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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현상 할아버지의 재미있는 오디오 이야기가 하나 더 있습니다.
먼저 이야기가 마음에 드는 오디오 앰프와 스피커를 찿아 내는 과정 이라면 이번 이야기는 턴테이블을 구하는 이야기입니다.
오디오를 취미로 하는 사람들에게 턴테이블은 무궁무진한 재미가 따라오는 물건입니다.
재미가 많은 많큼 고생과 시행착오도 많게 마련입니다.
턴테이블은 전기모터와 소리골을 지나는 카트리지와 카트리지가 매달려 움직이는 암등 기계장치가 있기 때문에 성능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많은 일거리와 비법이 존재합니다.
금속의 재질, 강도, 정밀성등과 레조넌스라 하는 공명, 하모닉스, 떨림등이 발생하여 음질에 좋은 영향을 주기도 하고 나쁜 영향도
주기 때문에 수많은 변수가 생기는 겁니다.
턴테이블은 물리학, 기계공학, 전자공학의 복합체입니다.
오디오 시스템의 맨 앞부분에서 아주 미세한 전압과 전류로 신호를 Pick Up하기 때문에 노이즈 영향이 크고 앰프에서
증폭을 하면 노이즈가 따라서 커지게 돼 있습니다.
그러므로 턴테이블은 오디오 시스템 중에서 최고급품과 보급품의 가격이 한 없이 벌어지는 유일한 물건입니다.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EMT 930ST 와 포르셀 레퍼런스 >
코모에츠의 최신 모델과 신형 승압트랜스를 사게 된 경위와 스가노 동에 대해서는 소설만큼 얘기가 길었는데 바늘을 사면 그 다음 단계는 턴테이블이다. 줄줄이 이어지는 고행은 머릿속으로는 연역이 되었으면서도 마음으로는 자제할 틈도 없이 어느 새 서울에 있던 소타를 처분하고 이 바늘과 승압트랜스를 능력 이상으로 가동시켜 줄 이상적인 턴테이블을 찿고 있었다. 마이크로 세에키 800-1I가 바로 생각났으나, 주문 후 배달까지 두달 가량 걸려서 마음이 내키지 않았고 소타만도 못할 것 같아 망설였다.
코스모스라는 소타의 개량 시스템으로 일부 고쳐 보려고 해봤으나 절차가 너무 번거로워서 포기했다. 그러던 참에 앰프를 300B와 페트루스로 바꾸고 스피커도 WE 755A로 갖추었으므로 더욱 턴테이블이 아쉬워졌지만 코모에츠 바늘을 가끔씩 꺼내 들여다보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 도리밖에 없었다. 그러고 있던 중 또 하나의 큰 변화의 계기가 생겼다.
회사일로 매일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어느 날 서울의 H씨로부터 국제전화가 걸려 왔다. H씨는 오디오매니어 라기보다는 모든 면에서 존경할 만한 오디오화일이라고 해야 할 분이다. 오디오를 시작한 초기부터 마란츠 7과 9, 10B를 오리지널로 구입한 이래 20년 넘게 바꾸는 법 없이 지금도 정갈하게 쓰고 있을 만큼 과단성과 신중함을 겸비한 오디오 모범생으로서 시행착오라는 것을 모르는 분이다. 뿐만 아니라 바이타복스를 놓을 자리를 미리 생각해서 단독주택을 지어 아직도 그 집에서 그 오디오 세트로 음악을 즐기고 있으니, 일상생활도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된다.
용건은 EMT 930ST 턴테이블에 관한 것이었다. EMT 930ST는 1980년대 초반에 생산이 중단되었는데 일본 매니어들의 성화로 100대를 한정 생산하여 판매중이라고 하니, 구입 가능 여부와 가격을 좀 알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실은 당시 EMT 사는 벨기에 회사인 바르코사에 인수되어 Barco-EMT라는 상표로 930ST 모델을 리바이벌 시켰던 것이다.
값과 함께 구입 가능하다는 사실을 며칠 뒤 알려 주었으나, 한동안 소식이 없더니 한국서 상태가 훌륭한 중고품을 용케 구입했으니 스페어 부속품을 좀 구해 줄수 없겠는가 하는 전화가 왔다. EMT를 써보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고, 한마디로 요즈음 이름 있는 턴테이블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뛰어나다는 얘기도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H씨가 극찬을 하는 바람에 당장 EMT에 솔깃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일본의 전기 시스템이 한국과 다르다는 것이 큰 문제였다. 동경을 비롯한 관동지역은 100V에 50Hz, 오오사카를 비롯한 관서지역은 100V에 60Hz로 지역마다 Hz가 다르다. 한국과 같은 60Hz인 오오사카 지역에서 구입하더라도 50Hz 지역인 동경에서는 사용하기 어렵고, 동경에서 사면 한국에서 쓰기 어렵기 때문이다.
EMT 930ST는 여러 가지로 구분할 수 있겠으나, 독일 오리지널(Franz)과 토렌스가 창립 기념으로 EMT사에 제작을 의뢰해서 101대만 만든 토렌스101, 그리고 Barco-EMT 등 세 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이 가운데 토렌스 101은 색깔이 황금색으로 다를 뿐 오리저널과 100% 같다. 그러나 상표라든가 색깔 때문에 다른 것은 결국 포기하고 오리지널 Franz 중고품을 물색하기로 작정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Barco-EMT는 그 정밀도에 있어서 오리지널에 비할 바가 못될 만큼 떨어진다. 한 가지 예로 플래터 아래의 축을 집어넣을 때 오리지널은 한참 있어야 플래터가 내려앉지만, Barco의 경우는 그냥 쑥 들어가 버린다. 당연히 음질상으로도 차이가 나게 마련이므로 일본에서는 Barco-EMT의 인가가 급락한 바 있다. 중고 오리지널을 사려고 오랫동안 알아봤지만 50Hz는 흔한데, 60Hz짜리는 1년을 참고 기다려도 구할 수가 없었다.
마침내 나가노(長野현 마츠모토(松本)시에 있는 로열오디오라는 숍에 대단히 깨끗한 상태의 60Hz짜리 오리지널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급히 주문을 했다. 나가노는 동경 북부에 있으며 경도상으로 볼 때 관동지방이 분명한데 오오사카 지역에서 이사온 사람이 내놓은 물건인가 의아했지만 어쨌든 그것도 운이었던 모양이다. 사흘쯤 지나 EMT가 도착되었다..
쇼크 업소버(shock absorber)식인 스탠드와 본체 두 뭉치를 완벽하게 포장해서 보내 주었다. 로열의 미루야마부장은 3일후 동경 출장 갈 때 설치해 줄 테니, 그 때까지 참고 기다리라는 전 화를 했다. 그 때까지 시키는 대로 기다렸더라면 그 후 고생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 EMT를 지금도 가지고 있으면서 즐기고 있을 테지만, 그렇게 기다리던 실물을 눈앞에 두고 잠이 올 리 없었다. 당장이라도 야마하 본점에서 산 수퍼아날로그 판과 미국에 우편 주분한 셰필드와 체스키판을 꺼내서 들어 보고 싶었다. 거래하던 숍에 부탁했더니 처녁에 와서 설치를 해주었다.
중고품을 말만 믿고 그냥 샀지만 실물을 보니 본체, 포노 EQ 방진 스탠드 등 모든 것이 A급이었고 별매품인 아크릴 뚜껑까지 딸려 있었다. 요모조모 유심히 잘펴보니 우선 소리를 듣기 전에 구조의 견교성, 유효적절한 공간 처리 등 제품 완성도에 그만 매료되고 말았다. 이것이야말로 전형적인 독일제 품의 치밀함과 정확성 그 자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경은 50Hz 지역이므로 CSE를 사용해서 60Hz 모드로 변환시킨 다음 실로 3년 만에 갈망하던 LP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러나 다이내믹 레인지가 넓은 것은 금방 느낄 수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딱딱하면서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 소리였다. 크게 실망하여 이튼날 바로 마루야마씨에게 전화했다. 도저히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손해를 많이 보는 한이 있어도 좋으니 되팔고 싶다고 했더니. 상도의상 그럴 수는 없다면서 어쨌든 동경에서 만난 다음에 얘기하자는 것이었다.
오디오 인생 최대 고난의 계거는 바로 이 사이에 일어났다. EMT가 이렇게 실망적일 수가 있나 하고 앙앙불락하고 있던 참에 예의 콤바크의 키 우치 사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런 사정을 하소연했더니 EMT도 명품이지만 최근의 시카고 CES에서 깜짝 놀랄 만한 턴테이블을 시청해 봤다면서 스웨덴제 포르셀(Forsell)턴테이블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나온 어떤 명품이라 해도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의 신기원적인 제품으로서 소리를 들어봐야 무슨 말인지 알정도로 쇼킹하다고 하는 것이었다.
하모닉스에 매료된 바 있는 나로서는 키우치 씨의 이 말이 그야말로 쇼킹하게 들렸다. 어정정한 소리를 도저히 참고 들을 수 없었던 나로서는 끝을 봐야겠다는 심산으로 보지도 듣지도 못한 Forsell를 그 이튼 날로 아는 회사에 부탁해서 수입토록 요청했다. 오디오 인생에서 가장 쓴 고난의 씨앗은 이렇게 해서 뿌려졌던 것이다. 실은 이 무렵에 본국 귀국 발령을
받은 터라 업무 인수인계 와 이임 인사 이사 준비 등으로 해서 대단히 바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런 때 그린 일을 결정한다는 것 자체가 도대체 잘못한 짓 이었지만 좋게 보면 결말을 봐야만 개운해지는 오디오매니어의 오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로열오디오의 마루야마 씨가 약속대로 동경에 도착하자 한국 음식점에서 저녁대접을 한 다음 집으로 데려왔다. 페트루스 300B, 755A 등과 함께 셋업되어 있는 EMT를 위아래로 대강 훓어 보더니 소리도 안 들어보고 그는 말했다. 우선 내가 너무 서둘렀다는 것이고, 설치해준 사람도 서둘렀다는 것이다. 일본 사람도 자기가 책임질 일이 아니면 대강대강 해주는 모양이다.
결론적으로 소리가 날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가장 큰 실책은 방진 스탠도 잠금장치를 풀지 않은 것이었다. 방진 스탠드가 전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도록 잠긴 채로 있고, 바늘의 높이 조정도 틀렸고 부속된 접지선도 연결시키지 않았다 한다.
밤중이기도 하려니와 자기가 판매한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동경 습 주인이 좀 성의 없이 해주었던 것 같다.
마루야마씨의 설명을 듣고 그제서 야, 그러면 그렇지 하고 나는 안심을 했다. 마루야마 씨가 제대로 손을 보고 포노EQ의 16핀 접속부분의 새까만 니코틴(?)까지 깨끗이 닦아 낸 다음 들어 보았다. 참으로 홈잡을 데 없는 소리가 나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 그 이유를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보았다. 잘 알려진 대로 EMT 930ST는 암을 포함한 본체, 포노 EQ. 방진스탠드의 세 가지 파트로 대별된다. 이 세 가지는 일심동체이며 포노 EQ는 물론 스탠드도 옵션이 아니다. 가격 면에서도 서로 크게 차이기 없다.
독일기계의 정확성으로 보아 이 세가지가 다 구비되어 있지 않으면 제 성능이 나올 수가 없도록 되어 있다. 방진스탠드 없이 쓰는 경우도 적지 않으나, 그리 되면 린(Linn)보다 나을 게 별로 없을 것이다. 목재나 기타 유사한 스탠드를 써 봤자 소용이 없다. 오리지널 스탠드 상단 바로 밑에 담배 개비보다 좀 굵은 고무링이 사각으로 뺑 둘러져 있다. 이것이 오래 되어 녹거나 터서 갈라지면 탄력이 없어진다.
그 정도로도 이 스탠드는 제 구실을 못 하게 된다. EMT 스탠드에도 특제, 소위 리미티드형이 있는 모양인데 극히 구하기 어려우나 보물로 알려져 있다 같은 본체를 가지고 서로 비교해도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그 다음, 포노 EQ를 쓰지 않고 별도의 암케이블을 만들어 암에서 직접 프리앰프의 포노 단자에 끼워 사용하는 경우 즉 EMT 포노 EQ 대신 프리앰프의 포노 EQ를 선택하는 사람도 많으나. 이는 취향의 문제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EMT 포노 EQ를써서 제소리가 안 난다면 그것은 EMT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여타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게 옳다.
앞서 어디선가 질량의 차이로 인한 레조년스 차이를 얘기한 바였지만, 이 EMT야말로 그것을 충분히 계산한 듯하다. 질량이 큰 본체를 적은 스탠드 위에 올려놓을 경우에도, 또 그와 정반대로 질량이 작은 본체를 육중한 받침 위에 올려놓을 경우에도 모두 다 레조년스상의 차이로 인한 물리학적 디스토션이 발생한다. 연주자와 청중 사이에 공기 말고는 아무것도 개재 되어 있지 않는 경우를 우리는 생음악이라고 한다.
연주자와 오디오화일 사이에 수많은 골치 아픈 과정이 끼어들 때 이것을 재생음악이라고 한다. 생음을 재생하는 과정에서 전기적, 또는 물리적인 갖가지의 디스토션이 개입되게 마련이다. 따라서, 재생음악은 아무리 기를 써도 생음악과 영원히 같아질 수 없다. 프리염프의 패널만 바꿔도 소리 전체가 많이 달라지다는데 이것도 물리적인 디스토션이 변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EMT가 본체, 방전스탠트, 포노EQ 세 가지를 결합하면서 최소의 물리적 전기적 디스토션을 극소화해 둔 것일진대, 이 균형를 함부로 깨는 것은 EMT 전체의 효용성을 크게 저하시키는 무모한 짓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어쨌든 마루야마 씨를 다시 쳐다보면서 경솔했던 말과 성급한 포르셀 주문을 후회했다. 그리고 마루야마 씨는 755A 스피커를 보며 원래의 디자인에 가깝기는 하나. 이렇게 만드는 것보다는 두께 1인차 정도로 면적 1.2m x 1.2m 또는 1m x 1.4m 정도의 미송합판으로 평면 배플을 짜면 훨씬 소리의 스케일이 커진다고 했다. 일본 매니어들은 그런 식으로 해서 755A를 사용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했다.
한국에 돌아온 다음의 얘기지만 그 후 짐 정리가 되자마자 바우하우스의 K사장에게 미송합판 평판스피커를 앞서 말한 크기로 주문했으나. 처음 것은 8인치 유닛에 8인치 구멍을 뚤어 755A가 구멍으로 들락날락해서 완전 실패 였고, 두 번째 것은 크기와 두께가 조금씩 모자랐다. 그 후로는 쓸만한 미송합판을 국내에서는 구할 수가 없었다. 몇 달 후, 오리지널
신품 미송합판이 도착되기까지에는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우선 미국에서 미송합판을 산다는 것 자체 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는 사람도, 파는 목재점도 내용을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 비행기에도 사정해서 두 토막으로 잘라서 겨우 실었고 운임만 300달러쯤 들었다.
그리고 완전히 습기를 빼는 데에도 한 달 이상 걸렸다. 이렇게 어렵게 만들어진 평면 배플의 755A는 과연 마루야마씨의 말대로 정 위감은 약간 떨어졌지만 스케일과 음질 면에서 월등하게 개선되었다. 음악이 흘러나오자 오래 고생하고 기다렸던 기억들은 일순간 연기처럼 사라졌다. 다시 포르셀 얘기로 되돌아가지만 이삿짐 나가는 날이 되어도 물건은 도착되지 않았다. 포르셀은 원래 220V/50Hz로 작동되도록 되어 있는데 한국에서는 220V/60Hz라야 된다고 했더니 세상 어디에도 그런 전력 시스템은 없다고 하면서 그렇게 만들어 줄 수는 없다고 한다는 것이다.
다툴 시간도 없고 해서 110V/60Hz로 다시 주문했지만 이래저래 시간만 허비하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며칠 더 연기해서 아슬아슬하게 이삿짐에 합류할 수 있었치만, 포르셀과의 인연은 처음부터 순탄치 못했다. 한국에 도착하자 나는 한전에 220V/60Hz가 틀림없나를 여러 번 물어 봤지만, 세상에 별 한가한 사람도 다 있다는 식의 반응만 얻었을 뿐 이곳에서도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고 말았다. 이삿짐을 찾아 대강 짐정리를 마친 다음 포르셀이 들어 있는 상자부터 열어 보고는 조립해볼 엄두가 나지 않아 포기하고 또 열어 보고 하기를 여러 번 반복하다가 하는 수 없이 용산 전자랜드 H사의 젊은 K사장에게 부탁해서 조립하게 했다. 조립을 마치고 보니 우선 그 부품의 가짓수가 많아 조립 과정이 복잡다단하고 전체적으로 엄청나게 자리를 차지하는 데 놀랐다. 흡사 가내공업 기계 같다.
포트셀 레퍼런스 턴테이블은 기동상 본체와 플라이횔의 두 파트로 나누어진다. 본체만으로도 소리는 훌륭하지만, 플라이휠을 이용할 때에는 본체의 모터는 끄고 플라이휠의 회전력이 덴탈 플로스(dental floss: 가는 나일론 살에 왁스를 먹인 치마 소제용 실)를 통해 본체의 플래터를 돌리게 되므로 SN비 와우 앤드 플러터 개선에 발군의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플라이휠의 회전속도가 느렸다 빨랐다 해서 매일 너댓 시간씩 지켜보아도 스트로보의 33 1/2회천 눈금 정지되지 않는 것이었다. 본사에 직접 전화해 봤으나 그 때마다 수화자가 달라서 전언이 전해지는 법이 없고 비싼 통화료만 허비하기 일쑤였다. 결국 다시 H사의 k사장이 수리해 주어 겨우 속도가 안정되었으나 한 번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수리부터 해야 하는 마음은 지극히 불안했다. 23개월 동안 시간낭비와 오밤중의 통화로 인한 수면부족, 비싼 국제통화료, 울화등으로 포르셀은 보기만 해도 정이 떨어졌고 EMT를 처분해 버린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러나 참고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두 가지 다 가질 형편도 못 되고 포르셀 본체만 가지고도 EMT보다는 좋은 소리를 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오일, 전구, 콘덴서, 아이들러 등 스페어 부속품까지 끼워서 EMT를 결국 처분하고 말았던 것이다 키우치 사장의 전화 얘기만 듣고 포로셀을 주문한 것이 이렇게 심한 고 통를 가져다 줄 줄은 몰랐다.
우선 포르셀의 구조를 좀더 자세히 보면 다음과 같다.
본체는 리니어트래킹 방식이며 콤프레서에서 나온 공기압이 암실린더의 조그만 구멍들을 통해 새어 나오면서 암을 띄워서 수평을 유지하며 안쪽으로 흐르게 하는 방식을 썼다. 그래서 안티스케이팅은 당연히 제로이다. 카트리지의 수직 조정놉이 있어 플레이 중에도 조절이 가능하다. 암은 연필 굵기로 35cm쯤 되지만, 카트리지의 몸체 길이에 관계없이 그 바늘
끝부분이 언제나 레코드판의 정중앙을 관통하도록 조절나사를 풀어 암길이를 줄이고 늘리고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플래터 윗부분의 스핀들에는 작은 구멍이 옆으로 뚫려 있는데 그 구멍에 가는 알렌 키를 넣어서 위로 올리면 스핀들어 쑥 빠진다. 그 자리메 500원 짜리 동전 모양으로 생기고 레코드판만큼의 두께를 가진 프로트랙터(protractor)를 꽃는다 그런 다음 바늘 끝 다이아몬드를 프로트랙터 한가운데에 있는, 바늘구멍보다 작은 구멍으 바로 앞에 내려놓고 침압을 가하면 바늘 끝이 앞으로 밀리면서 그 구멍 속으로 쑥 둘어 가게 된다. 그래야 미세 조정이 끝난다. 이렇거 되면 바늘 끝은 언제나 글자 그대로 눈꼽만큼의 오차도 없이 레코드판의 한가운데를 향해 움직일 수 있게 된다. 말은 쉽지만, 실제 작업을 하면 눈이 시리고 허리도 끊어질 듯이 아프다.
대부분 본체만 사용하나 본체의 60%나 되는 값의 플라이휠을 추가로 사용하면 속삭일 때나 외칠 때나 똑같은 충실도로 재생해 준다는 것이 매뉴얼의 설명이다. 이 말 한마디에 몇 달을 두고 플라이휠과 씨름을 했다. 수리해서 안정이 된 플라이휠에서 나오는 소리는 과연 매뉴얼의 표현 그대로였다. EMT를 처분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흡족했다.
코오에츠애니버서리 시그너쳐 골드와 7N 승압트랜스를 통해서 나오는 포르셀 레퍼런스의 소리는 더 이상 원이 없을 정도였다. 몇 달 후 나온 Absolute Sound. 지의 평대로 세계 최고의 소리로, 진공관 턴테이블 인 양 소리의 느낌이 이제까지의 턴테이블과는 사뭇 달랐다.
그러나 그 즐거움은 단 하루 만에 끝났다. 턴테이불에서 프리의 포노 단자까지에는 포르셀 케이블선으로 연결하게 되어있는데, 알루미늄 파이프에 동선을 집어 넣어서 만든 이 줄은 상당히 억센데다 WBT핀으로 확 물게 되어 있어 조금만 움직여도 지렛대 역할을 해서 승입트랜스나 프리의 포노단자를 돌리거나 튕기게 해서 못쓰게 만든다.
코오에츠7N 승압트랜스에는 탄력이 강한 7N이 코일선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잘못하면 안에서 전부 풀어져 버릴 수가 있는데 마지막 점검를 위해 조이는 순간 그런 식으로 고장이 나고 말았던 것이다. 새로 사는 값의 50% 수준인 수리비를 내고 일본으로 보내 수리를 해서 2개월 만에 찾을 즈음이 되니 이번에는 또 바늘이 고장이 났다. 그러나 스가노 옹이 혈전증으로 쓰러져서 회복을 때까지 또다시 2개월를 기다렸다가 겨우 수리품을 받았다. 4개월이 또 허송되었는데 모두 그 원인은 바로 포르셀이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제작자인 피터 포르셀 박사(D. Peter Forsel)는 스웨덴의 외과전문의로 그 자신 오디오 화일이기도 하다. 이점도 나의 구입 동기 중의 하나이다. 오디오 파일이 직첩 만들어 스스로 만족할 만한 기계라면 음질만은 보장될 것이라 생각했다.
들어봐 가면서 가장 이상적인 소리를 직첩 추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극성을 틀리게 하거나 공기 루입량을 조금만 과도 하게 넣어도 금방 소리가 둔해지는 등 민감한 부분이 많다는 것과 풀래터 표면, 스핀들, 암, 헤드셜 등이 테프론으로 처리되어 있어 레조년스를 극소화한 것이 그처럼 명징한 소리를 내게 하는 데에 크게 공헌하고 있다는 것 등도 구입의 주요 동기가 되었다.
육중한 플래터에 육중한 베이스로 질량의 균등화를 꾀한 것도 느낄 수 있다. 설치공간이 없어 속빈 합판 위에 임시로 올려 듣고 있으나 시멘트 슬라브에 올려놔야 제격이라고 제작사는 말하고 있다. 포르셀은 음질만은 독보적 이라 할 만하다 고 생각한다. 그러나 독창성에 있어서는 아무래도 제로에 가깝다고 하겠는데, 마이크로세키 8000이라든지 골드문트 등
일류품들의 장점만을 모방해서 조립 한 제 품이기 때문이다. 또 사용의 편리성, 제품과 부속품들의 마무리 등 완성도와 구입자에 대한 신속한 대응 면에서도 단연 최하급이 아닌가 싶다.
플라이훨이 수리되어 정상을 되찾자 나는 포르셀 박사에게 편지를 썼다.
플라이휠로 듣는 당신의 턴테이블은 과연 최고의 소리를 들러 주는 것 같소. 그러나 그 불편함 복잡함 고객 사후관리상의 문제점이 그것을 다 상쇄해 버리는 것이 유감이오. 명품의 조건은 그 모든 것을 다 갖추는 것이라 생각하오. 무엇보다도 오디오화일을 편안하게 잠재 워 줄 수 있어야 할 것이오. 한 달이 지난 뒤 사과의 편지와 할께 플라이휠 수리비 400달러와 스페어 암줄 한조를 동봉해 왔다.
미송합판의 평면 배플도 몇 차례 실패 끝에 어렵게 구하고 해서, 뜻한 바대로의 준비 완료가 된 것은 포르셀을 찾은 후부터 자그마치 8개월이나 지난 다음 이었다. 스가노 용으로부터 무료로 수리해 받은 바늘을 가지고 일과가 끝나기 무섭게 집으로 달려왔다. 드디어 마지막 관문마져 통과한 셈이었다. 고생 이란 끝이 있는 것이라 생각하연서 어떤 소리가 나올지 마음이 급해졌다.
<문중 최초의 송사 >
집에 도착하자마자 전 시스템의 연결부분을 깨끗이 닦아 낸 다음 재삼 조이고 좌우 정확 여부도 거듭 확인 했다. 손을 씻고서 레코드를 올려 놓은 다음 담배를 물고 소파에 앉았다. 포르셀을 갖다 놓은 이래 거의 8개월 동안 단 한번도 제대로 가동되어 본 적이 없던 신체제의 오디오 세트가 바야흐로 그 진면목을 보며 줄 순간이다. 흡사 대학 함격자 발표 명단을 보는 입시생 같은 기분이었다.
드디어 롯시니 서곡이 흘러 나왔다. 비로소 소원성취된 느낌이었다. 코오에츠 대용으로 사용하던 덴온 103으로는 느끼지 못하던 힘과 윤기가 넘치는 소리였다. 대형 미송평판에서 나오는 755A의 스케일은 기대를 훨씬 넘어섯다. 이로써 바라던 것이 다 이루어졌구나 생각하니 그간 겪었던 온갖 고생이 새삼 떠오르기도 했다. 이렇게 감개무량하게 지난 일을 생각하여 기계를 하나하나 다시 보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정말 이럴 수가 있는가?
모든 일이 다시 물거품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스피커 유닛을 보호 그릴 없이 그대로 합판에 불었기 때문에 앉은 자리에서도 뚜렷이 보이는데 스피커 콘지 중앙의 볼록한 부분이 왼쪽, 오른쪽 양쪽 다 찌그러져 있고 왼쪽은 콘지 밑 부분에 금까지 가 있지 않은가?
나도 모르게 고함이 터져 나왔고 그 소리에 놀라서 뛰쳐나온 집사람의 얼굴도 사색이 되어 있었다. 나와 기계 쪽을 번갈아 보며 기계에 무슨 이상이 있느냐고 들릴락말락 물었다.
이상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망쳐 놨는데 도대체 낮에 누가 왔냐고 험한 어조로 다그쳤다.
원래 놀라기 잘하는 집사람이지만, 그 때처럼 질린 표정은 처음 보았다. 얼마나 내 얼굴 표정이 무서웠는지 상상이 되었다. 일의 발단은 그 전날에 시작되었다.
옆동네 사는 젊은 부인이 아파트 단지내 주차장에 주차시키다 세워 두었던 우리 차에 흠집을 내었다. 모른체 그냥 가려는데 이를 본 수위가 이 사실을 알려 집사람과 그 부인이 만났다. 결국 수리비 견적대로 6만원을 다음 날 은행계좌에 넣어 주기로 합의를 봤다.
그러나 다음 날이 되자, 그 부인은 전날의 행위 자체를 부인하면서 친구인 듯한 다른 부인과 4, 5세 가량의 두 꼬마까지 데리고 왔다. 결국 녀석들이 스피커 쪽으로 뛰어들면서 손가락으로 찔러 그 모양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집사람이 제지했을 때는 이미 늦었는데 워낙 평소부터 오디오에 관심이 없던지라 스피커 콘지가 얇은 쇠판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으로 알고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결국 전혀 낯선 불청객인 모자가 연이를 번갈아 피해를 준 셈이었다.
저녁때가 되어 그 아이의 부모에게 관리책임을 물으며 변상을 요구했으나 전부를 극구 부인하며 욕설까지 서슴치 않는 것이었다. 금전상의 문제 이전에 오디오로 인한 심리적인 타격도 컸고 책임 질줄 모르는 젊은 세대에 대해 우리나라에도 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해 줘야겠다는 오기 도 들고 해서 소송을 하기로 통보했다.
그 옛날 영의정까지 배출한 바도 있는 심성 착하기만 한 양반 가문에 난 후손이 끝내 송사까지 저지론 것이다. 서울 민사지법 단독심 이었는데 수 차레 집사람이 왕래하며 고소장도 직접 써서 재판을 했다.
결국 원고 일부승소판정을 받았다. 불행하게도 판사는 오디오에는 무지막지 하신 분이었고 50년이나 된 스피커가 무슨 가치가 있느냐고 처음에는 막무가내 여서 집사람이 설명하는데 아주 애를 먹었다고 했다. 배상받은 돈은 집사람에게 수고비로 고스란히 주고 말았다. 다음 날 집사람은 미안하니 옷이나 사 입으라고 되돌러 주었으나 결국 돈을 더 보태서 [파워블록] 사고 알았다. 남은 것은 상처받은 스피커와 오디오 상심뿐이었다.
755A는 세운상가 수리전문점에서 수리를 해서 그대로 써 왔는데 콘지에 구멍이 났어도 변함 없이 소리는 잘 났다. 그러나 볼 때마다 화가 치밀어 차츰 듣기가 싫어졌다. 그렇게도 사랑스럽던 것이 때아닌 침입자에 의하여 망가져 한 번 싫어지니 이제는 스피커 모양마저 마음에 들지 않게 되었다. 좁은 거실에 차려 놓은 120cm 평방의 평면 스피커가 자꾸 태능 선수촌의 양궁과녁처럼 보이기 시작 했다.
이것과도 헤어질 순간이 가까워 온 모양이다.
최근에는 내 오디오 반생을 차자하고 있던 LS 3/5A마저도 아쉽게 결별을 했다. 말 못 하는 물건이지만 남의 집으로 가던 모습이 생각나서 한층 더 쓸슬하고 고생이 끊일 날이 없어 음악의 재미도 감소되어 오디오 생활에도 권태가 깃들인 것 같은 위기감마저 느낀다.
<AC 전원 이야기 >
사람에게 있어 마시는 물의 질이 중요하다면, 오디오에 있어서는 AC전원의 질이 결정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앰프 등 기계 자체 내부의 전원 대책이 제아무리 철저해도 원천적으로 투입되는 외 부 전원의 질이 조악하면 음질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옛날에도 지하실에 발전기를 들여 놓고 썼던 극성파가 없진 않았지만, 기껏해야 일제나 미제 술라이닥스나 AVR필터기 등이 고작이었고 최근에 와서야 토파즈 등 고가품을 많이 쓰게 된 것 같다.
그러나 이들 기계는 오디오 전용품이 아니기 때문에 그 자체가 갖는 한계가 있다. 그런 면에서 타이스의 파워블록과 같은 오디오 전용의 AC전원 기기의 출현은 큰 의미를 가진다 하겠다.
전기에는 기초적인 상식조차 없으면서도 유독전원에 대해서만은 이상하게도 오디오 시작 때부터 나는 꽤 신경을 썼다.
그 걸과 각종 트랜스만도 여섯 개나 되어 짐만 되고 있는데, 그간의 경험에서 되도록이면 아무것도 안 쓰는 경우 즉, 승강압 AVR필터링이 안 된 생전기가 가장 좋다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CD플레이어용으로 구입한 100W자리 일본 중부 시스템 제작의 차폐트랜스 CSE가 기대만큼의 효과가 뚜렷이 있자, 세대를 더 추가하고 파워암프용으로 800W자리 대형도 사니 다섯 대나 되었다. 기기 하나하나마다 연결시킬 심산이었다. 이 CSE는 여러 가지 기능이 있지만 특히 전자례인지를 온 시킴으로써 일시적으로 강력한 전압상의 서지가 일어나면 CSE가 자동으로 먼저 꺼져 버림으로 서 다른 기기를 보호하는 기능도 있어 이 점도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CSE의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자디스 80 프리앰프와 튜너에 하나씩 연결해서 들어 봤더니, 음은 깨끗해지는 듯하나 살아 숨쉬는 소리와는 거리가 먼 민밋한 소리가 났는데 그 차이가 너무나 분명한 데 놀랐다. 기대가 컸던 CSE의 역 효능이 치명적이라는 것을 느낀 다음부터는 역시 생전원이 제일이라는 고정관념이 더욱 굳어졌다. 그러다가 최근 파워블록을 쓰게 됐지만, 이것만은 대단히 만족스럽게 느끼고 있다.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타이탄도 마저 샀으면 하고 있다.
우리가 쓰고 있는 전기의 경로를 보면 발전소부터 체 1, 2차 변전소로, 전봇대 (서울은 지하에 송전선이 묻혀 있고 변압기는 땅바닥에 두고 있음.), 가정 전력계 와 배전판의 순으로 흐르고 있다. 발전소에서 벽의 콘센트까지 수백만 미터를 달려 온 전기가 불과 2,3미터의 거리에 있는 전원기기 때문에 전기의 질이 크게 달라진 다는 것에 대하여 일본에서는 EMI나 RF 등의 이론 따위로는 전혀 설명 이 되지 않는 금세기 최대의 수수께 끼라고까지 부산을 떨고 있다.
전기의 질을 좌우하는 요소로 세 가지를 들 자면, 첫째가 정확한 Hz, 둘째가 정확한 전압, 셋째가 노이즈 없는 매끈한 사인 커브이다. 이 가운데 에서 첫째의 Hz관리는 일본의 경우 이무리 많아도 1%의 오차 내에 들도록 엄격히 품질관리를 하고 있다. 한전 쪽에 의하면 우리나라도 그 정도로 관리하고 있다고 하니 문제될 것 없다. 한전에 학교동창이자 오디오화일인 친구한테 다시 물어봤더니 분명히 220V의 경우도 60Hz라고 확인를 해 주었다. 그러면서 60Hz가 50Hz보다는 더 발전된 전기 시스템이라고 했는데, 정말인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으나. 50Hz 지역인 동경에서 CSE를 사용하여 CD를 60Hz로 바꾸어 들을 경우 50Hz의 경우보다 훨 씬 낫게 들린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모터의 정확한 회전에는 60Hz가 더 낫다는 예긴지 알 수 없다.
둘째, 전압의 일정성은 상당히 심각한 문제이나 일본의 경우 5V 이상의 차이가 날 때에는 전력 회사에 요청하면 무료로 수리를 해 주게 되어 있으나 우리나라는 어떤지 모르겠다. 포기한지 오래 되었다.
셋재, 노이즈 문제는 크게 나누어 발전소에서 배전판에 이르는 과정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 외부적 노이즈와 배전판에서 최종의 오디오기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에서 생기는 내부적 노이즈로 구분할 수가 있겠다.
우리가 신경을 써야 할 것은 두 번째 전압 문제와 세 번째 중 내부노이즈 처리 문제다.
여러 가지 방법들이 등장하였지만. 큰 효과를 거두기는 어려운 만큼 결국 완전 치유는 어렵다고 보아야 하겠다. 파워블록의 사용은 훌륭한 전원 대책임에는 틀림없으나 한계성이 없지는 않다. 이 세 가지 문제의 가장 완벽한 해결책은 발전기를 사용하는 것인데, 실제로 일본에서는 오디오 연구소라든지 오디오 전문숍에서 채택하고 있다.
일본의 하모니아라는 메이커가 만든 모터제너레이터 MGI100 이라는 오디오용 발전기가 있다. 통상의 가정용 전력을 동력으로 하여 교류전기를 돌려 100V를 얻는 방식인데 발군의 안정도, 무극성 외부 노이즈 차단 효과를 가지고 있는 기막힌 제품이다. 그러나 가격도 90만엔이나 할 뿐 아니라, 설치 장소, 엄청난 무게와 소음 등의 제약으로 특히 아파트 지역에서는 무리이다. AC전원 대책에 있어 절대 무시 못 하는 것이 AC 전원코드나 테이불탭의 중요성이다. 그것의 재질이나 만듦새가 음질에 대단한 영향을 준다는 사실를 경험한 바 있다.
일본에서 구입한 수제품 마지라 파워박스는 1:1의 단순한 먹통 파위탭이지만, 저음과 밸런스감의 향상에 큰 효과를 경험했다. 파워탭 내부에는 양질의 굵은 동선만 감겨쳐 있고 코드는 6.25사변 직후 무렵의 전등줄 같이 굵게 만든 것인데, 무명천으로 걸을 싸고 내부에는 파라핀 종이로 싼 리츠선 타입의 코드이다. 또 자디스의 신형 파워염프에는 카아더스사의 파워 코드가 부속으로 붙어 나오는데 이것이 신행 앰프의 음질에 큰 개선을 준다고 한다. 흔히 주위를 보면 엄청나게 값비싼 오디오 세트를 쓰면서 저질의 파워 코드를 쓰는 경우기 많은데 옆에서 보기에도 안타까운 노릇이다.
특히, 스위치 버튼이 온/오프 때 불까지 점멸하는 것도 흔한데, 이것이야말로 음질의 악화의 원흉이다. 카아더스 이외에도 파워 웨지 등 좋은 AC 코드선이 많으므로 전원 기기와 합께 관심을 가지는 것이 오디오 효과 개선의 제일보가 아닌가 생각한다.
<최량의 접지>
전기나 전자공학에 대하여는 아는 바가 거의 없다는 것은 이미 말씀드린 바 있지만 요 2, 30년 사이에 전자공학은 급속도로 발전하여 이제는 약전(전자)이 강전(전기)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느끼고 있다. 아무리 큰 공장이라도 손바닥 만한 전자식제어 회로 하나로 울직였다 멈췄다 하며, CD플러레이어의 리모컨 단추 하나로 오디오의 시종이 좌우되고 있다.
이런 세상인데도 나는 전원과 접지에 대하여 오디오를 시작할 때부터, 강박관념과 집착을 가지게 되었다. 잘 모름에서 오는 집착은 더욱 뿌리 깊은 것인가? 막연하지만 관념적으로 전원과 어스는 시작과 마무리, 입구와 출구의 관계에 있고 이 두 가지를 단단히 챙긴다는 것은 오디오 기기에 있어 전기 흐름의 건강한 신진대사의 기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여년 전, 그러니까 오디오 시작 후 7, 8년 쯤 되었을 무렵 뒤늦게 접지에 대하여 신경을 쓰고 있었다. 어느 날 충무로 입구에 있던 오디오 숍(S전파사로 기억된다. )에 들러 접지를 완벽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을 물었더니, 매니어들은 70-80cm되는 구리 막대에 접지선의 동선을 여러 번 감은 다음 땅에 깊이 박아 넣는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그러면서 최상의 접지 효과를 얻으려면 구덩이를 깊이 판 다음 짚을 태운 재에 분뇨를 잘 섞어 메꾸고는 아까 그 구리 막대를 박아 넣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감화를 빨리 받는 것은 바로 이런 대목이다. 처음에는 농담이거니 생각했으나 놀림 받을 일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다. 곧장 청계 상가로 가 보니 과연 70cm 쯤 되는 구리 막대가 있긴 있었다. 애당초 어스용으로 생산된 것은 아닐 텐데 또 대체 무엇에 쓰이는 것인지 궁금했지 만 들은 대로 작업에 착수하였다.
이 세상에 혼한 것이 그 무엇이라지만, 그 때도 보신탕은 여전했던지라 거리에는 개 그림자도 귀했다. 하는 수 없이 사람의 것을 묻기로 작정했다. 사람 것이 더 흔하고 입자도 고와서 접지가 더 잘될 것 같았다. 그러나 당시도 벌써 수세식 시대라 개의 경우보다 쉬울 것도 없였다. 그 입수 과정은 차마 밝힐 수 없으나 어쨌든 야음을 틈타 은밀히 작업을 마쳤다.
식구들이나 딴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면, 가장체면도 문제려니와 일 자체가 성사되지 못할 게 분명해서였다. 볓집을 태운 재와 흙을 많이 덮었는데도 독한 냄새가 뚫고 나왔다.. 어렸을 때 시골서 많이 경험했던 익숙한 냄새라 개의치 않고 낚시용 장화를 신고서 살살 다진 다음 살충제를 잔뜩 뿌려 코속임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밖에서 자꾸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와이프가 성화였다. 그러나 감기 때문에 후각이 착각을 일으켜서 그런 것 아니냐 면서 시치미를 뗏다. 냄새가 밤새 많이 증발해서 그 정도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고생해서 끝낸 접지 작전의 효과를 감정해 봤다. 물리적 효과는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청감상으로 그것을 느낄 수 있을 리는 만무했다
그러나 접지 문제 하나는 이제 잊을 수 있다는 안도감 주는 데는 그저 그만이었다. 최량의 유기 비료를 주었으니 오디오 효과의 수확도 확실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도 없지 않았다. 미추귀천은 서로 통하는 바가 있는 법이므로 그렇게 추한 것에서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 나 올 수 있다는 꿈보다 해몽식의 생각도 해 가면서..
집사람의 간청으로 아파트로 옮기면서 내 오디로 생활은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아파트가 원래부터 싫었지만, 특히 오디오 청취에 결정적인 제약을 받게 되었다. 우선 평면 구조로서 칩거할 곳이 없어진 것부터가 아주 고통스러웠다. 고층이라 불안감도 있는데다 접지까지 할 수 없게 되자. 오디오를 들을 때 발이 땅에 닿지 않는 부유감을 느끼기 일쑤였다.
수도꼭지나 관리사무실에 물어서 찾아 낸 접지된 소켓에 접지선을 연결해 봤지만, 온갖 잡귀만 더 불러들일 것 같아 그것도 할 수 없었다.
온갖 정성을 다해 묻어 두고 온 그 구리 막대가 지금도 자주 생각이 난다. 생각해보니
그 때를 정점으로 오디오의 열락도 함께 하강한 것이 아닌가 느껴진다. 단독 주택을 새로 지어 튼튼한 땅바닥을 가진 넓은 오디오 공간과 구리 막대기 접지공정을 마친 오디오 환경, 이런 원망이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그 구리막대는 이른바 제3종
접지방식 때 쓰이는 물건이며 제3종이라는 것은 대공장이나 큰 건물에 시공하는 접지방식
이란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키우치 사장에게 우연히 이런 얘기를 하였는데, 처음에는 미소만 짓고 그러냐는 식의 반응이었으나. 농담에 아니라 나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담이라고 말하자 박장대소한 다음 앱설루트사운드 지의 기사감이라고 정색을 하고 말 하는게 아닌가! 나는 그 순간 우리나라를 국제 망신시키는 게 아닌가 좀 후회스러웠다.
그 후 키우치 사장을 만났더니 농가성진이 되어 정말로 앱설루트 사운드 지에서 그 얘기를 듣고 대단한 흥미를 보이며 왕복 여행경비를 보낼 테니 만났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에도 그렇게 지독한 인사불성이 있느냐. 현황 얘기겸 나의 여러가지 애기를 좀 들려 달라는 것이었다.
키우치 씨는 하모닉스로 해서 미국 오디오계에서는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다. 기우치사장은 그 후로도 심심하면 그 얘기를 꺼내곤 했으나 차마 그런 일로 거기까지 갈 수야 없었다.
<독일기계 와 도이쳐 솔다트 >
EMT를 한국에 가져 와서 다시 조립해 보려 했으나 미세 조정하는 부분이 자신도 없고 그새 조럽하는 순서도 잊어버려서 난감하가 짝이 없었다. 그래서 모범생인 예의 H씨에게 물어 봤더니 서울의 동북쪽에 산다는 독일 계에 관하서는 화타편작 같다는 사람을 소개해 주었다. 소문대로 EMT는 능숙한 외과 전문의에 의해 순식간에 해체 조립되었다.
그 P씨는 한때 W.E.에 빠진 적도 있었으니. 벌써 졸업하고 지금은 독일제 골동품 기계가 아니면 오디오로 치지 않을 정도로 몰두해 있다고 한다. 그는 한국의 골동품 오디오 업계에서 독일 병정 (Deutcher Soldat)으 로 통하고 있다. 미련우직의 대명사가 독일 병정이지만 실제로 만나보나 총명한 눈의 소유자로서 민첩하기 짝이 없었다. 독일의 골동 오디오에 완전히 매료된 오디오화일 이지만 진실한 음악 애호가로서 일주일에 한 번은 가족과 함께 콘서트홀을 찾지 않으면 못 배긴다는 멋쟁이이기도 하다.
그 복잡한 기계를 문외한의 호기심에서 출발, 독학으로 마스터한 수준에 이르렀다면 대단한 머리의 소유자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이 별명은 그에게 전혀 당치 않는 것 같다. 어쨌든 최근에 그 독일 병정의 집을 실례 방문한 적이 있었다. 넓지도 않은 접이 온통 독일 기계로 뒤죽박죽이 되어 있었다. 2차대전 격전지의 잔해 같은 독일 기계들이 여기저기 발 디딜 틈이 없이 널려 있었다. 수천 장 되는 판은 하나같이 A급 상태의 회귀판들이 었다. 그 소프트웨어에 놀랐고 독일기계의 완성도와 그 소리에 또 한 번 감동했다.
아닌게 아니라 독일 사운드라는 계파가 있음직도 하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외양 그대로의 소리였다. 그리고 50여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 소리의 정갈함과 치밀함이 감지된다는 것에 탄복하였다. 외양의 견고성, 극도로 절제된 공간 활용도 기막힐 정도였다.
소리도 외양과 똑같다고 느꼈다. 독일 병정은 미련한지 몰라도 그 철모의 디자인만은 빈틈 없는 작품으로 여겨 오던 터였으나, 그네들의 오디오에서도 그것을 그대로 적용했던 것 같았다. 조립식으로 된 프리앰프를 보면 흡사 스타트렉에서 보이는 우주선과 흡사했다.
클랑크필름 오이로딘을 모노럴로해서 듣는 아일랜드 민요는 지금도 가슴에 선하다.
P씨에 의하면 독일 기계는 메이커가 다론 것 까지 조합해도 다 잘 맞는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그런지 하를러의 전체 주의적 분위기마저 풍기는 듯한 느낌이었다. 미국의 WE.가 개인 주의적인 제품으로 풍요로움과 자유분방을 표방했다면, 독일의 노이만이나 클랑크필름, 바우어, 짜이스, 텔레풍켄, EMT 등은 극도의 절제성과 전체주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것 같다. 혹시 W.E. 제품의 소유자가 자유분방하고 유복한 개인이 될 수 있었던 데 비해 독일 제품의 경우에는 방송국, 극장등 집단의 소유였다는 데에 그 차이가 있진 않을까?
독일 제품들은 전쟁 수행을 위한 홍보 선전을 위해 거국적으로 만든 제품일지로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 않아도 원래 탁월한 정밀성을 자랑하는 독일 제품이 그런 이유로 더 완벽성을 추구한 것아 아닐는지, 오디오에 있어 ism 문제는 상관할 비 아니고 소리만 마음에 들면 그만 아닌가 생각한다. 이들 기계들은 말할 수 없이 독특한, 흡사 옛날 라이카 사
진기로 찍은 사진 같이 윤곽이 또렷한 소리를 들려주었다. W.E.와 마크 레빈슨의 좋은 점만 골랐을 때의 소리라고나 할까, 극장이나 방송국 등에서 쓰는 물건을 집에 갖다 놓고 들으면 기분상 썩 좋지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만약 W,E,식으로 시스템을 바꾸지 않았더라면 독일 기계 쪽으로 마무리를 짓고 싶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정말로 독일(유별나게 뛰어난)한 기계라 생각하며 독일 병정 P씨가 그것을 예찬하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anachrophile의 회한>
최근 LS 3/5A와 W.E.755A 등 소형, 정교형 사운드를 본의 아니게 포기하게 된 나는 허탈감의 반동으로 고심 끝에 35년 쯤의 제품으로 보이는 일렉트로보이스 조지언 600을 들여 놓았다. 0.5cm의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엘리베이터문과 현관문을 통과한 것을 보면 연분이 있었는지 소리도 다른 기기와 그지없이 잘 어울린다. 고물 창고에 있을 때에는 구접스럽기 짝이 없던 외양과 소리가 집에 갖다 놓고 보니 완전히 때를 벗은 듯 나날이 좋아지는 느낌이다. 스케일감이나 자연스러움이 모두 다 갖추어진 느낌이다. 귀가 에이징될 나이는 벌써 지났다고 본다면 고물이라도 새로 쓰면서 에이징이 되는 것인지, 또 리스닝 공간의 에이징이라는 것도 있을 수 있는 것 인지하는 생각이 든다.
조지언 600은 직경이 30인치 나.되는 우퍼가 옆과 뒤의 벽을 치면서 베이스를 내게 되어 있으나 불행히도 좌우벽 모두가 거의 없고, 리스닝 공간도 너무 좁아 50%도 제 소리가 나모지 않으리라 짐작되지만, 아무런 불만이 없다. 4개의 벽면이 완비된 더 넓은 공간일 경우에는 훨씬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저축해 둔 것 같아 마음 든든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소리가 점점 제자리를 잡아 가고 있는데도 무슨 영문인지 요즈음은 오디오로부터 좀 멀어지는 듯한 감을 어쩔 수 없다. 갈수록 심해지는 일상의 스트레스 때문인가, 아니면 너무나 오랜 기간 마음속에서 자리를 비켜 주지 않는 오디오 망령에 질린 때문인가.
이제 더 바랄 수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세트를 눈앞에 두고 곰곰이 회상을 해본다.
골인 후의 마라톤 선수의 심정이 이럴까.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구운몽 같은 우여곡절이 비디오의 리와인드 모드로 보는 것처럼 20년 가까운 세월에 걸친 온갖 우행의 과정이 뒷걸음질치며 떠오른다. 돌이켜 보니 그것은 장판의 장비도 투구를 벗어 절할 좌충우돌의 역사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와 동시에 얼마나 혼자만의 쾌락에 집착 했던가 그래서 가족에게 얼마나 소홀했으며 많은 괴로움을 주었던가 하는 깊은 회한에 빠지기도 한다.
지난 20여년간 다섯번 집을 옮겼다. 남쪽으로부터 북상만을 계속하면서 지금 불광동까지 와 있는데 오디오 생활마저 같은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아 참 기이하다는 생각이 든다. 열심히 돌아기가고 있는 포르셀을 물그러미 바라보니 검은 아날로그판은 분명 시계방향(clockWise)므로 돌고 있다. 그러나 이 바쁜 우루과이라운드 시대에 나의 오디오 여정은 시계 반대 방향(anticlockWise)으로 돌고 있지 많은가. 이제 와서 독일 기계 대한 연모의 정이 웬말인가. 나는 건전한 오디오화일이기 이전에 시대착오를 즐겨온 한갖 아나크로화일(anachrophile)이자 오디오 중독자가 아니었을까?
요즈음 그러한 의구와 회한을 이겨 내치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슬그머니 두려운 생각마저 든다. 알코홀 중독자(alcoholic)가 어느 날 갑자기 술이 싫어지면 예삿일이 아니듯이, 오디오 중독자(audioholic)가 갑자기 오디오 듣기를 마다하게 된다면 그것도 매우 심각한 일이 아닌가? 장기간의 전력 질주로 인한 탈진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로 인한 근본적인 체질 변화일까? 부디 전자의 경우이기를 바라며 어느 밝은 날 할머니의 약손 같은 모차르트가 그런 것을 치유해 주리라고 한 가닥 기대할 따름이다.
<끝>
출처 - 하현상의 오디오 에세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