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그저 늘 감사하면서 하루하루 충만한 기쁨 속에 살아가야겠습니다!>
설날이 다시 한번 더 있다는 것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난 신정 때 야심 차게 세웠던 좋은 결심이나 이정표가 슬슬 느슨해져 갈 무렵, 또 다른 설날인 구정을 맞이하니, 각오를 재정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니 말입니다.
차례를 지내고, 연미사를 봉헌하면서 먼저 떠난 우리 조상들과 신앙의 선배들의 삶과 죽음을 기억하는 오늘, 성경 말씀들은 머지않아 우리에게도 어김없이 다가올 마지막 순간을 잘 준비하라고 초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야고보서 4장 14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루카 복음 12장 40절)
오랜만에 종합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병원측 서비스가 얼마나 자상하고 친절한지 모릅니다. 꽤 두툼한 볼륨의 노트 한 권 안에는 저의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아주 세부적으로, 항목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더군요.
더 신경 써야 할 부분에 대해서 정확히 짚어주고 있었고, 위험수위인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정보를 제공해주었습니다. 유난히 제 눈길을 끄는 항목이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다 종합해서 볼 때 귀하의 기대 수명은 84세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84라는 숫자를 처음 대하는 순간, 아~정말 다행이다. 아직도 꽤 남았군, 하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하루 자고 일어나니 생각이 달라지더군요. 왜 기대 수명이 94가 아니라 84인가? ㅋㅋㅋ 보시다시피 사람 욕심이라는 것이 한도 끝도 없습니다.
그리 많이 많지 않은 남은 날들을 어떻게 꾸려가야 하나 하는 새로운 과제가 제게 생겼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처럼, 그날은 언제인지 모릅니다. 기대 수명 84라고 하지만,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그저 늘 감사하면서 하루하루 충만한 기쁨 속에 살아가야겠습니다.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날그날 주님께서 흐뭇한 미소 지으실 그런 삶을 살아가야겠습니다. 무엇보다도 남은 날들이 그리 많지도 않으니 하루를 천년처럼 알차게, 보람되게, 후회 없는 하루를 살아가야겠습니다.
주님께서 한 번 더 주신 보너스 설날 아침, 고마우신 한 수녀님께서 언제 쓴 글인지도 잘 파악이 안 되는 성모님 관련 졸시를 보내주셔서 공유합니다.
<새해의 어머니>
별이 사위어가는 새벽의 뜨락
어둠의 여운을 헤치고
새벽노을로 고이 오시는
새해의 어머니
생계를 위한 몸짓엔 살기가 흐르고
자신을 갉아먹어야 사는 암울의 시대
눈꽃의 순수를 머금은 당신의 미소는
내 오랜 영혼의 상처를 치유하는
한줄기 청정한 바람입니다.
보십시오.
차마 버리지 못해
늘 끼고 사는 이 악습과
죽순같은 사욕과 슬픈 위선
회한과 부끄럼의 한해를
무량의 위로자이신 어머니‘
은총의 선물인 새해엔
칡뿌리 같은 삶의 고뇌와
방황의 의미를 알게 하시고
이타와 천상을 추구하는
회심의 길을 걷게 하소서.
각고의 노력과 비상을 위한
숱한 우리의 날개짓이
아린 상처로 남는다 해도
거듭 새로남의 노력을
다하게 하소서.
가장 작고 소박한 삶을 엮으셨던
가장 크신 분의 어머니 마리아
새해의 날엔
작음에로의 투신을
계속하게 하시고
이 탁류의 세상
비참과 비겁을 딛고 일어서는
의연함을 주소서.
천주의 어머니 마리아여.