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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3장 10-17절. 지혜로운 건축자. 요약설교
10-11절. 하나님의 교회의 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임
12-15절. 세운 공력 따라서 상벌을 받을 것임
16-17절. 인간 중심의 분열을 초래하여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를 파괴하지 말 것
10절.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1.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두매
이 말씀은 앞 절에서 교회를 ‘하나님의 집’이라고 했기 때문에, 건축에 대한 말씀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가 터를 닦아 두었다"는 것은 사도행전 18장에 자세히 말씀하고 있는 대로, 바울 사도가 AD 52-53년에 1년 반 동안 고린도에 머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여 고린도 교회를 설립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행 18:11)
그런데, 이때 바울 사도가 천막 장사를 해가면서 복음을 전했고, 또한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여 하마터면 감옥에 갇히거나 죽을 뻔한 위험을 당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자신의 공로로 교회의 터를 닦아 두었다’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터를 닦아 두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역에서 직분 맡아 일을 할 때나, 주일 학교에서 교사로 일을 할 때나, 찬양대에서나 어느 기관에서 일을 할 때에 반드시 명심할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서,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도저히 할 수 없다는 자세로 겸손히 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을 성취한 다음에도 바울 사도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했습니다”라고 겸손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직분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바울 사도가 설립한 고린도 교회에서, 목회자 아볼로가 목회를 했습니다.
사도행전 18장 26-27절을 보면, 바울 사도가 AD 53년에 고린도 교회를 떠나 선교 출발지인 안디옥 교회로 돌아갔을 때, 아볼로는 고린도 교회의 창설 멤버였던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에게 추천을 받고 고린도 교회에 가서 목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본 절에서 ‘다른 이’란 목회자 아볼로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의 분쟁은 목회자 아볼로가 목회할 때 발생했습니다.
어떤 신학자들에 의하면, 이 부분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분열에 대한 목회자 아볼로의 책임을 암묵적으로 지적하고 있다고 합니다.
즉, 12절-15절은, 나무나 풀이나 짚과 같은 것으로 집을 지은 것은 아볼로의 철학적인 설교를 비판한 것이고,
16절-18절에서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지 말라’는 것은 교회 분열에 대한 목회자 아볼로의 책임을 책망한 것이며,
19절-23절에서 ‘세상 지혜는 어리석은 것이라’고 하는 것은 목회자 아볼로의 철학적 설교를 책망하면서 교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하나님의 교회의 직분자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나가는데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모든 직분자들은 언제든지 ‘하나님의 종’이란 신분 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일해야 하겠고, 세상 지혜로 일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하고 나서, 겸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17장 10절에는 “이와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할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1절. 이 닦아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를 설립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교회를 설립했다는 것입니다.
즉, 바울 사도는 오직 예수님께서 그리스도 되심을 전파함으로써 교회를 설립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귀중한 교훈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즉,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의 집을 지어갈 때나, 교회 생활을 해 나갈 때, 그리고 인생의 집을 지어갈 때, 영원한 반석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위에 집을 지어야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찬송가 488장).
오직 예수님 밖에는 우리를 구원할 자가 도무지 없습니다.
인생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죄와 여러 가지 고통, 두려운 죽음, 그리고 마귀를 믿음으로 이길 수 있게 해 주시는 분은 오직 그리스도 되시는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에 부딪히면, 권력 있는 세상 지위나 명예나 건강이나 돈이 허망하게 느껴집니다.
12절.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 이것은 교회 직분자들이 일하는 두 가지 모습을 가리킵니다.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세우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목회하는 것이고,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세우는 것은 인간적인 교훈이나 인간적인 방법으로 목회 활동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마태복음 15장 9절에는,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고 했습니다.
어떤 면에서 아볼로파는 철학과 웅변과 인간적인 지혜를 추종했고, 게바파는 유대교의 율법과 기적을 따라갔고, 그리스도파는 금욕과 신비를 추종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나무와 풀과 짚으로 신앙의 집을 짓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13절.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이니라.
1. ‘그날’이란 주님이 재림하여 심판하실 날을 가리킵니다.
인간적 교훈으로 가르치고, 자기를 과시하면, 상급을 받지 못하고 자신만 구원 얻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공력에는 상급이 따릅니다.
마태복음 5장 12절에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급이 큼이라”고 했습니다.
2. 한편 <그날>이란 교회에 환난 풍파가 몰아치는 때를 가리킵니다.
즉 국가나 외부로부터 환난과 핍박이 닥치는 것이나 교회 내부에서 극단적인 싸움과 분열이 생기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런 불시험과 환난 풍파를 당하면, 성령과 말씀으로 지어진 신앙의 집은 무너지지 않지만, 나무와 풀과 짚 같은 인간적인 신념으로 지어진 집은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3. 실제로 저희 경험상 교회가 화목하고 평안한 교회는 지역의 불신자들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어서 외부에서 이사 온 가정에게 아무 교회에 나가라고 소개해줍니다.
그러나 교회가 분열하고 심각하게 싸우면, 불신자들이 그런 교회는 문 닫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도무지 전도의 길이 막혀버립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집을 무너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14절.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절.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1. 이것은 창세기 19장에서 마치 롯이 불 가운데서 빈 몸으로 구원받은 것처럼, 자기를 과시하기 위해서 직분을 감당하면, 마지막 심판 때에, 상급이 없이 겨우 자기 몸만 구원받는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주님 중심으로 직분을 감당하지 않고,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 등, 사람 중심으로 직분을 감당하는 잘못을 염두에 두고 경고한 말씀입니다.
실제로 어떤 교회가 분열하여 심각하게 싸우면 도무지 전도가 안 되어서 마치 불 가운데서 구원받는 것처럼 자기만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6절.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 본 절에서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한 말씀은 고린도전서 6장 19절에서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는 말씀과 다릅니다.
본 절은 ‘너희들(연관된 동사 ἐστε: 2인칭 복수형 동사)이 하나님의 한 성전(ναὸς: 단수형)이다’는 뜻이고, 6장 19절에서는 그리스도인 각자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오늘 본 절은 마치 출애굽 당시에 광야의 이스라엘 회중 가운데 하나님께서 임재해 계시는 모습을 말씀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민수기 5:3)
그러므로 여기서 ‘성전’이란 눈에 보이는 예루살렘 성전 같은 건물(temple)이 성전이 아니고, 예수 믿는 성도들 즉 교회가 성전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예배당 건물이 여기서 말하는 성전도 아닙니다.
스데반은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키면서, 저 눈에 보이는 예루살렘 성전에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은 온 우주에 충만하시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7:47-49)
우리 예수님께서는 주의 이름으로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예수님도 함께 계신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8:20)
2.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교회에 (성도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하나님 앞에서 항상 마음가짐을 올바르게 해야 하겠고, 말과 행동도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처신해 가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모여서 예배하거나 무슨 모임을 가질 때는 그 가운데 예수님도 함께 계심을 알고, 언행심사에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성도들이 모여 있는 교회에서 싸우고 욕하고 난동을 부리는 것은 바로 주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므로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멸하신다고 했습니다.
성도들이 모인 교회 즉 하나님의 성전에서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Coram Deo) 하나님 앞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시기 바랍니다.
3.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생활하다 보면, 에베소서 5장 4절에 나오는 말씀처럼, “성도들에게는 더럽고 음란한 말이나, 누추하고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나오지 않고, 듣고 난 후에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17절.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1. ‘더럽히면’(φθερει)이란 ‘파괴하면’이란 뜻도 있습니다.
원래 이 말은 정조를 잃은 여자가 망신당하는 데 쓰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교회가 사람을 중심으로 분쟁하여, 사람들 앞에서 망신스러운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3장 35절에는,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성도들끼리 각 구역에서 열심히 서로 사랑하여서, 그 지역 내에 사는 불신자들이 나도 저 예수 믿는 사람들처럼 살고 싶다고 감동받아 교회에 나오는 축복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2. 우리가 삼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즉, 이 구원의 집을 더럽혀서 세상 사람들이 구원을 받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방해하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가만두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구원받은 우리들은 복음에 합당한 빛 된 생활을 하도록,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살고, 마음가짐과 언행 심사를 삼가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27)
3. 여기서, 사도 바울은 특히 아볼로파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의 일을 하지 않고, 인간적 지혜로 교회의 일을 함으로써, 교회에 말썽과 분쟁이 생긴 것을 염두에 두면서 교훈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라고 함으로써 아볼로파만 특정하여 말하지 않고, 보편화시켜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성도들은 교회(성도들의 모임)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알고, 교회에서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언행심사를 삼가 조심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