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시비분별 사라진 마음자리
텅빈 그대로의 마음이 ‘여여’며
깨달음이니 더 닦을 것도 없어…
여여라는 말은 불가(佛家)의 용어로 ‘변함이 없는 마음’, ‘속되지 않은 마음’이란 뜻입니다. ‘여여(如如)’라는 한자는 원래 산스크리트어 ‘타타타(tatahta)’의 의역으로, ‘물건의 본연 그대로의 모습’이라는 뜻이지요. 변화하는 세계의 변화하지 않는 존재 그대로의 진실한 모습을 말합니다. 말길이 끊어지고 마음 갈 곳이 사라진 텅 빈 마음자리가 변함없이 영원한 것을 ‘여여’라 합니다. 이 자리를 대주스님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원문 번역: 문) 여여란 무엇을 말합니까? 답) 여여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마음이 참으로 고요하고 변함이 없이 여여 하므로 ‘여여’라고 한다. 과거 모든 부처님도 이 여여한 행을 실천하여 도를 이루시고, 현재의 부처님도 이 행을 실천하여 도를 이루시며, 미래의 부처님도 이 행을 실천하여 도를 이루신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이 닦아 도를 증득한 것이 이와 조금도 다를 게 없으므로, 이를 여여라고 한다. <유마경>에서 “모든 부처님도 여여하고, 미륵보살도 여여하며, 모든 중생도 다 여여 하니 무슨 까닭인가. 부처님의 성품은 끊어짐이 없이 여여한 성품이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강설】 여여한 마음 그것이 본디 우리 마음입니다. <능엄경>에서 이 마음을 알기 위해 아난은 혼신의 노력을 다하여 마음을 찾습니다. 아난은 일곱 군데에서 마음을 찾았다고 부처님께 말씀드렸지만 부처님께서는 그것은 모두 참마음이 아니라고 하셨으니, 아난이 찾아 낸 것은 모두 망념으로 그 실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중생의 몸과 마음 등 세간의 모든 법은 허깨비나 이슬, 꿈과 같은 것으로 임시로 인연이 모여 있을 뿐입니다. 인연이 다하면 흩어져 사라져 그 실체가 없으니, 공(空)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공(空), 공(空) 하는 것은 망념이 다 사라진 마음자리를 말하는데, 중생의 온갖 시비 분별이 사라진 이 마음자리가 부처님입니다. 이 마음에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고 다만 텅 빈 모습 그대로 있을 뿐입니다. 다만 텅 빈 모습 그대로 있는 이 마음을 ‘여여’라고 하고, ‘참마음’이라고 합니다. 이 ‘여여한 마음에서 오신 분’이 바로 여래입니다. 시비분별이 사라져 여여한 마음이 드러나게 되면 그 마음이 드러나는 자리가 부처님이 오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여여(如如)’ 그 자리의 참마음을 얻고자 하면, 먼저 이 세상 모든 것이 환(幻)인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 온갖 존재가 환인 줄 알면 그 자리에서 환을 여의는 법입니다. 연기법으로 이루어진 이 세상의 실체가 환인 줄 알았다면, 더 이상 이 세상을 집착하는 중생의 꼭두각시놀음에 놀아나지 않게 됩니다. 환을 여읜 이 자리를 깨달음이라 하니, 여기서는 더 이상 집착할 깨달음도 없습니다.
중생들은 ‘허깨비와 같은 이 세상의 온갖 허망한 경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지만 이 허망한 경계를 멀리 벗어나려는 마음도 집착에서 생긴 것이니 이 또한 ‘허깨비 같은 마음’이요, 여기서도 멀리 벗어나야 합니다. 허깨비 같은 그 마음에서 ‘멀리 벗어나려는 것’도 ‘허깨비 같은 마음’이 되니, 여기에서도 다시 더 멀리 벗어나야 합니다. 멀리 벗어나려는 ‘허깨비와 같은 마음’을 벗어나고 또 벗어나서 더 벗어날 바 없는 곳에 다다르면, 곧 모든 ‘허깨비와 같은 그 마음’은 저절로 사라지는 법입니다.
모든 ‘허깨비 같은 마음’이 사라지면 이 자리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본래 있던 참마음이 드러납니다. ‘허깨비 같은 마음’인 줄 알고 ‘허깨비 같은 마음’을 떠나니 방편 쓸 일이 없고, ‘허깨비 같은 마음’을 떠난 그 자리가 깨달음이니 점차 닦을 깨달음도 없습니다. 이런 참마음을 <금광명경>에서 ‘여여(如如)’라고 하니, 참마음은 참되고 영원하여 조금도 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출처 : 불교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