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기일
기억과 추억 사이/옛날 고향 이야기
2006-04-21 22:40:29
개신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제사 자체를 이단시하여 아예 지내지도 않는다. 우상숭배라는 교리에 따라 조상에게 절을 하는 것을 큰 죄악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점점 제사를 멀리하는 집이 늘고 있다. 그만큼 개신교 신앙이 집집마다 뿌리를 파고들었다는 증거가 된다. 신앙 때문이 아니라도 제사는 빨리 사라져야 한다고 떠드는 사람들이 많이 늘고 잇다. 살아생전 잘 모셔야지 죽은 뒤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절만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이 그들이 부르짖는 항변의 이유였다. 물론 맞는 말이다. 철없는 어린이가 아니고 어른들이 곰곰이 심사숙고하여 내린 결론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절 대신 기도를 대신하고 찬송가를 부르는 것이나 아예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도 그 나름대로 방법이 될 수도 있다. 보이지 않는 대상에게 절을 하는 것도 어찌 보면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들의 생각이 너무도 단순하다는 데 있다. 조상들이 물려준 풍습을 매정할 정도로 내 핑계치고 새로운 사상에 쉽게 접근하여 육체적으로 편안하게만 살려고 하는 경향 말이다. 이런 육체적 편안함이 조상들이 물려준 정신적 유산까지 멀리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제사를 지낼 때만이라도 조금이나마 조상과 소통을 했지만 그마져 멀리 하니 금방 단절이 왔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제사를 소중히 여긴 사람이다. 특히 아버지의 제사에 대한 관심은 유별났다. 중학교 때 한 10리 쯤 떨어진 인근 마을로 이사를 갔지만 제사만 돌아오면 아버지는 한 번도 빼놓지 않고 고향으로 제사를 지내러 오셨다. 명절은 물론이고 몇 달마다 돌아오는 조상들의 제사를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지낼 정도로 열성이셨다. 그것도 하얀 두루마기에 갓을 쓰시고 고향의 자갯골을 훠이훠이 넘어가시던 아버지의 뒤를 따라가다 보면 아버지가 힘겹게 내딛는 발자국 하나하나가 나에게 던져주는 무언의 약속처럼 느껴졌다.
“제사는 참 소중한 거다, 조상님들을 만나볼 수 있는 유일한 날이 바로 제사날이다. 그러니 너도 조상들 제사는 잊지 말거라”
나 역시도 세상일에 부대끼다 보니 조상의 제사를 잊고 지내는 일이 많았다. 일에 얽매이고 시간이 없다보니 조상 들 제사가 돌아와도 고향 행을 포기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다보니 습관이 되어 버린 듯 했다. 대전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않는 시골이었지만 내려가는데도 선뜻 엄두를내지 못했고 그것이 습관으로 굳어지다보니 자연적으로 제사는 삶에 방해가 되는 존재로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은연중에 제사의 가치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살다보니 내가 잘못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쳤다. 굼실굼실 후회가 떠올랐다. 아버지가 나에게 던져주었던 무언의 약속을 져 버리고 단 하루만이라도 편한 길만 찾는 어리석음을 발견하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람들이 모이면 가끔 이런 말을 한다. 제사도 우리 때만 가능하지 내 아들 대 가서는 그나마 없어질지 모른다는 말을 자주 한다. 제사 음식 장만하는데 힘도 들고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 것이고 개신교 쪽의 입장은 우상숭배가 그 주된 이유였다. 그러나 우상숭배라는 입장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를 하지 않았다. 나 역시 신앙이 잇지만 천주교에서는 제사를 허용할 정도로 관대한 편이어서 제사문제에는 갈등을 빚지 않아 좋았다. 제사문제를 두고 판이하게 다른 양쪽의 시각을 놓고 볼 때 난 개신교 쪽에 문제가 있는 걸로 진단을 내렸다. 제사는 우상숭배가 아니다. 하나의 효의 개념으로 봐야 한다. 조상에게 절을 하는 것은 효의 개념이지 우리가 추방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돌아가신 부모를 생각하며 절을 하는 것이 어째서 우상숭배가 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편협된 교리가 얼마나 사람의 정신을 갉아먹는지 우리는 지난 날 수없이 경험을 해서 잘 알고 있다. 몇 달 전 고향의 큰집으로 할머니의 제사를 지내러 간 적이 있었다. 그 것도 오랜만이다. 내 스스로 간 것이 아니고 당조카의 전화를 받고 가긴 했지만 참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척들을 만나서 좋았고 절을 하면서 조상과 교감을 가질 기회가 있어서 좋았다. 아버지의 아버지, 또 할아버지의 아버지, 이렇게 한없이 줄을 타고 올라가다보면 조상의 품속에 안긴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 많은 조상들이 나를 돌봐주고 있으니 얼마나 든든한가. 아버지도 아마 이 맛으로 제사에 열심이셨나 보다. 조상을 만나기 위해 버스를 타고 고개를 넘어 억척스레 제사를 지내러 오셨나 보다. 조상이 있다는 것, 그것만치 뿌듯한 것이 없다. 그런대도 조상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너무나 쉽게 단절을 꾀하는 사람들, 세상이 자꾸만 시끄러운 것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나 싶다. 어쩌다 한 번씩 지내는 제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변명을 늘어놓는 사람들을 보면 그 행동이 딴판일 때가 너무 많다. 제사가 힘들고 비용이 많이 든다고 변명을 하면서도 세상구경엔 목을 매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꽃이 피는 계절엔 꽃구경, 눈 오는 계절엔 눈 구경, 이것도 모자라 바다건너 해외까지 가면서도 조상일에는 눈과 귀 다 잡아매고 있는 사람들이 셀 수도 없이 많다는 말이다. 그 많은 비용과 차에 시달리며 피곤을 먼지처럼 뒤집어쓰고 오면서도 조상들 제사엔 말들이 많으니 도대체 어찌된 노릇인지 모르겠다.
늦게나마 아버지가 무언으로 물려준 약속을 지켜야겠다. 잠시나마 편한 길로만 가려고 했던 나 자신을 책망한다. 아버지가 부단히 걸으셨던 길, 명절과 조상들 제사만 있으면 버스를 타고 산을 넘고 고향에 당도했던 그 길이 내가 따라가야 할 길인가 보다. 나도 아들과 함께 아버지의 길을 따라가고 싶다. 한번만이라도 아들 손을 잡고 자갯골을 넘어오면서 제사가 곧 삶이 된 아버지처럼 그렇게 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