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觀劇評] ㅡ 서울예술단의 특별무대 ㅡ
일시/ 24.12.28(토).19시~21시10분
장소/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어제 초청을 받아 觀劇했다.
서울예술단의 레퍼토리와 특별 STAGE가 함께 하는 무대! 단순한 예술의 경계를 넘어 歌舞樂劇의 대표적인 작품들의 깊이를 보여주는 무대였다.
관객들이 서울예술단과 함께 하는 예술의 여정! 관객 여러분의 소중한 시간이 더욱 [특별한 기억]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특별한 기억" 이라고 하는 프로그램의 글을 보았을 때 예전생각이 떠오르게 되어 85년도와 함께 비교해 보았다.
1985년 9월 평양대극장에서 공연한 자료와 한 작품(作品)의 발표가 아닌 옵니버스 스타일이라 비슷하여 프로그램 내용 만을 비교해 보려고 한다.
근본은 다르지만 前에 88예술단이 서울예술단이 되었지만, 평양대극장에서 공연한 단체 이름이 똑같아 "서울예술단"의 타이틀로서 당시 귀향 후에 인수인계한 필자로서 나열해 보려고 한다.
오늘 공연한 옵니버스 레퍼토리 시스템의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다.
☆ 공연 순서
제1장/ 서곡: 한강은 흐른다. 청산별곡, 태풍, 바람의 나라 등
2장/ 윤동주 달을 쏘다 별해는 밤, 시를 쓴다는 것
3장/ 잃어버리 얼굴: 끝이 없는 밤, 내가 울었노라 여우사냥 등
4장/ 사물놀이 앉은반
5장/ 나빌레라:사라자다는 것, 발레배우기, 금란방 등
6장/ 천 개의 파랑, 신과함께, 칠서, 외줄 위에 용상 등
7장/ 꾿빠이. 이상, 최후, 이런 시 등
8장/ 순신: 백의종군 명하다, 한산대첨 등
9장/ 맺음: 천천히
10장/ 커튼콜
총 런닝타임 130분과 객석 1221석이 만석이었다. 청년 교육단원 특별 제작진 및 출연진과 기획팀장과 스태프들(각부분 협력자 분들)과 歌舞樂劇의 종합예술 속에
서울예술단원(고미경 외 출연진 전원)
들의 연희(음악, 무용, 연극, 발레 등)의 화성학적 파트와 대단한 기능과 움직임의 순발력은 최고 수준이었다.
다만, 연주단이 오케스트라 핏트에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무대위의 함께 움직이는 線이 겹치니까 서로 중복 출연으로 관객에게 가사 및 대사 전달이 아니되고 연희자들의 라인線이 보이질 않았다. 또한 가사 및 대사가 반주에 뭍혀 上下수 쪽에 영상으로 글씨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이것은 모두가 예산문제일 것이다. 아울러 연출자께서 욕심을 많이 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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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1985년 9월 평앙대극장에서 서울예술단의 공연은 다음과 같다. 남북이산가족 고향방문 예술공연으로 다음과 같이 공연했다.
일시/ 85.9.21-22
장소/ 평앙 대극장
서울예술단은 1984년 10월에 구성된 종합예술단체로서 1985년 평앙대극장에서 50명의 인원으로 남북문화동시교류를 위해 창단된 순수예술단체이다.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다.
제1부는 전통민속무용으로 민요 중심으로 우리 겨레의 맥박을 소개하였고,
제2부는1940년대까지 남북겨례가 함께 불렀던 가요와 2천년대를 향해 뻗어 나가고 있는 세계를 향한 남북 겨레가 함께 춤추고 국제화 세계화 시대에 맞게 노래했던 농악과 휘나레를 아리랑으로 막을 내렸다.
☆ 공연 순서
제1부/ 겨레의 맥박
1. 개막: 북소리와 무용
북(大鼓)을 쳐야 막이 올라가는데, 하도 떨려서 북을 칠 수가 없어 큰 북을 잡고 祈禱를 해서 지금은 믿는 者가 되어 장로가 되었다.
소개 인사(김동건 아나운서)
2. 민속무용: 태평성대
3. 민속무용: 승무
4. 민요합창: 울산아가씨, 잦은타령
5. 창작무용: 꽃보라
6. 가곡: 사공의 노래
7. 민속무용: 강강술래
8. 봉산탈춤(목중춤과 사자춤)
9. 부채춤
10. 재담: 고향가는 열차
제2부/ 2천년대를 향하여
11. 현대무용: 겨레의 갈망
12. 가요: 눈물젖은 두망강
불효자는 웁니다
13. 가요합창: 아리랑 목동, 신고산 타령, 고향만리, 서울의 찬가.
14. 가요: 찔레꽂, 꿈에 본 내고향, 삼다도 소식
15. 현대무용: 2천년대를 향하여
16. 가곡: 그리운 금강산
17. 풍물(農樂) ㅡ 반주가 MR이었기 때문에 전 출연자가 다 출연해서 직접 농악으로 한판의 승부를 가렸다. 신명나게 끝냈는데 박수가 없었다.
ㅡ 작별 인사(김동건 아나운서)
18. 전원합창: 아리랑
당시 우리 서울예술단원들은
뮤지컬 전공자, 무용전공자, 현대무용 전공자, 농악 전공자 등 모두가 함께한 출연자이고, 모두가 연출자들이 되어서 2시간 정도를 1초의 개념으로 최고의 수준으로 연습하여 막을 올렸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평양예술단] 남한에서는 [서울예술단]이라고 명명하여 교류가 되었다.
필자는 당시 서울예술단의 총무로서 기획보조와 출연도 함께 하면서 뒷 심부름을 하며 말없이 조직적으로 공연준비하는 과정에서 ㅡ 기관장에게 특별격려 수당도 받고 최선을 다했지만 ㅡ 당시
제1차 남북문화동시교류를 위해 실시할 때
북한에서는 문화예술만은 자신있다고 했는데 우리가 초전박살을 시키고 내려와서 86년도 제2차 준비를 할 때, 상호교류보다, 이곳 평양에 오고 싶으면 돈을 요구하며 "연예인 단체'를 일방적으로 초청하게 되었다.
때문에 제2차 남북한동시문화교류, 상호교류가 지금까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당시 공연 스태프는 4명(무대감독, 음향, 조명, 장치) 외에는 평앙대극장과 서울 국립극장의 스태프들이 서로 협조해 주는 것으로 되었으나 제대로 도움을 받지 못해 유경환 감독이 수고를 많이 했다. 함께 해주심을 眞心으로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관계 스태프들과 제2차 남북문화동시교류를 통해 남북통일을 해보자고 다짐했지만, 이제 그 내용이 헛되지 않게 관계자들은 연구ㆍ노력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한 민족이 두 민족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 서울예술단을 통해 제2차 남북한동시문화교류를 실시하여 문화전쟁으로 한 민족이 남북통일을 위해 서로 협조해야 될 것입니다.
더욱 이번 공연을 맞이하여 서울예술단이 이제 제2차 남북한동시문화교류를 시도해 보는 것도 정부관계자들과 함께 추천하고 서로 변치 않게 연구ㆍ노력해야 할 것이다.
오늘 공연에 수고한 서울예술단의 스태프들과 출연자분들께 박수를 보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캠페인입니다. 제일의 富는 健康입니다. 건강이 있고 난 다음 그 무엇이 있는 것입니다. 건강하셔야 합니다.
飛松 최창주 평론가 석좌교수
전 한예종교수 연희학과장
전 한국문화예술위원장 대행
☆ 사진 자료는 24년 국립극장과 85년 평양대극장의 출연자 및 자료 ㅡ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