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이 처음 문을 열고, 잇따라 저희처럼 책방과 스테이를 겸하는 북스테이 공간들이 생기면서 <전국북스테이네트워크>를 만들었어요. 지향하는 바가 비슷한 이들끼리 모인 건데요. 매년 정기적으로 만나 근황을 나누고 공통된 프로젝트도 진행해왔는데 지난 3년동안 코로나로 전체 모임을 갖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모처럼 다같이 1박2일 모임을 갖기로 해서 전북 고창에 있는 <책마을해리>에서 반가운 만남을 가졌습니다. 모두에게 코로나는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휴식의 시간이기도 했고, 그러는 사이 에너지가 떨어지기도 했다는 걸 확인했네요. 대부분 대도시를 떠나 지역에 자리잡은 지 10년 내외로 비슷했기에 느끼는 것도, 감회도 비슷했습니다.
무엇보다 책마을해리는 2천 평이 넘는 엄청난 폐교에서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으로 시작했는데 지난 10년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을 해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부부가 뼈를 갈아넣어 완성한 넓디 넓은 책마을에서 그들의 땀과 노력을 알 수 있었고요. 앞으로 이곳이 책을 좋아하는 이들의 진정한 고향으로 뻗어가길 바라는 마음이었어요.
헤이리 모티프원, 파주 평화를품은집, 강화도 국자와주걱, 양평 산책하는고래, 원주 터득골북샵, 괴산 숲속작은책방, 광주 동네책방 숨, 통영 봄날의책방...
경주 사랑방서재 한 곳만 일본 여행 중이라 유일하게 불참해서 아쉬웠습니다.
고창군 해리면에 있어서 <책마을 해리>인데....해리 포터와 이름이 같아서 이대건 촌장님은 빗자루를 들고 이른바 "해리" 마케팅을 펼치고 있네요. 무려 이십만 권에 달하는 헌책을 소장하고 있고, 편히 책을 볼 수 있는 도서관을 비롯해 책과 인쇄의 전 과정을 돌아볼 수 있는 시설들, 그리고 전시 갤러리까지 있어서 이곳을 샅샅이 돌아보려면 한 두 시간 이상 족히 걸립니다.
그리고 북스테이를 할 수 있는 시설도 있어서 원하는 분들은 며칠이라도 이곳에 머물며 책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요.
낮에도 밤에도 반짝이는 눈으로 해리를 지켜보는 부엉이.....
책마을해리에 들어오려면 반드시 입구 책방을 거쳐야 합니다.
입장료는 8천원인데요, 책을 한 권 사면 이 금액 만큼 차감해줍니다. 즉 입장을 원하면 책 한 권은 사라는 뜻인데 의외로 책을 사지않고 입장료 8천원만 깔끔하게 내고 가는 분들도 많다고 하니....이토록 환대받지 못하는 것이 "책"이런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작고 아담한 집으로 들어가면 이렇게 홀로 고요히 필사할 수 있는 공간도 있어요.
책방이자 카페인 이 공간에서 밤이 늦도록 그간 우리들의 살아왔던 이야기, 앞으로 살아가고 싶은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역시 겨울날 장작난로는 마음의 불을 밝히는 최고의 아이템입니다....제가 늘 부러워하는 장작 난로...
5개월에 걸쳐 자동차로 세계를 횡단하는 여행을 하고 돌아온 모티프원 이안수 촌장님으로부터 길고 험한 여정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의 삶은 기약없이 노마드로 계속 세계를 다니겠다는 두 분 부부의 여정이 존경스럽습니다.
내 생애 가장 맛있게 먹었던 풍천장어의 힘을 빌어 다음날 오전에는 고창읍성으로 나들이를 갔어요.
그옛날 이 돌성을 어떻게 쌓았을까 했더니 입구에 여성들의 조각상이 서있네요.
머리에 돌을 이고 읍성을 한 바퀴 돌면 두 다리가 튼튼해지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며, 세 바퀴를 돌면 극락행이라는 표지를 보고서 어떻게든 주민들을 독려해 돌을 옮기고 성을 쌓도록 한 선진 마케팅을 깨달을 수 있었어요. 마을별로 경쟁을 시키기도 해서 읍성 지도에는 당시 어느 부분을 어느 마을이 와서 쌓았는지도 기록으로 다 남겨 놓았네요....
1월에 코로나 투병을 하고, 몸을 막 일으킨 우리들....
처음으로 장거리 여행을 나섰는데요. 아직 체력회복이 안되어 몸이 많이 힘들었지만 반가운 얼굴들과 아름다운 곳에 함께 있으니 마음만은 넉넉했습니다. 읍성 꼭대기에 올라 저 멀리 펼쳐진 너른 들을 바라보며 새해 새봄맞이 기운을 받아 봅니다.
그리고 전북 고창과 바로 맞닿아있는 전남 영광군 백수해안을 찾아 그토록 그리운 바다 구경을 했어요.
서해에 갯벌없이 이리 넓게 펼쳐진 동해바다 같은 해안이 있다니....놀라웠어요.
이렇게 한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한 달을 살면, 바다에 대한 그리움이 조금 없어지려나요....
그간 움추렸던 몸과 마음을 펴고 이제 슬슬 봄맞이 준비를 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천천히 느리게, 나비처럼 가볍게, 바람의 마음으로 살고 싶은 2023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