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 선사 수행일화 ⑯
바랑에서 돼지 뒷다리 꺼내니
황소만한 호랑이 법당 난입
경허 스님 법당 밖 바위에 가부좌
호랑이들 설법 듣듯 스님 앞에 엎드려
경허 스님의 명성이 방방곡곡을 울릴 즈음 송광사에서 스님을 청했다. 경허 스님을 불사 점안, 즉 불상이나 탱화를 조성하고 불상의 안정에 점을 찍는 의식의 증명법사로 초청한 것이었다.
경허 스님의 무애행이 파격적이라 스님을 초청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많았지만 스님의 경지를 알고 있는 대중들에 의해 초청된 것이었다. 자연히 송광사 점안법회는 큰 관심을 끌었다.
송광사에서는 증사단(證師檀)을 호화스럽게 꾸민 후 경허 스님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경허 스님의 점안을 보기 위해 대사찰인 송광사와 그 주변의 말사, 암자에서 수많은 대중들이 법당을 가득 채웠다.
이윽고 경허 스님이 나타났다. 그러나 경허 스님은 이미 술에 취해 있었다.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까.” 그렇게 소리 죽여 말하는 이들은 경허 스님을 초청해서는 안 된다는 측이었다.
“아니 어쩌시려고…….” 걱정스럽게 지켜보는 측은 경허 스님을 초청하자던 대중들이었다. 법당 안에 들어선 경허 스님은 대중 앞에서 성큼 단상으로 올라갔다. 스님은 먼저 공양주를 불렀다. 그리고 메고 온 바랑에서 난데없이 술병과 돼지 뒷다리를 끄집어냈다.
“이거 얼른 삶고 데워 와!” 법당 안에 모인 스님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증명법사로 오신 스님이 술과 고기라니? 특히 증사단에는 가당치도 않은 것들이었다. 이런 경허 스님에 대한 불만은 특히 젊은 스님들 사이에 더욱 크게 일었다. 젊은 스님들 사이에서는 ‘증사고 뭐고 미친 주정뱅이를 쫓아내자’는 공론마저 일었다. 이런 동요는 노장 스님들의 만류로 겨우 진정됐다.
그러던 순간이었다. 황소만한 호랑이들이 법당 안으로 날아 들어왔다. 증사단 앞에서 경허 스님을 끌어 내리려던 스님들에게 호랑이들은 눈앞에서 시퍼런 안광을 내뿜었다. 경허 스님은 주장자를 끌고 법당 밖 넓은 바위 위로 올라갔다.
바위에 올라앉은 경허 스님은 눈을 지그시 감고 가부좌를 틀고 조용히 앉았다. 여러 마리 호랑이 중에 두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경허 스님이 앉아 있는 바위로 다가왔다. 바위에 올라간 호랑이들이 경허 스님 앞에 꿇어 엎드렸다. 경허 스님은 여전히 묵연 삼매에 잠겨 있을 뿐이었다. 호랑이들은 이런 스님 앞에서 마치 설법을 듣는 듯했다.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본 대중들은 사태 변화를 지켜보며 숨을 죽였다. 경허 스님은 한참 만에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봤다.
“이제 다 물러가 해탈문에 들도록 하여라.” 경허 스님의 우렁찬 말이 떨어지자 호랑이들은 모두 일어나 조계산(曹溪山) 깊은 산속으로 사라졌다. 경허 스님은 그 후 증사단으로 올라 무상의 묘법을 설했다.“ 술과 고기 맛이 기가 막히니 이곳이 고불(古佛) 도량임을 알겠다. 분명 물은 맑고 산은 푸르리라. 달은 밝고 바람이 맑으니 이것이 본래면목(本來面目)의 소식이 아니겠는가. 천상에서 내려오는 부처들이 곧 그대들의 불성(佛性)이로다. 그 불성에 눈뜨지 못한 자 오늘에야 눈을 뜨리라.”
경허 스님은 그렇게 말한 뒤 불상에 점안으로 생명을 불어넣고 조계산 속으로 호랑이처럼 사라졌다. 대중은 사라져가는 경허 스님을 바라볼 뿐이었다?
<대방광불화엄경>의 소식 하루는 경허 스님이 오대산 월정사를 지나게 됐다.
당시 월정사 방장으로 있던 인명(寅明) 스님이 경허 스님에게 〈화엄경〉 설법을 청해 3개월간 월정사에서 화엄경 법회를 진행됐다. 1,000여 명에 달하는 승속이 청법하는 자리에서 경허 스님은 의연히 법좌에 올라 말했다.“ 〈대방광불화엄경〉이라.”경허 스님은 먼저 대(大) 자에 대해 설법했다.“대들보도 대(大)요, 댓돌도 대요, 대가사도 대요, 세숫 대도 대요, 담뱃대도 대니라.”
경허 스님은 곧이어 방(方) 자에 대해 설하길“근 방도 방이요, 지대방도 방이요, 질방도 방이요, 동서남북 사방도 방이니라”고 말했다.이어 스님은 광(廣)자로 법문을 이어나갔다.“쌀광도 광이요, 찬광도 광이요, 연장광도 광이요, 광장도 광이니라.”
불(佛) 자에 대해 “등잔불도 불이요, 모닥불도 불이요, 촛불도 불이요, 화롯불도 불이요, 번갯불이도 불이요, 이불도 불이며, 횃불도 불이니라.”고 말했다.
화(華) 자에 대해 “매화도 화요, 국화도 화요, 탱화도 화요, 화병도 화요, 화살도 화요, 〈화엄경〉도 화니라”고 설법했다. 엄(嚴) 자에 대해서는 “엄마도 엄이요, 엄살도 엄이요, 엄정함도 엄이요, 화엄도 엄이니라.”또 경(經) 자에 대해서는 “면경도 경이요, 구경도 경이요, 풍경도 경이요, 인경도 경이요, 안경도 경이니라”고 말했다. 경허 스님의 자유로운 노래에 대중은 모두 흥미를 느꼈다. 경허 스님은 이어 〈화엄경〉에 대한 심오 무변한 대의진수(大義眞髓)를 3개월 간 설했다.
현대불교신문: 노덕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