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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가 사흘만에 살아난 부활절 (4월 4일)이 다가오면서, 예루살렘은 어느 때보다 많은 순례자들의 발길 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이나 영국같은 기독교 국가에선 이스라엘 단체 여 행객들이 줄을 이으면서 여행사들은 부활절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더구나 내년은 2000년으로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해. 밀레니엄이 예수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을 기준으로 한다는 점에서, 예루살렘에는 벌 써부터 관광객 러시 현상을 빚고 있다. 기독교에 대해 부정적인 이스라엘 당국조차도 엄청난 관광수입을 올릴 수 있는 기회로 판단, 기독교 순례객 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하지만 성지 순례객들은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고 죽 었다가 부활한 골고다 언덕이 2곳이라고 소개받는데 약간 놀란다. 한 곳 은 전통적으로 인정된 장소이고, 다른 곳은 19세기 들어 새롭게 부각된 곳. 두 장소에 대한 학문적·종교적 논쟁은 매년 부활절이 되면 뜨거워지 고 있다. 구교쪽이 전자만 인정하는 반면, 개신교는 전자를 굳이 부정하 진않지만 후자쪽을 상당히 인정하는 형편.
성경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고 묻힌 곳으로 나오는 골고다(해 골이라는 뜻이며, 영어로는 갈보리) 언덕의 전통적 장소는 현재 성묘교회 (Church of the Holy Sepulchre) 또는 부활교회(동방교회에서 이렇게 부 름)라고 불리는 기독교 제1의 성지다. 성묘교회는 '동예루살렘' '구시가 지'라는 이름도 갖고 있는 예루살렘성 내부의 서쪽 언덕에 위치해있다. 2 개의 돔을 갖춘 성묘교회는 매년 평균 70만명 이상이 찾고 있는데, 올해 는 200만명, 그리고 내년에는 400만명이 방문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비해 새로이 등장한 정원무덤(Garden Tomb)은 예루살렘성 안에서 다마스커스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면 약간 북쪽에 위치해 있다.
그럼 왜 전세계 17억 기독교인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골고다 언덕의 위 치가 정확하지 않고, 이런 논란이 벌어졌을까.
이것은 이스라엘의 복잡한 역사 때문이다. 당시 로마의 식민지배하에 있던 이스라엘은 AD 66년부터 독립을 위해 대로마 결사 항쟁을 일으켰다.
역사가 요세푸스가 지은 '유태사'에 따르면, 유태인들의 독종같은 반 란에 분노한 로마군은 AD 70년 타이투스 장군의 지휘로 예루살렘성으로 쳐들어가 수십만의 유태인들을 죽이거나 전세계로 흩어지게 했다. 이때부 터 유태인들은 2000년 동안 나라없는 민족이 됐다.
로마 정부는 또 '로마 황제를 숭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독교인을 박해하기 시작했고, 예루살렘의 이름도 이방식 명칭인 '알리아 카피톨리 나'로 바꾸었다. 대신 유태교·기독교의 흔적을 말살하려고 비너스 신전 등을 대거 지었다.
하지만 그 후 로마는 영화 '쿼바디스'에서 보듯 점차 기독교화되어 갔 고,마침내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 기독교를 공인했다. 신앙이 독실했던 황 제의 어머니 헬레나 황후는 직접 예루살렘을 방문해 "골고다 언덕이 어디 인지 찾으라"는 명령을 내렸고, 부하들과 성직자들은 비너스 신전이 세워 졌던 장소를 역으로 추적했다. 헬레나는 당시 십자가에 사용됐던 나무도 발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335년 그곳에다 거대한 성묘교회를 세웠고, 성묘 교회가 '지구의 중심'이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 건물은 수차례 붕괴와 재건을 반복했으며, 지금의 건물은 11∼13세기 십자군들이 예루살렘을 점 령했을때 지어졌다.
성묘교회는 그 후 이슬람권의 침공에 시달리면서도 명맥을 유지했다.
하지만 현재 성묘교회 내부는 주요 장소의 경우 로마가톨릭·그리스정교 회·알메니안교회가, 덜 중요한 지역은 시리아정교회·콥틱교회·이디오 피아교회 등 6개 종파가 각각 분할해서 사용하고 있다. 물론 예배도 별도 로 드리며, 교회 옥상에서 거주하는 사람들도 있다. 특이하게도 성묘교회 열쇠는 십자군 이후 이슬람교측에서 관리하고 있다. 지금도 교회의 유일 한 출입구는 이슬람교도가 아침에 열어주고 저녁에 닫는다.
어쨌든 성묘교회가 골고다 언덕이었다는 전통은 별다른 이의없이 내려 왔다.
하지만 1883년 당시 오토만 제국을 몰아내기 위해 왔던 영국의 찰스 고든장군이 예루살렘성 밖을 거닐다가 우연히 해골 모양의 바위 모습과 아름답게 가꿔진 정원의 모습을 발견했다. 영감을 느낀 그는 이후 발굴 작업을 해보니 거대한 빈 무덤이 내부에 드러났고, 그 모습이 누가복음 23장 33절 등 신약성경에 나온 무덤 묘사와 상당히 일치했다는 것을 발견 했다. 고든 장군은 "골고다 언덕은 예루살렘 성밖에 있었다고 성경에 기 록돼 있다"면서"성묘교회보다는 정원무덤이 진짜 골고다 언덕과 예수님 무덤이 있었던 곳"이라고 주장했다.
개신교회측은 성묘교회의 가치를 부정하진 않으면서도, 이 발견을 높 이 평가하고 있다. 해마다 부활절이 되면 성묘교회가 대만원을 이루는 것 은 물론이지만, 정원무덤에서도 새벽부터 영어·스페인어·독일어·불어 등의 순서로 수많은 신도가 참석한 가운데 개신교회의 예배가 진행된다.
물론 평상시 주일 예배도 이곳에서 드려진다. 정원무덤은 영국에 있는 본 부에서 매년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다.
정원무덤 지지파에 따르면, 성묘교회는 예수님이 빌라도로부터 재판을 받은 뒤 십자가를 지고 올라갔다는 '비아 돌로로사'(슬픔의 길)가 현재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식육점과 야채상으로 꽉 채워져 온갖 더러운 냄새와 지저분한 분위기를 풍기는 데다, 교회 내부도 6개 종파가 관리하면서 서 로 자기영역을 고집하고 있다는 것. 순례객들이 무덤 내부를 구경하려면 보통 30분 정도나 기다려야 하는 등, 가장 거룩한 곳이라고 기대를 잔뜩 품고 왔다가 거룩한 분위기를 깨기 딱 알맞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원무덤은 깨끗하게 단장돼 누구든지 기도와 명상을 하기 좋 다는 점을 내세운다. 최근 AP통신은 "2000년에 성묘교회를 찾을 인구가 연간 400만명으로 예상돼 압사나 붕괴를 피하기 위해 교회내에 비상구를 하나 만들기로 했지만, 6개 종파 중 누구도 자기 구역쪽으로 비상구를 만 드는데는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성묘교회 지지측은 "예수님 당시의 예루살렘성 경계는 수차 례 전쟁을 통해 계속 심하게 바뀌었다"면서 "1538년 오스만 제국의 술레 이만 황제가 현재의 예루살렘성, 즉 사방 1㎞의 약간 기울어진 정사각형 모양의 성을 건설하면서 성묘교회를 성 내부로 포함시켰지, 그 전에는 바 깥에 있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대부분 신학자와 고고학자들도 여기에는 동의하고 있다. 또 최근 역사학적 조사를 한 결과 정원무덤의 형태는 2000 년 전 당시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는 결론이 이미 내려졌다면서, 정원무 덤은 상징적 의미가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신학자들은 골고다 언덕과 성묘의 위치를 따지는 일은 신 앙과 무관하다고 지적한다. 예루살렘성내 2000년 전 성전의 서쪽벽 잔재 인 '통곡의 벽'을 성지로 여기는 유태교나,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를 절 대 성지로 여기고 일생에 한번은 꼭 가봐야 한다는 이슬람교와 달리, 기 독교에서는 특정 장소를 반드시 순례해야 한다는 신앙은 없기 때문이라는 것.
하지만 기독교인의 최대 관심지역이고 보면, 골고다 언덕의 위치 논쟁 도 쉽사리 수그러들지는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