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사□71
한국전쟁 당시 M1카빈에 대한 짧은 이야기
위의 도표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 장병들의 보병 화기 탄약 소모에 대한 것인데 카빈의 경우 유독 패닉 상태에서 탄약 소모가 가장 심하게 많았습니다. 그 다음으로 많은 M1 개런드와는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규모였죠. 이러한 문제는 반자동/자동 사격이 가능한 카빈의 문제와 연관이 있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실 1986년도에 나온 한국전쟁 당시 미 육군의 개인화기를 다룬 문서들을 보면, 일선에서 M1 카빈에 대한 불평불만은 끊임없이 제기되었다고 함. 그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나오는 M1 카빈의 위력문제부터 사거리 문제가 많이 제기되었고, 그 유명한 '중공군을 쐈는데 방한복 때문에 사살하지 못했다.' 라는 약간 도시전설급의 이야기도 'INFANTRY OPERATIONS AND WEAPONS USAGE IN KOREA' 에서 확인이 가능합니다.
뭐 원문을 보면 당시 제1해병연대 소속 Joseph R. Fisher 대위의 증언이 있는데, 25야드(22.86m) 거리에서 중공군의 가슴에 카빈을 사격했는데 쓰러지지 않고 계속 달려왔고, 이러한 현상은 같은 중대 내에서 6명이 동시에 제기한 문제였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물론 방한복 때문이라는 이야기는 없고요.
물론 실제로 카빈의 위력이 그렇게까진 떨어지지 않았지만 실제 전장에서 보여준 실망스러운 사례들 때문에 문제점이 더더욱 크게 보였을 공산이 큽니다.
카빈의 불발률은 M1 개런드보다 몇 십배는 높게 사례들이 나왔는데, 평균적으로 불발률은 30%대를 웃돌았고 극단적인 예시지만 제27연대와 제35연대의 경우 불발률이 80~85%를 찍은 적도 있다고 하니 확실히 문제가 있어도 어딘가에 단단히 있었을 가능성이 컸다고 보여집니다.
개인적으로는 카빈에 대한 정비 불량이 한 몫을 한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고 있습니다.
한 예시로 미군이 1951년 경에 약 50여 개 중대에 대한 총기 상태 점검을 실시했는데 오직 8개 중대만이 제대로 된 총기 수입 및 정비를 하고 있었고 나머지 중대들은 총기 손질에 매우 게으른 상태를 보이고 있었다고 지적하는 문서가 있으니, 당시 이러한 문제는 총기의 상태와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총기 손질을 게으르게 하니 불발률이 크게 올라갈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특히나 한국의 전장 환경이 고지전으로 변하면서 총기가 상당히 오염되는 경우가 잦았다고 하는 걸 감안한다면 저러한 불발률이 나오는 것은 당연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M1 개런드가 평균 불발률이 2~4% 정도였다는 것을 보면 M1 카빈의 불발률은 분명 총기 손질 이외의 문제가 있긴 했었던 모양입니다. 어쨌거나 이 때문에 카빈에 대한 신뢰도가 크게 떨어졌죠.
물론 반자동/자동 화기라는 점에서 메리트는 크게 있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일부 장병들은 M1 카빈이 반자동/자동 화기였다는 것에 크게 맹신하여 중공군이 접근하기 전에 탄창 다 비워버려서 정작 중공군이 다가올 즈음에는 탄창이 빈 상태였다는 식의 증언이 있는가 하면, 카빈을 든 사수들이 너무 흥분해서 1~2발이면 충분히 중공군을 사살할 수 있는 것을 계속 방아쇠를 당기고 있어서 30발을 모두 쏴버리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탄약 낭비라는 비판을 상당히 받기도 했습니다. 아마 위에서 쓴 도표의 경우가 이러한 것에 해당될 지도 모릅니다. 패닉에 빠졌을 경우에 마구잡이식 사격으로 탄약 낭비가 많았던 것에 대해서 말이죠.
그래도 근거리에서의 화력 투사 능력은 상당히 좋아서 3인이 탑승하여 지프로 순찰하는 경우, 대개 M1 개런드 2정과 톰슨 1정을 들고 타는 것보다는 카빈 2정과 톰슨 1정을 들고 타는 것을 선호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아예 외면받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대체적으로 패트롤 돌 때는 M1 카빈을 대신 들고 다녔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M1 카빈에 대해서 악평도 많고, 찬사도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비 불량으로 인하여 총기 사격이 제대로 안되었다는 점은 좀 아쉬운 대목이긴 합니다.
출처
INFANTRY OPERATIONS AND WEAPONS USAGE IN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