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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목 : 기도의 모든 것에 대하여.
성경 본문 : 야고보서 4장 3절
설교 자 : 박 한서 목사 <2024년 1월 24일 수요일>
사랑하는 행복 가족 여러분!
기도는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통수단입니다.
기도는 주님과의 "대화"이자 “사랑”의 접속입니다.
우리는 그분과 대화하고자 할 때
‘마음’을 열어 ‘진실하게’ 다가가야 합니다.
상투적이고 형식적인 기도가 아닌.
진정 마음을 열어 진실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은 각자가 다 다릅니다.
음악가와 요리사의 관점이 다르고 .아빠와 딸의 생각이 다릅니다.
상처를 겪어본 사람과 겪어보지 못한 사람. 고생을 해본 사람과
해보지 못한 사람 역시 다를 것입니다.
각자의 개인적 환경과 개인적 생각, 개인적 가치관에 의해
자신만의 ‘주관적 세계관’이 형성됩니다.
바로 이 주관적 세계관이 주님과의 교제를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 중에 하나입니다.
자신만의 완고한 가치간과 기준. 고집과 아집. 내 독자적인 생각을
주님 앞에 내려놓지 않는 이상 그분과의 진정한 대화는 이루어지기
힘들 것이니까요.
내 생각과 그분의 생각이 다르다고
주님의 생각이 바뀌어 지는 것은 아닙니다.
내 기준과 주님의 기준이 다르다고
주님의 기준을 변경하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과 나와의 원만한 ‘의사소통’을 이루기 위해서는
내 가치간과 사상과 틀을 먼저 비워내야 한답니다.
대화의 모든 결정권과 주도권을 주님께 다 넘겨 드려야 한답니다.
그리고 필수적인 기도가 있습니다. 내 주관적 세계관을 벗어냄과 동시에
내속에 죄 성을 고백하여 씻김 받는 “회계기도” 말입니다.
주님자체가 워낙 성결하고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죄로 얼룩진
내 모습으로는 주님과 진정한 교제를 나눌 수 없습니다.
그러니 회계 기도를 먼저 꼭 하시기 바랍니다.
회계로서 내 심령이 깨끗해 져야 그분과의 관계성이 막히지 않고
진정한 사랑의 교제를 나눌 수 있으니까요.
<요한 1서> 1장 9절 말씀에
9절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 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시편> 32편 5절 말씀에
5절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셀라)
1. 육적인 기도 vs 영적인 기도
장난감과 선물은 모두 사라져도 아이들은
“하루”라는 선물을 결코 잊지 못합니다.
좋은 생각 이라는 <월간지>에 실린 한 문장의 글입니다.
이 한 줄의 문장 글에는 너무나 큰 영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와 주님과의 관계에서 진심으로 얻어야 할 건
장난감이나 인형 같은 ‘육적인 선물’보다
주님과 진심으로 교제 할 수 있는 “하루”입니다.
우리 손에 쥐어지는 육적인 세상 것들은 언제가 사라질 것이고
더 좋은 물건을 받으면 버리고 없어질 것들입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원래 아비였던
마귀의 성품을 그대로 이어 받았기 때문이지요.
여러분들은 어렸을 때 제일 갖고 싶었던 게 무엇이었나요?
제가 어렸을 때는 가장 갖고 싶었던 게 <로봇> 이였습니다.
그걸 갖기 위해서 부모님 에게 마구 떼스고, 울며 칭얼대며
마구 조르곤 하였죠.
하지만 지금 제겐 <로봇>이 필요 없습니다,
나이를 먹었기 때문이죠. 영적인 것도 그렇습니다.
처음에 유아기 때는 주님께서 <로봇> 같은
어린아이의 것을 들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런 젖먹이 기도를 마구 조르거나 떼쓰면
주님께서 잠시 들어 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바라고 조르면 거절당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갓난아기 수준’에 머물고 있는 걸
주님께서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로봇>보다 더 좋은 것.
바로 ‘영적인 것'을 주기 원하신답니다.
썩어 없어질 임시적인 육신의 것들은 아무리 들어줘도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해서 요구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란 걸
그분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4장 24절 말씀에.
24절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할지니라.
하나님은 영이 십니다. 영적인 기도는 당연히 기뻐 들으시며
응답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육에 속한 기도는 하나님이 기뻐 받지 않으십니다.
그럼 여기서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에 대해 잠시 짚고 넘어갑니다.
주님을 영접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두 가지의 자아가 존재합니다.
새 사람이라 불리는 ‘영’과 겉 사람.
옛사람이라 불리는 ‘육’의 자아입니다.
영은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는 자아이고
육은 하나님에 뜻에 어긋난 세상을 추구하는
육신의 자아입니다.
<요한 1서> 2장 16절 말씀에
16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영적인 자아는 ‘성령님’의 지배를 받으며 오직 주님의 뜻대로
말씀의 뜻대로 움직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5절 말씀에
25절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 찌니
그와 반대로 육적인 자아는 성령님이 아닌 ‘마귀의 영’에
지배를 받으며 세상적인 성향과 자기중심적으로 움직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영에 속한 기도를 귀를 기울이신답니다.
육에 속한 기도는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는 세상적인
기도에 불과 하니까요.
1.) 영적인기도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
성령의 기도. 영생의 기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
말씀을 근본으로 하는 진리의 기도
<마태복음> 6장 33절 말씀에
33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2.) 육중심의 기도(이방인 의 기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기도”
육 중심. 임시성만 구하는 기도. 물질중심. 세상중심. 본인 중심의 기도
<로마서> 8장 8절 말씀에
8절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마태복음> 6장 31절-32절 말씀에
31절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32절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영적으로) 구해야 기도가 상달되지,
불법적으로 (육적으로) 구하는 것은 헛된 것을 구하는 것이랍니다.)
<불법적으로 구하는 것>.
1. 혈과 육으로 구하는 것.
<고린도 전서> 15장 50절 말씀에
50절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2. 탐심과 정욕적인 ‘죄성’을 구하는 것.
<요한 1서> 3장 4절 말씀에
4절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이런 육적인 불법적인 기도를 드리는 분이 믿는 자 중에
거의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거의 대부분이 이런 기도를 드리며
새벽잠을 설치거나 금식에 들어가곤 합니다.
저도 예전에 이런 기도를 2-3시간 씩 드리며
매일 교회에서 살다시피 하였죠.
하루도 빠짐없이 밤마다 철야기도 드리며
부르짖는 육적인 기도를 드렸습니다.
결과는 시간 낭비였습니다.
당연히 아버지께 퇴짜 맞았죠.
영이 성장해 가기 위해서
육적인 세상 성을 멀리하는 건 필수랍니다.
그래도 비록 육적인 기도는 퇴짜를 맞았지만.
영적인 기도는 아버지께서 단 하나도 안 들어 주신 게 없었습니다.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는 주님께서
제게 100프로 응답을 해주셨습니다.
어떤 기도는 기도드리자마자
바로 응답해주신 적도 있었습니다.
그럼 육적인 기도는 아예 하나도 된 게 없냐고요?
물론 육적인 기도도 아버지께서 들어 주신 게 있습니다.
그건 탐심으로 만들어낸 기도가 아닌 아버지 뜻에 어느 정도
합당한 육적인 기도였고. 갓난아기 시절에 기도한 것이라 그런지
아버지께서 들어 주셨습니다.
이렇게 “아버지 뜻에 합당한 육의기도는”
주님께서 필요한 만큼 채워 주십니다.
하지만 탐심과 정욕으로 드리는 "세상적인 기도"는 그 기도가 당연히
상달 될 리 없고 만약에 이루어졌어도 전혀 기뻐할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육적인 기도가 영을 '파리'하게 만드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106편 14-15절 말씀에
14절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발하며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도다.
15절 여호와께서 저희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 찌라도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도다.
위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아버지 뜻에 합당하지 않는 세상기도는
우리의 영혼을 파리하게만 만들 뿐입니다.
내 개인 욕심을 위한 기도. 한사람의 영혼보다 교회의 부피나
사람 수를 늘려달라는 사역적인 기도. 자식 좋은 대학 가게 해달라는 기도.
하나님의 뜻보다 본인의 구미에 더 맞춰지는 교만한 기도. 돈 좀 벌게
해달라는 기도. 무속적인 기도. 심지어는 복권 번호 알려달라는 기도. 등등
이런 기도들이 삽질 중에 삽질 하는 경우이며
그야 말로 시간 낭비 중에 낭비인 기도입니다.
이시대의 신앙은 무조건
'기도만 하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들어 주신다 '로
크게 잘못 인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완전히 그릇된 신앙관입니다.
좋은 대학 가고 싶고. 좋은 직장 잡고 싶으면 그 만큼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버지 뜻에 맞으면 가는 거고. 맞지 않으면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부는 하나도 안하면서 기도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감나무에서
감이 저절로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어처구니없는 신앙심은 버려야 합니다.
“기도 하고 믿기만 하면 다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10일 20일 금식 기도 들어가세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기도 시간을 늘려라!
그래야 들어 주신다. 믿음이 약해서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믿음만 있으면 하나님이 당신이 원하는 모든 걸 다 들어 주신다”
“사업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 하라!
이 땅 에서 축복 좀 받게 해달라고 기도하라!”
게다가 어떤 사람은 “재산 좀 5배로 늘려주세요 그럼 그 돈으로
주님일 을 위해 열심히 투자하고 봉사 하겠습니다~”라고 기도했다가
이루어 지지 않자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심지어는 교회를 떠나기 까지 합니다.
이런 기도들은 무엇을 위한 기도 입니까?
자기를 위한 기도 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나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 입니까?
아니면 천국 성을 위한 기도 입니까?
1.000일 철야기도. 아버지 뜻에 어긋난
본인만의 금식기도. 세상에서 물질 축복받게 해달라는 기도...
정말로 이런 기도들을 우리 주님께서 기뻐 들으실까요?
우리는 그의 나라와 의부터 먼저 구해야지 세상 나라와
세상의 의부터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를 위한 기도는 일종의 우상숭배입니다.
육적인 소욕을 위한 기도는 탐심에 불과 하며
정욕적인 기도에 불과 합니다.
말씀에 탐심은 분명히 우상숭배이며 정욕적으로 구하는 기도는
결코 합당한 기도가 아니라고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답니다.
<야고보서> 4장 3절 말씀에
3절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골로새서> 3장 5절 말씀에
5절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 니라.
예를 들어봅니다.
어떤 한 집사님이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놈이 제발 서울대 좀 가게 해달라고
소원 좀 제발 들어달라고. 정성껏 기도 했고
아들은 서울대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신자는 연거푸 감사해요, 사랑해요 하며
주님 주님을 연발 합니다.
다른 성도들 에게도 간증하며 자랑하고 다니기 시작합니다.
그 간증을 들은 다른 성도들은 그날로 100일.1.000일
철야 기도회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본인들의 기도가 이루어 지지 않으면
왜 내게는 안 들어 주냐며. 차별대우 하는 거냐고
예수님을 욕하며 원망합니다.
아니면 물질이 부족했네. 정성이 부족했네. 기도가 부족 했네 라며
더더욱 기도에 시간을 투자하며 매진합니다.
비단 이런 사례뿐만이 아닙니다.
주님께 그저 무엇이든 부르짖고 원하는 것은 다 이루어 주실 거라는 기도.
그것은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는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신앙입니다.
세상신이나 무조건 나의 문제를 다 해결해 주며
육적인 소망을 다 해결해 주는 신이지
우리 하나님은 안 들어줄 것은 절대로 안 들어 주시는
분이시란 걸 필히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저 세상복만을 바라고 “주시옵소서.” 열변기도 드리는 분들.
하나님은 그분의 뜻에 합당한 신령한 복을 주시기 원하시지 세상 성분의
육적인 복을 주시는 분이 아니란 걸 거듭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에베소서> 1장 3절 말씀에
3절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하나님은 저희에게 신령한 천국의 복주 시길 원하십니다.
육적인 복은 영적인 복을 받으면 자연스레 따라 오는 것입니다.
영이 잘되면 범사는 자연히 잘되는 것이고 그러면
육은 합당한 복을 누리게 되어 있으니까요.
2.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는 기도.
<요한복음> 13장 13절~14절 까지 말씀입니다.
13절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14절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말씀에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바로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을 뜻 합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 말씀에
6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우리 예수님께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십니다.
<요한복음> 6장 51절 말씀에
51절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 이로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장 1절 말씀에
1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떡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은 곧 하나님 이십니다.
<요한 1서> 5장 20절 말씀에
20절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예수님께서는 “영생”이 되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바로
“진리 이치대로 구 하는 것”. "생명이 있는 걸 구하는 것.”
“말씀의 뜻대로 구 하는 것.” “영생을 구하는 것”입니다.
@내 이름 => 예수의 이름= 진리이치의 이름. 생명의 이름.
말씀의 이름. 영생의 이름 (천국 성을 구하는 것.) !
그런데 대부분의 교회에서 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기도하고 있나요?
왜 진리 이치가 아닌 “비 진리 ”이치로 기도하고 있나요?
어째서 영원한 영생의 것을 구하지 않고 썩어 없어질
“육적인 세상의 것” “사망의 것”을 구하고 있나요?
말씀과 관련 없는 “불법” 적인 걸 왜 구하고 있나요?
그건 주님의 이름이 아닌 세상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에 불과하답니다.
주님의 이름은 '부적' 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다음 <요한복음> 6장 55절 말씀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55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주님의 살과 피는 하늘에서 내려온 떡과 영생의 생명수인 ‘말씀’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살과 피를 먹는 자는. 그분의 참 말씀을 먹는 자는
아버지 안에 거하게 되고 아버지가 그 안에 거하시게 됩니다.
<요한복음> 6장 56절 말씀에
56절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이렇게 말씀을 먹고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가 그 안에 거하시면.
그때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주님께서 다 이루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 말씀에
7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 1).주님의 말씀을 먹으면? ->
@ 2). 아버지가 내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게 되고, ->
@ 3).그럼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이루어 주심
말씀을 먹어야’ 말씀이 내안에 거하게 됩니다.
‘말씀을 먹어야’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가 내안에 거하시게 됩니다,
그때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면
이루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쉽게 말해 ‘말씀의 뜻대로 구하는 기도’를
다 들어주신 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먹고 그 뜻에 합당하게 구하는 것을 다 들어주신 다는 것이지.
아무거나 구하는 대로 다 들어주신다는 것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이 말씀의 이치대로 구하는 기도가 앞서 설명 드렸듯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구하는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 말씀의 뜻대로 구하는 기도= 예수 이름으로 구하는 기도.
<요한복음> 13장 14절 말씀에
14절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이 세상은 악한자의 것입니다.
<요한 1서> 5장 19절 말씀에
19절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또 그 본질은 쾌락적이고 정욕적인 ‘마귀’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 성을 사랑하여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당신이 주님을 영접한 순간, 세상은 당신을 버리고 미워하며
‘유혹과 핍박’이라는 이름으로 당신을 끊임없이 괴롭히기만 할 것입니다.
‘먹음직스럽고 탐스러운 모습’으로 할 수만 있다면
예수 믿는 자들을 무너트리려 할 것입니다.
당신을 세상이라는 늪에 빠뜨리려고
온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 성을 사랑하는 것이
‘마귀적인 것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 벗어날 수밖에 없답니다.
<요한 1서> 2장 15절 말씀에
15절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악한 마귀는 멸망이자 사망의 이름이며 ‘달콤하고 일시적인’
임시 성만 나타낼 줄 아는 형편없는 사기꾼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마귀의 세상성에 빠져
잘못된 것을 구하고 있습니다.
사업 잘되게 해달라고 인생 쫙 피게 해달라고 간구하는 기도는
영생의 기도가 아닌 임시적인 세상 기도에 불과하니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 내 기도를 안 들어 주냐고 불평하기 이전에. 그 기도가
주님 뜻에 합당한 진리의 기도인가를 먼저 분별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드리기 전에. ‘주님의 뜻은 무엇인가’
주님이 내게 원하는 기도방향은 무엇인가’를 먼저 알아봐야 한답니다.
<마태복음> 21장 22절 말씀입니다.
22절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 하늘나라의 것을 믿고 구하면 다 받을 수 있다는 것이지 땅의 것
세상 것을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면 다 받는다는 말씀이 결코 아닙니다.
<야고보서> 4장 3절 말씀에
3절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우리가 예수 이름으로 진정 믿고 구해야 할 것은 땅의 것이 아닌
“신령한 천국의 것”이 랍니다.
3. 자신의 뜻? 하나님의 뜻?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이 원하는 인생의 방향이나 바라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각자만의 개인 계획. 미래 설계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 설계도를 주님께 내밀고 본인의 뜻에 맞추라고 요구하곤 합니다.
그래서 그 설계도가 자기 뜻대로 이루어 지지 않으면 될 때까지 열성으로
기도 하거나 믿음이 부족해서 이루어 지지 않는 거라고 부르짖는
기도를 합니다.
낮 밤 가리지 않고 쉬지 말고 교회 가서 10일 금식기도 30일 작정기도.
그러다 보면 무엇이든 내가 원하는 것은 다 이루어 주실 것 같은
헛된 믿음...
“선교를 할까요? 아니면, 사업을 할까요?
예. 아니오. 로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
예면 선교 하고 아니 오 면 사업 하겠습니다”.
“아이고 무릎이 아프다. 내가 어떤 큰 죄를 지어서
아버지께서 벌을 내렸나보다. 얼른 자복하고 회계해서
아픔을 싹 날려 버리자. 아니면 은사 자 에게 찾아가 부탁 좀 할까?
그 사람은 기도에 신통력이 있다던데.” 등등..
정말 열심히 이런 기도드리는 분들. 새벽 기도에 금식 기도에
며칠 밤낮으로 철야기도에 심지어는 기도원 들어가거나 산에 들어가
몇 달 동안 은둔 생활하면서 무속적으로 기도하시는 분들.
그런 열심이 주님을 이용해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종교성’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시기 바랍니다.
@자기 소원 자기 뜻 들어 달라고 20일 금식기도 하는 행위 =>
'하나님 뜻 거역하고 자기 고집으로 떼쓰는 행위
자기중심적인 금식 기도는 탐심과 정욕적인 기도에 불과한
헛된 금식일 뿐입니다.
몸만 상할 뿐이니 이런 의도로 금식기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기도들은 “타락된 기도”를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타락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바로 ‘목적 이탈’을 뜻하고 있습니다.
"방향이 바뀌어 지고 소원 목적이 삐뚤어진 것" 을 뜻하는 것입니다.
진리 중심의 천국의 기도가 아닌 물질중심. 사역 중심. 사람중심의
기도를 타락한 기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드리기 전에. ‘주님의 뜻은 무엇인가’
주님이 내게 원하는 기도방향은 무엇인가’를 먼저 알아봐야 합니다.
그분의 뜻에 맞는 기도를 먼저 드릴 줄 알아야 합니다.
기도드리는 본인이“하나님 무슨 일이 있어도 이렇게 해주세요!”라는
헛된 기대감만 가지지 않는다면, 본인이 원하는 쪽으로 주님이
무조건 맞춰 주기만을 바라지 않는다면.
그분이 주시는 기도 응답이 얼마나
좋은 해답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을 내 뜻에 맞추려 하지 말고
내가 하나님 뜻에 맞추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
주님에게 사랑하는 이성이 나타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 하여도 금방 나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때는 무작정 이성 안준다고 원망부터 하지 말고 가장 좋을 때에
맺어주거나 아니면 본인이 하나님 뜻에 합당한 사람이 됐을 때
맺어준다고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내 뜻대로 하나님께서 집적 비위를 맞춰달라는 것은 자신의 뜻과
일치 시키라는 것은. 그야말로 하나님을 종으로 부려먹겠다는
교만한 발상에 불과한 것이니까요.
우리는 주님에게 ‘금 나와라 뚝딱 하는 도깨비 방망이나
램프의 요정의 소원' 같은 기도를 드리지 말아야 합니다.
나의 기준과 나의 방식에 주님이 맞춰주는 게 아니라.
주님의 방식과 주님의 기준에 나를 맞추어야 한답니다.
이렇게 소원목적이 삐뚤어진 옳지 않은 기도가 나오는 이유는
본인의 관심이 “하나님”쪽이 아닌 “세상”쪽에 있기 때문입니다.
관심이 하나님 쪽에 가있으면 자연히 하나님 뜻에
맞는 기도가 입에서 흘러나오고,
관심이 세상과 본인 위주로 가있으면 자연히
육신의 기도가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니까요.
<로마서> 8장 5절 ~7절 말씀에
5절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절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 기도에 대한 관심
1. 하나님 쪽 = 관심이 하나님 쪽이면 자연히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를 드림
(영을 쫓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함)
2. 세상 쪽=관심이 세상 쪽이면 자연히
“육신의 기도. 마귀의기도. 악인의기도 ”같은
세상 성분의 기도가 나감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생각함)
우리 주님께서는 세상기도를 당연히 멀리 하십니다!
<잠언> 15장 29절 말씀에
29절 여호와는 악인을 멀리 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느니라.
<시편> 66장 18절 말씀에
18절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그래서 영의 생각에서 나오는 기도는 성령의 기도가 되고.
육신의 생각에서 나오는 기도는 세상 성분의 기도가 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7절 말씀에
17절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 영적인 생각= 성령의 소욕 (육체의 소욕을 거스립니다.)
육적인 생각=육체의 소욕 (성령의 소육을 거스립니다.)
<골로새서> 3장 2절 말씀에
2절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 위에 것=(천국의 것. 영원한 것. 하나님의 것)=“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
아랫 것=(세상 중심. 임시적인 것)=“
먹고 마시는 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
<요한 계시록> 2장 10절 말씀을 보시면
10절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요한 계시록> 2장 10절 말씀에
10절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찌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여기서 십일은 단순히 하루 이틀 사흘같이
날짜 수 열흘을 의미하고 있 것이 아닙니다.
열흘은 우리 신앙인들이 받는 고난의 수.
즉 우리 생애의 수를 의미하는 것으로
<다니엘서> 1장에 나오는 10일과 같은 맥락입니다.
<다니엘> 1장 12절~15절 말씀에
12절 청 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13절 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진미를 먹는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하여 보아서 보이는 대로 종들에게 처분 하소서 하매
14절 그가 그들의 말을 좇아 열흘을 시험하더니
15절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진미를 먹는 모든 소년보다 나아 보인지라
본문에 <다니엘>은 왕의 음식을 거부 합니다.
<다니엘> 1장 8절 말씀에
8절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 장에게 구하니
말씀에 세상 진미와 세상 포도주는 “세상 성”을 뜻하고 있습니다.
세상 성에 취하지 말라는 것으로 영적인 뜻이 계시됩니다.
<다니엘>은 왕의 음식이 아닌 깨끗한 채식과 물을 먹었습니다,
우리도 <다니엘> 같이 세상 성이 아닌 하나님의 채식 성분과
깨끗한 물을 먹고 살아야 합니다.
(육신의 입으로 먹는 음식을 먹지 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영적인 성분을 음식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다니엘서> 1장 4절 말씀에
4절 왕이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방언을 가르치게 하였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다니엘> 1장 4절 말씀에
4절 곧 흠이 없고 아름다우며 모든 재주를 통달하며 지식이 구비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모실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방언을 가르치게 하였고
이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방언은 진리의 말씀이 아닌 세상 성분의 학문.
세상 성분의 방언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곧 ‘비 진리’ 와 ‘마귀의 방언’
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마귀도 방언을 할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며 주문처럼 마치 환상 체험 하듯이 굿 하듯이
입으로 능력 받기 위한 강신굿 벌이듯이 하는 기도. 신비한 체험속의
환상을 보며 입으로 따따 다다 방언 하시는 분들. 그 방언이
하나님께 상달되는 방언이 아닌 주문 같은 마귀의 방언일수도 있으니
성령님의 기준으로. 말씀의 기준으로 잘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4. 경제성. 종교성. 정치성의 기도.
1.) 경제성
<마태복음> 4장 3절 말씀입니다.
3절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사십일 밤낮으로 금식하는 기도를 드리던 예수께 마귀는 나타나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라고 공격해 옵니다.
그때 우리 주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라” 고 답변하셨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자녀인 우리가 이 마귀가 주님에게 공격한 것을
“기도 주제”로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주님께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한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는
바로 “경제성”의 기도를 뜻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도들의 예를 들어 보면
예) “주님! 제가 부자가 되어야 아버지 일을 열심히 하지 않겠습니까?
저 돈 좀 주세요! 물질이 있어야 아버지 일도 열심히 할 거 아닙니까?”
(물질 적인 경제성을 추구하는 기도)
사업 번창. 사업적인 교회.
하나님 보다 물질성을 더 추구하는 모든 것 등등.
우리 주님께서는 돈 뽑는 은행가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런 “경제성”을 요구하는 기도를 버려야 합니다.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라 말씀한
예수 그리스도처럼 마음이 말씀으로 부유해지게 .마음 안에
육 성분이 아닌 영적인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먼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진짜 부자니까요.
육성분이 아닌 .영적인 천국 보화가 가득한 게 진짜 부자입니다.
교회를 위해. 영혼을 살리기 위해 물질 쓰려 하니 돈이 필요하다 구요?
그럼 일단 본인 스스로가 물질을 세상 쪽에 쓰지 않을 만한
그릇이 되게 해달라고 먼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교회와 영혼을 살리고 싶다며 물질 달라고 기도하시는 분들.
막상 돈 들어오면 물질 때문에 넘어지는 분들이 이런 분들입니다.
자식이 아버지에게 “아버지 저 좋은데 쓸 테니 돈 얼마 좀 주세요.~” 라고
마구 조릅니다.
그런데 막상 그 돈을 주면 그곳에 쓰지 않고
시험에 빠질 분량임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럼 아버지가 그 자식 에게 돈을 주겠습니까?
물질을 하나님 쪽에 합당하게 쓸 수 있게 물질 때문에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먼저 기도 하시기 바랍니다.
인간의 그릇과 인간의 성품은 물질 앞에
엄청 약해지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이해 안 되는 사람들 중에 하나가
“아버지 돈 들어오면 반드시 얼마 내겠습니다!”라고
하나님께 함부로 선원하시는 분들입니다.
대부분 그러 분들이 막상 그만한 물질이 들어오면 자신에게 쓰고 싶어서.
세상 성에 쓰고 싶어서 시험에 빠지곤 하더군요.
물질도 하나님께 맡겨서 아버지가 인도하는 쪽으로
쓰게 해달라고 먼저 기도 하시기 바랍니다.
돈은 생길 때는 좋으나 필요 이상으로 모이면
그것은 “시험 거리”에 불과 합니다.
<디모데 전서> 6장 10절 말씀에
10절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우리에게 너무나 합당한 물질에 관한 구절은
<잠언> 30장 8절-9절 말씀에 이미 기록 되어 있습니다.
8절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9절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 함이니이다.
<요한 웨슬리>는 젊은 시절 그의 월수입이 30파운드였을 때,
그는 27파운드는 생활비로 썼고 3파운드는 구제비로 썼다합니다.
그 후 100파운드를 벌게 됬을때 27파운드는 생활비로 쓰고
73파운드는 구제비로 썼습니다.
수입이 300파운드로 늘자 27파운드는 생활비로 쓰고
273파운드는 구제비로 썼습니다.
30파운드에서 수입이 300파운드로 수입은 열배로 늘었지만
생활비는 여전히 27파운드 였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물질을 사용할 자신이 있나요?
먼저 이렇게 물질을 하나님 뜻에 합당하게 쓸 수 있게. 이만한
그릇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경제성”을 이미 승리하셨습니다.
세상 떡보다 훨씬 귀한 게 하나님의 말씀의
떡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2) 종교성.
<마태복음> 4장 5절~7절까지 말씀입니다.
5절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절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마귀는 성전 꼭대기에 주님을 세우고 뛰어내리라고 합니다,
그때 주님은 “너희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근데 애석 하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은 분명히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했는데 대다수 믿는 분들이 오히려 마귀와 한통속이 돼
하나님을 시험하는 성분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성분의 기도는 “종교성”의 기도일 뿐입니다.
이 땅의 장래를 알려하는 점치는 기도. 능력행해 달라는 기도.
꿈에서 뭐가 나타나 달라는 기도 등등이 이에 속합니다.
“아버지 제가 이번에 교회를 크게 건축하려고 합니다.
내일까지 이 잔에 이슬이 맺혀 있으면 크게 건축 하라는
응답으로 받고 교회 옮기겠습니다.”
“저의 미래에 직업은 무엇인가요? 아버지 응답해 주세요~.”
“아버지의 뜻을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저 며칠 안에 꿈에서든 무엇을 통해서든 응답 안해 주면
어떻게 행동할지 모릅니다! 알아서 하세요~!.”
“만약에 주님께서 성전을 건축하라고 하시면
동전의 앞이. 아니면 뒤가 나오기 바랍니다.”등
이런 기도가 아버지를 시험하는 기도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점술가도 무속인도 아니십니다.
그분께 무슨 계시 성을 달라거나 아니면 유명한 은사 자 를 찾아가서
점치거나 꿈을 통해 뭐 나타나게 해 달라고 하는 행위들. 이런 것들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위에 불과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점과 꿈을 신청하지 말라고 말씀에서 분명히 선포 하셨습니다.
<예레미야> 29장 8절 말씀에
8절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중
선지자들에게와 복술에게 혹하지 말며 너희가 꾼바 꿈도 신청하지 말라
<사도행전> 8장 9절~11절 말씀을 보면
<시몬>이라는 자칭 큰 자가 등장해 마술을 부리며 하나님의
능력 인 것처럼 가장해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도행전> 8장 9절~11절 말씀에
9절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10절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청종하여 가로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11절 오래 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저희가 청종하더니
옛날이야기 일 뿐이라고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과거부터
현재 미래까지 다 통용되는 말씀이니까요.
<요한 계시록> 21장 6절 말씀에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지금 이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시몬> 같은 능력자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교회 안에 이런 <시몬> 같은 사기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환상. 점쟁이 예언. 기적적인 체험위주. 겉은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있지만
속은 무당과 마술사 같은 신비주의. 능력과 안수의 축복 대 성회.
30일 금식 기도원 등등. 이런 모든 것들이 ‘종교 성’이라는 이름으로
말씀 안에 못들 어 가게 하는 “비 진리”일 뿐입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진리 없는 성령 운동은 무속적인 무당 운동에 불과 하니까요.
이런“종교성”을 요구하는 기도를 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말씀하신 주님처럼. 그저 언제나 주님과 함께
있게 해달라고. 언제나 주님을 놓치지 않게 해달라고. 내가 주님 뜻에
맞출 수 있는 겸손한 자녀가 되게 해달라고 먼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와 함께 라면 지금 어떠한 현실이 라도 행복해 질수 있으니까요.
예수님은 “종교 성”을 승리하셨습니다.
저희 안에 예수님이 함께 하시기에 저희도 승리 할 수 있습니다.
미래를 궁금해 하지 말고 또 걱정하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6장 34절 말씀에
34절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저희에게는 주님과 동행하는 오늘 하루. 현재 .
바로 지금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3) 정치성. 기도
<마태복음> 4장 8절에서 10절까지 말씀입니다.
8절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절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절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마귀가 본인에게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라고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그때 주님은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답변 하셨습니다,
하지만 현 시대에 많은 신앙인들이 마귀에게 굴복하여. 그 세상 영광과
권력과 명예욕에 마음과 생각을 빼앗겨 삐뚤어진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도는 “정치 성”의 기도일 뿐입니다.
(높아지려고 하는 기도 .교회에서든 사회에서든 한자리 차지하고
위에 군림해 보려는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 천국에서가 아닌
이 세상 에서 명예욕을 추구하는 마음. 등등..)
우리 주님께서는 너희 하나님만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하셨는데 말입니다.
어떤 자리와 위치에 상관없이 다만 하나님만 섬길 줄 아는
자세를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마귀의 유혹에 승리한
참 진리 성분의 기도인 것입니다.
“정치성”을 바라는 기도를 버리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다만 하나님만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 명예욕을 버리게 해달라고, 권력욕에 빠지지 않고 다만
주님만을 섬기는 겸손한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먼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위치가 큰 자리든 작은 자리든. 장소가 초막이나 궁궐이나. 세상
그 어디라도. 자신이 어떤 모습이라도. 그 어디라도 우리는 만족하고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정치 성”을 승리 하셨습니다.
저희 안에 성령님이 함께 하시기에 저희도
승리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작은 교회이든. 큰 교회이든 1.000명이든 1명이든 목사이든 평신도이든
어느 위치 어느 자리든 간에 만족하며 기쁘게 주님과 교제 할 수 있는
참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누가 복음> 16장 10절 말씀에
10절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 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말 어렵다고 생각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사실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우리들의 순서가 잘못되어 있기에
우리가 신앙적 혼란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먼저 “말씀”을 아는 것이 가장 우선입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했을 때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 말씀”으로만 마귀를 대처하셨습니다.
어떤 능력도. 기적도. 권세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마귀도 성경을 알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4장 6절 말씀에서
성경을 인용한 부분을 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또 기록되었으되 ’로 되받아 치셨습니다,
계속 말씀으로 답변하셨죠.
무조건 ‘사단아 물러가라’라고 해서
마귀가 물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저대로 알아야 말씀이 능력이 돼서
마귀를 물리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마귀는 말씀을 겉치레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진리인 예수그리스도의 말씀 앞에 무릎 꿇은 것입니다,
이렇든 저희도 비 진리의 말씀이 아닌 주님의 진리에
생명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1. 마귀의 방식으로 쓰이는 말씀 : 비 진리 (인간 생각. 인간 방식)
겉치레 .세상 성 으로 쓰이는 말씀은 생명이 없음
2. 하나님의 방식으로 쓰이는 말씀 : 참 진리 (성령님의 생각. 성령님의 방식)
영적인 말씀. 생명이 있음. 사랑이 있음. 이 세상의 것이 아닌
하늘나라의 것
@ 성경 말씀을 저대로 알고 주님이 원하는 뜻을 정확히 알아.
어떤 기도가 주님께 합당한 기도인지 잘 분별해야 합니다.
말씀을 모르고 단순히 은혜 신앙으로 치우치면
“그때 감동”일 뿐이고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말씀을 저대로 몰라서 피해를 보는 사례는 허다합니다.
성경 말씀에서 날마다 자기를 쳐야 한다고. 육신을 죽여야 한다고
세면 바닥에 5시간을 무릎을 치며 육신을 학대하며 기도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육신 성분을 죽이라는 것인데
육신을 학대하면서 기도해야 하는 걸로 착각한 사례죠.
나중에 무릎만 병 들었을 뿐 이었습니다.
지금 그분은 말씀을 저대로 알아 세면 바닥에 5시간 기도 보다
세상 성분. 육적인 성분을 죽이는데 더 힘쓰고 있습니다.
혈기가 너무 가득한 집사님이 있습니다.
그 혈기로 가정폭력이 심한 분이었습니다.
집사님은 평소 예배 시간에는 은혜를 많이 받습니다.
눈물 흘리며 기도로 은혜 받으면 잠시 혈기가 사라집니다.
하지만 교회 밖으로 나가면 다시 혈기가 올라와
집에 돌아와 부인을 때리고 자식을 팹니다.
그리고 자신이 지은 죄를 회계하며 다시 은혜를 받습니다.
아니면 은사 자 나 안수를 통해 혈기 있는 어둠을 쫓아냅니다.
통곡하며 울면서 기도 합니다. 그때는 다시 잠잠해 집니다.
하지만 그때일 뿐입니다. 돌아서면 다시 혈기가 올라오지요.
여전히 부인과 자식을 때립니다.
또 따른 자매는 술을 너무나 좋아합니다,
술을 끊으려 하지만 너무나 괴로워 끊을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 회계하고 기도하며 양심에 걸려 잠시 안 먹게 됩니다.
하지만 그 죄 성을 이기지 못해 며칠가지 않아 또다시 술에 손이 갑니다.
말씀도 모르면서 세상 유혹을 차단하고 하나님의 법을 지키려 하니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이루어 지겠습니까?
말씀이 심령 안에 없는데 어떻게 죄 성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말씀이 심령 밭에 뿌리를 내려야 우리는 “자연히”
바뀌어 질수 있는 것이 랍니다.
그러니 먼저 말씀을 생명으로 받아 드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근본이 변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5. 합당한 기도
<창세기> 32장 24절-28절 말씀입니다.
24절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절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 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 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 되었더라
26절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 하겠나이다.
27절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 이니 이다.
28절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야곱>이 홀로남아 있을 때 주님은 찾아오십니다,
이렇게 주님은 성도와 1대1 교제를 하기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나와 1대1 이면의 골방기도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본문에 <야곱>은 날이 새도록 씨름을 합니다.
이 씨름은 ‘기도씨름’을 뜻하고 있습니다.
<야곱>에게 주님이 먼저 다가오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먼저 씨름을 청하셨습니다.
<야곱>이 먼저 하나님께
“씨름하고 싶으니 내게 찾아 와 주세요.”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신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바로 주님이 먼저 원하는 기도. 주님이 먼저 청하는 기도.
즉 주님 뜻에 합당한 기도를 <야곱>처럼 씨름으로
정복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 기도가 기도씨름을 하면서 정복해야할 기도라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원하는 “영적인 기도”를
그렇게 열심히 기도해서 이기라는 것입니다.
쓸데없이 자신이 원하는 육 성분을 기도 씨름해서 정복해야 한다는
우리나라의 잘못된 신앙관을 완전히 뜯어 고쳐야 합니다.
“무엇이든 간절히 기도하면 다 이루어진다.”
“주님은 소원 성취의 주체자다”
주님이 원하는 것이 아닌
“내가 원하는 것을 기도 씨름해서 이겨 내야 한다.”등
이러한 잘못된 기도 습성을 완전히 버려야 합니다.
@ 씨름을 청하러 다가오신 주님 (주님이 먼저 <야곱>에게 씨름을 청했다.)
“주님께서 먼저 요구한 영적인 기도”
이 기도가 기도씨름을 하면서 정복해야 할 기도.
아이를 낳고 싶다는 <한나>의 기도는 무엇입니까?
아이를 평생에 여호와께 바친다는 기도를 올렸습니다.
<한나>의 기도는 하나님께 합당한. 설득이 되는 기도였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자녀를 낳게 해달라는 기도. 즉
“하나님께 합당한 영적인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 <한나>의 기도 (주님이 기뻐하는 영적 기도)
“주님을 설득 시킬 수 있는 영적인 기도”=
영적인 아들인 <사무엘>을 낳았다!
영적으로 장성했던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그의 기도는 참으로 영적인 기도였습니다.
<에베소서> 6장 18절-19절 말씀에
18절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19절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18절 말씀에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 하라고 하였습니다.
또 자기를 위한 기도보다 여러 성도를 위한 중보기도를 드리는
장성한 기도를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최고의 신이시기 이전에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분이십니다.
이세상의 어느 아버지가 자녀가 병에 걸려 아파하며
고통스러워하길 원하겠습니까?
우리가 진심으로 주님을 사랑한다면 아들 된 도리로서
아버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주님의 기쁨이 저희의 기쁨이 되고
주님의 슬픔이 저희의 슬픔이 된답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주님.
저희들의 영이 굶주려 배고파 할 때
주님은 저희에게 언제나 최고로 좋은
영적 음식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그 음식은 신령한 음료이자 하나님의
말씀의 떡이자 은혜의 생명수입니다.
주님은 계속적으로 저희에게 그 영적 음식을 먹으라고 재촉하는데.
배고파 영이 영양실조로 죽어갈지도 모르는데 그 깊은 마음도 모르고
저희는 맨 날 육적인 세상성분의 음식만 달라는 철없는 기도만
드리고 있지 않나요?
사랑하는 행복 가족 여러분!
여러분께 기도 제안을 하나 드리려 합니다.
상처 받은 내면의 아픔부터 치료받는
기도를 먼저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치유함을 먼저 받으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이나 다른 방법으로. 다른 그 무엇으로도
치료법을 찾으려 하지 말고 주님께 먼저 정확한 진단을 받고
영적인 병을 치료하시기 바랍니다.
그 고통의 원인을 알고. 주님께 모든 걸 맡기기만 하면
그분은 당신의 내면에 아픔과 근심을 치료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께 자신의 어두움과 아픔을 솔직히 드러내며 내려놓으세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내면을 지배하는 어둠과 상처가 있습니다,
물론 자신의 어둠과 상처를 드러내는 것은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일 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창피해 하거나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이 세상에 당당한 아픔과 창피한 아픔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떻게 아픔의 급수를 매 길수 있겠습니까?
주님 앞에 그 무엇도 숨기지 말고
솔직하게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잠언> 28장 13절 말씀에
13절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 을 받으리라.
<시편> 32편 5절 말씀에
5절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
주님은 마음을 열고 주님을 찾았을 때 매몰차게
뿌리치는 분이 절대로 아니랍니다.
<시편> 9편 10절 말씀에
10절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 하 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 하심 이니 이다
그분께 치료 받지 못하면 그 안에 깊이 뿌리박힌 어둠과 아픔 때문에
늘 고통으로 살아가야 할지 모릅니다. 늘 상처투성이로 살아가야
할지 모릅니다.
마귀는 우리에 마음에 순간순간 들어와서
허탈감. 공백. 외로움 등을 가지고 공격해 온답니다.
사람은 일시적으로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위로해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뿐만 아니라 상처 치유와 위로.
해결 방법. 소망까지 제시해 주실 것입니다.
이 세상 그 무엇도 우리 영혼의 아픔을 치료해줄 수 없습니다.
사람의 깊은 맘에 영적 아픔은 오직 주님만이 해결 할 수 있으니까요
거창하게 시작할 필요 없습니다. 영적인 병부터 먼저 치료하세요.
작은 것 하나먼저 내려놓는 기도부터 시작하세요.
주님께 가장 솔직한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늘 쉬지 말고 주님과 교제하길 진심으로 간구 합니다.
<골로새서> 4장 2절 말씀에
2절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