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다하여
증인 사도 바울
엘렌 G. 화잇
바울을 마지막으로 심문하는 자리에서 네로 황제는 사도의 힘 있는 말에 너무나 강한 감명을 받은 나머지 그 하나님의 종에게 무죄나 유죄를 선고하지 않고 판결을 미루었다. 그러나 얼마 뒤 황제는 바울에 대해 다시 악한 마음을 품었다. 그리스도교 신앙이 황제의 가족에게까지 퍼졌는데도 그것을 막지 못한 자신의 무능에 화가 나서 네로는 그럴 듯한 구실을 발견하는 대로 사도를 죽이기로 결심했다. 이후 얼마 되지 않아 네로는 바울에게 유죄를 선고해 순교자의 죽음을 맞게 했다. 로마 시민은 고문형에 처할 수 없었으므로 바울은 참수형을 선고받았다.
바울은 은밀하게 형장으로 옮겨졌다. 형 집행을 지켜보도록 허용된 관중은 거의 없었다. 바울의 영향력에 놀란 박해자들은 그의 사형 장면을 보면서 그리스도인으로 회심할 사람들이 생길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바울을 수행한 무정한 병사들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죽음 앞에서도 밝고 쾌활한 그의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자기를 살해하는 이들을 향한 용서의 정신, 그리스도에 대해 마지막까지 변함없던 그의 확신은 그의 순교를 목격한 일부 사람에게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는 향기가 되었다. 몇 사람은 바울이 전하던 구주를 받아들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도 자기 피로써 자신의 믿음을 담대하게 인증하였다.
위험 중에서도 평안함
최후의 순간까지도 바울의 삶은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다음의 말이 사실임을 입증했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6~10). 그의 능력은 자신에게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그 영혼을 가득 채우시고 모든 생각을 그리스도의 뜻에 복종하게 하신 성령의 임재와 활동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선지자는 이렇게 선언한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사 26:3). 바울의 얼굴에 나타난 하늘의 평화는 많은 영혼을 복음으로 이끌었다.
바울은 하늘의 분위기를 지니고 다녔다. 누구든 그와 교류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연합한 그에게서 기운을 느꼈다. 자신이 전한 진리가 다름 아닌 그의 삶에서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에 그의 설교는 설득력이 있었다. 여기에 진리의 힘이 있다. 거룩한 생애에서 꾸밈없이 무의식으로 나타나는 감화야말로 그리스도교에 호감을 품게 하는 가장 설득력 있는 설교이다. 논쟁은 반박이 불가할 때라도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경건한 모본에는 쉽게 저항할 수 없는 힘이 있다.
이타적인 삶
바울은 자기에게 다가오는 고통에 아랑곳 않고 자신이 떠난 뒤에 남아서 편견, 증오, 박해에 맞서야 할 이들을 염려했다. 형장까지 동행한 몇 안 되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그는 힘써 격려했고, 의를 위해 박해받는 자에게 주어진 약속을 되뇌며 용기를 북돋았다. 시련당하는 신실한 자녀를 향해 주님께서 주신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바울은 확실하게 말해 주었다. 잠시 동안 그들은 갖가지 시험에 짓눌리고 이 땅에서 위로를 얻지 못할 수도 있지만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딤후 1:12)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신실함을 굳게 믿고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머지않아 시련과 고통의 밤이 끝나면 평화로운 아침이 밝아 오고 완전한 날이 시작될 것이다.
사도 바울은 불확실성이나 두려움이 아니라 밝은 희망과 간절한 기대감으로 위대한 내세를 바라보았다. 순교 장소에 서서 그는 사형 집행인의 칼이나 잠시 뒤 자신의 피가 떨어질 땅을 보지 않고 그 여름날의 조용하고 푸른 하늘 너머로 영원하신 분의 보좌를 바라본다.
이 믿음의 사람은 야곱의 이상에 나타난 사다리 곧 땅과 하늘, 유한한 인간과 무한하신 하나님을 이어 주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사다리를 바라본다. 그에게 힘이요 위로이신 그분을 조상들과 선지자들이 어떻게 의지해 왔는지를 회상하면서 그의 믿음은 굳세어진다. 그리고 그분을 위해 이제 자신의 목숨을 버린다. 수백 년에 걸쳐 믿음을 증언한 이 거룩한 사람들에게서 그는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보증을 얻는다. 그의 동료 사도들 역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갔고 종교적 편견, 이교적 미신, 박해와 멸시에 맞부딪히면서도 자신의 생명을 귀히 여기지 않고 불신의 어둠 가운데서 십자가의 빛을 높이 들었다. 바울은 그들에게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세상의 구주라는 증언을 듣는다. 고문대, 화형주, 감옥, 토굴 그리고 동굴에서 순교자들이 외치는 승리의 함성이 그의 귓전에 울려 퍼진다. 변함없이 꿋꿋한 영혼들의 증언을 그는 듣는다. 그들은 빈곤, 고통, 고문에도 두려움 없이 믿음의 엄숙한 증언을 전하면서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안다”라고 선언한다. 이들은 믿음으로 자신의 생명을 내주면서 자신들이 믿는 그분은 끝내 구원하시는 분이라고 세상에 선언한다.
복된 보증
바울은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속량받았고 그분의 피로 씻음을 받았으며 그분의 의로 옷을 입었다. 그는 자신의 영혼이 주님 보시기에 귀중하다는 증거를 자기 안에 간직했다. 그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진 것이다. 죽음을 정복하신 분께서 맡겨진 것을 능히 지켜 내시리라고 그는 확신했다.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일으키리라”(요 6:40, 킹흠정)라는 약속을 바울은 마음으로 굳게 붙잡았다. 사형 집행인의 칼이 내려오고 순교자에게 사망의 그늘이 덮일 때 마지막으로 떠오른 그의 생각은 부활의 큰 아침에 처음 떠올리게 될 생각과도 같았다. 바로 복된 자들의 즐거움에 동참하도록 환영해 주시는 생명의 시여자를 만나게 되리라는 생각이었다.
노령의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에 대한 증인으로 자신의 피를 쏟은 지 거의 20세기가 지났다. 아무도 후세대를 위해 이 거룩한 사람의 마지막 장면을 성실하게 기록하지 않았지만 우리를 위해 영감의 말씀은 죽음을 앞둔 그의 증언을 간직해 두었다. 그때 이후로 그의 음성은 큰 나팔 소리처럼 각 시대에 울려 퍼지며 수많은 그리스도의 증인에게 용기를 불어넣었고, 승리로 기뻐하는 그의 메아리는 슬픔에 찬 수천 명의 마음을 일깨워 주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6~8).
본 기사는 『사도행적』 509~513쪽에서 발췌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서는 엘렌 G. 화잇(1827~1915)이 70여 년간 공적 사역에 종사하면서 성경이 말하는 예언의 은사를 사용했다고 믿는다.
발문
누구든 그와 교류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연합한 그에게서 기운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