날 전쟁은 이겼지만 왕자가 죽었다는 소식이 왔다. 왕자가 저 하늘의 별이 된 것이다. 순간 민들은 ( (어떤 소원을 부탁할까 이래저래 망설이다가 어느 하나 소원도 쓰지 못하고 사랑하는 왕자가 죽은 것을 후회하면서 ㅡ교사 첨언)) 울면서 저 하늘의 별이 땅에 떨어지게 해 달라고 소원을 빌고 죽었다. 진짜 다음 날 별이 땅에 떨어져 있었다. 그게 바로 민들레다.
1.민들레
민들레는 겨울 동안 씨앗으로 묻혀 있어요. 그러다가 봄이 되어 빛이 비추면 씨에서 먼저 뿌리가 나고 잎이나요. 그리고 공기가 움직여서 바람이 불면 잎이 숨을 쉬어요. 그리고 어느 순간 줄기 같은 게 쑥 올라오는데 그게 꽃대예요. 윗공기가 따뜻해지면 거기에서 해를 향해 꽃이 자라요. 그리고 땅까지 따뜻해지면 꽃에서 씨가 나요. 바람이 불면 씨를 날리고. 같은 일이 반복돼요. 그리고 따뜻한 기운이 있기 때문에 겨울엔 민들레의 잎들이 땅에 착 붙어 있어요.
ㅡ 민들레 전설 (서양판)
옛날에 노아가 있었어요. 어느 날 하느님이 홍수가 날 거니 방주를 만들어 동물 식물을 모으라고 했어요. 노아가 마지막 꽃인 민들레를 뽑는 날이었어요. 노아가 민들레를 뽑고 있는데 홍수가 시작돼서 결국 민들레를 포기했어요. ((왜냐하면 민들레는 뿌리가 아주 곧고 깊게 내리거든요. -교사 첨부)) 그때 바람이 불어 민들레 홀씨가 노아의 팔에 붙어 나중에 민들레도 살 수 있었어요.
사실 재밌는 이야기가 더 있는데 아이들이 기억한 부분은 이 정도이네요. 궁금하신 분은 직접 찾아보시는 센스.
2. 식물의 구조
오가며 보았던 부용이 우리 교실에 찾아왔어요.
다행히 며칠 동안 우리 교실을 환하게 밝혀주고
마지막 삶을 아이들과 함께 보내 주었어요.
그러나 아이들이 정말로 얘는 죽은 게 아니라고 했어요.
수업 전, 에포크 시를 외우는 게 헛일은 아닌가 봅니다.
제게 참 재밌었던 것은 한 꽃대에서
꽃봉우리부터 꽃, 꽃잎이 떨어지고 씨방이 만들어지는 과정, 그리고 씨앗이 생겨나는 것까지 다 볼 수 있었어요.
참 재밌고 신기하지 않나요?
(근데 항상 이런 건 나 혼자만 재밌음. 이런 거 재밌어서 저랑 연구하고 토론하실 분?)
올해 넙대대 하게 폈던 우리 집 마당의 해바라기도!
3. 균류
4. 조류
5. 지의류(땅이 입는 옷)
지의류는 사람으로 치면 스스로 걸을 수 있는 정도다. 지의류는 땅,돌틈, 기와, 나무에 많이 있다. 조류는 물에 살고 지의류는 태양의 지혜로 밖으로 걸어 나와 사는 것이다. 지의류의 생김새는 버즘, 잎, 수염의 생김새로 있다. 그리고 약간 탁한 색이다. 또 지의류는 뿌리가 없다. 잎은 있다. 그리고 지의류는 말라서 가루로 날아가 바위나 나무 틈 사이로 낀다. 또 지의류는 강인한 식물이라 물 없이도 3, 4개월 정도 산다. 또 지의류는 안개 속에 있어도 잎으로 습기를 흡수한다. 또 지의류는 순록에 먹이로도 된다. 왜냐? 북극에도 살기 때문이다. 지의류는 사실 쌍둥이다. 왜냐? 균류의 균사체와 조류의 잎이 합쳐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균사체가 나무, 바위, 기와 등을 잡고 있는 거다.
ㅎㅎ 저 왜냐? 는 제 말버릇인듯.
6. 이끼류
헉... 이끼류 칠판그림이 안 보임.
사진을 안 찍은 듯. ㅜㅠ
이쯤 되니 그림에도 좀 성의가 없어지고, 글씨도 내용이 적어지고 엉망이 된 거 보니 체력이 좀 떨어졌나?
갑자기 영산강 자전거 일주 때 첫날에는 엄청나게 잘 가더니 둘째 날에는 아이들의 속도와 거리가 확 떨어진 게 생각남. 하하핫
근성이 부족하구나. . .ㅎㅎ
거의 다 왔으니 좀 만 더 힘내거라..
7. 양치식물
양치 식물은 태양으로부터 배운 지혜를
온통 잎을 만드는 데 쓴다.
아직은 꽃을 피워내는 식물은 되지 못했지만
꽃식물보다 더 아름답고 화려한 잎을 피워낸다.
그렇게 자신이 할 수 있는 바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 식물조차도!
그려야 할 그림이 많아
잘 그리던 못 그리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에서
매일매일 정성을 다해 칠판 그림을 그리고
하루 만에 다시 지우는 일의 연속.
교사로서의 삶이
매번 칠판 그림을 그리고 지우는 일의 반복이지만,
이번처럼 매일 그리고 하루도 안 되어 빠르게 지워야 하는 일은 없어서
또 다른 수련을 하는 시간이었다.
그리는 일도,
지우는 일도. . .
교사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그 모든 것이 아이들의 실패나 포기가 아니라
어른들의 포기와 실패라고.
다만 그 본능적 감각이 스스로를 속이고 감추려는 것일뿐.
어른으로서
그리고 교사로서
하기 싫고 귀찮고 포기하고 싶은 그 지점을 넘어설 때만이 아이들 역시 그러하다는 것.
나는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쳐 줄
태양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짚어보게 된다.
양치식물의 뜻은 양에 치아라는 뜻이다. 양치 식물은 고사리 석송, 쇠뜨기가 있다. 물론 다른 것도 있다. 우선 고사리는 처음에는 갈색으로 말려 있다가 나중에 말린 것이 풀리는데 잎의 종류가 가운데 잎, 중간 잎 작은 잎이 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포자낭이 생겨 있다. 잎이 쳐진다. 그리고 포자가 날려 다른 돌틈 같은 데 떨어진다. 그리고 거기서 새싹이 나고 그 새싹이 커서 고사리에 줄기가 생긴다. 고사리는 뿌리도 있다.
속새는 대나무 같지만 아니다. 속새는 줄기가 있는데 그 사이에 마디가 있고 속은 비어 있다. 그리고 뿌리 줄기가 있다. 뿌리도 있다
쇠뜨기는 소(쇠)가 잘 뜯어 먹어서 쇠뜨기다. 또 자라기 전에 뱀밥이라는 게 자라고 나서 자란다. 그리고 이것도 마디가 있다. 뽑았다가 꽂을 수도 있다. 쇠뜨기도 뿌리가 있다
석송은 돌석 소나무 송이라 돌의 소나무라는 뜻이다. 석송은 공룡 시대에 10m 정도로 컸는데 지금은 작다. 이유는 지구가 추워져서 거기에 맞게 작아졌다. 말했듯이 이름이 석송이라 소나무를 닮았다. 가끔 돌 기와에도 있다. 그리고 양치 식물은 이제 나라고 말하는 아이와 같다.
9. 침엽수.
침엽수는 잎이 바늘과 같은 나무란 뜻이다. 침엽 수는 사람과 비교하자면 이제 네 다섯 살이 되어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는 아이와 같을 것이다.
식물은 항상 태양에게 자신의 몸을 만드는 지혜를 배운다. 그중 가장 놀라운 배움은 꽃을 만드는 일이다. 해로부터 정말 배우는 식물만이, 배우는 일을 사랑하는 식물만이 꽃을 피운다. 하지만 침입수는 아직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와 같은 식물인지라 진짜 배우지는 못한다. 따라서 아직 진짜 꽃을 만들지는 못한다.
균류(버섯)은 초록잎을 만들지 못했다.
조류 지의류 이끼류는 잎을 만들긴 했으나 혼자 서지 못하거나 완전한 잎의 형태는 아니었다.
양치 식물 (고사리, 속새, 쇠뜨기)은 가장 아름다운 잎이나 줄기를 만들었으나 꽃을 만들지 못했다.
침엽수는 어떤지 살펴보자.
침엽수의 생김새는 줄기가 곧고 위로 갈수록 가늘어진다.
속새처럼 가지가 규칙적으로 자란다. 하지만 큰 키 때문에 줄기가 단단한 나무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다른 부분들도 단단해지는 경향이 있다. 겨울에 앙상한 가지를 보면 중맥만 남은 입처럼 보인다.
옆과 위로 쭉 뻗은 가지를 가지고 있다. 침엽수에 맺히는 방울들은 꽃이자 열매이다. 꽃이 목질화되어 딱딱한 열매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진짜 꽃이 아니기에 나비나 벌이 찾아오지 않는다. 꽃가루는 바람에 의해 날리며 가까이 혹은 멀리 있는 암꽃에 다가가 씨앗을 맺는다. 방울에 있는 씨앗은 딱정벌레의 날개처럼 날기 좋은 형태로 되어 있다. 습한 날에는 방울들이 움츠러져 있다가 맑은 날에는 몸을 열고 씨앗을 날릴 준비를 한다. 가끔 집에 가져온 솔방울도 마르면 펼쳐져서 씨앗을 볼 수 있다. 그것을 던지면 빙빙 도는 헬리콥터 모습을 볼 수 있다.
침엽수는 잎을 활짝 핀 활엽수에 비해 성장 속도가 느리다. 활엽수는 빨리 자라고 1년 내에 단풍이 들고 떨어지지만 침엽수는 2년 혹은 그 이상에 걸려 단풍이 들고 잎이 떨어진다. 그래서 푸른색을 많이 볼 수 있어서 사람들은 상록수 항상 녹색인 나무라고도 부른다. 방울들이 있는데 수년이 걸리는 것도 있다. 천천히 잘하는 침엽수 숲에 들어가면 굉장히 엄숙하고 평안한 느낌을 받는다.
침엽수가 상처를 입으면 향기로운 송진( 소나무 진액)이 나온다.
그리고 공기 중에서 굳어지면 호박 보석같이 된다. 송진은 나무뿐만이 아니라 나무껍질 심지어는 솔방울에도 나오기도 한다. 침엽수 나무들은 밝은 불꽃과 함께 잘 타는데 그것은 송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전나무, 편백나무 같은 침엽수는 아주 좋은 향기를 가지고 있는데 그 향기는 아직 꽃을 만들어 내진 않았지만 꽃이 될 가능성을 가지고 깊고 진한 향기를 품고 있다.
속도가 느린 침엽수이지만 언젠간 먼 미래에 멋진 꽃을 피운다면 그 향기는 정말 깊고 숭고할 것이다.
하지만 침엽수는 완전하진 않지만 꽃과 씨앗 (종자)를 만드는 식물이다. 그래서 우리는 침엽수를 종자 식물이라 부른다.
ㅡ 이 글은 제가 아이들에게 진짜 하고픈 말이 있어 적어준 필기입니다. 3쪽이나 되서 좀 길었지만 불평 한 마디 없이 초롱초롱 보고 들으며 적었답니다ㅡ
9. 나무와 땅
"원은 크다고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둥글기 때문에 칭찬하는 것처럼 사람의 인생도. . ."
민들레와 침엽수, 누가 더 지혜로운가?
크기가 더 커서?
꽃이 더 아름다워서?
인간에게도 더 훌륭함과, 덜 훌륭함이 있는가?
아니면 그런 것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고
인간은 모두가 똑같고 평등한 정신적 존재인가?
모두가 똑같고 평등한 존재라면,
그리고 그것들이 자연적으로 되어진다면
가르치고 기르는 교육의 역할은 무엇일까?
상급 아이들이 이러한 질문들을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읽어 가면서 찾고 있다면,
5학년 아이들은 식물학을 배우면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발달에 맞는 교육이란 어쩌면
4학년 때 동물학을 배우고, 5학년 때 식물학을 배우고, 6학년 때 광물학을 배우는 그런 것이 아니라
어쩌면 같은 내용(정신ㅡ도덕)을
학년에 맞는 다른 언어로
그 나이또래 애들이 관심을 갖는 소재를 가지고
다르게 이야기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우리는 우리가 가르치려고 하는 식물학을 통해서 정말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는지 알 수 있을까요?
2008년 10월 17일.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앎] 책을 처음 사고, 책을 펼치던 날,
1장 처음에 나오는
" 우리의 과제를 단순히 지적 정서적인 것에서가 아니라 최상의 의미에서 도덕적 정신적인 것으로 고찰해야만 그것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라는 말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몰라서,
하지만 그 말이 갖고 있는 무게감만은 충분히 느껴져
쉬이 책장을 넘길 수 없었던.
그렇게 식물학 수업이 끝났습니다.
내일이면 원래 발표를 통해 그들이 배웠던 것들의 일부가 드러나겠죠.
하지만 그렇게 드러나는 것이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이렇게 지내는 한 달 동안 내년에 할 식물학 수업을 위하여 몇 가지 나무를 심고 꽃을 옮겨 심었습니다.
그것들이 온전하게 잘 자랄 수 있기를
그래서 그것 역시도 아이들의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해 봅니다.
개인적으로 식물을 좋아해서인지 식물학 수업을 참 좋아합니다. 요즘 애들 말로 애정하는 수업이지요.
엊그제는 누군가의 메일,
단 한 문장 때문에 7,8년 만에 울컥했습니다.
눈물도 찔끔 흘렸고요.
기도란 그런 것인가 봅니다.
생각해 보니 7, 8년 전에 마지막으로 눈물을 찔끔한 것도 그 분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 눈물은 감정의 설사가 아니라
누군가가 다른 이를 진심으로 이해해 줄 때 생깁니다.
그의 말이나 행동, 혹은 그 결과가 아니라
그가 뭘 하려는지 ㅡ 그 의도를요. 그가 보고있는 지점을요.
그리고 사실 그것은 몇 마디 말조차도
필요 없는 상태인 거 같아요.
그런데 식물학 수업을 준비하면서 자주 가슴이 찡했어요.
비슷한 상태였던 듯 해요.
그 어느 수업들보다도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정서로
수업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었거든요.
앞으로 다른 수업들도
그렇게 준비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과 외우는 마침시를 함께 외우며
식물학 수업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수업이 끝났습니다.
우리가 오늘 최선을 다했다면
우리가 배운 모든 것들이 사라진다 할지라도
우리가 찾고자 했었던 지혜, 사랑, 힘은 남아
세상을 돕고 나를 이끌 것입니다
6학년 식물학으로 만나요, 제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