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홍매(洪邁, 1570년~1612년)
본관은 풍산(豐山), 자는 민선(敏善), 출생지는 나주(羅州). 남평공계 교관공파 인물.
고조부는 생원 홍귀지(洪貴枝), 증조부는 홍한지(洪漢智), 조부는 증공조참의 홍항(洪沆), 부는 동몽교관 홍정립(洪廷立), 모는 참봉 최복창(崔福昌)의 따님이고, 조선의 제15대 왕 광해군의 정식으로 간택을 받은 후궁 숙의홍씨(淑儀 洪氏)의 부친이다.
1604년 선조32년 홍매(洪邁)를 지평 현령(砥平縣令)으로 임명하다.
1606년 선조34년 증광시에서 2등으로 진사가 되었다.
1616년 광해군 8년 7월 14일 홍매(洪邁)를 고양 군수로 삼았다.
1617년 광해군 9년 8월 8일 【고양 군수 홍매(洪邁)의 딸과 생원 윤홍업(尹弘業)의 딸을 우선 숙의(淑儀)로 책정하고, 그외 삼간 처녀(三揀處女)들은 모두 혼인을 허락하도록 하라.】고 전교하다.
1616년 광해군 8년 10월22일 "전라 감사는 사연(賜宴)을 마친 뒤에 하직(下直)하게 하고, 선수도감 전 낭청 홍매(洪邁)를 명초하여 연회에 참여하게 하라. 전 제조, 전 낭청, 전 감역관을 모두 연회에 참여하게 하라."
1617년 광해군 9년 12월 25일 홍매(洪邁)를 연안 부사(延安府使)로 삼았다.
1619년 광해군 11년 1월 14일 황연도(黃延道) 순안어사 한명욱이 【홍매는 홍숙의(洪淑儀)의 아버지인데, 세력을 믿고 재물을 탐하여 〈가는 곳마다 고을을 텅 비게 만들었고, 관고가 텅 비게 되었다.〉】며, "연안 부사(延安府使) 홍매(洪邁)는 가렴 주구만을 일삼아 원망이 국가로 돌아가게 했으니, 우선 파직하소서."하고 거론하여 탄핵하자 사람들은 대부분 통쾌하게 여겼으나, 왕은 그냥 두고 문책하지 않았다.
1621년 광해군 13년 2월 23일 홍매(洪邁)를 홍주 목사(洪州牧使)로 임명했다.
1623년 인조 1년 4월 25일 사간원이 【전 목사 홍매(洪邁)는 폐조 후궁의 아비로서 탐욕스런 행동을 자행하면서 가는 곳마다 폐단을 일으켰는데, 홍주(洪州)의 책임자로 임명을 받고서는 더욱 욕심을 한없이 부렸습니다. 반정한 뒤에는 스스로 보전치 못할 것을 알고 관고(官庫)의 물건을 모조리 훔쳐 낸 뒤 계속해서 배로 실어 날랐으니, 탐욕스럽게 재물을 탈취한 자취가 낭자하기 짝이 없습니다. 잡아다 국문하여 율대로 처치하소서.】라고 청해서 인조가 따랐다.
1623년(인조 원년) 인조반정이 일어나 광해군이 폐위되고, 1623년 인조 1년 9월 14일 인조가 숙의홍씨(淑儀 洪氏)는 홍매(洪邁)의 딸이고, 중도 부처(中途付處)되었다. 이외에도 홍씨를 비롯한 광해군의 여러 후궁들의 일족이 높은 관직을 제수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광해군과의 사이에서 자녀는 없었고, 생몰년은 모두 미상이다.
1624년 인조 2년 5월 7일 【홍매(洪邁)는 후궁의 아비로서 세력을 믿고 탐욕을 부린 것이 권여경 등보다 심하였으나 대관(臺官) 중에 돌봐 주는 자가 있어 발론되지 않았으므로 귀양 보내라.】고 인조가 분부했다.
첫댓글 탐관오리도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