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학명
비 개인 방죽에 서늘한 기운 몰려오고
멀구슬나무 꽃바람 멎고 나니 해가 처음 길어지네
보리이삭 밤사이 부쩍 자라서
들 언덕엔 초록빛이 무색해졌네······
다산 정약용 선생이 1803년에 쓴 〈농가의 늦봄(田家晩春)〉1) 이란 시의 일부다. 초여름에 이를 즈음 다산이 귀양살이를 하던 강진을 비롯하여 남부지방에는, 나뭇가지 끝에 연보랏빛의 조그만 꽃들이 원뿔모양의 꽃차례에 무더기로 핀다. 우리나라의 나무 꽃은 보라색이 흔치 않아 더욱 돋보이며, 라일락처럼 향기롭기까지 하다.
원래 멀구슬나무는 아열대의 따가운 햇살에 적당히 자기 몸을 달궈가면서 아름드리로 자라는 큰 나무다. 우리나라는 추위를 버틸 수 있는 한계 지역이다. 그래서 멀구슬나무가 일본에서 들어온 것인지, 아니면 중국 남부에서 건너온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남부 해안에서부터 제주도로 이어지는 섬 지방의 인가 근처 이곳저곳에 흔히 심는다. 동네의 적당한 공터를 차지하면서 그늘을 제공하고, 나무 전체를 뒤덮다시피 열리는 열매는 물론 뿌리까지 나름대로의 귀중한 쓸모가 있다.
자람이 워낙 빨라 십여 년 남짓이면 지름이 한 뼘을 훌쩍 넘긴다. 1년에 자라는 나이테 지름이 거의 1~2센티미터에 이르는데, 오동나무와 ‘형님 아우’ 하게 생겼다. 빨리 자라는 나무임에도 비교적 단단하고, 아름다운 무늬를 갖고 있다.
멀구슬나무는 갈잎나무로서 아름드리로 자란다. 나무껍질은 흑갈색으로 세로로 잘게 갈라지며 가지는 굵고 사방으로 퍼진다. 잎은 끝이 뾰족한 작은 계란형으로 불규칙한 톱니가 있고, 한 대궁에서 2~3회씩 갈라져 날개깃 모양으로 수십 개의 잎이 달려서 옆으로 퍼져 있다. 열매는 처음에는 파란색이나 가을에 들어서면 노랗게 익는다. 바깥은 말랑말랑하고 가운데에 딱딱한 씨가 들어 있는 핵과(核果)다. 손가락 마디만 한 크기에 모양은 둥글거나 약간 타원형이고, 긴 열매 자루에 주렁주렁 매달려 겨울을 지나 다음해 여름까지 달려 있다. 달콤하여 먹을 수 있으며, 속의 씨는 세로로 골이 지고 오이씨처럼 생겼는데, 무척 단단하다.
열매는 옷장에 넣어 나프탈렌 대용으로 쓰고 씨에서 짠 기름은 불을 밝히는 데 쓰인다. 염주를 만들 수 있다 하여 처음에는 ‘목구슬나무’로 불리다가 이후에 ‘멀구슬나무’가 된 것으로 짐작된다. 씨는 독성이 있으므로 약으로 쓰는 것 외에 사람이 함부로 먹어서는 안 된다.
멀구슬나무의 또 다른 귀중한 쓰임새는 약재다. 《동의보감》에 보면 열매는 “열이 몹시 나고 답답한 것을 낫게 하며 오줌을 잘 통하게 한다. 뱃속의 세 가지 충을 죽이고 옴과 헌 데를 낫게 한다”라고 했다. 줄기의 속껍질은 햇빛에 말려 역시 구충제나 피부병 치료제로 썼다. 《양화소록》의 〈매화〉 편에 보면 “꽃을 접붙이는 방법으로 고련수(苦練樹)에 매화를 접붙이면 묵매(墨梅)와 같은 꽃이 핀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그러나 실제로는 서로 접붙이기를 할 수 없는 나무다.
멀구슬나무와 비슷한 나무로 인도에서 자라는 인도멀구슬나무가 있다. 인도인들은 이 나무를 거의 만병통치약처럼 사용했다. 잔가지로 이를 닦았고 즙으로는 피부병을 고쳤으며, 잎사귀를 놓아두어 해충을 없앴다. 우리나라에서도 잎을 화장실에 넣어 구더기가 생기는 것을 막았으며, 즙액을 내어 살충제로 쓰기도 했다. 종 이름인 ‘azedarach’에 독이 있는 나무란 뜻이 있듯이 열매 이외에도 잎, 줄기에 유독 성분이 조금씩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