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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일 (2019. 03. 07. 목) 달랏 투어 2
오늘도 Tour가 계획되어 있어 7시에 2층 식당으로 내려가니 살짝 덜 익은 소고기를 고명으로 올린 쌀국수 2그릇을 사다준다. 여러 가지 채소를 곁들인 쌀국수 맛이 좋으니 별로 불만이 없다. 8시 15분에 pick up 와서 나가니 차가 아주 고물이다. 게다가 시내 곳곳을 다니며 주로 신체가 큰 외국 사람들을 태우는데 나중에는 12인승 차에 12명의 투어 신청자가 타고나니 여자 가이드는 앞 엔진룸에 앉았다. 운전기사까지 14명이 탔으니 에어컨 작동도 신통찮은 승합차라 저절로 땀이 날 지경이다. 한국사람 둘이 타서 이야기를 하는데 가이드가 우리 두 사람은 내려서 다른 차를 타면 어떻겠느냐 해서 어딜 가든 이 차보다 나을 듯해서 좋다고 했다. 차에서 내려 길을 건너가니 앗! 쭈구리, 흰색 산타페가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 놓고 우릴 기다리고 있다. 이런 홍복(洪福)이 있나. 곧 호텔에서 잘 차려입은 베트남 아줌마 둘이 탔는데 영어의 발음과 구사가 아주 능숙하다. 안선생은 이들이 옛 베트남 전쟁 종전(終戰) 때 보트 피플로 미국에 건너 간 베트남인이라고 추측했다. 물어 볼 수 없으니 그럴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 커피 꽃이 하얀 밥알처럼 줄기에 다닥다닥 붙어 있다. 오른쪽 가지에 아직 안 핀 꽃봉오리도 보인다. >
Flower farm이라는 팸플릿의 설명이 적힌 곳을 갔는데 장미와 백일홍, 달리아 등을 재배하는 화원이었는데 별 감흥이 없었다. 그리곤 커피 농장에 갔는데 족제비(weasel) 카페의 탁 트인 전망대에서 3,500원짜리 커피를 주문해 마셨는데 비싼 만큼 풍미가 좋다. 롯데마트에서 싼 아라비카 커피 200g 1봉지 값이 2,500원인 것을 생각하면 엄청 비싸다 아니할 수 없다. 날씨가 엄청 좋아 더울 정도인데 간간이 베트남 아줌마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다음 코스를 보니 팸플릿에 'crickets farm'이라 적힌 곳이라서 야구 비슷한 운동과 관련이 있는 곳인가 했더니 'cricket'이 귀뚜라미란 뜻도 있어 귀뚜라미 양식장이란 걸 알았다. 나중에 귀뚜라미 볶은 것을 먹으라고 접시에 내어놓았는데 그 맛이 메뚜기 비슷했다. 그리고 누에에서 비단실 뽑는 공장을 구경했다.
“Linh An Tu”란 절 구경을 갔는데 절의 규모가 대단하고 특히 현재 건축 중인 콘크리트 불상은 완성되면 높이가 49m가 된다고 하니 대단한 크기다. 안선생은 세계 최대 크기의 불상일 것이라 했지만 나는 중국 아미산 악산대불이 훨씬 클 것이라 생각했다. 안선생의 말을 들은 남자 가이드도 글쎄 하는 표정으로 보아 아마 최대의 불상은 아닐 확률이 높다. 나중에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와불(臥佛)로는 중국 용문암 와불이 416m이고 불상만 따졌을 때는 미얀마 보디따따웅 사원의 불상이 116m로 최대 높이라 한다. 악산대불은 71m밖에 안된다고 한다. 불상이 크다고 불심이 큰 것은 아니니 별 의미 없는 크기 경쟁이 아닐까 한다.
< 계단 옆은 저런 나무 용(龍)으로 장식해 두었다. >
< 절 앞, 잎도 없이 노란 꽃이 핀 나무를 발견했다. 이름도 모르고 처음 보는 나문데 아래 세워둔 차의 크기로 나무의 높이는 20m 이상 될 것이라 생각했다. >
점심때가 되어 가이드가 우리에게 와 식당에 미리 주문을 예약해야 한다면서 식사비는 1사람 10만 동인데 반찬이 10가지 정도 나온다면서 어떻게 할 것인지를 영어로 묻는다. 어제 점심때의 슬프고도 아픈 추억을 가진 나에게 그런 잔인한 질문을 하다니! 나는 안선생을 가리키며 “He’s boss.”라고 했더니 잘 알아듣고 안선생에게 가 묻는다. 1인 5,000원이니 다 속아도 5,000원이라면서 괜찮겠다고 해서 예약을 했다. 곧 인근 식당에 갔더니 베트남식 세트 메뉴로 음식이 푸짐하고 소, 돼지, 닭 춘권, 등등 반찬 종류도 많아 어제 호텔보다 훨씬 나았다. 심지어 우리 옆 좌석 서양 아가씨는 밥을 다 먹고서는 빈 도시락을 달라더니 남은 음식을 두 도시락이나 싸서 간다. 아마 저 아가씨는 저녁에 야참까지 해결이 된 듯하다.
< 4사람이 한 상을 받았는데 굉장히 푸짐하다. 이 상이 2만 원짜리 상이다. >
식사 후에는 “Elephant water fall”이란 곳에 가서 사진 몇 장 찍고 아래까지 내려가지는 않았다. 입구의 찻집에 앉아 오는 사람 가는 사람 구경을 했는데 서양 여자들의 노출에 내가 겁이 날 정도이다. 해수욕장에 어울릴 정도로 노출이 심한 옷은 굳이 비키니가 아니어도 비키니 수준의 노출을 하고 있다. 노출이 심하든 말든 내가 옷을 사주는 것도 아니고 내 여자 친구도 아닌데 내가 무어라고 이야기할 것인가? 또 미국인지 독일인지도 모를 여자에게 대화를 할 실력도 없어 다만 세종대왕보다 여복이 많은 나의 늘어진 팔자를 마냥 누리기만 미안해 괜히 하는 말이다. 말이 났으니 말인데, 수년 전 서울 경복궁에 학생들을 인솔해 수학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수학여행 온 일본 여학생의 화장과 교복에 쇼크를 받았었다. 더 올라갈 수 없는 교복치마와 노랗게 빨갛게 염색한 머리, 아이라인에 짙은 화장은 당시 관점에서 여학생이라기에 힘들 지경이었다. 그러다 몇 년이 지나니 우리 여학생들이 거의 그 정도 수준에 이르렀다. 그때 나는 오래 살며 이 여자들의 치마가 얼마나 짧아지는지 보고나서야 죽겠다는 결심을 했다.
요즘 치마 길이는 팬티 맨 아랫부분에서 1㎝ 아래여서 옆으로 가끔 보이기도 해 구찌 터널 갔을 때 골초 아가씨 팬티는 이틀 동안 검정색이었다. 보려고 본 것이 아니라 배에 탈 때 눈이 있는 사람에게 저절로 보여진 것이다. 요즘 청바지 길이는 어떤가? 자를 만큼 잘라 앞주머니가 나올 때까지 자르더니 더 어떻게 보여줄까 고민 끝에 올을 뽑아내어 하늘하늘하게 조금 더 보여주었다. 그러다가 성질 급한 웬 아가씨가 아예 찢어서 보일 곳을 드러내더니 이제 정면은 올라갈 곳은 없으니 현재는 허벅지 옆쪽을 공략하는 중이다. 그래서 청바지의 전체적 모양은 일반 팬티 형이 되었다. 이에 몇 아가씨들은 같잖다는 듯이 속옷 만 입은 상태에서 다 비치는 망사 같은 옷을 입고 등장해 시선을 끌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압권은 레깅스 족(族)이다. 이들은 몸매가 다 들어나는 짝 달라붙는 레깅스로 일단 시선을 끄는데 일부 아가씨들은 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쪼그리고 앉았다가 일어나며 레깅스를 위로 바짝 치켜 올리는 만행(蠻行)을 저지름으로써 초등학생부터 지팡이를 흔들거리며 짚고 걷는 할배까지 눈이 있는 모든 남자들의 시선 처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용기 있는 중고생들은 지나갔다가 다시 몇 번이고 되돌아가서 관찰하는 열의를 보일 만큼 그녀의 패션은 보이지 않지만 다 알려주는 혁신적 패션이다. 그래서 레깅스를 운동복으로 볼 것인지 일상복으로 볼 것인지가 포털에 가끔 올라오는데 이미 일상복이 되었으니 신경 끄기 바란다.
14시 30분경에 투어를 끝내고 돌아오는 중 달랏 공항에 들러 미국 국적의 베트남 아줌마들을 내려 주었다. 베트남에 며칠 묵었느냐는 질문을 하는데 베트남이란 단어를 못 알아들어 몇 번을 물었다. 그건 아줌마가 “Vietnam”의 발음을 “베트남”이 아니라 “벹남”으로 발음했기 때문이다. 단어 공부는 이렇게 해야 기억에 오래 남는 법이다. 15시 35분에 호텔에 도착해 씻고 간단한 빨래 후 좀 쉬다가 저녁 먹으러 나왔다. 호텔 아래쪽은 두루 섭렵했으니 위쪽의 가장 번화한 병원 앞 로터리 쪽으로 가니 반찬뷔페 스타일의 식당이 있었다. 말이야 근사하지만 주변 노동자들이나 동내 주민들이 간단히 한 끼를 먹는 식당으로 진열장 안 음식을 가리키면 접시에 담아주고 밥과 반찬 개수에 따라 값이 정해지는 가게를 겸한 간이 식당이다. 우리는 밥에 반찬 5가지 정도 주문했는데 1끼 3만동이었다. 1,500원짜리 식사가 어떨까 했는데 너무 짜서 먹을 수 없다. 하긴 여기 날씨에 짜지 않으면 음식을 냉장 보관해야 할 텐데 여긴 냉장시설이 없다. 겨우 한 끼를 때우고 보드카 2병, 맥주 8캔, 요구르트 4개를 사서 호텔로 돌아오는데 호텔 앞에 대형 버스가 서 있고 사람들이 들락거린다. 리셉션 아가씨에게 “Congratulation!!”이라 했더니 방긋이 웃는다. 드디어 우리는 내일 조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 반찬뷔페의 식사. 돼지 뒷다리 살 고기에 꼴뚜기 조림, 그린 파파야 볶음, 그리고 여주로 끓인 국을 주문했는데 보기에는 그럴 듯해도 거의 소금이다. >
룸으로 올라와 내일의 조식을 기대하며 간단히 한잔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제 11 일 (2019. 03. 08. 금) 달랏 시내 구경
< 달랏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맞이한 첫 조식. 간이 들쑥날쑥하였는데 계란은 소금에 절인 것이라 엄청나게 짜고 사과 비슷한 과일은 달지도 않고 밍밍하다. 그래도 접시 아래쪽을 보면 레몬과 썬 고추가 보인다. 나는 쌀국수를 기다리고 있다. >
6시에 일어나 씻고 7시가 되길 기다렸다. 7시 10분에 2층 식당으로 가니 어젯밤에 본 베트남 사람들이 몇 와 있다. 진열된 음식은 기대에 못 미쳤지만 베트남은 쌀국수가 있어 어려움이 없다. 식사 중 베트남 사람들이 삼삼오오 들어와 휴대폰으로 사진도 찍고 왁자지껄 떠들며 식사를 하는데 입은 차림이나 몸에 두른 장신구를 보니 베트남에서 잘 나가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옷도 명품이고 남자들 시계도 값비싼 것들이다. 베트남도 드디어 코카콜라 맛을 알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의 일정은 “휴식”이다. 그러나 휴식이라고 해서 마냥 호텔 방에만 있을 수 없어 오늘은 달랏의 중심지인 쑤언흐엉 호수 주변에서 놀기로 했다. 택시비가 싸고 호텔에서 택시를 불러주니 어디 다니는데 별 부담이 없다. 물론 행선지는 베트남 말로 하지만 우리 발음이 정확하지 않으니까 사진이나 주소를 적어 기사에게 보여주면 곧 알아보고 그 장소에 태워준다. 아직까지 한 번도 잘못된 일이 없으니 이 방법이 낮선 곳에서 차량을 정확하고 쉽게 이용하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 평일 오전인데도 호숫가 “Blue water 레스토랑”에는 사람들이 많다. “사파”도 그렇고 휴양도시의 요건 중 하나는 마음을 평온하게 가라앉히는 호수인 것 같다. >
7.5만동짜리 카푸치노를 시킨 후 일정을 짰는데 일단 달랏 재래시장에 한 번 더 가서 전에 산 9만동짜리 말린 잭 플루트를 하나 더 사서 각자 한 봉지씩 선물로 집에 가져가기로 했다. 그리고 점심을 먹은 후 호텔로 가기로 했는데 오늘 점심은 오랜만에 한식으로 결정했다. 오늘 점심을 어디서 먹을지 탐색하기 시작했다. 무거운 와이파이 도시락보다 진화한 유심 데이터를 사용하니 인터넷 환경이 훨씬 낫다. 또한 구글의 정말 좋은 점 중 하나가 내가 원하는 호텔이나 음식점 찾기인데 사용 후기를 보면 대강 그 집의 분위기 같은 것을 짐작할 수 있어 정말 편리하고 거의 실수가 없었다. 달랏에도 몇몇 한식집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후기가 좋은 곳이 “땡큐식당”이었다.
< 연꽃 비슷한 것을 팔고 있었는데 도무지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알 수가 없다. >
< 땡큐식당 벽에 위의 식물이 “아티소”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이런 효능과 음용방법이 있다고 적혀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저께 “Datan la” 폭포 입구의 상점에서 무료로 시음한 차가 바로 이 차라는 생각이 났다. 그 때 맛이 그런대로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집에 여행 다니며 사다둔 차가 10년을 넘긴 차도 있어 포기했다. >
< 시장 입구에서 난생 처음 보는 과일을 발견했다. 나흘 전 시장에 왔을 때는 없었던 과일인데 아마 오늘 처음 시장에 나온 모양이다. 색깔은 진보라색이고 포도처럼 생겼는데 손가락 2마디 길이로 길쭉한 것이 포도와 달랐다. 아마 개량된 포도이리라 생각했는데 지금 사진을 보니 내 생각이 틀렸음을 알겠다. 이곳 사람들은 과일을 팔 때 꼭 잎사귀를 따서 같이 두는 관습이 있던데 지금 잎을 보니 포도 잎과는 전혀 다르니 다른 과일임이 분명하다. >
우리도 저녁 술안주로 과일을 좀 사고 싶은데 뭘 사야 할지 결정 장애를 겪고 있었다. 베트남은 과일이 풍족하지만 개량이 덜 되어 단맛과 식감이 우리 입에 맞지 않는 것이 더러 있다. 모양이 탐스럽고 맛있게 보인다고 샀다가 쓰레기로 버리지 못해 억지로 먹은 과일이 벌써 손가락으로 셀 정도가 되니 결정 장애는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시장을 한 바퀴 다 돌아 나올 즈음 웬 아줌마 2명이 위의 과일을 보더니 1㎏에 얼마냐고 물었다. 20만동(우리 돈으로 만 원)이라 했고 나는 베트남에서는 너무 비싼 가격에 깜짝 놀랐다. 그러나 이 아줌마는 베트남 재벌인지 두 말없이 2㎏를 사 가는 것이 아닌가! 우리 2명은 처절한 의논 끝에 처음 과일을 본 입구까지 와서야 저녁 술안주로 500g을 10만동에 샀다. 그 맛은 포도와 흡사하되 아주 달고 과육 안에 씨앗이 없어 먹기에 편하여 좋았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땡큐식당”으로 갔다. 구글 지도로 볼 때 걸어가도 될 거리처럼 보였는데 실제로 가보니 언덕 위라서 오늘처럼 화창한 날씨에 걸어가기 힘든 곳이었다.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를 시키고 오랜 만에 참이슬 1병과 맥주 2캔을 주문했다. 여기서 “오랜만”이란 단어의 사용은 중의적 의미를 가지는데 첫째는 외국에서 비싼 우리나라 소주를 오랜만에 시켰다는 뜻이고 점심 때 술을 오랜만에 주문했다는 뜻도 있다. 여행 중 낮에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점차 습관이 되었다.
< 밑반찬이 깔끔하고 가짓수도 많다. 게다가 폭탄처럼 부푼 계란찜은 서비스다. 베트남은 반찬의 개념이 없고 나오는 것은 전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거기에 비하면 한식을 얼마나 풍성한가! 오랜만에 배불리 먹었다. >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포도주를 한 병 샀다. 달랏은 화훼도 유명하지만 포도 재배도 유명해 베트남에서 유통되는 대부분의 포도주는 달랏에서 생산된다. 호텔 방에서 오랜만에 낮술에 취해 낮잠을 잤다. 잠이 짧은 안선생은 언제 일어 났는지 "Lam Dong"병원 담장을 따라 한 바퀴 돌고 오더니 좋은 집이 많다고 했다. 저녁은 호텔 옆 "퍼훙"에서 쌀국수로 해결하고 낮에 산 달랏 포도주와 포도 비슷한 과일로 간단히 한잔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은 달랏을 떠나는 날이다.
♠제 12 일 (2019. 03. 09. 토) 달랏 - 나짱
5시에 일어나 세면 후 짐 꾸리기에 들어갔다. “Viet jet” 항공은 저가 항공사인지라 수하물 중량을 7㎏밖에 안 주어 가급적 짐을 가볍게 해야 한다. 6시 30분에 식당에 가 뷔페로 차려진 음식에 쌀국수로 해장을 하고 308호 우리 방에 올라와 쉬었다. 산책 다녀온 안선생이 사탕수수 압착 즙을 사왔는데 1잔에 7,000동이란다. 우리는 이 사탕수수를 하노이에서 1,000원 주고 사 먹었다가 사흘 뒤 500원 주고 사 먹었는데 여기서는 350원에 사 먹는구나. 참나! 11시 40분이 되어 4일간 별장처럼 지내던 호텔을 체크아웃하고 가방을 맡긴 후 호텔 오른쪽 동내 쌀국수 맛집에 가서 좀 이른 식사를 했다. 안선생은 스페셜을 주문해 4.5만 동이고 나는 보통을 시켰는데 3.5만 동이다. 호텔에서 택시로 신 투어리스트에 가 버스 승차권을 받고 13시가 되어 출발했는데 올 때와는 달리 내려가는 길은 태어나 처음 경험하는 위험한 길이다.
차는 가끔은 인가가 전혀 없는 정글같이 우거진 숲 사이를 가다가 돌연 산사태가 난 급박한 경사진 길을 가다가 평야처럼 너른 들판을 가기도 했는데 특히 경사가 심한 곳은 거의 80° 정도로 밑은 까마득하여 보이지도 않았다. 여기에 비하면 “사파”로 가는 경사 길은 초급에 불과했다. 우린 사태가 나 공사 중인 곳을 지날 때마다 이곳에는 터널을 뚫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두려움을 달랬다. 그런 위험한 길임에도 불과하고 가끔씩 우리 버스가 큰 트럭을 추월하는 경우도 있어 간이 옴찔옴찔했다. 오늘이 휴일인지라 곳곳에 물이 흐르는 곳은 가족끼리, 친구끼리 놀러와 자리를 펴고 있었다. 그들의 머리 저 위쪽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바위가 위태롭게 걸쳐있는데도 말이다. 만약 우기(雨期) 때나 밤에 이런 곳에서 버스가 낭떠러지로 구른다면 생사는 뒷문제고 우선 찾을 수나 있을까 싶었다.
< 산길을 다 내려와 휴게소에 잠시 들러 쉬었다. 휴게소가 공원같이 넓고 잘 꾸며져 있어 한참 구경했다. >
오후 5시나 되어 “Na Trang”에 도착했다. “Na Trang”을 우리는 흔히 “나트랑”이라 말하는데 실제 이곳에서는 “tr”을 “ㅉ”으로 발음해서 “나짱”이라 발음을 한다. 바다를 낀 휴양도시라서 그런지 습도도 느껴지면서 아주 덥다. 예약한 “Golden Sand Hotel”가 주변에 있어 주소로 찾아가는데 이제 제법 똑똑해져서 골목 안에 숨어 있는 호텔을 곧 찾을 수 있었다. 체크인하면서 방값 이틀 분으로 150만 동도 지불했다. 호텔은 오래된 편이었지만 방도 깨끗하고 욕실도 넓다. 우선 좀 씻은 후 바깥 구경을 가기로 했다.
< 이틀 치 식권인데 영어와 함께 러시아어가 적혀 있다. 그만큼 이곳은 러시아 사람이 많이 오는 곳이다. 또 Date 뒤의 숫자를 보면 “10, 3, 20”이라 적혀 있는데 10일, 3월, 2019년(20 뒤에 19는 생략됨)이란 뜻인데 날짜를 우리와 반대 순서로 표기하고 있다. 게다가 1을 ⋀처럼 적고 있는데 11일을 보면 더 하다. 어떤 경우 ⋀ 아래 줄을 그어 더 헛갈리게 만들기도 한다. >
밖으로 나와 조금 걸으니 바로 모래사장이 깔린 해변이고 많은 사람들이 더위를 피해 나와 있다. 나짱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 휴양지로 개발된 곳이라 곳곳에 서양풍의 옛 건물이 남아 있고 해변이 깨끗하고 넓어서 바다와 태양이 그리운 러시아 사람들이 많은 곳이다. 그래서 더운 지방에 어울리지 않는 보드카가 발달했으니 우린 알게 모르게 러시아 사람들의 덕을 보고 있는 셈이다. 40°짜리 보드카가 일반적이지만 더운 지역에 맞게 30°짜리 보드카도 만들어 우리나라 사람이 마시기에도 적합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대표적 술이 “넵머이”란 누룽지 맛 보드카이고 일반적으로 많이 팔리는 것은 “Men”이란 술이다. “넵머이”는 소주에 길들여진 한국 주당들은 그냥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것이 좋고 우리처럼 맥주에 말아 마실 경우는 보드카 본연의 잡스런 향이나 냄새가 없는 “Men”이 낫다. 가격도 착해서 마트의 경우 “Men”보드카 29.5°짜리 500㎖가 5,000원 정도인데 정상적인 경우 두 명이 하루 맥주 4캔에 반 병 정도 마시면 알딸딸해진다.
< 냉면이 적힌 식당에 들어갔더니 냉면이 안 된다고 해서 9만동짜리 란저우 라멘을 시켰는데 맛은 별로이다. 여자 주인이 한국 사람이었다. 반갑게 서비스로 김치를 내어 주는데 맛이 김치 본연의 맛이다. >
편의점에서 맥주 4캔, 과자 1봉지, 요구르트 4개를 사고 잭 플루트 3만 동짜리 2개와 4만동의 망고스틴을 사서 호텔로 돌아와 씻고 좀 쉬다가 오랜만에 잭 플루트 안주로 한잔하고 나짱의 밤을 닫았다.
♠제 13 일 (2019. 03. 10. 일) 나짱 시내 구경 및 쇼핑
6시에 일어나 씻고 7시에 호텔 식당에서 조식을 먹었다. 여행의 기쁨 중 하나가 호텔 조식에 대한 기대인데 그런 대로 괜찮게 나왔다. 중국의 경우 조식이 제공되지 않는 숙소가 있었는데 아침을 나가 먹는다는 것이 음식점 찾기부터 메뉴 선택까지 굉장히 귀찮고 음식의 질 또한 보장되지 않아 신경 쓰이는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래서 가급적 조식은 숙소에서 해결하는 것이 나의 여행 방침 중 하나이다.
오늘은 시내 구경과 롯데 마트 쇼핑이 주된 일과인데 문제는 아침부터 햇살이 장난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에 하나 더 보태면 “금강산도 시원할 때.”란 사실이다. 아무리 좋은 경치도 더울 때 오르면 흘러내리는 땀 주체에 구경은 저 멀리 가고 시원한 그늘 찾기가 더 급해지니 오늘 구경은 가급적 시원한 곳 위주로 해야겠다.
원래 19세기말에 지어진 “롱선사”라는 절에 가보기로 했는데 그곳에 가면 나짱 시내 전체의 모습이 보인다는 사실에 수많은 계단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계단을 오르다 보면 향을 주는데 나중에 그 향 값을 강제로 뜯어낸다는 주의 사항이 검색 결과 곳곳에 있었다. 이러한 정보는 울고 싶던 아이 뺨 때린 격이라 “롱선사” 방문은 그만 두기로 했다. 게다가 “롱선사”의 위치가 롯데마트 가는 길에 있어 “롱선사”의 트레이드마크인 흰 부처상이 길에서도 보인다는 것이다. 멀리서도 보이는 것을 굳이 가까이 가서 볼 필요가 있을까? 집에 있으면 해가 떠올라 제가 나에게로 가까이 오는데 굳이 발 짧은 사람이 가까이서 보겠다고 먼 동해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지구에서 태양까지 거리가 1억 5000만㎞인데 얼마나 가까이 가서 빌면 소원이 더 잘 이루어질까? 나에게 유리한 경우만 이러한 유연한 사고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택시를 타고 롯데 마트에 가 쇼핑부터 하기로 했다. 일반적으로 물건을 살 때, ‘공항 면세점이 일반 상점보다 면세라서 싸겠지.’라는 것이 통념인데 다른 나라는 모르겠고 중국이나 동남아에서는 대체적으로 맞지 않다. 예를 들면 노니의 경우 다낭 면세점에서 250g 1통에 14$를 주었는데 이번 롯데마트의 경우 500g 1통을 163,900 동을 주고 샀는데 163,900동 ÷ 20 = 8,195원 ÷ 1,100 = 7.45달러이니까 면세점 물건이 롯데마트보다 약 4배 가까이 비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물건의 품질이 있지 않느냐?’라고 할 수 있지만 단순 비교를 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공항 면세점도 베트남 국내공항 면세점과 국제공항 면세점 가격이 다르다. 같은 부채인데 국제공항 면세점이 국내공항 면세점보다 2배 정도 비싸다. 물품 구매할 때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눈에 띄고 사고 싶을 때 바로 사라는 것이다. 망설이다가 나중에 못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 나의 경험이다.
< 아래 왼쪽 첫 번째 고기는 돼지 목살인데 1㎏에 5,350원이고, 두 번째는 등심인가 모르겠고, 세 번째가 삼겹살인데 ㎏에 6,250원이다. >
삼겹살을 1인당 1㎏씩 사서 반은 수육으로 먹고 반은 구워 먹으면 딱 좋겠다. 다음에 베트남에 올 때는 커피와 소주는 여기 있으니까, 돼지고기 삶을 때 필요한 말린 생강 몇 쪽, 계피 조금을 가져와야겠다. 찍어 먹을 맛새우 젓갈과 양념한 된장, 그리고 후추와 굵은 소금, 김장김치 씻은 것을 가져와 기필코 대형마트에서 버너와 냄비, 프라이팬을 사서 욕심껏 요리해 먹으리라. 이때 같이 여행 오는 사람은 행복할지니 고기천국이 그들 앞에 있을 것이다. 베트남 돼지고기는 냉장인데다가 비계가 많이 없어 쫄깃쫄깃한 식감이 특별하다. 사실 마트보다는 그냥 방목한 돼지를 도축해 파는 재래시장이 나는 더 끌린다.
< 맨 오른 쪽에 있는 것이 우리가 며칠 전 마신 포도주인데 저번 하노이 여행 때 호텔마다 비치해 둔 것이 저 포도주였다. 아마 가장 일반적으로 마시는 종류인 것 같았다. >
다음으로 눈이 가는 것이 포도주였는데 달랏이 포도의 주산지였지만 큰 마트에 간 적이 없고 또 투어 시에도 포도와 관련된 곳을 소개하지 않아 그냥 넘어 왔는데 나짱에 와서야 여러 종류의 포도주를 구경이나마 하게 되어 견문을 넓힐 수 있었다. 이름마저 “Excellence – 우수함”이 175,800동으로 8,790원밖에 안 한다. 제일 비싼 것이 백포도주로 만 5천 원 정도이니 저게 우리나라에 오면 얼마가 될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아무리 싸고 좋은 술이라도 수하물 중량이 7㎏밖에 안 되는 Viet jet의 규정을 이길 수는 없다. 게다가 나는 마시면 술기운이 슬슬 감으며 오르는 포도주를 별로 좋아 하지 않는다.
< 커피 생산국답게 커피 값이 황홀할 정도로 싸다. 비행기 수하물 규정이 없다면 진열장을 확! 쓸어버리고 싶다. >
200g 아라비카 원두커피를 48,900동에 10봉지를 샀다. 1봉지 2,445원이니 커피 한 잔 값이 안 된다. G7커피는 선물용으로 각 1봉지씩 샀는데 이것도 115,600동이니 5,780원이다. 그 외에 에스프레소 45,300동짜리 2봉지, 가루커피 61,800동짜리 2봉지, 생과일 잭 플루트 1접시, 말린 잭 플루트 2봉지와 오늘 마실 맥주, 보드카 등등 합계 182만 동이니 두 사람의 선물비와 오늘 마실 술까지 채 10만원이 되지 않는다. “베트남 만세”라도 부르고 싶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 “롱선사” 흰 부처가 “왜 보고 안 가고?”하는 듯이 상반신을 내보이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나는 바쁜 사람이라 호텔로 돌아와 땀부터 씻은 후 선물을 나누고 점심 먹을 식당을 찾기 시작했다. 안선생이 ‘오늘 점심은 한식이 어떨까?’해서 구글에서 오랫동안 찾고 후기까지 모두 읽은 후 좀 떨어진 곳에 있는 한식당이 삼겹살도 있고 해서 오랜만에 영양 섭취도 할 겸 그리로 가기로 했다. 그러나 집 밖을 나오자마자 바로 강렬한 햇살의 어택을 받아 비틀거리며 걷다가 길가에 메뉴를 내어 둔 러시아 식당을 보았다. 그래서 메뉴 구경이나 하자고 하다가 멀리 갈 것이 있나 하고 “알리바바”란 러시아 식당으로 들어갔다. 삼겹살이야 한국 가면 늘 먹지만 러시아 전통 음식이야 이런 기회가 아니면 먹을 수 있겠는가? 결코 더위에 걷기 싫어서가 아니라 견문을 넓힐 기회를 잃을까 봐서이다.
식당 안에는 우리 외에도 몇몇 외국인들이 있었는데 말하는 것이 영어가 아닌 걸로 봐서 러시아 사람인 듯했다. 난생 처음으로 러시아 음식을 먹게 되어 메뉴의 러시아 글은 모르니 사진을 위주로 심사숙고하여 새우가 들어간 샐러드에 나는 만둣국, 안선생은 만고불변의 진리인 볶음밥을 시켰다.
< 만둣국은 모양을 갖추었고 샐러드 역시 러시아 사람 덩치 모양 아주 푸짐하게 담았다. 다만, 그림에 볶음밥이라고 보았던 것이 마요네즈에 계란, 홍당무, 소고기, 감자 으깬 것을 치대어 찐 것 같은 음식이었다. 어떻게 보면 대실패요, 어떻게 보면 대성공인데 그 판단은 안선생에게 달린 것이다. >
< 나짱이 휴양지니, 해변이 좋니 이런 이야기만 하고 치우기에 뭐해서 그래도 가장 날씬한 아가씨가 나오는 사진 한 장을 올린다. 실제로는 이런 여자는 찾아보기 힘들고 서양 여자들은 가까이 보는 것보다 멀리서 보는 것이 정신 건강상 낫다. >
다시 룸으로 돌아와 안선생은 소맥 2잔씩이나 마시고는 낮잠을 잔다. 나도 내일 우리가 가야할 공항버스 타는 곳을 이리저리 검색하여 몇 가지 정보를 찾고서는 그만 잠이 들었다. 나짱은 우리나라 해운대처럼 해변의 모래사장이 좋은 곳이다. 그런데 우리는 바다에 들어갈 생각이 없으니 실제 나짱은 우리와 맞지 않는 곳이다. 이곳은 수영 팬티를 입고 바다에 들어가 놀고 모래찜질도 하고 근처 아가씨들에게 장난도 걸 수 있는 나이에 오는 곳이다. 그래서 우리는 바닷가에 가서도 멀찍이 둘러 보다가 사진 몇 장 찍고 끝내는 것이다.
저녁은 바닷가 옆 도로를 따라 이어진 해산물 식당을 쭉 구경하다가 아무래도 비쌀 듯해서 이면 도로에 있는 해산물 식당에 들어가 가리비 구이와 맥주 2병, 그리고 점심 때 못 먹은 볶음밥을 시켜 먹었다. 가격도 착하여 224,000동이니 1,1200원이다.
< 가리비 크기는 같은데 나짱은 큰 도시인지라 시골인 무이네에서 먹은 가리비보다 맛과 음식을 다루는 솜씨가 월등하다. 사진을 당겨 찍어 가리비가 제법 크게 보이지만 여기는 양식을 하지 않는지라 크기는 손바닥 반만 하다. 그러니까 실제로 먹는 관자 부분은 2㎝ 정도가 될 듯하다. >
우리 호텔 들어오는 골목 맞은편에 천주교회가 있고 교회 문 옆에 과일 노점이 있어 과일 사기가 편했다. 오늘도 잭 플루트 2박스 사서 하나는 오늘 저녁 안주로 하나는 내일 공항에서 심심할 때 요기삼아 먹기로 했다.
방에 돌아와 식당과 시장에서 하나씩 넣어온 베트남 고추를 잘 건사한 후 한잔하고 내일 계획을 짠 후 쓰러져 잤다.
♠ 제 14 일 (2019. 03. 11. 월) 나짱 – 다낭
6시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다시 한 번 짐 꾸리기를 했다. 나는 공항 면세점에서 사는 물품은 안선생이 가져온 “오크리” 배낭에 넣기로 하고 수하물로 부쳐야 할 건 전부 캐리어에 넣었다. 7시 30분에 2층 식당에서 조식을 먹는데 대체적으로 깨끗하고 간도 맞아 먹을 만하다. 주로 러시아 사람들이 많고 가족 단위로 오는 것 같이 보였다. 어린아이들은 대체로 조용하고 식당이나 공공장소에서 버릇없이 구는 애는 본 적이 없고 부모에게는 우리나라 애들보다 더 순종적으로 보였다. 또 이동할 때는 애들도 반드시 그들 몫의 짐을 나르게 하는 것이 나로 하여금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 부모가 애들 대하는 자세나 하는 짓은 졸부처럼 천박하고 철학이 없다.
< 나도 참 끈질긴 면이 있다. 쌀국수가 있는 경우 무조건 쌀국수를 챙겨 먹으니 말이다. 만두처럼 생긴 것은 보기는 좋은데 싸늘하게 식어 맛은 별로다. 쟁반 위 고추도 아마 한국에서 자손을 퍼뜨릴 운명을 타고난 듯 보인다. >
옆 좌석의 러시아 부부 중 아줌마는 키가 170㎝에 몸무게가 95㎏는 족히 되어 보이는데 아침부터 5번이나 음식을 나른다. 뒷모습이 얼핏 허리가 잘쑥해 보여 웬 일인가 했더니 배가 워낙 나와 처지면서 허리 살이 앞으로 당겨 나가 생긴 착시현상이었다. 그래서 옆에서 뛰쳐나온 순서를 보았더니 배가 가장 앞서고 그 위에 가슴이 얹혀 있고 턱살이 튀어나와 그 다음, 그리고 입과 코는 거의 같은 높이였다. 그에 비하면 남편은 거저 건장한 편이었고 음식도 몇 번 나르는 것 같지 않았다. 커피를 앞에 두고 심심해서 이리저리 살피니 러시아 여자들은 40대가 넘어가면 그의 저 아줌마와 같은 “〉” 체형이 되는 듯했다.
< “공항버스”라 되어 있고, “나짱에서 깜란 공항”까지, 밑에는 “10. Yersin. Nha Trang”이란 주소가 적혀 있다. 베트남은 집집마다 주소를 표 나게 달아 놓아 집 찾기가 쉽다. >
9시 체크아웃하며 캐리어 무게를 달아보니 0.5㎏ 정도 오버된다. 이 정도야 관계없으니 이제 수하물은 신경 안 써도 되겠다. 호텔 골목을 나오니 바로 성당 앞이 택시 간이 정류장이다. 우린 조금 걱정하는 마음으로 공항버스 종점인 “10. Yersin” 주소를 보이니 바로 알아본다. 하긴 우리가 처음 나짱의 공항버스 종점으로 가지, 이 택시기사야 수백 번 손님을 그곳으로 태웠을 것이 아닌가. 버스는 4시 30분부터 30분 간격으로 배차되어 있었다. 버스 안에서 차장이 영수증을 주며 요금을 받았는데 1인당 5만동이었다. 이 버스의 차장은 예쁘게 화장을 한 20대 중반 정도 보이는 아가씨였는데 이로 보아 베트남에서는 버스 차장이 아직 할 만한 직업인 모양이다.
나짱의 “Cam Ranh”공항에 도착하니 10시 15분이어서 일단 체크인하고 기다렸다. 원래 13시 15분 비행기인데 한국에 있을 때 12시 50분으로 바꾼다고 메일이 오더니 결국 13시 15분으로 바꾸어 출발했다. 다낭 공항에 도착해 짐을 찾는데 우리 짐이 맨 처음 나왔다. 지금까지 여행을 다녀도 이런 경사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수하물 찾는데 1시간씩 보내고 나면 스케줄 자체가 틀어지는 수가 있다. 국내선 청사를 나와 2번이나 들러 이제 거의 단골이 된 쌀국수 집에서 점심을 먹고 국제선 청사로 이동했다. 여기서 우리의 할 일은 오직 하나 기다림이다. “Highland Coffee”에 가서 커피 한잔을 마신 후 또 체크인할 때까지 기다렸다. 저녁은 청사 안 “Big Bowl”에 가서 1그릇에 8만 동짜리 쌀국수를 또 먹었다. 만약 캐리어가 없었더라면 한 그릇에 5.5만 동하는 국내선 청사 옆 단골집에 갔을 것이다. 맛의 차이야 거의 없고 자릿값이니 괜히 우리가 “Big Bowl” 임대료에 둘이서 5만 동이나 보태 줄 필요가 있겠는가 말이다. 게다가 시간이 남아도는 두 사람이 아닌가.
< 이번 베트남 여행을 마감하는 마지막 쌀국수. 오늘은 어떻게 하다보니 세끼 모두 쌀국수를 먹었다. 도대체 15일 간 쌀국수를 몇 그릇 먹은 거야? >
기다림 외에 할 일이 없는 내 앞에 외국인 남녀가 나타났다. ‘같이 다니니 아마 커플이겠구나.’하고 그들을 보았는데 우선 둘이서 메고 있는 배낭의 차이가 나의 눈을 끌었다. 남자는 집 뒤 동산에 산보 가는 정도의 배낭을 메고, 여자는 2박3일 날을 잡아 집 앞 높은 산에 올라갈 정도의 큰 배낭을 메고 있었다. 우리라면 당연히 니거내거 가리지 않고 남자가 큰 배낭을 메는 것이 당연하고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직접 말을 안 하더라도 남들이 힐끗거리며 쳐다보는 질시(疾視)의 눈초리를 받게 된다. 그렇다. 그랬구나. 한국여자들이 당연시하는 이런 한국 남자들의 생각과 행동이 외국 여성의 입장에서는 생전 처음 받아보는 배려 내지는 대접일 것이고 그래서 외국 여자들이 한국 남자들에게 뿅 가는구나. 이런 쓸데없는 생각까지 해야 했다.
< 이런 경우, ‘배낭을 바꾸어 메자.’라고 하지 않거나, 괜찮다고 해도 억지로 배낭을 뺏어 바꾸어 메지 않는다면 그는 한국 남자가 아니다. >
< 시내 쇼핑을 마친 중국인지 동남아인지 모를 단체 관광객들이 이제야 가방 정리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휴대폰 배터리를 잘못 넣어 캐리어를 여는 경우는 있지만 이처럼 단체로 퍼질고 앉아 캐리어 정리하는 건 본 적이 없다. 이런 퍼질고 앉아 난리 치는 무리가 공항에 서너 무더기 보인다. >
드디어 8시 30분경 체크인을 시작한다. 출국심사에 보안검색까지 마친 후 면세구역에 들어와 남은 돈으로 “센소다인 치약과 부채 등 선물을 샀다. 그리고 다시 기다림.
< 10번 게이트 앞인데 시간도 안 되어 벌써 줄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들어가지도 못하면서 거의 한 시간 정도 줄을 만든 후 저렇게 서 있다. 한국인이다. 이 민족은 비행기가 착륙을 하면 바로 일어나 줄을 만든 후 30분 정도 서서 기다린다. 줄을 좋아하는 이 민족은 비행기 한번 탈 때마다 다른 민족보다 1시간 반 정도 줄을 만들고는 서서 기다린다. 그리고는 집에 가서는 다리 아프고 허리 아프고 피곤하고 죽겠다고 한다. >
♠ 제 15 일 (2019. 03. 12. 화) 다낭 - 청도
0시 20분경에 드디어 VJ 870 비행기에 탑승해 0시 35분경에서야 40분 지연해 이륙했다. 원래 6시 50분 도착인데 7시 20분에 도착해 입국심사와 짐 찾기, 세관검사까지 마쳤다. 기다리고 있던 안선생 사모님 차로 청도 뻐꾹이 식당에서 돼지국밥과 소주 한잔 후 비로소 보름간의 베트남 남부지방 여행 대단원의 막을 드디어 내리게 되었다.
이번 여행은 안선생이 수립한 계획에 빈틈이 없어 전체 일정이 차질 없이 잘 진행되었고 1인당 경비는 항공료 53만원, 생활비 67만원, 선물과 기념품 7만원 포함해 총 127만원이 들었다.
< 3월 12일의 해가 뜬다. >
2019년 6월 26일 원고를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