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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 Phalle)"이라는 여성 예술가를 아시나요?
엄청 유명한 분이네요. 저는 오늘 우연히 "MBC 문화사색 602회"를 보고 알았습니다. 불행한 성장기를 보내고 23세 때 정신병원에 입원했네요. 피해망상과 조증 증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전기충격치료를 10회 받으며 6주간 입원했습니다. 정신병원에서 미술치료 프로그램에 참석했다가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퇴원 후 잠시 모델 생활을 하다가 이후로 독학으로 미술작업을 해나갑니다. 정식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세계적인 작가, 자신의 심리적 상처를 미술로 승화시킨 작가입니다. 1930년에 태어나서 2002년에 사망했습니다. 올해 6월 30일부터 9월 25일까지 "예술의 전당"에서 작품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1.
먼저 2018. 8. 17. 방영된 "MBC 문화사색 602회"에 실린 소개문입니다.
문화사색 602회 바로가기
http://vodmall.imbc.com/Player/Player.aspx?broadcastid=1000855100605100000
■ 문화 트렌드X 세상의 억압을 향해 총을 겨눈 작가, <니키 드 생팔> 展
프랑스 현대미술사에서 독보적인 아우라로 사랑받는 한 작가의 대규모 전시가 열렸다. 바로 ‘니키 드 생팔’ 전. 이번 전시는 그녀의 절친이자 후원자였던 수집가 요코 마즈다 콜렉션의 대표작 127점으로 구성됐다. ‘니키 드 생팔’은 권위적인 아버지의 성적 학대 속에 자라났고 결혼 후 아내와 엄마의 역할에 적응하지 못하다가 신경쇠약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면서 미술치료를 받고 화가로 재탄생하게 된 드라마틱한 스토리의 주인공. 이번 전시엔 그녀를 전 세계에 알린 퍼포먼스 아트, 사격회화와 생명력 넘치는 여성 조각 ‘나나’ 연작, 연인 장 팅겔리와 협업한 작품, 연애편지, 화려한 일러스트까지 총망라됐다. 예술로 어두운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세상과 소통한 아티스트 ‘니키 드 생팔’을 전시에서 만나보자.
2.
[ARTWA Lab]에 올려져 있는 글을 일부 소개합니다. (2017. 8. 24. 최유진님의 글)
이 작가에 대한 많은 게시글들이 인터넷에 올려져 있는데 정신질환과의 관련성 속에서 그녀의 작품세계의 변화과정을 설명한 글로는 이 글이 가장 잘 정리가 되어 있는 듯하여 인용합니다. 원본 글에는 작품 사진들이 중간 중간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원본 글의 주소는
https://www.artwa.net/single-post/ARTWA-Lab-K%C3%BCnstler-07-Niki-de-Saint-Phalle
프랑스 조각가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 Phalle)은 파리에서 출생하고 뉴욕에서 31세까지 생활했다. 이후 1951년 파리로 돌아와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작가는 보그, 라이프, 엘르 등에서 사진 모델을 할 만큼 매력적인 외모였다. 하지만 불행히도 11살 즈음에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하면서 온전한 성장기를 보내지 못하고 전학과 자퇴를 되풀이하게 된다. 이후 20대까지 지속적인 신경쇠약으로 병원 치료를 받았다. 남성에 대한 혐오와 공포로 내적인 치유와 안정이 절실했던 작가는 미술을 치유의 수단으로 삼았다.
“나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예술가가 되었다. 나는 어떤 결단을 내릴 필요도 없었다. 그것은 나의 운명이었다. 다른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나는 아마 평생을 정신병원에 격리된 채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짧은 기간만 정신병원 신세를 졌고, 열 번의 전기 쇼크면 충분했다. 나는 예술을 나의 구원으로 그리고 필연으로 얼싸안았다.” - Niki de Saint Phalle
이 시기에 니키는 물감을 채운 총으로 인형을 쏘면서 인간에 대한 적개심과 <슈팅 페인팅> 시리즈로 발전시켰다. 자신이 개발한 총으로 부권에 대한 공격과 예술적 전통과의 결별을 의미하는 이러한 ‘쏘는 행위’는 작가스스로가 이 모든 것에서 해방되기위한 노력과 일치한다.
“1961년에 나는 총을 쏘아댔다. 아빠, 평범한 남자, 위대한 남자, 중요한 남자, 뚱뚱한 남자, 그냥 남자, 내 오빠, 사회, 교회, 의회, 학교, 내 가족, 내 엄마, 나 자신을 향하여, 모든 남자들을 향하여. 나는 쏘았다, 그것이 재미있기 때문에 그리고 아주 끝내주는 감정을 주기 때문에. 나는 그림들을 죽여버렸다. 그것은 새로운 탄생이었다. 희생자 없는 전쟁이었다.” - Niki de Saint Phalle
니키는 같은 시기에 여성적 역할만을 강요당하는 <창녀>를 표현한 작품을 발표한다. 창녀들의 육체는 사지가 절단되고 갈기갈기 찢겨져 캔버스 위에서 산산이 분해되어 있다. 남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위한 대상으로 전락한 창녀의 초상화이다. 이때부터 조그만 머리에 우람한 몸뚱이를 한 조각이 등장한다.
“나의 창녀들은 십자가에 달린, 희생된 여자들이다.” - Niki de Saint Phalle
니키는 점차 불면증과 신경쇠약증세가 호전되면서 자신감 있고 행복한 여성상을 만들기 위해 임산부들과 함께 지내며 <나나>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신체를 과장 시키고 균형에 맞지않게 배치하면서 낙천적인 풍만한 여성을 표현했다. 나나로 대표되는 여성적 원형은 이 사회의 상징적 질서 안에서 여자의 위치를 유희적 방식으로 표현했다.
[이하 생략합니다.]
3.
"예술의 전당"에서 이 분의 작품전이 열리고 있네요. 아래에 소개합니다.
니키 드 생팔展_마즈다 컬렉션
2018.06.30(토)~2018.09.25(화)|한가람미술관
원본 글 주소는
https://www.sacticket.co.kr/SacHome/exhibit/detail?searchSeq=34093
세계인의 영혼에 예술적 총격을 가한 현대미술의 거장 - 니키 드 생팔
1961년에 발표한 <사격회화 shooting painting>로 일약 세계적 명성을 얻은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 Phalle은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자유로운 기쁨의 에너지와 현실을 향한 날카로운 통찰을 동시에 담은 그녀의 작품은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파리에서 한국관광객들에게 사진 촬영장소로 가장 사랑받는 장소 중 하나인 퐁피두센터의 조각분수공원(스트라빈스키 분수)를 만든 작가이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니키는 유년시절을 거의 미국에서 보냈고, 자연스럽게 미국과 프랑스 추상회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나갔다. 그리고 1961년 <사격회화 shooting painting>를 통해 현대미술계에서 이름이 알려지게 된다. <사격회화>는, 물감이 담긴 깡통이나 봉지를 석고화면에 부착해 만든, 아상블라주 작품에 실제로 총을 쏘는 작업이다. 권력에 대한 저항과 여성으로서의 개인적 상처를 적극적으로 표현한 이 작품은 회화, 조각 그리고 퍼포먼스를 아우르는 선구적이고 도발적인 예로서 미술사적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 후 니키는 풍만한 체형의 여인을 온갖 포즈로 다양하게 표현한 <나나 Nana> 연작 작업에 주력했다. 화려한 색채와 활력 넘치는 이미지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나나> 작품들은 전 세계 곳곳에 설치되어 모성과 여성성의 상징으로 사랑받고 있다.
이외에도 예술가로서 다양한 활동을 했던 니키는 1970년대 후반부터 2002년 사망할 때까지 오랜 세월동안 작업해서, 일생의 꿈이었던 <타로공원 The Tarot Garden>이라는 기념비적인 조각공원을 남겼다. 신화와 전설들이 혼합된 상상력으로 지어진 타로 공원은 환상적인 문화공간으로 대중들에게 치유와 기쁨을 제공한다.
이번 전시회에는 요코 마즈다 시즈에 Yoko Masuda Shizue의 소장품이 소개된다. 요코 마즈다 시즈에 Yoko Masuda Shizue는 1980년대부터 니키와 교류했고 일본 도치기 현에서 니키미술관을 창립해서 운영했었던 소장가이다. 2015년 도쿄 국립신미술관에서 일본 사상 최대 규모의 <니키 드 생팔 회고전>이 개최되었는데, 전시된 작품들 중 약 90%가 요코 마즈다 시즈에의 소장품이었다.
마즈다컬렉션의 대표작품 127점이 전시되는 이번 전시회는 니키 드 생팔의 예술을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4.
"니키 드 생팔 × 요코 마즈다"라는 책이 있네요. 책 소개글입니다.
[인터파크도서에 실린 서평입니다. 글주소가 너무 길어 못올립니다.]
책소개
세계인의 영혼에 자유의 총을 쏜 예술가 니키 드 생팔과
그 총에 감화되어 니키의 컬렉터가 된 요코의 특별한 우정
20세기 누보 레알리슴을 대표하는 프랑스의 예술가이자 자유롭고 재기 발랄한 조각 시리즈 ‘나나’를 만든 작가 니키 드 생팔. 그녀는 언제나 새로운 표현 방법과 재료를 사용하여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작품들을 세상에 선보였다. 무엇보다 사회가 여성들에게 부여한 전형적인 여성의 이미지에 커다란 염증과 억압을 느껴 그것을 깨고자 했다. 이 때문에 그녀는 ‘페미니스트 예술가’, ‘사회에 저항한 작가’로도 불린다.
그리고 지구 반대편에서 니키 드 생팔과 동시대를 살았던 요코 마즈다. 그녀 역시 당시 여성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가치를 추구했다. 어느 날 우연히 니키의 작품을 본 요코의 인생은 송두리째 변한다. 요코는 니키 드 생팔의 컬렉터로서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하고 니키와의 우정도 쌓아 나간다. 이 책은 작가와 컬렉터 사이를 뛰어넘은 예술과 삶의 동반자이자 다른 시대를 열려고 했던 두 여성의 이야기를 담았다.
출판사 서평
“당신의 영혼에 예술적 총격을 가하다!”
사회의 편견과 억압에 맞서 치유와 해방을 노래한 니키와 요코의 이야기
“우리 안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위대한 창조적인 힘이 있다고 믿습니다.”
예술가의 사명과 한 명의 인간 사이의 니키 드 생팔
금발머리 미인. 누구든 니키 드 생팔의 첫인상은 여기서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그녀는 [보그]와 [엘르] 같은 패션 잡지 및 사진 주간지 [라이프]의 모델로 활동했고, 영화에도 출연했다. 매혹적인 외모에서 뿜어내는 형형한 눈빛은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강한 인상을 남긴다. 20세기 예술 사조 중 하나인 누보 레알리슴을 대표하는 예술가로 작가로서도 성공을 거두었다. 니키의 삶은 화려했을 것만 같지만 대공황으로 태어나자마자 부모와 헤어졌고 10대 초반에는 아버지에게 성폭행당해 정신질환을 앓는다. 이를 달래기 위해 미술을 시작하여 마침내 예술사의 한 획을 긋게 된다. 만년에는 건강이 좋지 않아 크게 고생했다.
그래서 니키 드 생팔이 만든 오색 통통하고 재기 발랄한 조각상 ‘나나’를 보면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 그리고 마침내 누보 레알리슴 작가, 페미니스트라는 수식어보다 행복하고 자유롭기를 바랐던 한 명의 인간이 보인다. 니키는 석고상에 직접 물감 총탄을 쏘아 완성시킨 슈팅 페인팅, 타로 카드의 주인공들이 즐비한 타로 공원 등 매번 새로운 작품과 스타일로 화제에 올랐지만 늘 자유로운 조각들을 선보였다. 이처럼 그녀가 만들어 낸 조각상들은 사회의 편견이나 강요에 얽매이지 않았다. 어쩌면 자신의 삶을 불태워서라도 세상에 자신 같은 고통을 겪는 사람은 없고, 대신 모두가 자유로울 수 있는 세상을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가정주부 요코, 컬렉터가 되다
니키 드 생팔에겐 몇 명의 컬렉터들이 있었지만 그중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단연 ‘요코 마즈다’다. 요코는 니키가 머물고 활동했던 프랑스나 미국이 아니라 일본에 살았다. 니키 드 생팔을 만나러 갈 때까지는 한 번도 일본 밖을 나간 적도 없다. 또한 전문 컬렉터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예술이나 미술에 정통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니키 드 생팔 외에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소장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니키 드 생팔만의 컬렉터’였던 셈이다.
여성으로, 아내로, 어머니로 평범한 삶을 살던 요코는 ‘세상이 나를 이미 만들어 둔 틀에 가둔다’, ‘나의 역할은 무엇일까?’와 같은 고민을 안고 살았으며 나름대로 그 방법을 궁리하기도 했다. 그리고 50세가 된 어느 날 우연히 한 갤러리에 들렀다 〈연인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라는 판화 작품을 보고 단번에 매료되어 처음 ‘니키 드 생팔’이라는 작가를 알게 된다. 이후 생팔의 작품을 수집하고 마침내 니키 드 생팔 미술관까지 짓게 되면서 컬렉터이자 미술관 관장으로 제2의 삶을 산다. 또 니키와 둘도 없는 친구이자 동반자로 거듭난다.
예술이 주는 힘은 무엇인가?
이 책은 니키 드 생팔의 컬렉터이자 팬, 그리고 친구였던 요코 마즈다의 입장에서 쓰였다. 요코는 니키 드 생팔과 한 살 차이였다. 요리사인 아버지 밑에서 세 자매의 맏이로 태어난 그녀는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전쟁을 겪는 등 굴곡진 유년을 보내지만 아버지의 지지로 고등교육까지 받는다. 남편과의 사랑의 도피로 아버지와 요원하기도 했지만 가업을 이어받으면서 당시로서는 드물게 경제적으로도 자립할 수 있었다. 여성이기 때문에, 시대적 상황 때문에, 일본이라는 사회 때문에 자신의 꿈이나 이상을 마음껏 펼칠 수 없었지만 1960년대에 불어온 페미니즘 열풍으로 조금씩 변화한다. 결정적으로 니키 드 생팔을 만나면서 자신이 바라는 모습으로의 삶을 꾸려 나간다.
요코가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여 니키 드 생팔을 만나고 이후의 삶을 기술하는 과정에서 독자들은 필연적으로 예술의 진짜 힘을 마주하게 된다. 요코는 니키의 컬렉터였지만 니키의 작품은 한 점도 팔지 않았고, 니키 역시 요코를 위해 기꺼이 작품을 창조했다. 1980년대에 사람들이 니키 드 생팔은 한물간 작가라며 폄하했을 때나 미술관 건립으로 여러모로 어려움을 겪었을 때에도 요코의 의지는 확고했다. 이와 같은 지지자들 덕분에 니키 드 생팔은 현재에도 신선한 예술가로 기억되고, 요코 역시 평생 예술이라는 따듯한 요람에서 잠들 수 있었다. [니키 드 생팔 × 요코 마즈다]를 읽는 독자들도 그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목차
서문
제1장 시타마치 출생의 무모함
제2장 불타 버린 자리의 청춘
제3장 사랑의 도피
제4장 너, 시시해져 버렸구나
제5장 여주인의 시대
제6장 니키는 바로 나다
제7장 50세의 결의
제8장 미술관을 향한 길
제9장 여러 가지 문제
제10장 영원한 우정
후기
참고문헌
본문중에서
요코, 우리의 만남은 무척 특별한 것이었죠. 운명적인 만남이었어요. 만날 수밖에 없었어요. 우리 만남은 약속된 것이었죠. 우리가 전생에서 서로를 알고 있었다고 당신은 느끼고 있지요. 나도 당신과 처음 만났을 때, 무척 신기한 느낌이었어요. 당신과 만나면 기뻐서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 요코, 당신은 자신이 전생에서 나를 매우 고통스럽게 했을 거라고 했죠. 전생에서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일이 무엇이든, 요코, 관계는 수복되었어요. 당신은 나, 니키 드 생팔의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존재입니다.
5.
위키피디아에 수록된 "니키 드 생팔"에 대한 인물 소개글입니다.
내용이 상세한데 본 글에서는 첫 문단만 소개하고, 이하의 내용들 중에서는 그녀의 정신병원 입원 및 미술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하게 된 내용만 소개합니다.
글주소는 https://en.wikipedia.org/wiki/Niki_de_Saint_Phalle
Niki de Saint Phalle (born Catherine-Marie-Agnès Fal de Saint Phalle, 29 October 1930 – 21 May 2002) was a French-American[3][4] sculptor, painter, and filmmaker. She was one of the few women artists widely known for monumental sculpture,[5] but also for her commitments.[6]
니키 드 생팔 (출생시의 이름은 카타린-마리-아그네스 팔 드 생팔, 1930. 10. 29 ~ 2002. 5. 21.)은 프랑스계-미국인이며, 조각가, 화가, 영화제작자, 기념비적 제작자이다. 그녀는 기념비적인 조각으로 널리 알려진 몇 안 되는 여성 예술가 중 한 명이며, 또한 그녀의 공약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중략]
For about a decade, the family would wander around France and Europe, living a bohemian lifestyleNice, Saint Phalle and Mathews would have separate affairs in 1953; after she attacked her husband's mistress, she took an overdose of sleeping pills, but they had little effect because she was manic[14] When Harry discovered a stash of knives, razors, and scissors under a mattress, he took his wife to a mental clinic in Nice, where she was treated with electroshock therapy and insulin shock[15][14] Liberated from routine household work, she focused on creating artwork instead and improved enough to be discharged in six weeks.[14] Around the same time, her husband abandoned his music studies and started to write his first novel, eventually switching to a career in writing.[11]
While in Paris on a modeling assignment in 1954, Saint Phalle was introduced to the American-French painter Hugh Weiss (fr), who became both her friend and artistic mentor. He encouraged her to continue painting in her self-taught style.[11][7]
약 10년 동안, 그 가족은 프랑스와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보헤미안 생활을 했다. 니스에서는, 그녀(생팔)와 남편(매튜)이 1953년에 별거했을 것이다; 그녀가 남편의 정부를 공격한 후, 그녀는 수면제를 과다하게 복용했지만, 수면제는 그녀가 그 당시 조증상태였기 때문에 거의 효과를 보지 못했다. 남편(해리)이 그녀의 매트리스 밑에 칼, 면도기, 가위 등이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그는 아내를 니스의 한 정신병원에 입원시켰고, 그녀는 그 곳에서 전기충격치료와 인슐린쇼크치료를 받았다. 일상적인 집안일으로부터 해방된 그녀는 대신 예술작품을 만드는 데 주력했고 6주 내에 퇴원할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되었다. 그 무렵에 그녀의 남편은 음악공부를 그만두고 그의 첫 소설을 쓰기 시작했으며, 결국 작가로 직업을 바꾸었다.
1954년 파리에서 모델 활동을 하던 중에 생 팔레는 친구이자 예술적 멘토가 된 미국-프랑스 화가 휴 와이스를 소개받았다. 그는 그녀가 독학 스타일로 그림을 계속 그리도록 격려했다.
[참고]
아래는 "한글판 위기백과"의 내용입니다.
니키 드 상 팔(프랑스어: Niki de Saint Phalle, 1930년 10월 29일 ~ 2002년 5월 21일)은 'nanas'조각(거대하고 풍만한 여성 조각)으로 알려진 프랑스 태생 아티스트이다. 뉴 일리 - 쉬르 - 센,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1960 년대의 Nouveaux Réalistes 중 하나이며, shooting picture, 석고 위의 페인트를 쏘아 흘러내리게 한 그림으로도 명성을 얻었다. 2002년 5월 21일, 샌디에이고에서 사망했다.
[참고] "니키 드 생팔"에 대한 촛불 배정규의 또 다른 글
"니키 드 생팔 (Niki de Saint Phalle) -- <사격회화 shooting painting>동영상
https://cafe.naver.com/saraskey/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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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 당장 보러 가야 겠어요~^^
즐 주말 되세요~^^
네~~ 좋은 시간 되실 것 같아요. 다녀 오시면 짧게라도 소식 전해 주세요.~~
@촛불 (대구) 다녀왔어요~^^
색채가 이쁘고 명랑하고 좋았어요~
그림을 그려서 편지를 쓰곤 했던데 좋은 아이디어 였어요
@은이 잘 다녀오셨군요. 사진 올려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