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9장에는 세리의 신분이었지만 구원을 받은 삭개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그 지역에 방문하셨을 때,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고 싶어서 앞서 달려가서 뽕나무에 올라갔다고 나옵니다. 예수님은 그런 삭개오의 집을 방문하셨습니다.
그러자, 감격한 삭개오는 자신의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다고 하면서, 또 자신이 누구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하여 갚겠다는 얘기를 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이런 삭개오를 가리켜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고 하시며,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인정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만약 삭개오의 말대로 한다면, 삭개오가 부당하게 빼앗은 것은 자신의 재산의 1/8 이하여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재산의 1/2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 드린 후 나머지 반으로 빚을 네 배씩 갚는다면, 그 빚은 남은 재산의 1/4 이하, 즉 전체 재산의 1/8 이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세리에게는 '허가낸 도둑'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거의 모든 재산이 부당한 착취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삭개오의 입장은 자신의 대부분의 재산은 깨끗하게 벌어들인 것이고, 많아봤자 단지 1/10~1/20 정도만이 횡령한 것이라고 생각을 했나 봅니다.
삭개오는 ”내가 누구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것은 자신이 누구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것이 없다는 주장을 전제로 합니다. 자신은 누구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것이 없지만 혹시라도 누구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다면 이라고 한 것입니다. 또한 앞으로는 강제로 빼앗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겠다는 얘기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앞으로도 누구에게서 강제로 빼앗는 일이 지속될 것임을 뜻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삭개오에게 왜 예수님은 구원이 이르렀고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인정을 해 주셨을까요? 혹시 이것이 그 이후 유대인들이 지속적으로 고리대금업자를 하는 것에 대한 면죄부는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결코 어리숙하지 않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올가미 같은 질문에 전혀 속지 않고, 오히려 예리하게 역질문을 하심으로써 항상 그들을 이기는 분이셨습니다.
삭개오 이야기는 어린이 설교에 등장하는, 마치 안데르센 동화와도 같은 이야기입니다. 어린이 설교에서 가장 인기 많은 스토리가 구약에서는 요나 이야기라면, 신약에서는 삭개오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수학적으로 생각을 해 보면, 마치 동심파괴 같은 상황이 일어납니다. 동화 같기만 하던 이 스토리가 성경 상의 난제에 해당한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삭개오는 죄인이었지만, 주님을 향한 열정이 있어 나무에 오르기까지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삭개오의 중심을 보시고 축복을 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삭개오는 아직은 자신이 어떤 잘못을 저질러 왔는지 제대로 파악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예수님을 향해 돌아서기는 했지만, 여전히 신앙지도가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삭개오는 네 배가 아니라, 일대일로 갚아도 자신의 전 재산이 없어질 것임을 깨닫고 더욱 겸손해져야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회심도 중요하지만 지속적인 성화의 과정도 필요하다는 것을, 삭개오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1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