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입사 하여 첫 광교새벽운동을 회장님과 같이 했을 때의 일이다.
광교 주차장에 모여 운동을 시작하려 했을 때, 밤새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막 그치려 하고 있었다. 저마다 우산을 가져온 상태라 이제부터 우산을 들고 운동해야 하는 것이다.
이때 신입사원으로서 회장님의 우산을 건네 받아 내가 대신 들고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회장님께 우산을 달라고 했더니, 한사코 우산을 넘겨 주지 않았다.
여러 직장생활을 해 오던 터라 오너가 직접 우산을 들고 다니는 모습이 그때는 별스럽게 보였다.
일반적으로 대표의 시간과 하급 직원의 시간의 가치는 다를 수 밖에 없다. 아니 달라야 한다. 수많은 사안을 살피고 분석하여 중요한(때론 수백, 수십억원 짜리)결정을 내리는 대표의 시간과, 다소 수동적으로 주어진 업무(실행) 위주로 일처리를 해야 하는 하급 직원의 시간적 가치는 상당한 격차를 보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야 회사라는 조직사회가 원활히 굴러갈 수 있다.
그러기에 대표는 운전하는 시간 등 업무 외적인 일의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게 다른 사람이 대신 수행 할 수 있게 한다. 그래야 경제적 논리에 맞게 회사가 운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간적 가치 차이에서 발생하는 임원과 직원간의 대우 차이가 때로는 갑질과 차별 등으로 왜곡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왜곡이 우리 사회는 비교적 보편적으로 발생하고 또 당연시 되는 풍토라고 할 수 있다. 유교적 상하관계가 명확하고, 군대식 직급체계가 사회에 만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산그룹의 경우 다소 특이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임원이 직접 커피를 타 먹고, 복사기로 복사지를 가지러 가며, 자신의 컵을 직접 세척해서 물을 마시기 때문이다. 누군가 이를 대신 하려고 하면, 곧바로 그 임원에게 제지당하여 계면쩍은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회사 분위기는 결국 최고위직인 한주식 회장의 솔선수범에 의해 조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회장님에게는 수행기사도, 비서도 따로 존재하지만, 이 역시 업무적인 일에 한정되어 있고, 개인적인 사소한 일은 스스로 해결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방과 우산을 챙기고 드는 일, 운동용구를 챙기고 드는 일 등 업무와 관계 없는 일에 한해서 한사코 자신의 일을 남에게 맞기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퇴근 무렵 소수 임원들이 엘리베이터 앞까지 회장님을 배웅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마저도 회장님은 앞으로 그러지 말라고 지시하셨다.
회장님에게는 유교 사회인 한국사회에서 회사의 오너와 직원의 관계를 떠나 연장자라면 누구나 있게 마련인 권위주의(나이로 판가름 나는 서열) 조차 전혀 찾아 볼 수 없으니, 그 밑의 임원들은 자연스럽게 이를 배우게 되고, 따라하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지산그룹의 임직원들에게는 나이와 서열에 관계없이 자신의 일은 자신이 직접 하는 습관이 몸에 베었다. 회장님께서 이런 일에 솔선수범을 하시니, 밑의 임원과 직원들이 별스럽게 자신만을 챙기는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커피를 타는일 등 온갖 개인적인 심부름, 손님을 접대하는 등의 업무적인 사소한 일거리에 대한 각종 개인적인 지시가 없다보니 각자 개인은 개인의 업무에 보다 치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개인의 업무효율이 높아지고 1인당 순이익이 대기업을 능가하는데 크게 일조하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