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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학 (華嚴學)
1. 개념 및 정의
좁은 의미에서의 화엄학(華嚴學, science of huayan)은대승경전(大乘經典)인
『화엄경(華嚴經)』과 그 교설에 근거하여 독특한 교학 체계를 형성한 화엄종(華嚴宗)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으로 정의될 수 있다.
『화엄경』은 깨달음의 세계를 가장 잘 드러낸 대승경전으로 높이 평가되었으며,
화엄종에서는 그 교설을 정교하게 이론적으로 조직화했다.
이런 까닭에 화엄학은 『화엄경』과 화엄종의 사상을 탐구하는 학문으로 간주되었으며,
화엄철학(華嚴哲學, philosophy of huayan)이나 화엄사상(華嚴思想, huayan thought)으로 지칭되었다.
최근에는 화엄사상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비교종교학·문학·미술사학 등의
다양한 방면에서 학제적인 연구가 시도되고 있다.
이런 흐름을 반영한다면, 넓은 의미에서의 화엄학은 화엄과 관련된 대상을
주제로 삼아 탐구하는 학문으로 정의되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앞으로의 화엄학은 사상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다양한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2. 역사와 주요 연구영역
학문으로서 화엄학의 역사는 서구의 연구방법론이 도입된 근대 이후에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화엄학자들은 『화엄경』이
편찬되었던 4세기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에 따르면 화엄학의 역사는 편의상 근대 이전과 근대 이후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화엄학의 역사에서 기준점이 되는 것은 ‘근대’라기보다는 ‘동아시아’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화엄학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성립되고 발달된 사상이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화엄학이 발달한 시기는
대략 5세기부터 10세기까지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인적·물적인 교류가 활발하였는데
그 중심은 불교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남북조 시대에 불교 경전이 한역되면서 활발히 연구되었으며,
수당 시대에는 다양한 불교 종파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당대(唐代)에는 화엄종이 크게 융성하였으며,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과 일본에서 전개된 화엄사상은 비록 중국의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독자적으로 전개되었다. 이로 인해 화엄학자들은 『화엄경』의 성립사와
중국·한국·일본에서 전개된 화엄사상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1) 『화엄경』의 편찬과 한역(漢譯)
『화엄경』은 인도에서 성립된 대승경전으로 초기부터
대부(大部)의 경전으로 완성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화엄부에 속하는 각각의 경전들은 중국에 전래되어 후한(後漢) 말엽부터
육조(六朝) 초기에 걸쳐 한역됐지만, 『화엄경』 전체의 편집의 시기나
지역에 관해서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인도에서 성립·유포되었던 경전들이 400년경에 서역(西域),
현재의 중앙아시아 코탄(Khotan) 부근에서 대부의 경전으로
편찬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왜냐하면 중국에서 맨 처음 한역된 『화엄경』의 산스크리트어본을
지법령(支法領)이 중앙아시아의 코탄에서 입수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화엄경』은 어느 한 시기에 한꺼번에 만들어진 경전이 아니라
여러 대승경전을 편집하고 증보해서 만들어진 집성 경전(集成經典)이라는 것이다.
『화엄경』의 정확한 명칭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으로
네 가지가 현존하는데, 세 가지는 한역본이다.
① 동진(東晋) 시기인 421년경에 북인도 출신의 불타발타라(Buddhabhadra, 359~429)가
60권을 한역했는데, 이는 ‘진역 화엄(晉譯華嚴)’ 또는 ‘60화엄’으로 약칭된다.
② 당대에는 측천무후(則天武后, 624~705)의 후원으로 699년에
실차난타(實叉難陀, Śikṣānanda, 652~710)가 80권을 한역하였는데,
이는 ‘당역 화엄(唐譯華嚴)’ 또는 ‘80화엄’으로 약칭된다.
③ 당대인 798년에 반야(般若, Prajñā)가 『화엄경』의 「입법계품(入法界品)」에 해당하는
경전이 증대된 것을 한역하였는데, 이는 ‘40화엄’으로 약칭된다.
2) 『화엄경』의 구성과 내용
『60화엄』과 『80화엄』은 완역본이지만 그 구성과 분량에 차이가 있다.
『60화엄』은 7처(處)8회(會)의 34품, 『80화엄』은 7처9회의 38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시 말해 경은 지상의 3곳과 천상의 4곳에서 설해졌으며,
그 모임은 8번 또는 9번이라는 것이다.
후대로 갈수록 『60화엄』보다는 『80화엄』을 중심으로 화엄교학이 전개되었으며,
『80화엄』의 구성을 10처10회의 40품으로 보는 견해도 생기게 된다.
『80화엄』의 전체 주제는 ‘깨달음’이며, 7처9회의 39품은 내용상
세 개의 소주제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초회(初會)의 6품에는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깨달음과
연화장(蓮華藏) 세계의 본질 및 양상이 밝혀져 있다.
제2회부터 제8회까지의 32품에는 부처님의 세계에 이르는 보살의 계위,
즉 십주(十住)·십행(十行)·십회향(十迴向)·십지(十地)가 설해져 있다.
제9회의 1품인 「입법계품(入法界品)」에는 선재동자(善財童子)가
53명의 선지식(善知識)을 찾아다니면서 가르침을 구하는 여정이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화엄경』에서는 비로자나불이 직접 법을 설하지 않으며,
보현(普賢)과 문수(文殊) 등의 보살들이 대신해서 설하고 있다.
이에 착안하여 보살의 성격에 따라 경의 계통을 보현 경전계,
문수 경전계, 십지 경전계로 나누기도 한다.
즉 보현보살이 비로자나불의 세계를 설하며,
문수보살이 중생에게 믿음을 일으키도록 설하며,
법혜(法慧) 등의 보살이 천상에서 향상되는 보살도(菩薩道)를 설한다.
이러한 분류를 통해 『화엄경』은 훌륭하게 잘 조직된 경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3) 화엄종의 성립과 전개
세친(世親, Vasubandhu)
중국에서는 5세기 초에 불타발타라에 의해 『60화엄』이 한역된 이후,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 의해 경이 연찬이 되고 신앙이 되었다.
북방에서의 『화엄경』 연구는 지론종(地論宗)에 의해서 진전되었다.
늑나마제(勒那摩提)는 『화엄경』의 「십지품(十地品)」에 해당하는
『십지경(十地經)』에 대한 세친(世親)의 주석서인 『십지경론(十地經論)』을 511년에 한역했다.
이를 계기로 경의 사상을 해명하는데 관심을 기울였는데,
『화엄경』을 법계(法界)의 사상을 드러낸 최고의 가르침으로 높이 평가했다.
남방에서의 『화엄경』 연구는 삼론종(三論宗)에 의해서 진전되었다.
삼론종의 법랑(法朗, 507~581)은 『화엄경』을 중요시하였으며,
길장(吉藏, 549~623)은 『화엄유의(華嚴遊意)』를 저술하였다.
한편 신자들이 정기적으로 모여서 『화엄경』을 독송(讀誦)하거나
승려로부터 강의를 듣는 하는 법회가 성행하였다.
이런 법회는 화엄재(華嚴齋)·보현재(普賢齋)·방광재(方廣齋)·
화엄사(華嚴社) 등으로 불렸으며, 민간신앙 조직으로 발전해나갔다.
이와 같이 『화엄경』의 가르침이 신성시되면서 화엄 신앙이 성행하였는데,
화엄종이 성립되는 사회적 기반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 아래 『화엄경』의 가르침을 전면에 내세우는 종파인 화엄종이 형성되었다.
화엄종은 두순(杜順, 557~640)을 초조(初祖)로 삼아
지엄(智儼, 602~668)→법장(法藏, 643~712)→징관(澄觀, 738~839)→종밀(宗密, 780~840)의
오조(五祖)에 의해서 전개된 것으로 여겨진다.
화엄학자들은 화엄오조(華嚴五祖)라는 계보는 후대에 선종(禪宗)의 영향으로 조직된 것으로 추정한다.
화엄종의 초조로 여겨지는 두순은 『화엄경』의 독송과 실천을 중요시하였다고 전해진다.
선정(禪定) 수행자로 널리 알려진 그에게 『법계관문(法界觀門)』과 『오교지관(五敎止觀)』이 있다고 하지만,
모두 그가 찬술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화엄종의 제2조로 여겨지는 지엄은 화엄교학의 확립자로 평가된다.
그는 12세에 두순에게 출가한 이후 지론종과 섭론종(攝論宗)의
학승들에게서 수학하면서 『화엄경』의 연구에 몰두하였다.
그는 지론종의 영향을 크게 받아서 화엄교학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그의 저서로는 『60화엄』의 주석서인 『화엄경수현기(華嚴經搜玄記)』,
『화엄경공목장(華嚴經孔目章)』, 『오십요문답(五十要問答)』,
『일승십현문(一乘十玄門)』 등이 있다.
화엄종의 제3조로 여겨지는 법장은 화엄교학의 대성자로 평가된다.
그는 국제색을 띤 당나라 문화의 영향으로 불교 이외의 학문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추었으며, 당시까지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하여
화엄교학의 이론체계를 완성시켰다.
그는 신역유식(新譯唯識)으로 불리는 법상종(法相宗)의 사상을 검토하여
화엄사상과의 차이점을 명확히 하였다. 뿐만 아니라 당시의 여러 불교 이론을
여래장(如來藏)사상으로 통합시키면서 화엄사상의 우월성을 강조하였다.
화엄 관련 저술로는 『화엄오교장(華嚴五敎章)』, 『화엄경지귀(華嚴經旨歸)』와
『화엄삼보장(華嚴三寶章)』, 『60화엄』의 주석서인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 등을 꼽을 수 있다.
이통현(李通玄, 635~730)은 당시 불교계와 교유하지 않았지만 만년(晩年)에
『화엄경』에 심취하여 법장의 화엄 관련 저작을 섭렵했던 거사(居士)였다.
그는 『80화엄』의 주석서인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을 저술하였는데,
당시의 화엄사상가들과는 달리 『역경(易經)』과 『노자(老子)』 등의
중국 사상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화엄경』을 해석하였다.
이외에 『결의론(決疑論)』, 『십명론(十明論)』 등을 저술하여 독자적인 사상을 펼쳐 나갔다.
혜원(慧苑, 673?~743?)은 스승인 법장의 작업을 이어받아 『80화엄』의 주석서인
『화엄경간정기(華嚴經刊定記)』를 완성하였다. 그는 스승과는 달리 여래장 사상을 최상으로
하는 교판(敎判)을 세워 독자적인 논의를 전개해 나갔다. 이런 이유로 그는 후대에 맹렬히
비판받았으며, 결국 화엄종의 계보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다.
화엄종의 제4조로 여겨지는 징관은 화엄교학을 정비하면서 교관겸수(敎觀兼修)의 전통을
확립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혜원의 제자인 법선(法詵)에게서 화엄교학을 배웠으며, 오대산의 대화엄사(大華嚴寺)에
들어가서 『80화엄』의 주석서인 『화엄경소(華嚴經疏)』와 그 주석에 대한 해설서인
『수소연의초(隨疏演義鈔)』를 저술하였다.
그는 사종법계(四種法界)를 활용하여 일진법계설(一眞法界說)을 전개시켰으며,
비로자나·보현·문수의 삼성원융관(三聖圓融觀)을 발전시켰다.
또한 그는 두순의 저작으로 알려진 『법계관문(法界觀門)』을 주석하기도 했으며,
『법계현경(法界玄鏡)』을 저술하기도 했다.
화엄종의 제5조로 여겨지는 종밀은 화엄과 선의 통합을 추구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원각경(圓覺經)』을 통해 깨우침을 얻었으며, 징관의 『화엄경소』를 접한
이후에 확연히 깨달음을 얻어서 징관에게 사사하였다.
그는 깨달음을 얻은 이후에도 『원각경』에 심취하여 『원각경대소(圓覺經大疏)』와
『원각경대소초(圓覺經大疏鈔)』를 저술하였다. 이외에 『선원제전집도서(禪源諸詮集都序)』,
『중화전심지선문사자승습도(中華傳心地禪門師資承襲圖)』, 『원인론(原人論)』 등의 저술을 남겼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화엄종의 오조(五祖) 가운데 제2조인 지엄과 제3조인 법장이
화엄교학을 확립시키는 데 기여했으며, 이를 제4조인 징관과 제5조인 종밀이 계승하였다고 볼 수 있다.
송대(宋代)에는 선종이 크게 융성하면서 화엄종이 점차 쇠퇴하였으며, 화엄과 다른 사상의 통합을 강조하게 된다.
이런 경향은 송대 이후에 더욱 심화되어 화엄과 선뿐만 아니라 화엄과 밀교 간의 융합을 추구하기도 하였다.
4) 한국 화엄사상의 전개
원효(元曉, 617~686)
삼국에 불교가 전래되어 공인된 시기는 고구려와 백제가 4세기경, 신라는 6세기경이지만,
『화엄경』의 전래에 대한 문헌 기록은 현존하지 않는다.
다만 신라의 자장(慈藏, 590~658)이 ‘낙성식 때에 『화엄경』 1만 게송을 설했다’는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기록에 근거해서, 늦어도 7세기경에는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화엄사상에 대한 본격적인 체계화는 남북국시대에 접어들어서 가능해졌는데, 대표적인 인물은 원효와 의상이다.
원효(元曉, 617~686)는 당나라로의 유학을 포기한 이후 수많은
불교 경론을 탐독하여 독자적인 사상체계를 형성하였다.
그는 불교의 교설을 삼승(三乘)과 일승(一乘)으로 나누고
일승을 다시 분교(分敎)와 만교(滿敎)로 나누었다.
다시 말해 삼승별교(三乘別敎)·삼승통교(三乘通敎)·일승분교(一乘分敎)·일승만교(一乘滿敎)의
사교판(四敎判)을 제시하였으며, 『화엄경』의 가르침은 일승만교(一乘滿敎)에 해당된다고 보았다.
화엄 관계 저술로 『화엄강목(華嚴綱目)』 1권, 『화엄경소(華嚴經疏)』 10권, 『화엄경종요(華嚴經宗要)』
『화엄입법계품초(華嚴入法界品抄)』 2권, 『일도장(一道章)』 1권, 『보법기(普法記)』 등이 알려져 있지만,
『화엄경소』의 일부만 현존한다.
해동화엄의 초조로 일컬어지는 의상(義湘, 625~702)은 당나라로 유학을 가서
화엄종의 제2조인 지엄에게서 화엄교학을 전수받았다.
그는 지엄이 입적하기 3개월 전에 『화엄경』의 핵심사상을 간명하게 드러낸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를지어서 스승으로부터 인가받았다.
이외에 화엄관계 저술로 『십문간법관(十門看法觀)』 1권, 『입법계품초기(入法界品鈔記)』 1권,
『백화도량발원문(白花道場發願文)』 1편 등이 알려져 있다.
현존하는 것은 『화엄일승법계도』, 『백화도량발원문』의 단간(斷簡), 『일승발원문(一乘發願文)』의 일부이다.
의상(義湘, 625~702)
의상의 대표적인 저술인 『화엄일승법계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반시(槃詩)인데,
법계도인(法界圖印)과 법성게(法性偈)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화엄사상을 하나의 도인(圖印)과 7언 30구 210자의 게송으로 드러내고 있다.
법성게는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으로 시작되는데, 도인은 이 구절의
‘법(法)’이라는 글자에서 시작하여 굴곡을 따라 구불구불 가다가
‘구래부동명의불(舊來不動名爲佛)’의 ‘불(佛)’이라는 글자로 끝난다.
도인의 한가운데에는 불(佛)·법(法)·중(衆)이 나란히 배열되었는데,
이를 통해 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를 구족하도록 하였다.
이와 같이 의상의 화엄사상에서 키워드는 법성(法性)이며,
『화엄일승법계도』에서는 이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의상의 화엄사상은 『화엄일승법계도』에 대한 주석의 형태로 계승되었으며,
한국 화엄사상의 주류를 형성하였다.
다시 말해 의상의 제자들이 편찬한 『법계도기총수록(法界圖記叢隨錄)』,
균여(均如, 923~973)의 『일승법계도원통기(一乘法界圖圓通記)』,
김시습(金時習)의 『대화엄일승법계도주병서(大華嚴一乘法界圖註幷序)』,
유문(有文)의 『법성게과주(法性偈科註)』로 이어지고 있다.
균여는 희랑(希朗)의 북악(北岳)을 이어받았지만
관혜(觀惠)의 남악(南岳)과의 사상적 통합을 추구하였다.
또한 그는 지엄과 법장의 저술들을 면밀히 연구하여
『석화엄교분기원통초(釋華嚴敎分記圓通鈔)』,
『석화엄지귀장원통기(釋華嚴旨歸章圖通記)』,
『화엄삼보장원통기(華嚴三寶章圖通記)』,
『십구장원통기(十句章圖通記)』 등과 같은 주석서를 남겼다.
균여 이후의 화엄사상은 선과의 융합에 초점이 맞추어지는데,
대표적인 인물로 지눌(知訥)을 꼽을 수 있다.
지눌은 이통현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에서
선과 화엄이 상통한다는 점을 발견하고서
『화엄론절요(華嚴論節要)』와 『원돈성불론(圓頓成佛論)』을저술하였다.
다시 말해 그는 선(禪)의 입장에서 화엄과의 통합에 관심을 보였는데,
이러한 경향은 후대로 갈수록 심화되었다.
1) 주요 용어
• 오교십종(五敎十宗)
화엄종의 제3조인 법장(法藏)은 당시까지의 교상판석(敎相判釋)을
종합하여 화엄종의 교상판석으로 오교십종을 제시하였다.
오교(五敎)는 법(法)을 분류한 것이고,
십종판(十宗判)은 법의 이치에 따라 분류한 것이다.
오교
소승교(小乘敎), 대승시교(大乘始敎), 대승종교(大乘終敎), 돈교(頓敎), 원교(圓敎)이다.
십종판
아법구유종(我法俱有宗), 법유아무종(法有我無宗), 법무거래종(法無去來宗),
현통가실종(現通假實宗), 속망진실종(俗妄眞實宗), 제법단명종(諸法但名宗),
일체개공종(一切皆空宗), 진덕불공종(眞德不空宗), 상상구절종(相想俱絶宗),
원명구덕종(圓明具德宗)이다.
『화엄경』의 가르침은 완전하고 원만한 가르침인
원교와 별교일승(別敎一乘)의 법문인 원명구덕종에 해당한다.
• 사종법계(四種法界)
진리의 세계인 법계(法界, dharma-dhātu) 네 가지이다.
사법계(事法界), 이법계(理法界), 이사무애법계(理事無礙法界),
사사무애법계(事事無礙法界)로 나누어 설명한 것이다.
사법계는 차별적인 현상의 세계를 가리키며,
이법계는 우주의 본체로서 평등한 세계를 가리킨다.
이사무애법계는 본체와 현상은 결코 떨어져 있을 수 없어서 걸림 없는
상호 관계 속에 있는 것을 가리킨다.
사사무애법계는 현상과 현상이 서로 원인이 되어 융합하는 것,
즉 현상계 그 자체가 절대적인 진리의 세계인 것을 가리킨다.
• 십현문(十玄門)
십현연기(十玄緣起)라고도 하며, 10가지 문으로써 무진원융(無盡圓融)하고
무애자재(無礙自在)한 뜻을 드러내고 있다.
10가지 문의 순서와 내용이 일정하지 않은데, 법장은 경우에도 『화엄오교장』과
『화엄경탐현기』에서 다르게 제시되어 있다.
전자를 고십현(古十玄), 후자를 신십현(新十玄)이라고 부른다.
신십현은 동시구족상응문(同時具足相應門), 광협자재무애문(廣狹自在無礙門),
일다상용부동문(一多相容不同門), 제법상즉자재문(諸法相卽自在門),
은밀현료구성문(隱密顯了俱成門), 미세상용안립문(微細相容安立門),
인다라망경계문(因陀羅網境界門), 탁사현법생해문(託事懸法生解門),
십세격법이성문(十世隔法異成門), 주반원명구덕문(主伴圓明具德門)이다.
동시구족상응문은 총설에 해당되는데, 10가지 뜻이 동시에 상응하여
일대연기(一大緣起)를 이루어 전후(前後)·시종(始終) 등의 차별이 없는 것을 가리킨다.
• 육상원융(六相圓融)
6가지 뜻이 서로 융섭(融攝)하는 것을 밝히는 것으로,
이를 통해 무진연기(無盡緣起)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육상(六相)은 총상(總相), 별상(別相), 동상(同相), 이상(異相), 성상(成相), 괴상(壞相)을 가리킨다.
이는 총별(總別), 동이(同異), 성괴(成壞)라는 세 쌍의 대립되는 개념이나 모습이
서로 원융무애(圓融無碍)한 관계에 놓여 있어 하나가 다른 다섯을 포함하면서도
여섯이 그 나름의 모습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화엄사상 (華嚴思想) flower garland sutra
불교의 세계관, 또는 우주관으로서 우주의 모든 사물은 서로 인연이 있어 발생하기도 하고
소멸하며 시간과 공간 속에서 서로 원인이 되기도 하고 하나로 융합되기도 한다는 생각이다.
원래는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며,
원어의 산스크리트어는 Mahavajplya Buddha-gạṇda-vyūha-sūtra다.
불교경전 중 하나인 『화엄경』에서 밝히고 있는 사상으로 법계(法界, dharma-dhatu),
육상원융(六相圓融), 상입상즉, 무진연기 등으로 분류하여 설명하고 있다.
먼저 법계란 인간의식의 대상이 되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한다.
이 모든 것은 일심(一心), 즉 하나의 마음으로 통괄되기도 하고
하나가 다시 모든 것이 되는 것을 일컫는다.
그래서 우주가 하나의 꽃으로 표현되어 현상과 본실체의
양면으로 관찰해 나가는데 이는 다음의 네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첫째는 사법계(事法界)로서 모든 차별 있는 세계를 뜻한다.
즉, 우주의 모든 것은 하나하나 모두 인연에 의해
화합된 것이므로 제각기 성분과 한계를 지니고 구별되어 나타난다.
둘째는 이법계(理法界)로서 우주의 근본 실체, 즉 평등한 세계를 말한다.
우주 속 사물은 그 근본 실체가 모두 진여(眞如, tathata),
즉 진실로 영원불변하다는 것이다.
셋째는 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로서 이(理)와 사(事)가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즉 본실채와 현상계가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걸림 없는 상호관계 속에 있다는 것을 말한다.
넷째는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로서 나타난 현상계
그 자체가 절대적인 진리의 세계라는 뜻이다.
모든 사물에는 객체가 있고 또 작용이 있으며 제각기 인연으로
일어나 각각 자성을 지키고 있지만 사(事)와 사(事)를 서로
상대시켜 보면 많은 인연이 상응하여 일연(一緣)을 이루고 있다.
이 일연이 널리 퍼져 있는 다연과 연계되어 서로의 작용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교류하여 사사무애(事事無碍)하고,
그것이 끝없이 펼쳐져 우주가 되는 것이다.
이 우주의 현상을 체계적으로 관찰해 설명한 것이 십현연기설(十玄緣起說)과 육상원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