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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미술의 만남
목 차
1장. 눈과 기보법
프란시스 미로글리오
톰 필립스
2장. 공간,건축
야니스 크세나키스
3장. 음악적 행위와 그 조형적 공헌
밀란 끄니작
4장. 음향조각
타키스
5장. 예술의 경계를 넘어
볼프 포스텔
밀란 그리가르
6장. 존 케이지와 시각예술
존 케이지 따라 시 듣기
존 케이지
7장. 인터미디어
백남준
스탠 더글라스
막스 노이하우스
1장. 눈과 기보법
스트라빈스키 역시 아주 동떨어진 미학을 나타냄에도 불구하고 “종종 나의 음악이 읽혀지고 연주되어야 하지만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며 해석의 규명할 수 없는 요인들을 최대한 줄여보려고 애쓰면서 문제점을 제기하였다.
다른 작곡가들은 음향 편성의 특성들을 그대로 고수하거나 보존하려 하기보다는 기계적 복제 방법(바르톡은 “가장
진실된 기보법은 오직 음반 그 자체의 트랙이다”라고 말했다)을 최대로 정확하게 사용할 뿐만 아니라 기보법을 음악
연주를 위한 촉매로서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 때문에 어떤 작곡가들(예: 얼 브라운)은 - 개념화 작업, 기보법, 소통 작업 등으로 - 변함없는 곡선 양태를 고취함
으로써 작곡가의 창작을 신성시한 낭만주의에 의해 드러난 것보다도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개념들에 더욱 가깝
다고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존 케이지의 ‘비결정’이라는 글에서 고찰되기도 했던 모턴 펠드만의 교차III은 악보의 기본 규칙이 작곡가가 의도한
양식적 결과를 전혀 담고 있지 않은것을 보여준다.
피아노를 위한 이 작품의 악보는 시간의 단위들에 일치하는 작은 칸들로 조합되어 있다.
각 페이지에는 고음에서 저음, 즉 높은 음역, 중간 음역, 낮은 음역에 맞는 세 칸의 높이로 된 밴드가 적혀 있다.
이 칸들의 내부에 있는 숫자들은 연주될 음향의 개수들을 나타낸다.
피아노 연주자는 마음대로 음향의 강도를 선택할 수 있다.
펠드만은 또한 연주자가 자유롭게 음향과 음향 그룹을 칸이 지속되는 가운데 끼워 넣을 수 있게 하였다.
교차III의 악보는 일종의 망을 나타낸다. 그것은 기보법이 소리의 질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음 이벤트가 만들어 질
수 있는 가능성을 나타낸다.
존 케이지는 “과정으로서의 작곡”이라는 글에서 “교차III에서 연주자는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갖고 있는 사진가와
같은 기능을 지닌다.
작곡은 수많은 사진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작곡은 기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닳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존 케이지 음악에서 곡의 구성과 기보법과 음향적 결과 사이에 확신은 통일성이 반드시 있는 것은 아니며, 또한 작곡
하고 기보하고 연주하고 감상하는 것 역시 반드시 인과 관계에 의한 것이 아닌 자율적인 행동으로 이루어지므로
작품은 매우 창조적이 된다.
이것은 더 이상 그 자체로 완성된 오브제가 아니다.
그것은 연주자가 전혀 완성하지 않는 것으로서 생명을 부여하는 역동적인 유기체인 것이다.
존 케이지가 작곡에 우연이라는 수단으로 - 역경에 정통한 방법(예: 1951년의 우연성의 음악/ Music of Change),
주사위 던지기 같은 혼란스러운 방법, 미완성된 원문의 주시(1957~1958의 피아노 콘서트/Concerto pour piano),
천체 지도서(Atlas Eclipticalis)-변주곡이나 카트리지 뮤직을 통해 전통적인 음악적 도해에 관한 모든 연관성을 무시
하고 연주자 자신이 제안된 과정과 결합될 음악적 자료의 정의를 결정하도록 만들었다.
그렇다고 권한이 전이되거나 대체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작곡가는 연주자와 함께 그가 확신할 때까지 권리
를 전가하지 않고 표현의 전통적 의미로서의 악보보다는 “과정”속에 내포된 비결정적인 잠재성을 나누고자 하는 것
이다.
존 케이지는 변주곡, 카트리지 뮤직, 씨어터 피스에서 가능한 한 공연에 가장 객관적으로 전념하면서 음향이 저절로
생성되도록 시간을 절대적 척도로 측정하지 않고 흘러가게 내버려두는 더 이상 스스로를 음악가, 배우, 무용수 등
으로 정의내릴 수 없는 개인들을 초대한다.
광선이 동원되고 무용단원들과 전기 음향시설이 설치된 변주곡V를 제외하고 변주곡 I에 VI까지는 모두 몇 몇 실제
음향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양한 악보들은 투명한 플래스틱 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판 위에는 점, 원, 선 등이 그려져 있다.
각각의 변주곡들은 획득된 시각적 형상의 초견과 배열에 대한 지시를 내린다.
존 케이지의 작품에서 기보 행위는 오브제의 구성 속으로 들어가 다시 갇히지 않는다.
그 행위는 촉매제로서 일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 효과는 일어날 수 있는 결과들에서 탐구될 것이 아니라
각별한 모습으로 드러나는 현대성 속에서 탐구되어야 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작곡가의 역할이 파기된 형식의 시도 - 작품의 개념이 그것의 가장 단순한 표현으로 환원되는 - 라고
본다. 또는 그와 반대로 어떤 과정이 ‘끊임없이 확장되는 힘의 장’으로서 잠재적 작품이라는 형식의 가능성을 확장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한편에서 음악 어휘의 확장과 연주자에 대한 작곡가의 태도 변화가 성악과 악기 연주의 미학적 개념들에 영향을 주기
위해 상징적이고 시각적인 새로운 기호 체계의 정의를 내렸다면, 다른 한편에서는 동적인 작품들에서 보이는 형식의
분열이 악보의 물리적 외양을 변형시키는데 기여하였다.
스톡하우젠의 다양한 형태의 피아노곡XI과 형식적 구성요소들을 좀 더 잘 시각화하기 위해 두 가지 색채를 사용한
피에르 불르즈의 피아노를 위한 세 번째 소나타(1957)앙드레 부쿠르실리브의 열도들 등과 같은 초기 작품과 프란시스
미로글리오의 여러 악보들처럼 공간에 대한 기보법의 관계는 예민하게 조율되어 나타난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와 같이 더 이상 선적인 해석에 의지하지 않는 피아노곡XI은 53x93cm종이 위에 불규칙한 간격
으로 그려진 19개의 시퀀스가 복제되어 있다.
프란시스 미로글리오
톰 필립스
2장. 공간,건축
라 몬테 영의 꿈의 집은 특히 “고유한 생명과 전통을 가진”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존재의 근거를 시간에 두는 작품
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외부 공격으로부터 존재의 근거를 시간에 두는 작품이다.
모든 외부 공격으로부터 보호된 명상의 중심지이며 ‘내부 공간을 둘러싼 둥근 지붕’이기도 한 이 ‘꿈의 집’에서 음악은
불규칙하게 울려나와 생방송으로 제작되는 전자음의 지속적인 환경속에서 거주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한다.
또한 정현 곡선 형태의 파장의 사용은 단일한 주파수로 구성되어 닫힌 공간을 형성하는 고압과 저압 부위에 따라
얼마나 청각적으로 다양하게 지각되는가를 더 잘 파악할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홀 안에 있는 관객들의 움직임과 공간 속에서 그들이 선택하는 상황이 처음에 계획된 구상의 필수적인 일부를
이룬다.
오실로스코프(역주: 시간적으로 변화하는 신호의 파형을 관측, 기록하는 장치) 는 음향 파장과 울린 소리를 위한
일종의 통주저음, “두로운”(단조로운 음)이라 할 수 있는 그 변화를 가장 미세한 부분까지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야니스 크세나키스
3장. 음악적 행위와 그 조형적 공헌
밀란 끄니작
4장. 음향조각
타키스
5장. 예술의 경계를 넘어
라몬테 영의 ‘불의 작품’은 “습관적으로 보던 것만을 듣도록, 또는 그 반대로 듣던 것만을 보도록 ” 유도한다.
죠지 브레히트는 자신의 방식에 있어서 196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벤트’의 개념을 이야기한다.
이 개념은 어느 저녁에 좌측 방향 지시등이 켜있는 시동걸린 자신의 자동차 옆에서 아내를 기다리고 있을때 떠오른
것이다.
그는 처음으로 이벤트라는 단어가 들어있는 차량 일몰 이벤트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그에게 이벤트 스코어는 음악을 통해 행위가 되는 시이다. 이러한 이벤트의 어떤 것들은 공연을 가정하고 제작된 것이
아니었으며, 브레히트의 현실과의 정확한 교차점이 탐구된 세 개의 전화 이벤트도 공개된 적은 없다.
어떤 이벤트들은 딕 히긴스의 위험한 음악에서와 같이 고의적으로 위험스런 감정을 일으킨다.
또한 마키우나스의 바이올린 독주 62에서와 같이 악기가 점차적으로 마구 다뤄지다가 파괴되는 문화적 가치에 대한
명백한 냉소주의를 보여주기도 한다.
벤의 대중작품은 대중들을 공격한다. 백남준과 첼리스트 샤롯 무어맨과의 이중주에는 잔혹함이 담겨있다.
악기 연주에 내재되어 있는 성적인 면을 강조하는 것으로서 백남준의 세스트로닉 오페라는 음악행위의 성적 해방을
주장한다.
1967년 뉴욕에서의 첫 번째 공연에서 무어맨은 상체를 나체로 드러내서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백남준은 자신이 주장하는 소위 해방운동 - 음열, 비결정, 행위음악 등-을 통해 청교도주의 안에 갇힌 음악적 아방
가르드의 전프로이드적 위선을 공격했다.
플럭서스 그룹의 제안들은 음악과 조형 예술을 넘어 모든 미학적 가치기준과 상관없이 철학적 탐구의 성격을 띄며,
보다 총체적으로 진정한 삶의 예술로 정립되려는 경향이 있다.
플럭서스 행위는 예를 들면 요셉 보이스와 볼프 포스텔과 같은 독일 출신 구성원들의 작업 방식과는 구별되는 집단적
차원을 갖고 있다.
보이스의 작품에서 그랜드 피아노 - 연주회의 전형적 기호 - 는 닫힌 건반 뚜껑으로 침묵의 악기가 된다.
피아노는 종종 펠트천으로 싸여 있기도 하고 페달이 뽑혀져 있기도 한다.
실제 기능에서 벗어난 이 악기는 수수께끼가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신비로운 특징을 지니게 된다.
보이스는 ‘해프닝’, ‘이벤트’, ‘퍼포먼스’등의 표현을 전혀 쓰지 않았으며 ‘행위’라는 표현을 선보였다.
보이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예술에 있어 청각적 요소와 소리의 조각적 특성은 나에게 항상 핵심적인 것들이었다.
음악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과거에 피아노와 첼로를 가까이 한것이 아마 나를 이러한 방향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그리고 재료 사용의 관점에서 조각의 전체적 이해를 확장시키기 위해 조각적 재료로서 소리를 사용하게 되었다.
따라서 모든 것이 조각의 재료가 되며 - 철, 점토, 돌 등과 같은 고형의 재료만이 아니라 소리, 소음, 언어의 멜로디 등 -
모든 것은 사고를 통해 조각 형태가 된다.
이렇게 사고는 조각적 방법으로서 취해진다.
여기에 바로 극단적인 태도가 있는 것인데 이것은 일반적인 작품의 제작을 실제적으로 초월하는 태도인 것이다.”
더욱 전체적으로 보이스의 작업은 언어 기호, 소리, 기보법등을 혼합한 여러 언어 영역의 합류점에 위치한다.
1963년 뒤셀도르프에서 발표한 그의 첫 번째 행위, 시베리아 심포니는 피아노 독주로 시작된다.
그리고 보이스가 죽은 토끼를 흑판 위에 매다는 동안 사티의 곡이 흐른다.
그리고 나서 피아노 위에 나뭇가지가 심겨져 있는 작은 흙더미들을 놓고 전도체 역할을 하는 철사로 피아노와 토끼를
연결시킨다.
행위 중에 보이스는 토끼의 심장을 꺼낸다. 그는 이것을 후기 다다이스트적인 태도로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탄생과 죽음에 관한 내용으로 가득찬 의미있는 관계를 표현하길 원한다.
실제로 토끼를 마티에르로 전환한 작업이 이 콘서트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이것은 부르주아를 질겁시키기 위한 네오다다 행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실제로 그가 사용한 재료들은 결국 그것들이 갖고 있는 에너지의 가치를 표명하는 데 쓰인다.
“문자는 언어의 표현이라는 생각에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언어는 또한 이미지이기도 하다.
그리고 언어는 근원적이다.
음악 역시 무엇인가를 묘사한다. 우리는 표현할 수 있는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그리고 어느 누구의 악보도 구체적 표현이며 이미지이다.
이것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 없다. 인간은 필시 이미지로도 무엇인가를 동시에 말하는 것일 것이며, 언어에
있어서 대부분의 조음 시도들은 당연히 음악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1964년 마키우나스는 볼프 포스텔에게 “플럭서스는(소련의 집단 농장인 콜호즈처럼)공동체이지, 제2의 나오 같은
무엇이 아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플럭서스는 당신의 데콜라쥬와 구분된다.”라고 말했다.
포스텔에게 있어서는 “모든것은 데콜라쥬와 구분된다”라고 말했다.
포스텔에게 있어서는 “모든것은 조형적 음악이다. 즉 시각적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위적인 음악작품은 같은
악기로 연주되어도 매번 다르게 나오는 반면, 음향효과는 시간의 다른 진행과정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1958년부터 ‘데꼴라쥬 음악’이라는 표현 아래 우연한 해체 - 전등이 깨지고 포스터가 찢어지는 소리 - 로부터
비롯된 음향과정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충돌은 증폭되어 중계 방송되었다. 떨어지는 오브제의 충돌, 위험에 빠진 인간의 고함, 자동차 사고의 소리,
꺼진 TV의 소음, 점점 희미해져 가는 라디오 소리, 신체가 내는 모든 소리 등이 1962년부터 비스바덴에서 나의 플럭
서스 음악의 소재가 되었다”
상호 교류와 열린 복합성은 다양한 행위방식을 보여주는 로버트 라우센버그, 클래스 올덴버그, 앨런 카프로우, 앤
핼프린과 같은 예술가들의 행위의 주된 특징으로 보이는데, 이것들은 화가에게는 시간을 이용하도록 만들고, 음악가
에게는 공간과 더불어 작곡을 하도록 유도한다.
이처럼 1963년부터 1966년까지 라우센버그는 펠리칸 리놀륨, 오픈 스코어등과 같은 참가자들의 개인적인 자발성과
조화를 이루는 여러 곡을 작곡했다.
“나에게 예술은 일어났던 무엇인가의 잔재물처럼 여겨진다. .. 내게 흥미로운 것은 행위하면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내가 한 모든 것은 내가 A라는 행위보다 B라는 행위를 했을 때 어떠한 다른 상황이 발생하는 가를 알고 싶다는 유일한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업으로 표현된 이러한 복합성은 우리가 산책할 때 어떤 목적하에 움직
이는 사람들을 그들의 의도를 모르는 채 바라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작가에 의해서 반드시 사전 계획된 것은 아니다.
투사된 상황의 요소들을 먼저 분석하는 것보다는 근본적으로 실험적인 것 속에서 실재를 체험하고 예술적 환영을
배체하면서 현재라는 시간적 상황에서 보고 듣기 위해 주어진 것의 물리적 속성들과 아주 가까이 함으로써 어떤 역할
을 수행하기보다는 자신의 정체성을 완전하게 확인하는 것이다.
밀란 그리가르의 작품에서 그림을 통해 소리에서 침묵으로 이행하는 과정은 특히 완전히 유기적인 방법으로 이루어
진다.
그가 ‘음향뎃생’이라고 부르는 유형의 그림에서 종이위에 점과 선을 그리도록 된 도구들 - 그 중에는 부분적으로 그의 통
제에서 벗어나는 여러 가지의 장난감 기계들이 포함된다 - 은 부딪치는 음향이벤트를 만들어낸다.
또한 이러한 음향 환경을 구성하는 갖가지 요소들은 시각적 흔적을 완전히 남김으로써 - 일제히 연주되는 여러 악기들
처럼 - 그들의 고유한 흐름을 따라간다.
이와 같이 그리가르는 어떤 행위를 위한 한 접근 방식을 택하는데, 즉 그가 실행하는 순간 조차에도 음향적이면서 시각
적인 그림을 행위(직접, 또는 비디오 녹화)로서 지각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고요하고 움직이지 않게 된 그림을 나중에 전시한다. 또한 시각적인 행위의 순간에 이루어진 녹음을 들려주고
그것을 완전히 다른 또 한편의 음향이벤트로 보여준다.
아울러 음악가들이 자신으로부터 시작된 연주의 새로운 가정을 실험하도록 그들에게 그림을 제안한다.
이러한 예술적 상호 작용의 영역에서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등장은 다양한 작업들간의 협상의 가능성을 세분화시키고
확장시켰다. 그 작업들의 실현이 복잡한 기술장치에 의존하지 않을지라도 상호 작용적인 프로젝트는 이렇게 1970년
대부터 증대되는 인터미디어 이벤트에게 폭넓은 길을 열어놓았다.
볼프 포스텔
파이에서 공부할 때 나는 피에르 쉐퍼와 피에르 앙리그룹의 구체음악 레코드를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은 환경속의 소리들을 취해서 변형시켰다. 그러나 나는 나중에 스튜디오에서 소리를 변형시키는 것에는 흥미가
없었다.
나는 작품의 현상적인 소리를 좋아했지. 나중에 다시 작업하는 재료로서가 아니었다.
이것이 바로 나의 방식과 발전기로부터 끌어내는 스톡하우젠의 작업과 같은 구체 음악이나 합성 음악 방식과의 다른
점이다.
-플럭서스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나의 생각은 어떤 재료로도 나를 전문화시키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죠지 브레히트는 미니멀 오브제들과 과정을 전문적으로 다루었는데 이것은 현상학적으로 흥미있는 일입니다.
나는 라 몬테 영의 초기 작품들, 특히 피아노에서 건초를 먹이도록 되어 있는 침묵음악과 더불어 딕 히긴스의 ‘시각적
음악’과 백남준의 ‘음악행위’를 무척 좋아합니다.
내가 플럭서스 활동에 기여한 것은 데콜라쥬 개념을 통해서 였습니다. 즉 음향 개념으로서 해체의 과정을 말하는 것
이지요. 나는 하나의 형태가 해체될 때 생겨나는 모든 소리에 몰두합니다.
다른 플럭서스 예술가들은 정해진 형태를 사용합니다. 예를 들면 브레히트의 유명한 작품, 떨어지는 음악에서 항상
물은 물이고 항상 컵이 물을 쏟아냅니다. 나는 컵을 깨뜨리는데, 그것이 그와 내가 다른 점입니다.
밀란 그리가르
- 당신의 음향 그림의 녹음은 종종 구체 음악과 비교됩니다. 그것은 단지 겉으로만 유사한 것입니까?
피에르 쉐퍼에 따르면 각 소리는 이벤트의 이미지입니다.
그런데 음향 그림과 그것의 녹음은 미리 선택된 주어진 계획에 따릅니다.
어떤 녹음들은 그림에 나타난 정확한 지시에 따라 추가되는 것 없이 실험실에서 수정되게 되어 있습니다. 다른 녹음
들은 동일한 테이프에 소리의 엄격한 병치로 단순하게 이루어집니다.
녹음된 것은 현실에서 듣는 것과 다른 독특한 양상을 띄는데, 그것은 취음 과정의 객관적이고 충분히 인정된 조건들
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장소의 음향효과, 음향적 소재 주변이나 스튜디오 밖에 있는 마이크들의 위치와 분포같은 것들이지요.
당신이 안에서 듣는 팽이의 노래나 불안정한 떨림이 실제로 밖에서는 메아리치는 사이렌의 뜻밖의 엄청난 소리일
수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작업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당신의 조형적, 음향적 작품들이 건축과 그리 멀지 않은 무엇인가와
관련이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회화는 중요한 질문들을 제기합니다. 내가 보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깊이의 문제인 3차원에 관한 것입니다.
질 들뢰즈에 의하면 이것은 길이나 넓이 외에 첨가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창조하는 원칙입니다.
나는 촉각적인 그림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이것은 1966년부터 시작되어 3년 후에야 천천히 이루어졌습니다.
시각적 악보는 잉크로 그려집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아무것도 보지 않고 단지 만지면서 음향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나의 팔 다리가 왔다
갔다 할 내 앞에 있는 하얀 스크린만 간직하기 위해 다른 것은 모두 치워버렸습니다.
공간에서 팽팽해진 이 북(백지 스크린)위에 맨손가락으로 그렸습니다. 신체와 신체의 반향, 그리고 소리만이 있었습
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열린, 끝없이 항상 다시 열리는 그림입니다.
내가 그것을 찢어 작품이 사라지면 완성되는 것입니다.
종이 표면 위에는 인체 크기의 빈 원만 남는데 그곳에서 환영은 끝없이 펼쳐집니다.
다른 작품 크로키는 공간 - 소리를 보여줍니다. 헝겊 자루 속에 이상적으로 갇힌 관객은 기념비적인 그림 위에 남겨
진 녹음된 나의 발자국 소리를 듣습니다.
6장. 존 케이지와 시각예술
존 케이지 따라 시 듣기
디이터 슈네벨 침묵I(1961)에서 침묵 IV(1990)에 이르기까지 존 케이지의 글들을 끊임없이 정리하면 할수록 케이지가
족적을 남긴 여러 분야들 중에서 시의 위치는 점점 더 확고해 질 것이다.
침묵의 서문은 음악과 관련하여 시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내용이나 모호성 때문에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시가 단어들의 세계에 음악적 요소(시간, 소리)를 도입하는 것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또 악보 형식으로 몇몇
그의 시들에 나타나는 기이한 내용들에 대해, “언젠가 리처드가 정보들을 나누면서” 나에게서 나온 것들 중에서
이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전통적 형식의 강연은 왜 하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사람들을 놀래게
하기 위해서 강연을 안하는 것이 아니라, 시의 필요에 의해 강연을 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면서 케이지는 자신의 행동
을 정당화 시켰다.
27년후 케이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가가 되었을 뿐 아니라 하버드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 학교에서는 그에게
시를 가르치라고 요청했다. 침묵 I-IV는 ’88~’89년도의 그의 [Charles Eliot Norton Lecture]를 모은 것으로서, 이
강연들은 저자(케이지)가 창안한 시의 형태 즉 ‘메소스틱’에 따라 완벽하게 구성된 것이다.
“이 메소스틱의 기원은 그가 단번에 계승함과 동시에 변형시킨 ‘헌정’의 전통적 장르속에 포함된다.
어떻게 케이지는 비결정적 또는 연설자를 위한 45분과 같은 50년대 강연의 ‘시간적 구조화’에서 장차 공간을 설정할
뿐만 아니라 공간을 통해 그것을 들을 수 있게 하는 복잡한 시각적 공연으로 옮겨가게 된 것일까?
달리 말하면 중요한 것은 듣는 것이다. 음악에 대한 시의 확대는 정말로 음악자체에 대한 음악의 확대가 낳은 직접
적인 결과이다.
1958년에 발표된 케이지의 강연 중 하나인 ‘커뮤니케이션’은 그것을 약간 도전적인 방법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듣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운가? ..왜 그들은 들어야 할 무엇이 있을 때 말하기 시작하는가?
귀가 머리 양쪽에 있지 않고 입속에 있는 것인가? 그래서 그들은 무엇인가를 듣기가 무섭게 말하고 싶어하는 것인가?
좀더 정상적인 상황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왜 그들은 입을 다문 채 귀를 열지 못하는가? 그들은 바보인가? 그렇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바보스러움을 감추기 위해
왜 노력하지 않는가? 음악에 대한 지식을 습득한 순간에 나쁜 습관들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닌가?
음악가는 자동적으로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고 들을 수 없게 만드는가? 결론적으로 음악에 대한 공부를 관둬야 한다고
당신은 생각하지 않는가?
우리는 우선 온갖 수다를 그치라고 요청함으로써만이 가장 효과적으로 침묵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나타난 것과 같이 매우 극단적이고 비판적으로 이러한 요구를 한다면 우리는 잘못하는 셈이 될 것이다.
1958년 케이지가 노린 것은 모든 언어를 금하자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듣는 것을 방해한다든지 막는 것만을 금하자는
것이다. 이 언어는 먼저 20세기에 음악가들이 자신들의 작품과 그 주변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이용한 언어였다.
..이렇듯 생성 상태의 소리 듣기, 즉 소음을 출발점으로 삼기 때문에 케이지는 허무주의자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작업 여정을 보면 전혀 이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1973년 [M]의 서문에서 그는 자신의 작업방식을 뚜렷하게 정당화하고 있다.
“공식적인 음악 이론은 ‘음악적인’ 소리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규칙의 유희이며, 또 소리에 대해 어떠한 언급
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애초부터 소리와 소리의 비합법성에 근거한 음악이 당연히 필요했다.
이러한 무질서한 장르의 음악을 만듦으로써 소위 음악적 소리를 같은 부류에 포함시키는데 자유로워졌다.”
중요한 것은 관계들을 파괴하거나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말한 관계들의 한복판에서건 아니건 간에 비관계와
직접성을 구하는 것이다.
결국 존 케이지가 제시했던 관점으로 시적 듣기인 것을 지켜보기 위해 우리는 처음보다 더 잘 준비되었는가?
케이지는 [M]의 서문에서 “오늘날 나는 구문론 없이, 때로는 구문론으로 글을 쓴다”고 말하였다.
[M]속에 있는 글들 중의 하나인 ‘뮤로’강연은 이러한 모호함을 해명한다.
케이지는 모두 발표에서 ‘뮤로’라는 어휘는 ‘뮤지끄’라는 단어의 첫 번째 음절로 구성되고, 소로라는 단어의 두 번째
음절로 이어지는 데 이것은 음악-시의 인터페이스와 간섭을 예고하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 후, 소로를 선택하기로
결정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나는 그의 일기를 읽으면서 소로가 들었던 매우 20세기적인 방법에 충격을
받았다.
그는 오늘날 테크놀러지를 이용하는 작곡가들이 한 것처럼 정확하게 들은 것 같아 보인다.
그는 작곡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정확하게 각각의 ‘음악적’소리와 그렇지 않은 소리에 주의를 집중했다.
그리고 현대 작곡가들이 전자가 가져온 가능성들을 확인하고 있을때 그는 그들과 같은 열의로 콩코드 주변을 탐구
하였다. 지난 몇 해 동안 콘서트 음악가로서 나의 많은 연주는 모음 발성법으로 뮤로를 부르는 것이었다.”
‘뮤로’ 의 원문은 역경의 제비뽑기 규칙에 따라 음향, 환경의 소리, 침묵 등과 관계있는 소로의 일기 페이지들 중에서
실행된 우연적인 선택으로 얻어졌다. 따라서 존 케이지가 소로의 단편들을 높은 목소리로 읽으면서 심지어 이 작품의
말투로 발음하는 것은 소로의 연주회에서 소로의 듣기와 일체가 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존 케이지
7장. 인터미디어
플럭서스 그룹의 행위가 예술 작업 사이에서 수많은 경우의 상호 간섭을 표현할 수 있었다면, ‘60년대 말의 결정적
이면서 더 개인화된 내용과 연결된 인터미디어 경험들은 현실 속에서 한층 뿌리를 내렸다.
그 예로 죠지 브레히트가 제안한 일종의 “전반적인 다중 감각적 경험”인 이벤트, 완전한 예술 형태로 간주되는 삶,
신체, 대중들이 “자신의 환경에 대해 심리적인 것을 시험하고 체험하는 것을 배우는 볼프 포스텔의 데 꼴라쥬, 요셉
보이스의 ’행위‘와 ’환경‘등이 있다.
‘60년대 초 엄밀하게 개념주의적인 의미에서 순간적이고 비영속적인 감각이 라 몬테 영과 코수기의 제안들을 지배
하고 있을 때 과학 기술의 가장 첨단적인 재료의 사용은 데이비드 튜도 및 로웰 크로쓰 의 비디오-레이져의 개입과
아울러 백남준의 설치와 환경과 관련된 알빈 루시에의 작품 제작을 가능케 했다.
알빈 루시에는 비디오 환경, 녹화된 직접적 이미지, 목소리, 작곡되거나 즉흥적인 음악을 포함하는 멀티미디어 작품
을 처음으로 제작한 예술가이다.
동시에 많은 연주자들의 참여-오페라 완전한 삶을 지칭하도록 하는것-가 요구되는 이러한 작품들 속에는 그 자신
이나 그의 파트너들의 확실한 퍼포먼스의 차원이 담겨 있다.
대부분의 멀티미디어 프로젝트에서는 시청각적 전자 회로의 조정이 각 프로젝트에 정체성을 부여하는 조형적 재료
나 악기와 같은 자격으로 작품을 이루는 요소가 된다.
바로 백남준이 이러한 예술 행위형식의 중심인물로 꼽히고 있다. 음악은 그의 작업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1956년에 백남준은 쇤베르크에 대한 학사 학위증을 전시하였다.
그 다음해에 그는 다름스타트 페스티벌에서 열린 여름 강연에서 스톡하우젠의 방식을 발견하였으며, 무엇보다도 존
케이지를 만났다.
1962년 백남준은 TV수상기의 집적에 기초한 그의 초기 작품들 중 하나인 13개의 장치된 피아노를 부퍼탈 의 파르나스
화랑에서 전시했는데, 그것은 케이지의 ‘장치된 피아노’를 생각케 했다.
이 “음악과 전자TV전시회”가 비디오 아트의 아주 초기 단계들 중의 하나를 이룬다. 전자 주파수를 분산시키는 13개의
마이크에 연결되어 신호의 구성적인 정보의 자원 역할을 하는 TV수상기는 ‘고장’이나 ‘잡음’과 관련된 시각적 현상인
온갖 종류의 일그러진 줄무늬를 만들어냄으로써 이미 소리와 이미지의 효과적인 상호 작용을 보여주었다.
전자 이미지는 많든 적든 간에 현실의 충실한 복제에 더 이상 과도하게 몰두하지 않는다.
또한 전자 음향방식에 있어서 소리를 분산하는 기계들도 더 이상 단 하나의 고도로 충실한 보존을 위해 쓰이지 않는다.
고도의 성능으로 백남준에 의해 조정된 신시사이저 이미지는 해체 과정에 뒤이어 음극선을 주사하는 숙련된 기술의
아이디어에 근거한다.
1970년 백남준은 전기 공학기술자 아베와 함께 초기 음성합성 장치 비디오중의 하나인 ‘빛 피아노’를 만들었다.
백남준의 실험방식의 핵심적인 구성요소로서 특히 글로벌 그루브의 소리와 이미지의 독립성은 절대적인 것이다.
존 케이지, 샤롯 무어맨, 앨런 긴스버그 등이 함께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존 케이지에게 집중된 시퀀스는 중지된 채로 작곡가가 전면에 나타나는 초상화 방식을 보여준다.
특별히 존 케이지의 목소리와 같은 비밀스러운 음향이 침묵 속에서 흐른다. 백남준의 작업 중 가장 의미 있는 시퀀스
로서 의심할 여지없이 샤롯 무어맨에게 바쳐진 것으로 TV-첼로를 꼽는다.
다양한 크기의 3개의 TV수상기가 플렉시글라스 축을 중심으로 수직으로 연결된 것으로, 이 오브제들은 활을 키는
무어맨에 의해 고정된다. 세 개의 화면에는 TV-첼로를 연주하는 무어맨이 동시에 나타난다.
악기는 이렇게 소리와 이미지를 모순된 방법으로 조화시키는 일종의 구성적 오브제가 된다.
백남준작업의 기본적인 요소들 중의 하나는 동시성인데, 이것은 이벤트의 독특한 성격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인공위성으로 실현이 가능했는데, 즉 13개국으로 퍼져 나가는 13개의 하프시코드를 위한 이벤트를 구상하거나
케이지와 보이스, 보이스와 긴스버그, 케이지와 맥루헌.. 간의 만남을 인공위성을 통해 이미지로 직접 전파한 것이다.
물론 퍼포먼스나 멀티미디어같이 각 분야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어떤 행위의 성질 자체는 완벽한 분류의 원칙이 뒤섞여 있다.
예를 들면 로리 앤더슨의 행위들은 조각가이자 음악가로서의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는 ‘70년대 초부터 설치와 퍼포먼스를 하였고 책들도 출간하였다.
그녀의 첫 번째 대중적 작품인 1972년의 소리를 내는 클랙슨은 “구체 음악회”로 특징 지워진다.
1974년의 애즈-이프(As:if)는 약간 은유적인글, 이미지, 조각, 퍼포먼스 등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같은 해에 발표된 얼음 위의 뒤엣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앤더슨은 처음으로 변형된 바이올린을 사용하였다. 바이올린 소리와 악기의 몸체 속에 감춰진 녹음기 소리가 동시에
들리는 것이다.
라벨르 로주는 다음과 같이 썼다: “이때부터 음악적인 것이 주도적인 것이 된 것 같다. 그렇지만 퍼포먼스의 다른
모습도 주의를 끈다.
즉 음악 외적인 재료(그녀가 신고 있는 스케이트의 날이 잠겨 있는 얼음 덩어리가 용해된 시간)에 의존하는 작품의
지속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로리 앤더슨은 그녀의 노래 사이에서 말하고, 말하고 말하며, 스케이트 타는 사람의
동작에 대해 말하고, 바이올린 연주하는 동작에 대해 미끄럼 타며, 미끄럼 타며 두 가지 행위들을 대비 시킨다”
독일은 총체 예술을 제작하는데 있어 특별히 비옥한 토양을 갖고 있었다.
특히 1973년 함부르크에서 니콜라스 쉐퍼가 음악가 피에르 앙리와 안무가 알빈 니콜라이스와 함께 만든 “인공두뇌
광선 역동성”을 실험한 킬덱스이 총체 예술의 특성을 잘 나타낸다.
이 작품은 동시적이면서 연속적인 14개의 시퀀스로 구성되었으며 다양한 속도로 회전하는 거울이 부착된 금속 조각
이 움직일 뿐만 아니라 전자 음향과 목소리, 영화와 슬라이드 투사, 무용등이 합쳐져 장관을 이룬다.
니콜라스 쉐퍼는 이벤트의 진행을 멈춘다든지 반복시키고, 또 속도를 높이고 늦추는 등의 5가지의 표현을 설정함으
로써 대중들이 공연의 “전개에 영향을 끼치도록 하였다.
이러한 의도로 이루어진 5개의 ‘진행내용’은 대다수가 채택하여 결정한 것을 중계 방송하기 위해 컴퓨터로 대중의
의견을 기록하였다.
음악적 현상을 비디오로 시각화하는 것은 오늘날 음반과 비디오 클립이 결합된 방법을 점점 자주 양산할 만큼 중대
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종종 많은 비디오 작품들이 TV시청자들에게 호소함으로써 음반의 판매를 결정짓는 아류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
반면, 다른 작품들은 그것들대로 영화와 비디오의 시각적 세계에 속한 고유한 방법으로 음악을 “해석”하고자 하는
열망을 나타낸다.
녹음되고 녹화된 음악 현상의 단순한 중계를 넘어 쟝뤽 고다르의 하나 더하기 하나나 카르멘이라는 이름은 롤링스
톤즈나 베토벤의 음악 전체에 대한 시각적 해석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이것은 실제 악기의 분석과 사색으로 구상된 스탠 더글라스의 최근 비디오 작품에서도 볼 수 있다.
‘70년대부터 테크놀로지가 점점 복잡해지면서 공연예술과 멀티미디어 환경은 다중 감각적인 효과를 가장 많이 축적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제적 아방가르드의 “소리와 빛”이 되면서 계속 다양해지고 있다.
많은 경우에 미학적 목적은 사용되는 기술적 방법들과 혼돈되며, 따라서 작업방식에 대한 흥미는 이것들의 중요성과
뚜렷한 혁신에 비례하는 것 같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관람자의 참여를 요구하는 총체 예술적인 설치의 목록은 오늘날에도 계속 확장하고 있다.
이 점에서 광선효과가 대중에게 전반적인 영향을 강하게 끼치는 - 마치 록 콘서트에서처럼-공연예술이다.
테크놀로지를 이용하여 장소의 특성과 관련하여 만들어져서 동시에 퍼포먼스의 양상을 띠는 설치와 같이 여러 가지
미디어의 효과를 교차시키는 장치들을 비교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환경현상으로부터의 사색과 창조는 음악가 - 머레이 쉐퍼, 폴리느 올리베로, 뤽 페라리 등의 프로젝트들이 증언하는
바와 같이 - 와 조형예술가들이 함께 관련을 생각할 수 있는 영역이다.
테크놀로지로 얻을 수 있는 효과가 일반적으로 강조된 인터미디어 과정이 먼저 이루어졌다면, 막스 노이하우스의
작업 방식과 같은 다른 작업들은 1985/6년에 만든 케르그헤넥 공원에서의 음향 설치처럼 아주 비밀스러운 방법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노이하우스가 이 작품에서 설정한 환경과의 대화는 그가 의도했음에도 어떠한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데니스 쟈샤로폴로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장소와 그곳의 자연 부식토에 대한 오랜 연구로부터 나온 복잡한 소리는
우선 우리 자신과 풍경사이에 은밀히 끼어든다. 일련의 음향반향은 기가 막힌 음향 거울이 되는 수면으로부터 나온다”
백남준
-당신의 활동에서 음악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음악이 당신 작업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 물론입니다. 나는 직접 전자 음악 작곡가로서 데뷔했었습니다.
나는 모든 소리와 10000킬로싸이클 이하의 모든 음계를 마음대로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 1000킬로싸이클을 시각적 영역에서 4메가사이클로 단순하게 확장시켰습니다.
-당신의 경우, 테크놀로지가 음악과의 연결을 가능하게 했군요.
:그렇습니다. 모든 경우 함상 수와 관계하기 때문입니다. 음악가로서 우리는 수를 갖고 작업합니다.
이것은 대위법이 지닌 규칙 및 조화로운 관계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연결이 수와의 관계로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수에 익숙하기 때문에 내가 미술학교에서 가르치기 시작 했을때, 나는 시각예술가들이 수에
몰두하지 않는 것을 알고는 놀랐습니다.
-당신에게 TV는 음악의 도구입니까? 아니면 가공하지 않은 자연의 재료입니까?
: 나는 텔레비전을 피아노처럼 연주합니다. 나는 ‘신시사이저 비디오’라 부르는 것도 창안했습니다.
스크리아빈과 테레민은 이미 이러한 의미에서 매우 원시적인 회로로 확실하게 탐구를 시도했습니다.
즉 나의 꿈은 음향적인 것과 시각적인 것을 종합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작품에서 동시성의 개념은 중요합니까?
:그렇습니다. 중심이 없는 정보, 중앙 정보가 없는 것입니다. 티벳의 만다라의 인과관계, 비동기등 이러한 모든 개념
이 있습니다. 나는 이것을 좋아합니다.
1959년 나는 돈을 벌기 위해 그림을 그렸습니다만 한번도 그렇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림을 그리면서 하루만 지나도 이것이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늘 두려웠기 때문입
니다. 우리는 더욱 열심히 일하고 만족해합니다.
그러나 그 다음날은 항상 좋지 않지요. 그래서 나는 그림 그리는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사실 나는 한번도 그림 그리는 것을 정말로 좋아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친구들이 그림을 그리고 성공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나는 실패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나의 시각예술에 대한 첫 번째 모험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내가 TV를 가지고 새로운 시각적 모험을
시도했을 때 TV가 변화하고 있고 중심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나는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당신은 설치의 순간적이고 유동적인 측면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요?
: 유연성은 필수적인 구성요소입니다. 왜냐하면 회화와 반대로 비디오 아트는 테크놀로지에 구속을 받기 때문에
좋지 않습니다. 오류가 생길 가능성이 많지요.
그림은 한 번 그리면 어느 정도 영속되지만, 비디오 작품은 완전히 다시 해야 합니다.
-이러한 변화를 좋아하는 것은 과거에 음악가였던 데서 유래하는 것인가요?
: 그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회화에서의 완벽과 조화가 황홀한 형식의 퍼포먼스예술에서도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황홀, 그것은 자신으로부터 나올 때입니다. 그것은 시간에 근거를 둔 개념입니다.
우리는 항상 엑스터시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음악회가 끝나면 단번에 끝납니다. 극단적인 순간의 개념입니다. 내가 느끼기에 조화와 완벽은 항상
순간적인 무엇인가를 나타냈습니다.
그래서 움직이는 이미지가 필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영원한 진실을 믿지 않기 때문이지요.
-오늘날의 음악이 방법을 순화시키려는 경향과 사고체계에 관한 질문에 의해 특징 지워 진다고 생각합니까?
: 나는 나의 생애에서 두 가지의 커다란 음악적 발견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예술가들이 그것들을 다시 취할 수 있도록 애쓰고 있습니다. 나는 뉴욕에서 커다란 성공을 거둔 비디오-
오페라를 만들었고 이것은 도나우슁겐 페스티벌에서 오는 10월에 발표될 것입니다.
음악은 음악이지만 나머지 모두는 바뀌는 베르디나 바그너의 “위대한 오페라”와는 달리 나의 비디오-오페라에서는
비디오 카셋트에 담긴 녹화된 이미지는 같은 이미지들이지만 나머지 모두가 바뀝니다.
나는 실제로 20년동안 존 케이지, 머스 커닝햄, 앨런 긴스버그 등과 함께 많은 비디오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그것들은 중요한 고전적인 작품들이 되었습니다.
그것들을 확산시키면 확실히 지루합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연주했던 커닝햄 작품들 중의 하나를 완전히 파괴했습
니다. 우리들은 그것을 단순하게 로큰롤로 만들어 보여줬는데, 이것은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뉴욕의 펑크 그룹, 배드 브레인스 와 함께 일했습니다.
그들은 내가 요셉 보이스를 참여시킨 비디오 카셋트와 동시에 연주하여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냈습니다.
그리고 사이먼 월터드가 직접 참가하여 함께 커닝햄 작품을 비디오 카셋트에 담았습니다.
그것은 완벽한 성공이었습니다. 나는 또한 카메라로 피아노를 두드리는 작품과 카메라를 이용해 피아노를 연주하는
다른 작품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여기서 시각적인 것과 음향적인 것의 상호작용이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나는 다른 즉흥적인 것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내 나이 예순살에 앞으로 여생이 많아야 5년 밖에 안 남았기 때문에 나는 이 모든 것을 적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몇몇 새로운 곡들도 기록하기로 한 것입니다.
어젯밤 파리에서 내가 보기에 상당히 훌륭한 노래들을 작곡했습니다. 이것은 필 글래스의 것만큼 좋지만 다른 것입
니다. 나는 1956년에 현악 사중주를 작곡했고, 1957년에는 9개의 악기를 위한 실내악곡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한 번도 연주되지 않았지만 나는 그것을 시험해 볼 것이고, 몇 몇 새로운 주제도 쓸 것입니다.
나는 음악에 남아있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신은 현재 꼴라쥬에 몰두하고 있지요?
: 그렇습니다. 사소한 이야기인데, 1958년 나는 프랑스에 와서 살기를 원했습니다.
나는 그때 독일의 프라이부르크에 살고 있었고, 거기서 작곡가 볼프강 포트너를 따라 음악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음악 영역 속에서 꼴라쥬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여름 내내 나는 실내악곡을 작곡했고, 그 작품을 무척
좋아했던 포트너는 브루노 마데르나에게 그것을 연주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나는 구체 음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피에르 쉐퍼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답장은
받지 못했습니다. 후에 나는 그를 만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피에르, 당신은 나에게 답장을 안 하셨지요” 그는 나
에게 “미안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답장 안한 것을 후회했고, 그래서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가 지휘하는 탐구 그룹에 들어가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들어가지 못하고 쾰른으로 떠났습니다.
-당신은 TV설치를 만들면서 새로운 이미지의 유희를 구성하고자 합니까, 아니면 문제의 이미지들을 해체
하고자 합니까?
: 구성이냐 해체냐 하는 이러한 모든 이야기는 유희일 뿐이고 기호학자들이나 포스트모더니즘의 주동자들이나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해체, 그것은 유행입니다. 해체하는 것이나 구성하는 것이나 다 같은것 입니다.
-당신은 소리에 대한 지각과 이미지에 대한 지각이 근본적으로 다른 두 가지 현상이라고 생각합니까?
: 물론입니다. 왜냐하면 소리는 매우 심오하고 매우 감동적인 무엇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리는 절대적인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소리나는 곳에 있을때 우리는 다른 것도 들을 수가 없습니다.
라디오를 청취하고 있을때에는 다른 아무것도 들리지 않습니다.
반대로 시각적인 것은 자유와 이성의 공간을 남겨놓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100여점의 그림들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음악은 그렇지 않습니다. 음악은 정말로 권위적입니다.
그래서 모든 독재자들이 시각적 방법보다는 소리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음악이 훌륭할 경우, 그것은 시각적 경험보다
한 층 더 강하게 드러납니다.
독립된 소리조차도 이미지를 수반한 소리보다도 한층 더 강하고 심오합니다.
예를 들면 당신이 나에게 7분간의 음악을 작곡하라고 요구한다면, 나는 그것을 완성하는데 아마도 일년은 걸릴것입
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에게 비디오로 그같이 만들라면 나는 “이렇게” 매우 빨리 그것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음악에 관한 일은 매우 어려운 무엇입니다. 그래서 나는 작곡가들을 매우 존경합니다.
-당신은 예술방식은 현재의 테크놀로지의 전개 방향으로 나아갑니까, 아니면 비판적입니까?
: 나는 사람들이 내가 테크놀로지에 대해 무조건 순종하기보다는 비판적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싶어한다고 생각
합니다. 게다가 나는 나의 감각이 솔직히 “기술옹호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정보프로그램을 다루는데 무척 서툽니다. 나는 스위치도 잘못 누르고, CD조차도 작동 시킬줄 모릅니다.
나는 단지 레코드판을 돌리고 라디오를 켜는 것만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나는 카셋트 재생장치를 사용하는 것도 아주 두려워합니다. 테크놀로지와 나와의 관계는 약간 강요된 결혼
같습니다. 나는 테크놀로지에 대해 투박한 다다이스트와 같은 태도를 갖고 있습니다.
나는 결함 없는 테크놀로지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현재 사람들은 모두 테크놀로지에 찬성하거나 반대하기
를 바라고 있습니다. 두 경우만 놓고 보는 퀘퀘묵은 생각입니다. 나는 한 번은 이쪽, 또 한번은 저쪽, 이렇게 둘 사이
에서 일종의 유희를 하고 있습니다.
-둘 사이의 긴장이 있는 것이군요.
: 그렇습니다. 나의 태도는 환경주의자들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실주의자들이 아니니까요.
-당신은 비디오설치를 만들면서 새로운 예술가들과 공모의 감정을 느낍니까?
: 내가 최초로 시작했지요. 그러나 나는 다른 예술가들이 비디오의 길에 들어서는 것이 기쁩니다.
이것은 여전히 나에게 중요합니다. 나는 단지 그들이 나를 모방했다고 말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비디오는 선택의 폭이 매우 넓습니다. 이러한 목표 속에서 일하는 많은 예술가들은 매우 독자적인 방법으로 발전합
니다. TV를 사용하는 것 외에 그들의 작품은 나의 것과 아무 상관없습니다. 그
러나 모든 사람은 결국 TV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내가 TV를 발명한 것이 아니므로 그들은 그것을 잘 사용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아이디어를 테크놀로지를 통해 얻습니까? 아니면 미리 그것을 구성합니까?
: 1963년 한 기사에서 나는 나의 예술작업을 위해 어떠한 개념도 미리 세우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나는 내가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기법이 무엇인가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단지 두 가지 내지 세 가지 방법 사이에서 평상시와는 다른 조합을 찾습니다. 따라서 테크놀로지가 나의 예술
작업을 결정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것이 일단 비용적인 측면에서 저렴해지기만 하면 나는 더욱 더 특히 한물 지나간 테크놀러지를 사용합니다.
테크놀러지가 고물처럼 되고 나면 아주 손쉽게 접근할 수 있거든요. 비디오나 컴퓨터는 매우 빠른 속도로 바뀝니다.
그것이 바뀔 때 나는 그것을 사용하기 위하여 개념을 세웁니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도구들을 만들어 내고, 이 도구들이 우리들을 결정합니다.
-당신은 소리의 경우에 있어서도 동일한 방법으로 작업합니까? 당신은 당신이 이용할 수 있는 테크닉을
통해 소리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요?
: 나는 첼리스트 샤롯 무어맨과 여러번 함께 작업했습니다. 또한 ‘장치된 피아노’를 자주 사용합니다.
뿐만 아니라 소프라노 가수들의 도움을 청할 수도 있습니다. ..1947년에는 한국에서 대여섯 곡의 노래도 작곡했습니다.
나는 내내 그것들을 발전시키려고 했으며, 지금 해답을 찾았다고 생각합니다.
-언뜻보기에 당신은 음악 유형을 다른 것으로 전이시켜 혼합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비디오-오페라에서와 같이 다른 예술가들 사이에서 일종의 꼴라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까?
: 그렇습니다. 나는 나 자신이 모두 다 할 수 있는 시간이 없기도 해서입니다. 나는 나이가 들었고 시간도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제안하는 것을 실현할 수 있도록 연주자들을 구성해야 합니다. 나는 출판도 해야하고 녹음도 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죽은 후에 그들이 나의 곡을 연주할 수 있도록 출판하는 것입니다.
베토벤처럼 말입니다.(1992. 6.12, 파리)
스탠더글라스
-당신은 음악으로 작업할 때, 음악의 연극적 측면을 보여주고자 하는지요?
:음악은 시간과 종종 공연예술에 기초한 매체입니다. 내가 사용하는 다른 어느 매체들보다 나는 이러한 사실에 더
흥미가 있습니다.
음악은 사회적 배경을 구체화한 현상인 문화적 “응축”으로서 존재합니다.
음악적 언어가 그것을 낳은 문화를 어떻게 전달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정말로 재미있습니다.
-당신은 비디오가 음악이 지니고 있는 것을 보여주기에 이상적인 매체라고 생각합니까?
: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음악은 자신만의 정체성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음악에 글이건 시각적이건 다른 형식을 부여하려면 항상 타협을 해야 합니다.
장외에서는 표현될 수 있는 것의 한계를 다소 노골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것은 결국 음악의 표현인
의미의 “다른 곳” 즉 여기에 없는 무엇인가가 항상 있다는 말이 됩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제작사에 의해 버려졌을 것을 우리는 두 대의 카메라로 되살릴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음악을 추론하는데 항상 다양한 관점들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촬영방법의 고유한 특성은 우리가 어디에선가 비롯된 통제에 대한 감각을 항상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외부적인 구성은 음악을 둘러싸고, 이것은 작품전체에서 매우 의식적으로 이루어집니다.
-The end -
Jean-yves Bosseur저 박숙영 역(1992,보성각)
(jupiterj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