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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의린책(宜麟策) 총론(總論)
천지(天地)가 인온(絪縕: 연합)하므로 만물(萬物)이 화순(化醇: 순전)하고, 남녀(男女)가 구정(搆精: 연합)하므로 만물(萬物)이 화생(化生)하니, 이는 조화(調和)하는 자연(自然)의 이치(理)이고 또한 무사(無思) 무위(無爲)의 도(道)이다.
따라서 인도(人道)가 있으면 부부(夫婦)가 있고 부부(夫婦)가 있으면 곧 자사(子嗣)가 있다. (그런데) 또 무슨 핍사(乏嗣)의 설(說)이 있겠는가?
그러나 천(天)에는 불생(不生)하는 시(時)가 있고 지(地)에는 불모(不毛)하는 역(域)이 있으므로, 인(人)에는 핍사(乏嗣)의 유(流)가 없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생(生)할 자는 저절로 생(生)하고 핍(乏)할 자는 당연히 핍(乏)한다.
(그런데) 또 구사(求嗣)의 설(說)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구(求)할 수 있다는 것인가? 구(求)할 수 없다는 것인가?
그 중(中)에는 또한 설(說)이 있고 또한 법(法)이 있다.
소위 설(說)이란 불생(不生)하고 불모(不毛)하는 자를 위한 설(說)은 아니다. 또한 소장(少壯)하고 강성(强盛)한 자를 위한 설(說)도 아니다.
불생(不生)하고 불모(不毛)하는 것은 선천(先天)의 품부(稟賦)에서 출(出)하니 인력(人力)으로 할 바가 아니다. 소장(少壯) 강성(强盛)하면 묘합(妙合)의 자연(自然)에서 출(出)하니 식(識)할 필요가 없고 지(知)할 필요가 없다.
다만 자식을 가질 수 있는데 자식이 없고 후손이 없어서 난감(難堪)한 것은 본래 천(天)에 부탁(:付)할 것이 아니다. 쇠로(衰老)하여 자식이 없는 경우 정력(精力)이 날로 거(去)하니 어찌 소년(少年)에 비하겠는가? 따라서 만회(挽回)할 수 있는 인력(人力)이 있을 때 설(說)이 있고 법(法)이 있는 것이다.
비록 그 법(法)은 자고(古)로부터 드러낸(:垂) 것이 이미 적지 않으나, 내가 느끼기에는 묘온(妙蘊: 묘함을 간직하다)함에는 미진(未盡)한다.
이로 인하여 그 법(法)을 순서대로 나열(列)하였으니, 곧 천시(天時) 지리(地利) 인사(人事) 약식(藥食) 질병(疾病)의 총 5종류(類), 24조(條)이다. 단지 그 중 하나라도 범(犯)하면 곧 족히 공사(公事)를 패(敗)할 수 있다.
내가 만년(晩年)에 아들을 얻은 것도 대부분 이를 잘 살펴서(:鑒) 된 것이다. 이로 고통(:苦)하는 자는 오직 이를 잘 살피고 믿어서 후사(:祚胤)를 꾀할지니라. 미미한(渺小) 것은 아니므로 '의린책(宜麟策)'이라 명(命)하였다.
1-1) 천시(天時) - 시기(時氣)
교회(交會: 교합)하여 하종(下種: 임신)하는 시(時)에 대해서, 고(古)에는 "마땅히 길일(吉日), 양시(良時), 천덕(天德), 월덕(月德) 및 간지(干支)의 왕상(旺相)을 잘 택(擇)하여야 한다. 당연히 병정(丙丁)은 피(避)하였다."는 설(說)이 있었다.
돌이켜 보건대, 갑작스런(:倉猝) 순간(:頃)에 어찌 이를 택(擇)하여 행(行)하겠는가? 요원(迂遠)한 것에 속(屬)하는 것 같으니, 이를 믿기(:憑)에는 부족(不足)한다.
그런데 오직 천일(天日)이 청명(晴明)하고 풍(風)이 광(光: 맑다)하고 월(月)이 제(霽: 개이다)하며 시(時)가 화(和)하고 기(氣)가 상(爽)하며 정사(情思)가 청녕(淸寧: 맑고 편안하다)하고 정신(精神)이 한유(閑裕: 한가롭고 여유)한 상황(:況)에 행(行)하고 지(止)한다면 택일(:擇)하지 않아도 사람마다(:人人) 이를 변(辨)할 수 있다. 이로 자식(:子)를 얻으면 질병(疾)이 적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또한 총혜(聰慧) 현명(賢明)하니, 태원(胎元)의 품부(稟賦)가 실로 이에 기초(基)한다.
피(避)나 기(忌)를 모르면서, 천지(天地)의 회명(晦冥: 어두움)을 범(犯)하면 우준(愚蠢: 어리석고 굼뜨다)하고 미몽(迷蒙: 멍청하다)한 기(氣)를 받고, 일월(日月)과 성진(星辰)의 박식(薄蝕: 일식과 월식으로 빛을 가림)을 범(犯)하면 잔결(殘缺: 이지러져 모자라다)하고 형극(刑剋: 서로 맞지 않다)한 기(氣)를 받으며, 뇌정(雷霆: 천둥과 벼락)과 풍우(風雨: 바람과 비)의 참폭(慘暴: 혹독하고 사납다)을 범(犯)하면 낭악(狼惡: 잔인하다)하고 경광(驚狂: 놀라서 미치다)한 기(氣)를 받고, 음(陰)도 아니고 양(陽)도 아닌 갑자기 열(熱)하고 갑자기 한(寒)하는 변환(變幻)을 범(犯)하면 간험(奸險: 간사하고 음흉하다)하고 궤사(詭詐: 속이다)한 기(氣)를 받느니라.
따라서 기(氣)가 영(盈)하면 영(盈)하니 이를 승(乘)하면 대부분 수(壽)하고, 기(氣)가 축(縮)하면 축(縮)하니, 이를 범(犯)하면 대부분 요(夭)한다.
돌이켜 보건대 사람은 육합(六合)의 내(內)에 생(生)하니, 생(生) 장(長) 장(壯) 노(老) 이(已)가 어찌 생성(生成)에서 그 기(氣)를 받지 않겠으며, 지(知) 우(愚) 현(賢) 불초(不肖)도 어찌 천지(天地)에서 그 질(質)을 품(稟)하지 않겠는가?
이는 원시(元始) 대본(大本)을 감(感)하는 징조들(:兆)이다. 더구나 명(命)의 조(造)를 사(思)하고 화육(化育)을 찬(贊)하려면 당연히 이를 급선무(:首務)로 하여야 한다.
1-2) 천시(天時) - 음양(陰陽)
'건도(乾道)는 남(男)이 되고, 곤도(坤道)는 여(女)가 된다.'는 것은 생성(生成)의 지극한 도(道)이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 어떻게 사용하는가?
건곤(乾坤)은 사용하지 않으니, 그 사용은 감리(坎離)에 있다. 감리(坎離)의 사용은 곧 음양(陰陽)일 뿐이다.
리(離)는 본래 양(陽)에 거(居)하는데, 어떻게 여(女)가 되는가? 양(陽)이 중(中)하고 음(陰)이 초(初)하기 때문이다. 감(坎)은 본래 음(陰)에 거(居)하는데, 어떻게 남(男)이 되는가? 음(陰)이 중(中)하고 양(陽)이 초(初)하기 때문이다. 중(中)이란 상(上)에서 성(盛)하다는 것이니, 성(盛)하면 반드시 점차 소(消)한다. 초(初)란 하(下)에서 생(生)하다는 것이니, 생(生)하면 반드시 점차 장(長)한다.
따라서 양(陽)은 감(坎)에서 생(生)하고 좌(左)를 따라 점차 승(升)하며 승(升)하면 양(陽)이 되고 명(明)하게 된다. 음(陰)은 리(離)에서 생(生)하고 우(右)를 따라 점차 강(降)하며 강(降)하면 음(陰)이 되고 회(晦)하게 된다. 이는 곧 음양(陰陽)의 사용이니, 천변(千變) 만화(萬化)가 이로 말미암지 않는 것이 없다.
이로 말미암아 널리 유추(:推)하건대, 동지(冬至) 하지(夏至)는 일세(一歲)의 음양(陰陽)이다.
자동(子東) 오서(午西)는 일일(一日)의 음양(陰陽)이다.
절(節)과 중(中)은 월령(月令)의 음양(陰陽)이다.
명(明)과 회(晦)은 시기(時氣)의 음양(陰陽)이다.
절(節)의 전(前), 절(節)의 후(後)는 소장(消長)의 음양(陰陽)이다.
월광(月光)의 조신(潮汛: 조수(潮水))은 영허(盈虛)의 음양(陰陽)이다.
다시 사람에게 미치면 노부(老夫) 여처(女妻)는 음(陰)이 승(勝)하는 듯 하지만 전도(顚倒)하는 묘(妙)가 있다.
저것이 강(强)하고 이것이 약(弱)한 것에도 양(陽)이 있지만 이를 조종(操縱)하는 권(權)이 있다.
돌이켜 보건대 모두 음양(陰陽)의 사용이 아닌 것이 없다. 이를 알면 양(陽)을 따르고 음(陰)을 피하니, 건도(乾道)가 남(男)이 된다. 이를 모르면 양(陽)을 배(背)하고 음(陰)을 향(向)하니, 곤도(坤道)가 여(女)가 된다.
명안(明眼)을 가진 사람은 이를 거울(:鑒) 삼아 깨달으니(:悟), 글(:筆)로는 그 의미(意)를 다하기가 어려우니라.
2-1) 지리(地利) - 지리(地利)
지리(地利)는 자사(子嗣)와 관계(:關)하니, 중(重)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음댁(陰宅)에 마땅한 자손(子孫)은 항상 종사(螽斯: 번창하다)를 많이 보게 되고, 양댁(陽宅)에 마땅한 자사(子嗣)는 오직 생기(生氣)하는 천을(天乙)의 방(方)이 가장 길(吉)한다.
그러나 길지(吉地) 길인(吉人)은 흔히 대부분 기(期)하여 회(會)하지는 못하니, 소위 '덕(德)이 있어야 이러한 사람이 있고 이러한 사람이 있어야 이러한 토(土)가 있다.' 하였다.
이렇게 소치(所致)한 이유(由)는 우연(偶然)이 아니다. 이르기를 '반드시 먼저 심지(心地)가 있은 후에 음지(陰地)가 있다.'고 하였으니, 이는 믿을 만하고, 무고(:誣)한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이치(理)가 깊고(:深) 그 의(義)가 심오(:邃)하여 일언(一言)으로 다할 수는 없다.
그러나 종지(宗枝: 종중의 종파와 지파)와 관계(係)된 것임을 진실로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외에 교회(交會)하는 침실(寢室)에도 가장 마땅하거나 가장 기(忌)하여야 하는 것에 대해 알아야 한다. 신(神) 앞에서 묘사(廟社: 종묘 사직)하는 곳 옆(:側)이거나, 우물(井) 아궁이(灶) 무덤(冢) 관(柩)의 옆(:傍)이거나, 일월(日月)이나 화광(火光)이 비취는(:照臨) 곳이거나 침음(沈陰)하고 위험(危險)한 곳이거나 등 단지 신혼(神魂)의 불안(不安)을 느끼는 곳(:處)은 모두 범(犯)하면 안 된다.
이를 혹 삼가지 않으면 요왕(夭枉: 일찍 죽거나 누명을 쓰다)하거나 잔질(殘疾: 손상되어 질병을 하다)하며 비재(飛災: 졸지의 재난)하고 횡화(橫禍: 뜻하지 않은 재화)하니, 불충(不忠)하거나 불효(不孝)한 자손(:流)들이 따라서 출(出)한다. 이는 그림자(影)나 메아리(:響)처럼 증험(:驗)된 것이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2-2) 지리(地利) - 기지(基址)
자손의 번성(:瓜瓞)을 이으려면(:綿) 당연히 그 터(:基址)를 잘 구하여야 한다. 종(種)하고 식(植)하려면 반드시 먼저 땅(:地)을 택(擇)하여야 하는데, 모래나 자갈(:砂礫) 땅(:場)에서 어찌 곡식(:稻黍 벼와 기장)을 바라겠는가?
자(子)를 구하려면 반드시 먼저 모(母)를 구하여야 하는데, 박복(薄福)한 부(婦)에서 어찌 건장한 자식(:熊羆 곰 종류)를 바라겠는가? 자사(子嗣)를 도모(謀)하려면 먼저 터(:基址)를 도모(謀)하지 않고 계획(:計)한다면 얻을 수 없다.
그러나 터(:基址)에 대한 설(說)은 은미(隱微)하여 헤아리기(:測)가 어렵고(:叵) 살피기도 진실로 어려우니, 잠시 분명하고(:顯) 쉬운(:易) 것들 10여 조(條)를 들어 그 개략(:槪)을 알아보고자 한다.
대체로 부인(婦人)의 질(質)은 정(靜)한 것이 귀(貴)하고 동(動)한 것이 천(賤)하며, 중(重)한 것이 귀(貴)하고 경(輕)한 것이 천(賤)하며, 후(厚)한 것이 귀(貴)하고 박(薄)한 것이 천(賤)하며, 창(蒼: 성숙하다)한 것이 귀(貴)하고 눈(嫩: 어리다)한 것이 천(賤)한다.
따라서 순(脣)이 단(短)하고 취(嘴)가 소(小)하면 좋지(:堪) 않으니, 이는 자처(子處)의 부위(部位)이기 때문이다.
이(耳)가 소(小)하고 륜(輪)이 박(薄)하면 좋지(:堪) 않으니, 이는 신기(腎氣)의 외후(外候)이기 때문이다.
성(聲)이 세(細)하여 진(振)하지 못하면 좋지(:堪) 않으니, 이는 단전(丹田)의 기(氣)의 본(本)이기 때문이다.
형체(形體)가 박약(薄弱)하면 좋지(:堪) 않으니, 이는 장축(藏蓄)하는 궁성(宮城)이기 때문이다.
음식(飮食)이 섬세(纖細)하면 좋지(:堪) 않으니, 이는 창름(倉廩)과 혈해(血海)의 원(源)이기 때문이다.
발(髮)이 초(焦)하고 치(齒)가 활(豁)하면 좋지(:堪) 않으니, 간(肝)에 혈(血)이 휴(虧)하고 신(新)에 정(精)이 휴(虧)하기 때문이다.
정(睛)이 노(露)하고 둔(臀)이 삭(削)하면 좋지(:堪) 않으니, 장(藏)에 부장(不藏)하고 후(後)에 무후(無後)하기 때문이다.
안색(顔色)이 교염(嬌艶: 교태스럽고 아름답다)하면 좋지(:堪) 않으니, 그 화(華)를 주고(:與) 그 실(實)은 버리기(:去) 때문이다.
육(肉)의 비(肥)가 골(骨)을 승(勝)하면 좋지(:堪) 않으니, 자궁(子宮)이 좁아(:隘) 신기(腎氣)가 위축(:詘)되기 때문이다.
요나(嬝娜: 예쁘고 날씬하다)하고 유취(柔脆: 무르고 약하다)하며 근(筋)이 골(骨)을 속(束)하지 못하면 좋지(:堪) 않으니, 간신(肝腎)이 휴(虧)하고 근간(根幹)이 견(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산근(山根) 순구(脣口)에 청기(靑氣)가 많으면 좋지(:堪) 않으니, 양(陽)이 음(陰)을 승(勝)하지 못하고, 반드시 간비(肝脾)에 체역(滯逆)이 많기 때문이다.
맥(脈)에 긴삭(緊數) 현삽(弦澁)이 나타나면 좋지(:堪) 않으니, 반드시 진음(眞陰)이 휴약(虧弱)하고 경후(經候)가 부조(不調)하여 생기(生氣)가 흐릿(:杳然)하기 때문이다.
이 외에 호(虎)의 두(頭)에 웅(熊)의 항(項)이거나 횡(橫)의 면(面)에 수(竪: 세로로 세우다)한 미(眉)이거나 및 성(聲)이 시랑(豺狼: 승냥이와 이리)와 같은 질(質)이면 반드시 형극(刑剋)이 많아서 길(吉)하지 못하니 멀리(:遠) 하여야 마땅하다.
또 강한(剛狠: 굳세어 사납다)하거나 음악(陰惡: 은근히 악하다)하거나 간험(奸險: 간사하고 음험하다)하거나 극박(剋薄: 판단하고 깔보다)한 기(氣)는 특히 그 종류(種類)가 근원(源)에서 유(流)하여 자손(子孫)의 명맥(命脈)이 관계(係)하므로 어찌 가까이(:近) 하겠는가?
비록 '요(堯)에도 아들 단주(丹朱)가 있었고 순(舜)에도 아버지 고수(瞽瞍)가 있었다.'고 말하지만 이기(二氣)의 상합(相合)에는 반드시 우월(:一優)과 열등(:一劣)의 소치(所致)가 없지 않다. 음양(陰陽)에 질서(:序)가 있고 종(種)과 지(址)가 모두 마땅한데도 가색(稼穡: 파종과 수확. 농사)에 결실(:登)이 없는 경우는 없다. 오직 한 쪽이라도 편승(偏勝)이 있으면 편(偏)의 상(象)이 나타난다. 이처럼 종(種)할 때는 이와 같이 잘 택(擇)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인지(麟趾)의 시(詩)가 또 무엇 때문에 지어진(:作) 것이겠는가? 나는 사람의 후사(嗣)를 잇기 어려운 고통(苦)과, 또 후사가 없는 것보다 더 못한 고통(苦)도 보았느니라. 천(天)은 항상 호인(好人)이 생(生)하기를 원(願)하므로 염려(:慮)가 되어 이를 언급하였다.
3-1) 인사(人事) - 십기(十機)
음양(陰陽)의 도(道)는 합(合)하면 취(聚)하고 불합(不合)하면 리(離)하며, 합(合)하면 성(成)하고 불합(不合)하면 패(敗)하니, 천도(天道)와 인사(人事)는 이로 말미암지 않음이 없다. 특히 이 (합의) 도(道)가 가장 중요(:最)한다.
합(合)과 불합(不合)의 기(機)에는 10가지가 있으니, 이를 얻는 권(權)은 자기 자신(:我)에게 있다.
첫째는 합벽(闔闢: 문을 닫고 열다)이니, 곧 부인(婦人)이 동(動)하는 기(機)이다.
기(氣)가 정(靜)하면 합(闔: 닫다)하고 기(氣)가 동(動)하면 벽(闢: 열다)한다.
동(動)은 기(氣)가 이르는 까닭(:緣)하니 마치 큰 고래(:長鯨)가 물(:川)을 마시는(:飮) 것과 같거나, 큰 뿔잔(:巨觥)에 남은 방울(:滴)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이 시(時)에는 그 흡(吸)이 자연스럽고 들어갔는지도 알지 못하니 벽(闢: 열다)하여 받지 못함이 없고, 받아서 잉태(:孕)하지 못함이 없다.
다만 이 기(機)는 순식간(:瞬息間)에 있으므로, 만약 열리지(:闢) 않았을 때 투(投)하면 너무 조(早)하여 기회를 실(失)하게 되고, 이미 열렸을(:闢) 때 투(投)하면 너무 지(遲)하여 기회를 실(失)한다.
이에 해당(:當)하는 때(:際)는 특별한 영향(影響)이나 정상(情狀)이 있는데, 묵회(黙會)하여야 하고 말로는 얻을 수 없으니, 오직 심(心)이 있는 사람만이 이를 느낄 수 있다.
비(:雨)를 대(帶)하고 구름(:雲)을 시(施)하면 곡(穀: 양육하다. 곧 임신)을 못할 수도 드무니라.
둘째는 지속(遲速: 절정의 속도)이니, 곧 남녀(男女)가 합(合)하는 기(機)이다.
지(遲)한 자는 마땅히 지(遲)하여야 하고, 속(速)한 자는 마땅히 속(速)하여야 한다. 음양(陰陽)의 정질(情質)의 품(稟)은 같지(:齊) 않으니, 고(固)한 자는 지(遲)하고 불고(不固)한 자는 속(速)한다.
지(遲)하는 자는 속(速)한 것을 혐(嫌)하니, 기(饑)하였는데 식(食)을 기다렸다가 연(嚥)하는 것처럼 (빨리) 할 수 없다. 속(速)한 자는 지(遲)를 외(畏)하니 취(醉)하였는데 잔(:杯)을 첨(添)하여 토(吐)하는 것처럼 (천천히) 할 수 없다. 지(遲)와 속(速)이 똑 같지(:侔) 않으니, 서로 받아들이지(:投) 못한다.
지(遲)한 (남)자가 질(疾)한 (여)자를 만나면 마땅히 (남자가) 지름길(:逕) 같은 기(奇: 기묘한 대책)를 내도록 하여야 하고, (여자가) 먼저 성(聲)을 드러내지(:逞) 말아야 한다. 질(疾)한 (남)자가 지(遲)한 (여)자를 만나면 마땅히 (남자가) 정(靜)하게 스스로 지(持)하여야 하고 (여자를) 도(挑: 돋우다)하게 한 후에 전(戰)하여야 한다.
그 기(機)를 반전(:反)시킬 수 있으면 적절(:適)하게 그 회(會)를 이룰 수 있다.
셋째는 강약(强弱)이니 곧 남녀(男女)가 외(畏)하는 기(機)이다.
양(陽)이 강(强)하고 음(陰)이 약(弱)하면 (음이) 벌(:蜂)과 전갈(:蠆)처럼 외(畏)하고 창(:戈)과 창(:矛)처럼 서로를 피(避)할 것이다. 양(陽)이 약(弱)하고 음(陰)이 강(强)하면 (양이) 바람소리(:風)만 들어도 쓰러지고(:靡) 먼지(:塵)만 봐도 달아나게 된다(:北).
강약(强弱)은 서로를 깔보니(:凌) 도(道)가 동(同)하고 의(意)가 합(合)하는 경우가 드무니라.
그러나 약(弱)을 어루만져주는(:撫) 도(道)가 있으니, 반드시 인(仁)에 거(居)하고 의(義)로 말미암아서 그 마음(:心)을 얻는데 힘써야 한다. 강(强)을 극(克)하기는 사실 어려우니, 정(精)을 취(聚)하고 신(神)을 회(會)하지 않으면 어찌 그 백(魄)을 탈(奪)하리오?
이처럼 강(强)을 족히 외(畏)하지 않고 약(弱)이 족히 염려(:虞)하지 않는 것 또한 (성교하는) 그 사람의 어떠함에 달려있을 뿐이다.
넷째는 원근(遠近: 남자의 발기력)이니, 곧 남녀(男女)가 회(會)하는 기(機)이다.
혹 긴(:長) 재목(:材. 남자 성기)으로 문(:闥 여자 성기)을 밀어제치는(:排) 그 당돌(唐突)함을 감당(堪)할 수 없거나, 인륜(:倫)에 어긋나게(:覰) 문(門) 앞에 구부려서(:跽) 감히 당실(堂室: 여자 성기)을 엿보기만(:窺) 하면 거부(:拒)하려고 하여도 잘 안 되고 받아들이려고(:呑) 하여도 잘 안 되니, 이와 같이 규격(睽隔: 등지고 막히다)하면 어찌 만날 수 있겠는가(:姤)?
그런데 (남자의 흥분이) 물러가는(:斂迹) 것은 그 형(形)에 있지만, (발기하여) 멀리 가는(:致遠) 것은 그 기(氣)에 있다.
물러감(斂迹)은 일시(一時)에 있지만 양기(養氣)는 경각(頃刻)에 되지 않다.
교양(敎養: 가르쳐 기르다)하는 빠른 도모(:夙謀)가 없으면 결국 강경(剛勁)한 예기(銳氣: 남자의 발기력)도 없을 우려가 있다. 또 어찌 거듭된 포위망(:重圍)을 직접 뚫고 들어가(:直透) 임신(:鳩居鵲巢)시킬 수 있겠는가?
다섯째는 영허(盈虛)이니, 곧 남녀(男女)가 생(生)하는 기(機)이다.
위(胃)에는 영허(盈虛)가 있으니, 포(飽)하면 영(盈)하고 기(饑)하면 허(虛)한다. 신(腎)에는 영허(盈虛)가 있으니, 축(蓄)하면 영(盈)하고 설(泄)하면 허(虛)한다.
성쇠(盛衰)가 이로 말미암고 성패(成敗)도 이로 말미암느니라.
그 쓰임(:用)을 알지 못하면 합(合)하는 요행(:幸)을 얻어도 그 정상(:常)을 잃을(:失) 뿐이다.
여섯째는 노일(勞逸)이니, 곧 남녀(男女)의 기(氣)의 기(機)이다.
노(勞)하면 기(氣)가 산(散)하여 겁(怯)하고, 일(逸)하면 기(氣)가 취(聚)하여 견(堅)한다. (남자의 기는) 적(敵)을 파(破)하는 병기(兵機)가 되었다가 종식(種植)하는 농구(農具)가 되니, 그 동(動)에 마땅함을 얻으면 승(勝)하는 자가 많다.
일곱째는 회포(懷抱)이니 곧 남녀(男女)의 정(情)의 기(機)이다.
정(情)이 서로 잘 맞으면(:投) 합(合)하고, 정(情)이 어그러지면(:悖) 리(離)한다.
희락(喜樂)은 양(陽)을 따르므로, 양(陽)이 많으면 희(喜)가 많다. 울노(鬱怒)은 음(陰)을 따르므로, 음(陰)이 많으면 노(怒)가 많다.
양(陽)이 많으면 생기(生氣)가 많고, 음(陰)이 많으면 살기(殺氣)가 많으니, 생살(生殺)하는 기(氣)는 곧 현(賢) 혹은 우(愚)를 잉육(孕育)하는 기(機)이다.
종(從)할 바를 모르면 또한 어떻게 되겠는가?
여덟째는 암산(暗産)이니 곧 남자(男子)가 실(失)하는 기(機)이다.
'내가 강(强)한데, 어찌 자사(子嗣)를 염려(:虞)하겠는가?' 라고 말하지 말지니라. '내 나이가 장(壯)하니, 종(縱)하여도 어찌 거리끼겠는가(:妨)?' 라고 말하지 말지니라. 과(過)하면 좋은 때(:期)를 실(失)하고, 강(强)하면 산미(酸味: 수렴하는 약미. 곧 임신)는 없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또 득(得: 수정)하는 대로 실(失: 유산)하여도 알지 못하니,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이 되어도 이와 같을 뿐이다.
앞의 소산론(<小産論>)을 당연히 같이 살펴야 한다.
아홉째는 동치(童稚)이니 곧 여자(女子)의 시(時)의 기(機)이다.
갓 생긴 꽃망울(:苞)과 갓 생긴 꽃받침(:萼)은 생기(生氣)가 아직 서(舒: 펼치다)하지 않은 것이고, 갓 성인이 된 남자(:童)와 여자(:笄)는 천계(天癸)가 넉넉하지(:裕) 않다.
일찍이 열매가 덜 된(:未實) 쌀(:粒)을 파종(:種)할 수 있는 경우를 보았는가? (4번의 잠을 다) 채우지(:足) 않은 누에(:蠶)가 고치(:繭)가 될 수 있는 경우를 보았는가?
심력(心力)을 억지로 쓴다고 연쇠(年衰)한 자에게 (임신을) 기대(:待)할 수 있겠는가? 이 또한 그 기(機)를 모르기 때문이다.
열째는 이화(二火)이니 곧 남녀(男女)의 양(陽)의 기(機)이다.
군화(君火)는 심(心)에 있으니 심(心)은 그 군주(君主)이고, 상화(相火)는 신(腎)에 있으니 신(腎)은 그 근본(根本)이다.
이화(二火)가 상인(相因)하니 소리(:聲)가 없으면 (그 메아리도) 응(應)하지 않다.
따라서 심(心)은 마땅히 정(靜)하여야 하니, 정(靜)하지 않으면 화(火)가 이로 말미암아 동(動)하여 심(心)에서 신(腎)을 돋우니라(:挑). 선(先)이 심(心)이고 후(後)가 신(腎)이면 양(陽)이 음(陰)을 삭(爍)하니 면강(勉强: 억지로 힘쓰다)으로부터 출(出)한다. 면강(勉强)하면 기(氣)가 강(降)을 따르니 단전(丹田)이 수(守)를 실(失)하여 원양(元陽)의 본색(本色)을 실(失)한다.
신(腎)은 마땅히 족(足)하여야 하니, 신(腎)이 족(足)하면 양(陽)이 지(地)에서 기(起)하고 신(腎)에서 심(心)에 미치느니라. 선(先)이 신(腎)이고 후(後)가 심(心)이면 수(水)로 화(火)를 제(濟)하니, 자연(自然)에 본(本)한다. 자연(自然)하면 기(氣)가 승(升)을 주(主)하니, 백맥(百脈)이 똑 같이(:齊) 이르니라(:到). 이는 진실로 화육(化育)의 진기(眞機)이다.
영박(伶薄: 영리하지만 척박하다)한 남편(:夫)은 매번 면강(勉强)을 따르므로 대부분 허로(虛勞)를 범(犯)하니 어찌 자사(子嗣)를 말하겠는가? 박후(朴厚)한 자식(:子)은 항상 자연(自然)으로부터 말미암으니, 품물(品物)이 모두 형(亨)하다면 후인(後人)을 어찌 이를 염려(:慮)하겠는가?
이처럼 기(機)를 잘 아는 군자(君子)는 양도(陽道)의 진기(眞機)에 힘쓰는 도다!
3-2) 인사(人事) - 축첩(畜妾)
무고(無故)하게 첩(妾)을 두는 것은 절대 좋은 일(:事)이 아니다. 모든 반목(反目)과 패란(敗亂)이 대부분 여기서 말미암으니, 그만 둘 수 있으면 그만 두어야 한다. 이는 또한 제가(齊家)의 하나의 중요(:要)한 업무(:務)이기도 한다.
만약 년(年)이 지나 처(妻)가 쇠(衰)하여도 후손(:後)이 없어서 큰 일이 된다면 그 형세(:勢)가 어쩔 수 없으므로 (첩을) 두어야(:置) 한다.
그러나 (첩을) 두는(:置) 것은 쉬우나, 다스리기는(:畜) 어려우니라. 다스리는(:畜) 법(法)이 없으면 다스린다(:畜)는 이름(名)만 있고 다스리는(:畜) 실재(:實)는 없으니, 역시 다스리지(:畜) 않는 것과 같으니라.
다스리는(:畜) 법(法)에는 정황(情況)이 있고 침실(寢室)이 있다.
정황(情況)으로 말하자면, 본 부인(:主母)이 첩(妾)을 보면 대체로 낙종(樂從: 즐거이 따르다)이 출(出)하지 않으므로 진노(嗔怒)가 많거나 매리(罵詈)가 많거나 일로 인하여 그 기거(起居: 생활)를 책(責)하거나 일부러(:假借) 성(聲)이나 색(色)을 더하는데, 이는 모두 상정(常情)이니 반드시 이르는 바이다.
그러나 산육(産育)은 혈기(血氣)에서 말미암고 혈기(血氣)는 정회(情懷)에서 말미암으니, 정회(情懷)가 창(暢)하지 못하면 충임(衝任)이 불충(不充)하고 충임(衝任)이 불충(不充)하면 태잉(胎孕)이 불수(不受)한다는 것을 모르니라. 비록 첩(妾)을 두었다고 말하여도 이러하면 과연 무슨 유익(:益)이 있겠는가? 첩(妾)을 다스릴(:畜) 때 이와 같이 과(過)하게 엄(嚴)하면 안 된다.
또 침실(寢室)로 말하자면 마땅히 정(靜)하여야 하고 마땅히 원(遠)하여야 하니, 마땅히 이목(耳目)이 적은 곳이 묘(妙)한다.
사구(私構: 성교)할 때(:頃)에는 남자(男子)에게는 예(銳)가 마땅하고 여인(女人)에게는 수(受)가 마땅하니, 그 예(銳)와 그 수(受)는 모두 기(氣)로 말미암느니라. 이에 해당(:當)할 때(:時)에는 전적(專)으로 기(氣)가 취(聚)하여 앞으로 직(直)하여야 하니, 겁(怯)하면 기(氣)가 뇌(餒: 굶주리다)하여 섭(攝)하지 못하게 된다. 이것이 수(受)와 불수(不受)의 기(機)이다.
그런데 용겁(勇怯)의 유(由)는 그 권(權)이 심(心)에 있다. 심(心)이 이르는 곳에 기(氣)도 반드시 이르니라. 심(心)이 의구(疑懼)하면 심(心)이 부지(不止)하고, 심(心)이 부지(不止)하면 기(氣)도 부지(不止)한다.
혹 임기(臨期: 성교)에 들리는 소리로 경(驚)하면 기(氣)가 이(耳)에 있어 기(器)에 미치지 못하고, 견(見)하는 것으로 의(疑)하면 기(氣)가 목(目)에 있어 기(器)에 미치지 못한다. 분(忿)하거나 외(畏)하면 기(氣)가 심(心)에 결(結)하여 있어 기(器)에 이르지 못한다. 기(氣)가 이르지 못하면 마치 돌을 물에 던지듯이 물이 알지 못한다.
또 양진(兩陣)이 교봉(交鋒: 성교)할 때는 간사(:奸細)한 정탐꾼(:偵伺)을 가장 혐(嫌)하여야 한다. 하나의 마음(:一心)은 둘이 아니므로, 어떤 거짓말(:讒間)로 서로 마음이 이(離)한 것을 감당(堪)하겠는가? 침실(:閨)을 군병(:兵)의 기(機)로 생각한다면 본래 (한 사람이) 두 곳을 점령(:致)하지는 않을 것이니, 첩실(妾室)도 이와 같이 정(靜)하고 원(遠)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그러하지만 이는 금낭(錦囊: 비단 주머니. 중요한 일)을 위해 어찌할 수 없는 방편(:設)에 불과(不過)한다. 만약 (본 부인이) 고명(高明)하고 현숙(賢淑)하여 이러한 나의 말을 삼성(三省)한다면 오직 종묘(:宗祧)에만 염려(:慮)하여 질투(: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연(憐: 가엾게 여기다)하게 여기니, 더 가까이 하고 더 위로할 것이다. 원(遠)하게 하여야 한다는 설(說)이 어찌 인정(人情)에 관한 것이겠는가? 또 (첩이) 공손하고 삼가는(:恭謹) 좋은 사람이라면 조심스럽게(:小心) 본 부인의 치(治)를 받아들여 이미 행(幸)하다는 것을 받아들일 것이니, 또 어찌 '멀리하여야 경(敬)한다.'는 생각을 감히 하겠는가? 그렇다! 그렇다! 나로서는 어찌할 수가 없을 뿐이로다!
4-1) 약식(藥食) - 약식(藥食)
종자(種子)하는 방(方)은 본래 정(定)하여진 길(:軌)이 없으니, 사람에 따라 약(藥)을 쓰면 되니, 각기 마땅한 바가 있다. 따라서 한(寒)하면 마땅히 온(溫)하여야 하고 열(熱)하면 마땅히 량(凉)하여야 하며 활(滑)하면 마땅히 삽(澁)하여야 하고 허(虛)하면 마땅히 보(補)하여야 한다. 치우친(:偏) 바를 거(去)하면 음양(陰陽)이 섞어서(:和) 생화(生化)가 나타난다(:著).
요즘 사람들은 이러한 이(理)를 모르고 단지 전(傳)해지는 처방(方)만 아는데, 어찌 저 사람에게 마땅한 것이 또한 이 사람에게도 마땅하겠는가? 또 어떤 사람에게 우연히 중(中)하는 것을 보고는 적합 여부(:宜否)도 논(論)하지도 않고 그 신(神)함을 두루 전(傳)하여 경쟁적으로 서로 조제(:製)하여 복용하게 하니, 장삼(張三)의 모자(帽)를 이사(李四)가 쓸 수 없다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지금 10가지 방(方)을 뒤에다 기록(錄)하였으니, 마땅하게 선택(擇)하여 쓰면 제(濟)할 수 있을 것이다.
一. 부인(婦人)의 혈기(血氣)가 모두 허(虛)하여 경맥(經脈)이 부조(不調)하고 수잉(受孕)하지 못하면 오직 육린주(毓麟珠)를 마땅함에 따라 가감(加減)하여 쓰면 가장 묘(妙)한다. 그 다음은 팔진익모환(八珍益母丸)도 좋으니라. 만약 장한(臟寒) 기체(氣滯)가 심(甚)하면 속사강생단(續嗣降生丹)도 묘(妙)한다.
一. 남자(男子)의 장기(臟氣)가 평화(平和)하면서도 오직 정혈(精血)만 부족(不足)하면 마땅히 환소단(還少丹) 금녹환(全鹿丸) 무비산약환(無比山藥丸)으로 하여야 한다.
만약 우신(右腎)의 양기(陽氣)가 부족(不足)하면 마땅히 우귀환(右歸丸)이나 육린주(毓麟珠)가 모두 묘(妙)한다.
만약 양위(陽痿) 정쇠(精衰)하고 허한(虛寒)하며 나이를 지나 사(嗣)하기가 어려우면 반드시 마땅히 찬육단(贊育丹)으로 하여야 한다.
만약 양성(陽盛) 음허(陰虛)하고 좌신(左腎)의 정기(精氣)가 부족(不足)하면 마땅히 좌귀환(左歸丸)이나 연년익사단(延年益嗣丹)으로 하여야 한다.
만약 화성(火盛) 수휴(水虧)하여 내열(內熱)이 많으면 마땅히 대보음환(大補陰丸)으로 하여야 한다.
이 외에 하거종옥환(河車種玉丸) 오계환(烏鷄丸) 흑석단(黑錫丹)의 종류(類)에서 모두 참작(酌)하여 쓸 수 있다.
4-2) 약식(藥食) - 용약(用藥)하는 법(法)
남녀(男女)의 태잉(胎孕)은 결국 혈기(血氣)로 말미암느니라.
만약 혈기(血氣)가 화평(和平)하고 장성(壯盛)하면 잉육(孕育)하지 않음이 없고, 또한 육(育)에도 장(長)하지 않음이 없다. 잉(孕)할 수 없는 경우는 기혈(氣血)의 박약(薄弱)이 아님이 없고, 육(育)하여도 장(長)할 수 없는 경우도 근본(根本)의 불고(不固)가 아님이 없다.
곧 제병(諸病)이 서로 더하여지면 혈기(血氣)를 상손(傷損)하지 않음이 없다. 만약 사역(邪逆)이 미제(未除)하면 단지 당연히 달인 약제(:劑)로 그 대략(:略)을 바로 잡아야(:撥正) 하고, 바로 잡은(:撥正) 후에는 반드시 기혈(氣血)을 위주로 조복(調服)하여야 만전(萬全)의 대책(:策)이 된다.
따라서 종자(種子)하는 환산(丸散)을 쓰려면 절대 산풍(散風) 소도(消導) 및 패혈(敗血) 고한(苦寒) 준리(峻利)하는 등의 약(藥)들을 잡스럽게(雜) 쓰면 안 된다. 구복(久服)하는데, 이러한 종류(類)를 더하여 구복(久)하면 기(氣)를 증(增)하여, 도리어 기혈(氣血)을 상(傷)하고 잉(孕)을 어렵게(:難) 하지 않음이 없다.
또 향부자(香附子)의 일물(一物)에 대해 왕호고(王好古)가 이르기를 "부인(婦人)들의 선약(仙藥)이긴 하지만, 많이 복용하면 이 또한 기(氣)를 주(走)하게 한다." 하였다.
그런데 후세(後世)에는 '기(氣)를 주(走)하게 한다.'는 말은 하지 않고, 단지 서로 전(傳)하기를 "향부자(香附子)는 부인(婦人)의 요약(要藥)이다."고만 하니, 이로 말미암아 부인(婦人)을 치(治)할 때 허실(虛實)을 논(論)하지도 않으면서 쓰지 않는 곳이 없게 되었다.
향부자(香附子)는 기(氣)가 향(香)하고 미(味)가 신(辛)하며 성(性)이 조(燥)하여 오직 개울(開鬱) 산기(散氣)하고 행혈(行血) 도체(導滯)하는데 장(長)하는 바가 있다.
그러나 만약 기허(氣虛)에 쓰면 크게 설기(泄氣)하고 혈허(血虛)에 쓰면 크게 모혈(耗血)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느니라.
예로 고방(古方)의 여금단(女金丹)과 사제향부환(四製香附丸)의 종류(類)는 오직 기실(氣實) 혈체(血滯)한 자에게 써야 마땅하다. 요즘 부인(婦人)은 90%가 허(虛)한데, 돌이켜 보건대 '요약(要藥)'이라는 이 두 글자로 인하여 일개(一槪)로 쓸 수가 있겠는가?
부당(不當)한 곳에 사용하면 점차 모(耗)하고 점차 약(弱)하여지니, 태원(胎元)의 기(氣)가 반드시 도리어 아득(:杳然)하게 된다.
4-3) 약식(藥食) - 음식(飮食)
음식(飮食)의 종류(類)는 사람의 장기(臟氣)가 각기 마땅한 바가 있으나, 과(過)하게 고집(:拘執)할 필요는 없는 듯 한다.
오직 주(酒)는 많으면 마땅하지 않다. 태(胎)에 종(種)한 선천(先天)의 기(氣)는 극(極)히 마땅히 청초(淸楚)하여야 하고 극(極)히 마땅히 충실(充實)하여야 한다. 그런데 주(酒)의 성(性)은 음열(淫熱)하니, 성(性)을 난(亂)하게 할 뿐만 아니라 또한 정(精)을 난(亂)하게 한다.
정(精)은 주(酒)에 의해 난(亂)하면 습열(濕熱)이 반(半)이 되고 진정(眞精)이 반(半)이 될 뿐이다. 정(精)이 충실(充實)하지 않으면 태원(胎元)이 불고(不固)하고 정(精)에 습열(濕熱)이 많으면 나중(:他日)에 두진(痘疹) 경풍(驚風) 비패(脾敗)의 종류(類)가 대부분 이로부터 만들어(:造)지느니라.
따라서 그 기(期)를 선택(擇)하여 종(種)을 포(布)하려면 반드시 먼저 삼가는 바가 있어야 한다. 다음(多飮)은 소음(少飮)보다 못하고, 소음(少飮)은 불음(不飮)보다 못하니, 이 또한 태원(胎元)의 하나의 큰 기(機)이다. 자사(子嗣)를 계(計)하려면 이로 인하여 후회(:後着)하지 말지니라.
5-1) 질병(疾病) - 남병(男病)
질병(疾病)에서 태잉(胎孕)에 관한 것은 남자(男子)는 정(精)에 있고 여인(女人)은 혈(血)에 있으니, 이들의 부족(不足)으로 그러한 것이 아님이 없다.
남자(男子)의 부족(不足)에는 정활(精滑) 정청(精淸) 정랭(精冷)이 있고, 임사(臨事)에 불견(不堅)하거나 유(流)하여 불사(不射)하거나 몽유(夢遺)가 빈삭(頻數)하거나 변탁(便濁) 임삽(淋澁)한 것이 있다. 혹 호색(好色)으로 음허(陰虛)에 이르고 음허(陰虛)하면 요신(腰腎)이 통비(痛憊)한다. 혹 남풍(男風)을 호(好)하면 양극(陽極)에 이르니 양극(陽極)하면 항(亢)하여 망음(亡陰)한다. 혹 과(過)하게 강고(强固)하니 강고(强固)하면 승패(勝敗)가 흡족(:洽)하지 않을 것이다. 혹 평소에 음산(陰疝)을 앓으니, 음산(陰疝)하면 간신(肝腎)이 괴리(乖離)한다. 이 외에 혹 양쇠(陽衰)하니 양쇠(陽衰)하면 다한(多寒)한다. 혹 음허(陰虛)하니 음허(陰虛)하면 다열(多熱)한다.
이와 같은 것들은 모두 남자(男子)의 병(病)이니, 전부 부인(婦人)에게 핑계(:諉)하면 안 된다. 혹 그 이유(由)를 알고 그 치(治)가 마땅하다면 그것을 치(治)하여야 하고, 반(反)이 마땅하면 그것을 반(反)하여야 한다.
반드시 먼저 나에게 있고 후에 부인(婦人)에게 이르면 사(事)를 제(濟)하지 못할 것이 없다.
5-2) 질병(疾病) - 여병(女病)
부인(婦人)에게 중(重)한 바는 혈(血)에 있다. 혈(血)은 정(精)과 합하여질(:構) 수 있으므로 태잉(胎孕)이 된다.
그 병(病)을 살피려면 오직 경후(經候)를 보아야 하고, 그 병(病)을 치(治)하려면 오직 음분(陰分)을 조(調)하여야 한다.
경(經)은 곧 혈(血)이고 혈(血)은 곧 음(陰)이다. 음(陰)은 월(月)에 응(應)하므로 매달 예측(:期)할 수 있으니, 이것이 그 정상(:常)이다.
병(病)에 이르면 선(先)하거나 후(後)하거나, 한 달에 두 번 이르거나, 두 달에 한 번 이르거나, 고절(枯絶)하여 불통(不通)하거나, 자주 와서 부지(不止)하거나, 먼저 통(痛)하면서 후에 행(行)하거나, 먼저 행(行)하면서 후에 통(痛)하거나, 담색(淡色) 흑색(黑色) 자색(紫色)이 있거나, 어(瘀)가 있어 조(條)나 편(片)이 되거나, 정혈(精血)이 불충(不充)하여 화(化)하여 백대(白帶)나 백탁(白濁)을 작(作)하거나, 자궁(子宮)이 허랭(虛冷)하여 양기(陽氣)가 생화(生化)하지 못하거나, 혈(血) 중의 복열(伏熱)로 음기(陰氣)가 응성(凝成)하지 못하거나, 혈징(血癥)이거나, 기비(氣痞)이거나, 자장(子臟)가 불수(不收)하거나, 월수(月水)가 불통(不通)하거나 하니, 이는 모두 진음(眞陰)의 병(病)이다.
음(陰)이 병(病)하여 음혈(陰血)이 부족(不足)하면 태(胎)를 육(育)하지 못하고, 음기(陰氣)가 부족(不足)하면 태(胎)를 섭(攝)하지 못한다. 이러한 섭(攝)과 육(育)의 권(權)은 결국 명문(命門)에 있으니, 바로 명문(命門)은 충임(衝任)의 혈해(血海)이고, 태(胎)는 혈(血)을 위주로 하기 때문이다. 혈(血)은 스스로 생(生)하지 못하니, 또한 기(氣)를 위주로 한다. 이는 모두 진음(眞陰)을 말한다.
따라서 명문(命門)을 보(補)하면 그 기(氣)나 혈(血) 모두 보음(補陰)이라 말할 수 있으니, 보음(補陰)하는 법(法)은 곧 배근(培根) 고본(固本)하는 도(道)이다. 장년(:壯)에서부터 노인(:老)에 이르기까지 사람마다 결(缺)하면 안 되는 것이고, 하물며 선천(先天) 후천(後天)이 시작되는 기초(:肇基)이므로 또한 이를 버리면(:舍) 무엇으로 구하는가? 따라서 조경(調經) 종자(種子)하는 법(法) 또한 오직 명문(命門)을 전보(塡補)하여 양기(陽氣)를 고석(顧惜: 돌아보고 아끼다)하는 것을 위주로 하여야 한다.
그런데 정혈(精血)의 도(都)는 명문(命門)에 있고 정혈(精血)의 원(源)은 또 다시 이양(二陽)인 심비(心脾)의 사이에 있다.
심(心)은 혈(血)을 주(主)하니, 심(心)을 양(養)하면 혈(血)이 생(生)한다. 비위(脾胃)는 음식(飮食)을 주(主)하니 비위(脾胃)를 건(健)하게 하면 기(氣)가 포(布)한다.
두 가지가 서로 화(和)하면 기(氣)가 창(暢)하고 혈(血)이 행(行)한다.
이처럼 정지(情志)나 음식(飮食)도 또한 당연히 경맥(經脈)보다 먼저 계(計)하여야 하니, 이 또한 보음(補陰)의 근원(源)을 보(補)하는 것이 아님이 없다.
본말(本末)과 선후(先後)를 알지 못하고 함부로 치(治)하면 또한 어찌 족히 조경(調經) 종자(種子)하는 법(法)을 말할 수 있겠는가?
이상으로 의린책(<宜麟策>)을 마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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