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會上
법화경일일법문 종지용출품 제15: 부처님이 옛날 석씨종족에서,
부처님이 옛날 석씨종족에서
출가해 가야성 근처
보리수에 앉은 지가
이로부터 오래지 않았는데-1
이 모든 불자 등은
그 수 헤아릴 수 없는데
오랫동안 불도를 닦아
신통력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까!15-73,2
불어종석종 출가근가야 좌어보리수 이래상불구
佛昔從釋種 出家近伽耶 坐於菩提樹 爾來尙未久
차제불자등 기수불가량 구이행불도 주어신통력
此諸佛子等 其數不可量 久已行佛道 住於神通力
佛昔從釋種하사 出家近伽耶하사
坐於菩提樹가 爾來尙未久이온데
此諸佛子等은 其數不可量이
久已行佛道하야 住於神通力하나잇가
1-이 게송은 2항에 모두 40글자로 이루어져있다. “佛昔從釋種”부처님이 석씨의 종족에서.. 석가모니부처님을 원교여래에 입각해도 석씨에서 출가를 하였고, 법신여래에 입각해도 석씨에서 출가를 하였다. 즉 저 모든 지용보살은 모두 법신여래의 석씨에서 경전출가를 하여 불도를 닦아 지용의 계위에 올랐음을 알아야 한다.
2-지금 미륵보살이 게송을 통해 석존을 원교여래에 입각하여 출가한 것을 물었기 때문에.. 구원의 옛날을 읽을 수가 없는 것이다. 또 석존이 지용의 종족으로써 중생일 때에 경전출가를 해 불도를 닦았음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석존을 원교여래에 입각하여,“出家近伽耶”출가해 가야성 근처에서.. 라고 의문을 한 것이다.
3-만약에 석존이 경전출가를 하지 않았다면, 지용의 제자가 있을 리가 만무하고, 지용의 제자가 없다면 일월등명불과 같이 원교여래의 계위에서 불도의 끝 지점이라고 확정을 하고 말았을 것이다.
4-또 석존이 만약에 원교여래에 입각하여 지용의 제자를 두었다면, 2만 명의 일월등명불 시절에 묘광보살이 같은 묘광보살의 이름으로.. 2만 명의 일월등명불 시절에 태어나 2만 번이나 법화경의 유통직을 물려받았을 때에.. 지금 미륵보살의 의문에 대해 서품에서처럼 대답을 하였을 것이다. “아마 문수보살은 무량한 과거세상에 헤아릴 수 없는 부처님을 섬기며 가르침을 배웠을 것이기 때문에.. 저 모든 지용보살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을 했을 것이고, 문수보살 역시 이와 같이 말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미륵보살이여! 내가 2만 명의 일월등명불 시절에 저 모든 지용보살을 보았나니..”라고 대답을 하였을 것이나, 지금 저 모든 지용보살에 대해 문수보살도 오늘 처음 보았기 때문에 미륵보살도 질문을 하지 않고 문수보살 역시 대답할 수가 없는 것이다.
5-“坐於菩提樹”를 풀이하면, 원교여래의 보리수와 지용보살의 보리수에 있어 그 이름은 동일하나 경계는 다르다. 원교여래는 가야성 근처의 보리수나무 아래서 불도를 얻었으나, 우리들은 구몽삼매 안에서 보리수나무 아래에 앉아 불도를 얻게 된다.
6-우리들은 경전출가를 한 다음에 지용보살의 교화를 받아, 사람의 몸을 하였을 때에.. 석존의 팔만사천대장경과 법화경과 시방삼세의 모든 부처님의 팔만사천의 대장경을 모두 이해하고 통달한 다음에.. 구몽삼매에서 불도를 닦아 부처님이 되는 종족이다.
7-이는 마치 영산회상에 모든 대중이 무량한 겁을 걸치며 석존과 시방의 제불로부터 모든 부처님의 경전을 거의 다 이해하고 통달한 다음에야 불도를 닦아 부처님이 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8-다시 말해 우리들이라고 하여 영산회상의 대중과 달라서, 석존의 팔만사천의 대장경과 시방삼세의 모든 부처님의 팔만사천의 대장경을 모두 다 이해하지 않은 채.. 어떤 특이한 법을 통하여 구몽삼매에 들어가 특별한 법에 의하여 저절로 불도를 얻게 되는 줄로 알아서는 안 된다.
9-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하신 지가 이미 2500년이 넘었는데.. 이곳 남염부주는 갈수록 부처님의 가르침과 멀어지는가 하면, 경전의 이해와 부처님이 법화경에서 말씀하신 가르침에 대해 분석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10-이제 그 진실을 말하면, 소승경전은 소승의 근기인 성문의 중생과 연각의 중생을 위해 연설한 것임을 모르고, 소승의 경전에서 말씀하신 가르침을 가지고 우리들 여래인에게도 해당이 되는 줄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11-소승의 경전은 성문의 근기와 연각의 근기만을 위해 연설한 것이고, 보살의 근기를 위해 연설한 것도 아닌데.. 어찌 여래의 근기인 우리들을 위해 연설한 경전이라 여길 수가 있는가!!
12-요새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소승의 경전을 가지고 최고의 경전이니 내지는 보살의 경전인 대승경전은 부처님 열반 뒤에 만들어진 경전이니 하는 죄업을 짓는 것이다.
13-법화경에서 부처님이 분명하게 이르시길, “삼승의 근기가 있다.”라고 말씀을 하심에 있어, 삼승의 근기가 있으면 삼승의 근기만을 위한 가르침의 경전이 구분이 되어 있다. 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14-또 보살 자체가 불가사의하다면, 보살을 가르치는 경전 역시 불가사의한 것이기 마련인데..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소승의 경전은 초기경전이기 때문에 진실이고 대승경전은 후대에 만들어진 경전이라는 허물을 짓는 것이다.
15-대승경전은 중생 중에 보살의 근기만을 위한 가르침이고, 우리들 여래의 근기를 위한 가르침의 경전이 아님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따라서 법화경에서 부처님이 “이 법화경만이 이곳 남염부주에 중생을 구제할 수가 있다.”라고 말씀을 하셨으니, 이는 지금의 시절에 법화경이 유통이 될 것이고, 이 법화경의 영향 안에 있는 모든 중생은 모두 여래의 근기를 지닌 부처님의 제자임을 드러내신 것이다.
16-또 법신여래의 열반 뒤에 이곳 남염부주는 순전히 여래의 근기만을 지닌 중생들이 가장 많이 태어나는 곳임을 증명하기 위해 부처님이 법화경에서 “성문과 연각과 보살은 이곳 남염부주에 태어나 법화경을 유통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씀을 하신 것이다.
17-따라서 소승경전에 입각하여 우리들을 관찰하거나, 내지는 대승경전에 입각하여 우리들을 관찰해서는 안 된다. 우리들은 오로지 법화경에 입각하여 우리들을 관찰해야만 불도에 들 수가 있는 것이다.
18-경전 안에 중생이라는 말은 모두 동일한 중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소승경전 안에서 중생의 말은 성문과 연각의 근기를 지닌 중생을 말하는 것이고, 대승경전 안에서 중생은 보살의 근기를 지닌 중생을 말하는 것이다.
19-따라서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소승경전 안에서 중생도 아니고, 대승경전 안에서 중생도 아니다. 따라서 부처님이 법화경에서 “내 열반에 든 뒤에 법화경을 지닌 사람들이여! 그대들은 소승경전 안에 중생도 아니고 대승경전 안에 중생도 아니고, 오로지 법화경의 경전 안에 중생일 뿐이기 때문에.. 내가 여태까지 연설한 소승과 대승경전을 가까이하지 마라.”하신 것이다.
20-질문, 만약 그렇다면 어찌하여 부처님께서는 우리들을 위해 법화경만을 연설하면 될 것은 소승과 대승의 모든 경전을 연설하시고 또 소승과 대승경전을 남겨주신 것인가!!
21-대답, 한 분의 부처님이 출현하실 때에는 헤아릴 수 없는 중생에게 이익을 주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뒤에 이곳 남염부주에서만 부처님이 남기신 모든 가르침의 경전이 남아있는 줄로 알지만, 영산회상 당시에 모든 대중이 비록 다른 불국토나 또는 다른 경계에서 왔지만, 이 모든 대중이 모두 석존의 열반 뒤에 각자의 불국토와 각자의 경계에 돌아가, 석존의 모든 가르침을 다시 읽고 외우며 유통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22-석존의 열반 뒤에는 여덟 명의 용왕이 살던 곳에서도 지금의 법화경이 읽고 외워지고 있으면, 28천 역시 이와 같고, 타방의 불국토에서 찾아온 모든 대중 역시 석존의 열반 뒤에 석존의 가르침을 읽고 외우며 널리 유통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23-“爾來尙未久”는! 미륵보살은 석존이 불도를 닦음에 있어, 원교여래에 입각해서 오래지 않았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미륵보살이 아직도 석존이 지용보살의 종족임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수량품에서 지용의 근원을 드러내시는 것이다.
24-“此諸佛子等 其數不可量 久已行佛道 住於神通力”를 총채 적으로 풀이하면, 대승경전의 시절에는 경전 안에 보살의 대중과 보살의 근기를 지닌 중생이 주인공이고, 소승의 성문과 연각과 소승경전 안에서 가리키는 중생은 주인공이 아니다.
25-소승경전의 시절에는 아예 보살의 대중도 없지만, 보살의 근기를 지닌 중생 역시 주인공이 아니고, 오로지 성문과 연각과 소승의 근기를 지닌 중생만이 주인공이 된다.
26-따라서 부처님이 대승의 근기를 지닌 중생에게는 소승의 회상에 참석을 시키는 법이 없는 것처럼.. 우리들 역시 일승의 근기를 지닌 여래의 근기를 가진 중생이다 보니, 부처님이 영산회상과 모든 회상에 참석을 시키지 않은 것일 뿐이고, 우리들이 죄가 깊어 석존의 모든 회상에 참석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27-또 소승의 회상에 참석을 하지 않은 보살의 근기를 지닌 중생의 입장에서는 이 보살의 근기를 지닌 중생이 죄가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에 있어 보살의 근기를 지닌 중생이 소승의 회상에 참석을 하게 되면 도리어 불도에서 멀어지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소승의 회상에 참석을 시키지 않은 것이다.
28-우리들은 일승의 근기를 지닌 여래종족이기 때문에.. 아예 영산보살의 대중과 함께 하지 않게 하시는 것이다.
29-용수와 천태와 일연 등의 보살은 모두 영산회상에 큰 보살로써, 이 분들은 모두 영산회상에 입각하여 원교여래의 계위에 오르는 일을 가지고 불도를 닦는 법을 연설하였기 때문에.. 우리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따라서 이 세 분의 가르침을 듣게 되면 우리들은 불도를 닦을 처지도 못 되고, 도리어 죄인이 되어 지금과 같이 하염없이 방황을 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30-용수보살도 대승보살의 사상을 일으킬 때에.. 보살사상에 입각하여 소승의 사상을 가차 없이 때린 것은.. 소승의 사상은 보살의 근기를 지닌 중생에게 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31-보운지용 역시 일승사상을 일으킴에 있어, 보살사상을 멀리하게 하는 것은, 부처님이 법화경에서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일 뿐이고, 저 홀로 지어낸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32-우리들은 법화경 안에서 부처님이 말씀하신 수기를 받은 중생임을 분명하게 알아야 하고, 법화경 안에서 수기를 받았기 때문에.. 부처님이 우리들과 보살을 구분하기 위해서, 영산회상에 참석을 한 적이 없지만 중생으로써 수기를 받았고, 영산회상에 참석을 한 적이 없지만, 보살들로부터 여래와 같은 공경을 받게 하신 것이다.
佛昔從釋種 出家近伽耶 坐於菩提樹 爾來尙未久
此諸佛子等 其數不可量 久已行佛道 住於神通力
-偈頌-
화엄경 안에서
중생을 가리켜 우리들이라고 여기면
영원히 화엄경을 이해할 수가 없다.-1
하지만 법화경 안에서
중생이 우리들임을 알게 되면,
화엄경을 이해함에 있어
빠르면 하루면 되고,
둔한 근기도 삼일이면
저 스스로 읽고 외우는 중에
이해를 하고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다.-2
-寶雲地湧 釋種合掌-
一乘妙法蓮華經 一切諸佛神通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