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추면서 살아가기 / 백봉기
우리 생활 속에는 맞춰야 하는 것이 많다. 사진을 찍으려면 초점을 맞춰야 하고, 음악을 하려면 박자를 맞춰야 한다. 립싱크 가수는 입모양을 맞춰야 하고, 남녀가 데이트를 하려면 눈을 맞추고, 분위기와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 라디오를 들으려면 주파수를 맞춰야 하고, 어떤 일을 하려면 조건과 구색을 맞춰야 할 때가 있다.
나는 중국에 가면 음식에 입맛을 맞추기가 힘들어 고생을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음식이 짜고 맵다고 해서 힘들어 하는 외국인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 살려면 맞추는 방법밖에 없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 부모가 다르고 자라온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식성도, 성격도, 가치관도 다르다. 채소만 먹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우리 아버님처럼 생선이 없으면 밥을 먹지 않는 사람도 있다. 성격이 급한 사람도 있고, 소 같은 사람도 있고, 화를 잘 내는 사람도 있고, 평소에는 입에 자물쇠를 달고 다니지만 술만 먹으면 목청이 커지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를 인정하고 맞추며 살아야 한다. 맞추지 못하면 어울릴 수 없고, 화합할 수 없기 때문에, 같이 생활하는 것이 그만큼 힘들어 진다.
나는 두 달에 한 번 씩, 퇴직선배들과 만나는 자리가 있다. 그곳에서 선배들끼리 주고받는 인사말이 있다.
“요즘 세끼 밥은 얻어먹고 사는가?”
“맞추면서 산다네!”
“맞춰야지!”
하며 의미심장한 답변을 한다. 정년퇴직을 하고 이렇다 할 일거리가 없는 선배들은 꼬박꼬박 세끼 밥을 얻어먹는(?) 것도 다행으로 생각한다. 괜히 죄 지은 사람처럼 아내의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추느냐, 청소와 심부름을 하고, 어떤 때는 혼자 밥상을 차려 먹어야할 때도 있다고 한다. 남은 생이 많으니 맞추면서 살아야지 어쩌겠는가!
어떤 사람들은 TV 때문에 싸우기도 한다. 한 사람은 TV를 껴안고 사는가 하면, 한 사람은 TV소리만 들어도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 한 사람은 연속극에 푹 빠졌는가 하면, 한 사람은 스포츠중계를 좋아해서 채널 선택을 위한 주도권 싸움으로 옥신각신하는 부부도 있다.
나도 아내와 맞지 않는 것이 많다. 나는 모든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지만, 아내는 장어나 추어탕, 붕장어 같은 뱀처럼 생긴 것은 먹지를 않는다. 물론 보신탕이나 토끼탕도 안 먹고, 선지해장국과 순대국밥도 먹지 않는다.
또한 나는 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있다. 그러나 아내는 TV에서 애국가가 나와야 잠 잘 준비를 한다.
자연이 늦게 일어날 수밖에 없다. 내가 깨워야 일어나고, 일찍 출근해야할 때는 아침밥을 차려 주는 것도 힘들어 한다. 결국 내가 아내에게 맞추기로 하고, 혼자 차려 먹거나 해장국을 사먹고 출근할 때가 많다.
물론 아내도 나에게 불만이 많을 것이다. 나는 대충대충 살아가는 편이지만, 아내는 따지고 넘어가는 성격에다 꼼꼼하여, 매사를 원숭이가 새끼머리에서 이 잡아먹듯 한다. 또한 아내는 깨끗하고 잘 정돈된 것을 좋아하지만, 나는 매일매일 청소하고, 목욕하고, 내복 갈아입는 것을 귀찮아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맞추면서 살아온 세월이 35년이다. 맞춰야 하는 것은 집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직장이나 사회에 나가면 또 다른 사람들과 맞추며 살아야 한다. 전에 근무하던 사무실에 담배를 피우는 선배가 있었다. 그 선배는 심각한 일이 있거나 열심히 일을 할 때는 무의식적으로 담배를 피우는 습관이 있었다. 그럴 때는 한 겨울인데도 여직원들이 창문을 활짝 열거나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곤 했다. 결국 선배는 직원들과 맞추려고, 밖에서 담배를 피울 수밖에 없었다.
남아공 월드컵축구에 나갈 우리나라 선수들의 엔트리가 확정되었다. 그동안 여러 차례의 국제경기를 통해서 포지션에 맞는 선수, 호흡을 잘 맞출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했다고 한다. 운동경기도 그렇지만 합창이나 중창을 할 때는 단원들의 조화가 더 중요하다. 소프라노와 알토, 테너와 베이스가 각자의 음색을 잘 맞춰야 아름다운 소리가 만들어진다. 자기의 목소리가 크고 좋다고 혼자만 큰 소리를 낸다면 화음이 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독창을 해야 한다.
‘수상한 삼형제’라는 드라마에서 막내며느리는 설 명절 때 시댁에 가지 않고 친정에서 차례를 지냈다. 그는 또한 맞벌이를 하는 입장에서 여자만 밥상을 차려야 한다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고부간의 갈등이 쌓여가고, 불협화음이 계속되고 있다. 두 사람이 뜻을 맞추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집안의 화목과 평화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모임 때마다 시시비비를 따지고,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결코 물에 뜬 기름처럼 남의 빈축을 사게 될 것이다. 맞추면서 살아야 한다. 내 것이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것도 소중하다. 그것을 존중하면서 서로를 위해 맞추고 조화를 이룰 때 가정도 직장도 그리고 우리 사회도 한층 더 밝고 아름다운 삶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