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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
세례요한은 의를 행하여 자신의 죄 값을 치르라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아래의 마태복음 6장 1절과 같이 의를 행하지 말라 가르쳤으니 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라며 그들의 의를 깍아 내렸습니다. 이는 한마디로 학생들이 친구에게 잘난척 하지 말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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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장> 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 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의라는 것은 첫번째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의임을 의미 합니다. 그러한 의를 행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으니 예수의 설교가 사탄의 설교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스스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보이기 위해 기적을 행하였고 설교를 했습니다. 2절에서 나팔은 투쟁을 의미합니다. 예수는 바리새인들이 사람들로 부터 칭송을 얻고자 하여 교회와 거리에서 투쟁을 선동한다며 비난한 것입니다. 두번째로 의를 행하지 않는 것이 예수교도들에게 좋은 것이기 때문에 하지 말라 한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가 말하는 의는 유대인에게는 좋은 것이고 권세가들에게는 좋지 않은 것입니다. 이를 통해 분명히 유대민족과 예수교도 사이에 문제가 있음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이는 천국과 관련이 없는 당시 시대상을 알게 하는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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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33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말라 ... 35 땅으로도 말라 ...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 |
맹세하지 말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과 땅과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을 향해서도 맹세하지 말라했으니 이 또한 나팔을 불지 말라는 의미와 같은 것입니다. 예수는 유대인들의 맹세가 헛 맹세라고 합니다. 이는 소금과 같이 사람들에게 밟히기 때문이며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며 회유하는 것입니다. 솔직히 설명없이 보아도 사악한 설교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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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장> 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
사실 이 이야기는 두가지 모두 설명이 가능 합니다. 첫번째는 위의 [1번]과 연결되어 바리새인들에게 너희는 금식하여 모은 음식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구제 활동을 아무도 모르게하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왜 그리 잘난척 하냐는 뜻이며 그래서 예수는 바리새인들이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구제활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해 봐야 소용없으니 구제활동을 하지 말라는 뜻 입니다. 두번째로 예수의 제자들에게도 같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신약성경에는 가난한 사람들은 예수의 제자들임을 확인했었습니다. 예수와 제자들은 스스로 가난한 척하며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준다며 자신들이 나누어 가졌습니다. 이러한 구제활동을 은밀히 하라고 이야기 하는 것으로 보여지기도 합니다.
현대에서도 위의 설교는 사악한 설교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구제 활동을 아무도 모른다면 그 세상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세상은 어둠의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돕는 것을 드러나게 하여 세상이 살만한 세상임을 이야기 해야 합니다. 나아가 그 행하는 모든 과정을 상세히 공개해야 합니다. 공개하는 것은 거짓을 만들지 않는 최선의 방책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증거해야 합니다. 공개한 내용이 의심의 여지가 없음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수학에서 수식을 증명하듯이 재판 받을 때에 죄가 없음을 증명하듯이 모든 행하는 일에 거짓이 없음을 증명 해야 합니다.
재물을 나누어 주는 것이 착한 척하는 외식이면 어떤가요? 그러한 잘난척이 세상을 아름답고 살기 좋게 만드는 것이라면 사람에게 보이기위한 위선적 행동이라해도 그를 향해 저는 응원 할 것입니다.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1000을 가진 사람이 1을 기부하는 것과 100을 가진 사람이 1을 기부하는 것은 다릅니다. 10000을 가진 사람이 1을 기부하고 자랑한다면 이는 거짓입니다. 왜냐하면 비웃는것과 같기 때문에 의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10000을 가진 사람이 1을 벌금으로 낸다면 이는 그 권세가에게 그 죄값은 죄가 아닌 것입니다.
예수는 이어서 또 다시 같은 설교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회당과 거리에서 기도를 한다고 합니다. 이는 나팔을 불지 말라는 말과 같은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6절에서 골방에 들어가 혼자 기도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단 한가지 의미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모이는 것을 막고자 한 것입니다. 이는 투쟁을 선동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실제로 헤롯은 로마병사들을 동원하여 이들의 행위를 막았을 가능성은 쉽게 알 수 있고 그래서 세례요한이 잡혀 목이 잘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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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장> 5 ...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 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 기도하라 ...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이 임하옵시며 ... (이하 주기도문) ... |
예수는 골방에서의 기도를 주장하며 9절에서 그러니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며 주기도문을 가르쳐 줍니다. 주기도문은 교회와 거리에서 하는 기도가 아니라 혼자 골방에서 기도하라는 의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교도들은 주기도문을 많은 사람들 많에서 외칩니다. 이러한 예수교도들이 위선자이며 외식하는 자 입니다. 도대체 누가 위선자인지 구분이 힘들죠? 바리새인들은 위와 같은 말을 한 적이 없으므로 당연히 위선자는 사탄의 우두머리였던 예수였습니다.
예수의 비판 받지 않으려면 비판하지 말라 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잘못 된 것입니다. 비판 받을 짓을 했으면 그가 잘못 하고 있음을 이야기해야 그가 그 잘못을 멈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판은 매우 훌륭한 교육입니다. 그러한 비판의 성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조건 비판하지 말라 했으니 용서하라는 말 보다 더 사악한 교리입니다. 용서는 그나마 상대방이 죄를 인정했기에 용서 할 수 있지만 비판하지 말라는 것은 그 죄를 그냥 놔두라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비판받을 것이 두려워 비판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발전 할 수 없습니다. 비판과 이를 해명하기 위한 행위로서 발전 하는 것이 인류의 역사 입니다. 그러한 비판을 못하게 한 이유로 예수교가 판을 치던 유럽이 암흑기가 된 것입니다. 예수교도들은 예수교가 판 치던 중세 유럽의 암흑기에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이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알아 보시기 바랍니다. 그 모든 것이 예수교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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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장> 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태복음 7장> 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누가복음 6장> 37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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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40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마태복음 5장>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
예수는 악한 자에게 대적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악한 자는 악마이며 사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예수를 찬양하면서 예수교도들은 사탄을 죽이는 영화를 보며 사탄 박멸을 외칩니다. 예수와 제자들이 악마이고 사탄이였습니다. 그들에게 대적하지 말고 그들이 속옷을 뺏고자하면 겉옷도 벗어 주어라는 그 진짜 속뜻을 우리는 앞에서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교도들이 사탄이면서 이제는 자신들이 선이며 타종교를 사탄이라고 외치고 있으니 이런 개같은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에게 원수가 있고 그들이 우리를 핍박한다면 우리는 혼자하는 기도가 아니라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모여서 기도하여야 하고 나팔을 불어야 하며 우리를 핍박하지 못하게 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평화를 위한 길 입니다. 우리가 흩어지고 힘이 없다면 강한 자에게 무조건 끌려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평화입니까? 그곳은 지옥과 같은 삶 뿐입니다. 예수는 유대인들에게 지옥을 선물하고 강한 자에게는 천국을 주고 있을 뿐 입니다.
예수는 의복을 얻기 위해 걱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백합화는 길쌈도 하지 않고 자란다고 설명하고 있으니 백합화가 꽃을 피우기 위한 노력의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스스로 자라는것으로 안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솔로몬의 영광도 이 꽃 하나 보다 못하다 했으니 솔로몬을 비웃는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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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장>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 |
그리고 아래에 적은 26절에서는 새들도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으니 천국의 아버지가 기른다고 합니다. 정말 새들이 아무런 걱정없이 크는 것입니까? 새들도 먹고 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는 노력하지 않아도 먹을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일제시대 때에 젊어서 노세라는 노래가 유행한 것과 같습니다. 지배자들은 피지배자들이 노력하고 모여서 쟁취하려는 모든 것이 불안했 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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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장>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
예수는 계속 이야기 합니다. 아래를 보면 먹고 마시고 입을 것을 염려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는 이방인이 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방인이 누구 입니까? 우리는 이방의 갈릴리라고 이야기한 예수의 말을 보았습니다. 이방은 헤롯을 의미하고 크게는 로마를 의미합니다. 예수에게는 먹고 마시고 입을 것이 이방인의 것임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과 피지배자들은 먹고 마시고 입을 것을 걱정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개같은 글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사탄교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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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장>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
가장 충격적인 것은 34절의 내용입니다.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것이 무엇 입니까? 예수는 여러분의 오늘과 내일을 빼앗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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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3 심령이 가난한 자 ... 4 애통하는 자는 ... 5 온유한 자는 ...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 7 긍휼히 여기는 자 ...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9 화평케 하는 자는 ... 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 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
예수는 심령이 가난한자가 복이 있다고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신을 섬기지 않는 것을 의미하고 살아있는 헤롯을 섬기는 자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로마병사들과 세리들로 부터 핍박을 받는 자입니다. 이들이 복이 있다고 합니다. 온유한자는 대항하지 않는 자이니 이들이 복이 있다고 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의를 행하지 않는 자이니 복이 있다고 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세리들을 용서하는 자이니 복이 있고 마음이 청결 하고 화평케 하는 자는 온유한 자이니 대항하지 않는 자 입니다.
위의 10절에서 의를 위해 핍박 받은 자는 11절에서 의를 명확히 했습니다. 11절을 보면 세리와 제자들이 비난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이 비난 받는 것은 당연했으니 그러한 세리와 제자들을 예수는 믿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가 말하는 의는 재물을 빼앗아 비난 받아 예수가 믿을 수 있도록 행하는 의였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고 외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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