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w8S7SMjkF_s?si=lk3ilTD50ocO_Iqv
선생님? 사람들은 당신같이 위대한 분, 완전히 깨달으신 분, 강력하고 자비로운 분을 만나러 옵니다. 당신의 그 능력과 자비를 왜 그들 모두를 해탈케 하는 데 사용하지 않으십니까?
위의 문장은 많은 사람들의 착각을 표현한 문장이다.
'고통에 빠져있는 중생들을 왜 그 고통에서 꺼내어주지 않으시는 건가?'
이것은 타인에게 의지하려고 하는 유약한 마음이다.
자신의 삶은 자신이 바꿀 수 있다.
스스로 삶을 바꿀 수 없다고 여기고, 그 과정을 견디기 싫어하는 도둑놈 심보 같은 마음으로 타력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원리는 그렇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 진실이다.
사람들은 내가 여기서 닙바나까지 직접 걸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 길을 완벽하게 안다는 것을 알고 내게 찾아온다네. 와서 내게 묻지.'닙바나를, 해탈을 얻는 길이 무엇입니까?' 거기에 숨길 것이 뭐가 있겠는가? 나는 명확하게 설명해 준다네. '이것이 그 길입니다.' 어떤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훌륭한 말씀입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아주 훌륭한 길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길, 그 훌륭한 길을 걷지 않겠습니다. 저는 그 길을 걷기 위해 노력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한다면, 그런 사람이 어떻게 최종 목표에 다다를 수 있겠는가?
나는 누군가를 내 어깨에 앉히고 최종 목표까지 데려다주지 않네. 아무도 다른 사람을 어깨에 앉히고 최종 목표에 데려다줄 수 없다네. 최대한 할 수 있는 것은 사랑과 자비의 마음으로 '자, 이것이 바로 그 길입니다. 이렇게 해서 저는 이 길을 걸었습니다. 당신도 노력하세요. 당신도 이 길을 걸으세요. 그러면 최종 목표에 다다를 겁니다'라고 말하는 것뿐이라네. 각자가 스스로 걸어야 하네. 매 걸음을 스스로 밟아야 해. 한 걸음을 걸은 사람은 그 목표에 한 걸음 가까워진 것이네. 백 걸음을 걸은 사람은 그 목표에 백 걸음만큼 가까워진 것이네. 그 길을 모두 걸은 사람은 최종 목표에 다다른 것이네. 자네도 스스로 이 길을 걸어야 하네."
부처님께서는 상대방이 질문한 것을 비유로써, 그 사람의 수준(근기)에 맞춰서(차제) 반문하는 방식의 설법을 자주 하셨다.
즉, 상대방이 다른 비유로 자신의 의심을 풀 수 있도록 하는 설법 방식이다.
진리의 길을 안다고 하더라도 의심, 게으름, 사견, 부정성 등으로 그 진리의 길을 직접 걷지 않는다면 원하는 성과는 나오지 않는다.
심어지지 않는 씨앗이 열매를 맺는 경우는 없다.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넘어 공부를 분명하게 소화시켜서 이해하고 실천해야 하는 이유다.
공부를 하는 것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실천해야 하기 때문에.
만약 올바른 방법을 알았다면, 게으름을 극복하고 실천해야 한다.
부처님께서는 문, 사, 수 삼혜를 중요하게 여기셨다.
문과 사가 갖추어져 있다면 이제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강조되어야 하는 것은 실천이다.
반대로 정보가 없고, 자기화된 이해가 없다면 실천하는 것이 위험할 수 있다. 잘못된 길로 갈 수 있기 때문에.
3가지 모두 필요하고, 중요하다.
3가지 지혜가 원만하게 갖추어질 때 삶을 바꿀 수 있다.
삶을 바꿀 수 있는 결정적인 것은 실천이다.
수행자에게 있어서 교리는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결국 마음을 갈고닦는 명상 수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